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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58화 (59/137)

58화

“지금 시간에 놈들이 자기라도 한단 말이냐?”

“자지는 않겠지만, 계집년을 끼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계집?”

“예. 사실 적룡이 뛰쳐나온 것도 하도 계집을 밝히다 형인 청룡이 찍어 놓은 계집을 건드린 것이 시발이 되었습죠. 아마도 지금쯤 적룡은 용호방에 없을 것입니다. 흑호는 뒤를 봐주는 곳들을 둘러보고 있을 테고요.”

“그래? 그럼 가서 기다리지 뭐. 자, 앞장서라.”

정호기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 정말 지금 가시겠단 말입니까?”

좋지 않은 예감이 구정운의 뇌리를 스쳤다.

“인사하러 가는데, 좀 기다리면 어떠냐?”

‘이놈이 설마?’

어떻게 봐도 인사하러 가는 것 같지가 않았다.

‘취했나? 아님 진짜 자신이 있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해 보였다.

물론 실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신이 보기엔 청룡과 비슷한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청룡보다 강하다고 해도 사신방에는 그와 비등한 세 명의 쟁쟁한 실력자들이 남아있으니, 자칫하다가는 자신까지 골로 갈 수 있었다.

“문주님, 자신 있으십니까?”

구정운의 말에 정호기가 음흉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눈치 챘구나. 당연히 자신이 있지! 아까 같은 놈 열이 와도 문제없다.”

‘이놈의 행색을 보아하니 산속에서 오래 굴러먹은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천지 분간을 못하는구나. 오세지를 이긴 것 정도로 저렇게 기고만장하다니…….’

아직 제대로 된 흑도의 맛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만 해도 독을 풀면 너 같은 놈은 쉽게 없애 버릴 수 있는 것을…….’

문득 품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독이 떠올랐다.

‘이걸 죽여 버릴까?’

어차피 또 누군가는 무적문주 자리를 노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사신방이나 용호방, 둘 중 아무 곳에나 몸을 의탁하면 그만이었다.

양쪽에 그만한 친분은 쌓아 놨으니까.

토끼가 도망갈 굴을 여러 개 파 놓듯이 구정운은 이곳저곳에 연줄을 깔아 놓았다.

물론 연줄을 만드는 데 든 돈은 부문주로 있으면서 빼돌린 것이었고.

“뭔 궁리를 하기에 눈깔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거야?”

“예? 아, 놈들이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를 생각하느라 그랬습니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곱상하게 생긴 민얼굴의 여인이 들어왔는데, 어쩐지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오, 왔구나. 자, 여기. 그래 거기 앉아라. 이분이 무적문의 새 문주님이니 잘 모셔야 할 것이다. 헤헤, 문주님. 이년은 오세지가 노리던 년으로 아직 깨끗한 몸입니다. 사실 오늘 수청을 들 계획이었는데, 문주님께서 품게 되었으니 날을 아주 잘 잡으신 것이지요.”

“기녀가 아니야?”

“오세지가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해 부모가 빚 대신 넘긴 것입니다.”

구정운의 말에 여인의 얼굴에 두려움과 함께 분노가 깃들었다.

“네놈들이 훔쳐 가지 않았느냐!”

짝!

여인의 뺨을 때린 것은 정호기의 커다란 손바닥이었다.

“어디서 귀 아프게 소리를 질러?”

정호기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흑도의 인물들은 흑심을 품은 여인이 만일 가난하다면 일부러 더 궁핍하게 만든 다음에 돈을 빌려 주고, 돈을 갚지 않으면 그것을 핑계 삼아 여인을 취하곤 했는데, 가끔 오세지 같은 쓰레기는 빌려준 돈을 그날 바로 훔쳐 버렸다.

일반인들이 무인들의 기척을 알아챌 수도 없었고, 거기다 미약을 쓰거나 혈도를 찍어 버리면 더욱 수월하였다.

“흑, 흑…….”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감여월을 쳐다보더니 정호기가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신형을 일으켰다.

“에이, 술맛 떨어지네. 구정물, 가자!”

“예? 어,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어디긴, 용호인지 토룡인지 하는 놈이 있는 곳이지.”

하는 꼬락서니가 절대 인사만 할 것 같지 않아 구정운은 그 순간에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 살 궁리는 해야겠군.’

“문주님.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문주님의 뜻은 충분히 알았으니, 제가 금방 놈들이 어디 있는지 파악해 오겠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다면 한 놈씩 처리하면 되니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예. 그러니 여기서 저년과 즐기고 계시면 제가 바로 알아 오겠습니다.”

“가서 기다리면 한 놈씩 기어 들어올 것 아니냐.”

“그럼 놈들의 본거지에 가시면 얌전히 계실 겁니까? 그러다 놈들이 눈치라도 채면 골치 아파집니다. 뭔 짓을 할 줄 알고 무작정 가시겠단 말입니까? 속전속결! 기습이 최고입니다.”

“그, 그런가?”

“예! 그러니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놈들의 위치와 기습할 장소까지 제가 모두 알아 오겠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좋아.”

정호기가 자리에 앉자 구정운이 잽싸게 방을 빠져나갔다.

‘일단 저놈이 쳐들어간다는 것을 알려 주고, 나는 놈을 유인한다 말하면 되겠지.’

적룡이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는 짐작이 됐다.

요즘 빠져 있는 여인이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놈이 이기면 좋은 것이고, 진다면 용호방에 투신하면 그만이지. 쳇, 수입이 좀 줄겠지만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어디냐?’

무적문의 부문주로 있으며 뒤로 챙긴 돈이 쏠쏠하였기에 모은 돈도 제법 되었다.

‘용호방은 뒷구멍 찼다가는 모가지가 날아갈 수 있으니, 이제부터는 씀씀이를 좀 줄여야겠군.’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벌써부터 구정운의 귓가를 따갑게 했다.

* * *

구정운이 자신 있게 말한 곳으로 담을 넘어가자, 기다리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오, 좋은데?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정호기가 구정운을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공기를 타고 은은하게 느껴지는 살기에 이미 이곳이 포위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놈이 왜 시간을 달라고 했나 했더니 역시나 이런 꿍꿍이였군.’

안 봐도 구정운이 한 일이 짐작이 됐다.

“헤헤, 제가 확실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자, 너희도 이제부터는 절대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알았느냐?”

“예.”

지금 담을 넘은 이들은 정호기까지 모두 열다섯 명.

그들은 구정운의 인도에 의해 용호방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덧 정호기 등이 연무장에 다다랐고, 그곳을 지나면 적룡과 흑호가 머무는 전각이 있었다.

“여기만 지나면 바로… 엇!”

구정운이 뭐라 말하려는 찰나 정호기의 신형이 빠르게 앞으로 질주했고, 거의 연무장을 다 지날 때쯤 횃불과 함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멈춰… 컥!”

소리치는 놈의 면상을 밟고 훌쩍 뛰어오른 정호기가 마치 매가 병아리를 노리듯 앞에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떨어졌다.

퍽!

검을 뽑는 손을 밟고 나머지 발로 옆에서 휘둘러져 오는 도의 도면을 후려쳤다.

그런 연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려선 정호기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놈!”

뒤늦게 검을 뺀 중년인이 발끈하며 앞으로 나서려는 것을 옆에 있던 중년인이 제지했다.

“석제! 경거망동하지 마라!”

석이랑.

적룡의 이름이었고, 그를 말린 중년인이 흑호 금시연이었다.

폭 삼 장 정도 되는 연단 위에 정호기, 적룡, 흑호가 서로를 견제하며 눈싸움을 하고 있을 때, 무적문도들은 이미 용호방도들에게 포위되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고 있었다.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퉷! 어쨌거나 네놈들만 잡으면 해결될 일이겠지?”

구정운 등을 한심한 얼굴로 바라보던 정호기가 적룡과 흑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구냐?”

흑호의 물음에 정호기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나? 나는 새로운 무적문주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을 박찬 후, 정호기는 분명 허공으로 솟아올랐건만 느닷없이 적룡이 다리를 부여잡고 나동그라졌다.

“흥!”

잔상으로 눈속임을 하고 빠르게 적룡의 다리를 걷어찬 정호기의 움직임에 놀랄 만도 하련만 흑호는 코웃음을 치며 바닥에 있는 정호기를 향해 도를 찔러 갔다.

세 가닥 경기가 정호기의 급소를 노리고 뻗어 나갔지만, 목적을 이룰 수는 없었다.

손가락을 바닥에 박은 후에 그것을 지지대 삼아 정호기가 훌러덩 뒤로 재주를 넘었기 때문이었다.

쾅! 쾅! 쾅!

정확히 세 번의 충돌음이 정호기가 있던 곳에서 들렸으니, 허상을 만들어 내는 환도가 아니라 기를 이용해 실체를 만들어 내는 분도인 모양이었다.

“이놈의 모가지를 꺾어 놓기 전에 도를 치우시지?”

어느새 적룡의 목을 한 손으로 쥔 정호기가 발버둥 치는 그의 복부에 주먹을 찔러 넣으며 흑호를 바라보았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꺽꺽대는 적룡을 바라보며 흑호가 물었다.

“뭐긴, 내가 대장이 되는 거지. 내 밑에 들어오면 좋은 자리를 주마. 어떻게 할래?”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믿기 싫으면 덤벼.”

내공을 이용해 혈도를 찢어 버리고 목뼈를 어긋나게 한 후 적룡을 던진 정호기가 흑호를 바라보았다.

“커억!”

피를 토하며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적룡은 단전이 무사하다고 해도 몸을 정상으로 돌리려면 많은 시간과 치료가 필요할 것이었다.

“골라. 내 밑에 들어올래, 저놈하고 같이 나란히 누워 있을래?”

“조건만 맞는다면 들어갈 수도 있지.”

“부문주를 시켜주마.”

그들이 얘기하고 있는 사이 포위하고 있던 이들 중에서 서넛이 적룡을 챙기기 위해 연단 위로 올라서려 했지만, 정호기의 발길질에 턱이 부서지고 갈비뼈가 부러진 채 나가 떨어졌다.

“자꾸 까불면 이놈만 고달프다.”

“크아아악!”

적룡의 두 다리를 모두 밟아 부러뜨린 정호기가 흑호를 바라보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결정은?”

수하들이 움직일 때, 자신도 움찔했던 흑호가 그 모습을 보고는 도를 고쳐 쥐었다.

아무리 봐도 하는 꼴이 자신에게 부문주 자리를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대답은…….”

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때, 쓰러진 적룡을 걷어 차 흑호에게 날린 정호기가 뒤를 이어 신형을 날렸다.

“역시 네놈은!”

흑호가 날아오는 적룡을 도면을 이용해 방향을 바꾸어 수하들에게 날려 보내고는, 뒤이어 짓쳐 드는 정호기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빠르게 좌우로 도가 움직이며 정호기를 접근시키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땅! 땅! 땅!

“으음…….”

정호기가 도면을 손가락으로 때릴 때마다 도신을 타고 내력이 흘러들어 왔는데, 그것으로 인해 손이 저리고 또한 자신의 내공과 충돌해 속이 울렁거렸다.

때문에 이어져야 할 초식은 계속 끊겨 분도는커녕 제대로 휘두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앗!”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지만 그뿐이었고, 그대로 패배를 예감할 때 그를 구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놈을 죽여라!”

말과 함께 용호방도들이 연단 위로 하나둘 올라와 기습적으로 정호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런 천 년 묵은 똥 덩어리에 똥구멍이 찢어질 것들이, 어디서 설쳐!”

물론 올라오는 족족 정호기의 발길질과 주먹질에 나동그라졌지만, 그사이 흑호는 자신의 도법을 펼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쉭! 쉭! 쉭!

정호기의 옷깃을 자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모든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가고, 둘의 사이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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