소설리스트

혈신 다시 살다!-63화 (64/137)
  • 63화

    그때 정호기를 도와주는 인물들이 나섰으니 바로 당가의 사람들이었다.

    담장을 넘어 들어온 그들을 발견한 순간 당혜미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미소가 번졌다 사라진 반면, 사준우와 가정호의 얼굴은 굳었는데 그들도 당가가 귀접의 신물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영웅회 여러분. 당가의 당평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선 오십 대로 보이는 노인은 일수일살 당평으로서 당가의 외당주도 겸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사준우와 가정호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당 대협을 뵙습니다. 가정호라고 합니다.”

    가정호 등의 인사를 받은 당평의 시선이 아직도 귀화를 밝히고 있는 철접으로 향했다.

    “그대의 사부가 우리 당가의 인물을 해한 것을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

    구원(舊怨).

    미리 귀접과 원한이 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이 싸움에 끼어들 빌미를 만든 셈이었다.

    당평의 말을 들은 사준우와 가정호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는데, 자칫하면 죽 쒀서 개 주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개가 짖었다.

    “사부의 원은 곧 제자의 원. 그대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해결하겠다.”

    말을 마친 당평이 가정호를 바라보았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어느 정도 비슷한 신분이라면 반박이라도 해 보련만, 아무리 영웅회의 회주라 해도 그것은 그들끼리 지은 이름일 뿐이었고, 가정호는 구룡장이라는 작은 문파의 차남이었다.

    당가의 외당주를 맡고 있는 당평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당가의 인물들은 이미 네 방위를 점한 채 귀영단원들을 포위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손이 떨쳐지면 극악하기로 소문난 당가의 독과 암기가 날아가리라.

    “구원을 해결하시는 거라면 그들의 목숨만 취하시면 될 것이니, 귀접의 신물은 영웅회에 양보해 주시지요.”

    막 당평이 공격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담을 넘어오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감철민이었는데, 보다 못한 그가 나서서 사태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것이었다.

    “사가장의 한풍대를 이끌고 있는 감철민이라고 합니다. 당가의 구원을 푸는데 있어 신물은 중요하지 않겠지요?”

    감철민의 말에 당평의 말문이 막혔다. 여기서 더 뻗대려면 진짜 얼굴이 두꺼워야했으니까.

    “귀접의 행방을 밝히고 이 상황까지 만든 것은 영웅회의 공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분들께서도 세상에 내놓을 뭔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철민의 뒤로 십여 명의 한풍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런 그들의 손은 검파에 얹혀 있었다.

    “흠흠, 듣고 보니 그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당평의 시선이 감철민을 지나 당혜미를 스치며 양철중에게로 향했다.

    -빼낼 수 있겠느냐?

    당평의 전음을 받은 당혜미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고, 당평이 손을 뻗었다.

    구원따위는 없었기에 양철중이 뭐라 떠들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바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와 함께 다른 당가의 인물들도 양철중 등을 향해 손을 내밀며 검은 안개를 뿌렸는데, 그것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마치 죽음을 각오 한 듯, 아니 죽기라도 바라듯이 귀영단원들이 안개를 향해 몸을 날렸기 때문이다.

    “피해라!”

    단혼사를 더욱 곱게 가루 낸 것이 바로 지금 뿌린 단혼분이었고, 내력을 통해 귀영단원들에게 뿌린 것이었다.

    단혼분이 닿은 귀영단원들의 검은 그 자체로 독검이 되어 위험한 물건이 되었기에 동귀어진을 하듯 달려드는 귀영단원들의 기세를 읽고 당평이 급히 외쳤다.

    “컥!”

    한 사람에게 두어 명씩 달려들었고, 결국 피하지 못한 한 명이 귀영단원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

    “이……!”

    역시나 목숨을 도외시하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양철중을 향해 당평이 분노에 차 손을 떨쳤다.

    휘릭!

    초승달 모양의 표창이 호선을 그리며 양철중 쪽으로 날아갔는데, 당가의 대표 암기 중의 하나인 회선월이었다.

    그와 함께 다른 한 손을 이용해 전면으로 묵정(墨釘)을 쏘아 양철중을 경계했다.

    “으윽!”

    묵정이 심장에 박혔지만 양철중은 멈추지 않았다. 또한 회선월이 척추에 박혔음에도 여전히 당평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지독한 놈!”

    당평의 손에서 검은 장력이 뿜어지며 양철중의 얼굴을 때린 후에야 그의 몸이 멈췄는데, 그 순간에도 손은 당평을 향해 검을 찌르고 있었다.

    쨍그랑.

    결국 검이 떨어지며 양철중의 몸도 같이 무너졌고, 그와 함께 그의 손에서 철접이 굴러 떨어졌다.

    “구원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평이 가정호 등을 향해 포권을 하며 말을 할 때, 당가의 인물들은 흰 가루를 주변에 뿌리고 있었는데, 단혼분을 중화하는 가루였다.

    무작정 독을 뿌리고 다닌다면 당가를 정파로 보는 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당가는 자신들이 뿌린 독이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 항상 중화하는 약을 휴대했다.

    “아닙니다. 다만…….”

    가정호의 눈이 쓰러져 있는 당가의 인물에게로 향했다.

    가슴에 검을 꽂고 널브러져 있는 그는 누가 보더라도 죽은 것이 분명했는데, 당가의 인물들은 그를 돌봐 주기보다 주변을 정화하는 것에 신경을 더 쓰고 있는 것이다.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감추는 것이 바로 우리 당가입니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사실과는 달랐다.

    [호기야, 만일 네가 강호에 가더라도 되도록 당가하고는 어울리지 말거라. 은혜는 동급이지만 원한은 백 배, 천 배라고 주장하는 놈들이니까. 오죽하면 이십 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놈들이겠느냐? 내가 보기에 당가에는 은은 몰라도 원을 기록해 두는 책자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천수신의가 정호기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슬픔이나 원한을 안으로 감추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두고 그것을 세월과 함께 불려 가는 것이 바로 당가였다.

    “이런…….”

    당평이 갑자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당가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복생분(復生粉)의 여분이 있느냐?”

    당평의 말에 당가의 사람 모두가 없다 답을 하더니 당혜미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도 아까 단혼사를 뿌린 곳에 사용하여 현재 여분이 없습니다.”

    복생분은 당가가 자체적으로 독을 중화시키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아까 뿌린 흰색 가루였다.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난처한 표정으로 당평이 바라보는 것은 양철중이 죽으며 떨어뜨린 철접이었는데, 유일하게 철접이 있는 부분만 복생분이 뿌려져 있지 않았다.

    [당가 놈들이 얼마나 좀팽이들인지 알려 줄까?]

    천수신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정호기가 아까와는 다르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양철중이 끝까지 귀접으로 죽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기 싫어한다는 것이니, 그렇다면 일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해도 서둘러 장으로 돌아가야 해.’

    그러기 전에 생각할 문제가 있었다.

    ‘어째서 날 공격한 것일까?’

    광견으로 오인해서 공격했다? 어림도 없는 말이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정호기의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너무 나댄 것일까?’

    하남에서의 행적이 떠오르며 후회가 밀려왔다.

    ‘최대한 조심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그놈들의 신경을 거스른 모양이군.’

    정호기가 상념에서 깨어날 무렵, 당평과 사준우의 신경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럼 복생분을 가지고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예. 최대한 빨리 보내드리지요.”

    천으로 몇 겹에 걸쳐 싼 철접을 든 사준우가 인사를 하자 당평이 당가의 인물들과 함께 사신방을 떠났다.

    ***

    영웅회의 인물들은 사신방이나 용호방, 무적문에 머물지 않고 근처 객점에 자리를 잡았다.

    정호기도 방을 배정받아 그곳에서 영초린과 나상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형, 저희입니다.”

    반 시진이 흐른 후에 드디어 기다리던 영초린이 돌아왔는데, 나상진과 함께였다.

    -전서는 보냈느냐?

    -예. 다른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도록 최대한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잘했다.

    영초린의 대답을 들은 정호기가 나상진을 바라보았다.

    -오세지는?

    -죽이고 왔습니다.

    오세지의 몰골로 볼 때, 어쩌면 살려 두는 것이 더 잔인한 처사였으리라.

    -놈들이 흑룡문이란 것은 확실하다. 나를 공격한 이들 중에서 한 놈이 사부님께서 경계하라고 말씀하신 놈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놈이었습니까?

    -이름은 모르고 화살을 사용하는 놈인데, 그가 사용하는 무공이 바로 전륜궁이라는 무공이다. 사부님께서 특별히 조심하라고 하면서 특징을 가르쳐 주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놈이 왔더구나.

    -갑자기 놈들이 왜 왔을까요?

    -아마도 하남에서 벌인 일 때문인 것 같다.

    정호기의 전음에 영초린과 나상진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흑룡문에서 대형을 노린다면 진짜 장이 위험할 수도 있겠군요. 장은 괜찮은 걸까요?

    -난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지금 내가 움직이는 것은 위험을 안고 가는 것과 같으니 상진이 네가 수고를 해 주어야겠다.

    정호기가 종이를 꺼내더니 천추산에서 봐 두었던 장소의 약도를 그렸다.

    -이곳에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가라. 깊은 곳이고 약초꾼들도 쉽게 찾지 못하는 곳이니만큼 안전할 거다.

    -놈들이 장을 감시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은밀히 움직여야지.

    -알겠습니다.

    나상진이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자 정호기가 영초린을 바라보았다.

    -초린아, 만일 장이 무사하고 가족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한다면 일을 좀 크게 벌일 생각이다.

    -전면전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렇게까지 무모하지는 않다. 그럴 능력도 없고. 대신 놈들이 만들어 놓은 거점을 확실하게 부수는 데 역점을 두어야겠지. 그렇게 된다면 놈들은 나를 죽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게 될 터이니, 무척이나 위험할 것이다.

    -전 상관없습니다.

    -알았다. 그리고 신물은 사준우가 보관을 하고 있는데, 당가의 독이 묻었으니 각별히 조심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사준우는 철접을 보관한 함을 열어보고는 크게 놀랐다.

    분명 그곳에 있어야 할 철접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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