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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53화 (54/137)

53화

“정 소협, 다음으로 노릴 만한 악인이 누가 있을까요?”

“다른 성으로의 진출을 논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니 일단 섬서에서 찾아봐야 하는데,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악인이 없습니까?”

“아니요. 우리 영웅회의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정호기의 말을 들은 가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력이 부족하다니요? 구룡장과 정가장, 그리고 사가장의 힘을 합치고도 부족하다는 말씀입니까?”

“가문의 힘을 빌리게 되면 그것은 영웅회가 아닌 가문이 한 일이 됩니다. 아무리 우리가 악인을 처단해도 가문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게 되는 것이지요. 이번 박구를 잡은 것과 같이 오로지 우리의 힘만으로 해결을 해야 합니다.”

“아…….”

“그렇기에 전력이 부족하다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럼 사람을 더 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인맥이 미천한지라 선뜻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데, 혹시 가 소협은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지요?”

“예? 저 말입니까?”

가정호라고 해서 생각나는 인물이 있을 리 없었다.

‘나보다 뛰어난 놈은 절대 안 돼! 자칫 회주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사준우의 경우야 적수로 생각하는 이이기도 하고 어차피 들인 마당이지만, 가정호는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상회하는 이를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누굴 불러야 할까?’

곰곰이 염두를 굴리던 가정호가 무릎을 쳤다.

“아! 있습니다!”

“누굽니까?”

“여산에 벽력도문이 있는데, 그곳의 이 공자인 화세걸이 저와 친구입니다. 아직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그렇지, 도법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인물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을 모시도록 하지요. 그리고 또 생각나는 분은 없는지요?”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군요.”

“그렇다면 화 소협을 모시는 것으로 하고, 다음 목표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사 소협께 여쭙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정호기의 말에 가정호가 난색을 표했다.

“사 소협께요?”

“예. 가 소협께서 넓은 마음으로 사 소협과 의논을 하시게 되면 회는 더욱 단단해질 테고, 그렇게 되면 어느 누가 들어온다고 해도 가 소협과 사 소협의 영도 아래 위명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사준우와 협력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사준우는 부회주에 만족을 하는 것 같으니 자신이 그를 포용하는 대범함을 한 번쯤은 보여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일단 세걸이에게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 * *

가정호가 나간 뒤 정호기가 고개를 저었다.

‘꼭 저 같은 놈만 부르려고 하는군.’

이미 섬서에 있는 무인들의 정보를 어느 정도 입수한 정호기였는데, 화세걸이 어떤 놈인지 알고 있기에 가정호의 속내가 뻔히 보였다.

‘가문에서도 내놓을 정도로 무공에는 소질이 없고, 식탐만 강해 돼지같이 살만 뒤룩뒤룩 찐 놈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도 나쁜 것은 아니었다.

‘너무 똑똑한 놈이 들어와도 골치 아프니 딱 적당하긴 하지.’

그렇다고 너무 멍청한 놈들로만 모아 놨다가는 좋은 모양새가 나오지 않았기에 사준우는 그것을 보충하는 역할이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사준우가 들어왔다.

“정 소협, 같이 술이나 한잔하시지요.”

술 두 병을 양손에 쥔 사준우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지요. 안 그래도 술 생각이 간절하던 참이었습니다.”

“이심전심이었나 봅니다. 자, 드시지요.”

사준우가 건넨 술병에서는 달콤한 향이 감돌았는데, 이 지역의 특산물인 화주인 것 같았다.

“크으… 좋군요. 향은 달콤하고 맛은 강렬하니.”

“저도 그것 때문에 이것을 즐겨 먹곤 하지요.”

“그래, 술을 같이 먹자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신 듯한데, 어인 연유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벌써 보름입니다. 가 소협은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려는 것일까요?”

“안 그래도 오늘 그 문제를 의논하러 오셨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전력으로는 일이 힘들 것 같다며 사람을 영입한 연후에 일을 추진하신다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예. 그리고 그분이 오시면 사 소협에게 적당한 악인을 여쭙는다 했으니, 사 소협도 미리 다음 목표를 선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 소협이 그리 말씀하셨다고요?”

“사 소협이 아무래도 그쪽에 대해 잘 아실 것 같다면서 여쭙는다 말씀하셨습니다.”

“흠… 그래요?”

아무래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적당한 선에서 찾아봐야겠군요.”

말을 마친 사준우가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굳은 얼굴로 방을 나섰다.

* * *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촌락은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이곳이 확실합니까?”

“예. 물론 가능성이 있는 곳은 여러 곳 있지만, 이곳이 제일 유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가서 기다려 보도록 하지요.”

마적들은 추수가 시작되는 가을에 들끓었지만 여름이라고 마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보통 이 시기에 출몰하는 마적은 산골에 있는 촌락들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휴… 다행히 객점이 있군요.”

누구보다 객점을 반긴 것은 화세걸이었는데, 장마철에 비를 흠뻑 맞은 것처럼 옷이 전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축 늘어진 턱살만 보더라도 답답한 화세걸은, 키는 어림도 없었지만 옆으로 퍼진 것만큼은 확실하게 정호기보다 넓었다.

“주인장, 여기 시원한 물부터 좀 주시오.”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물병 하나가 나왔으나 화세걸의 갈증을 없애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혼자서 물 세 병을 다 먹은 후에야 비로소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저놈이 죽으면 곤란한데…….’

솔직히 정호기는 화세걸이 혹시라도 마적들과의 싸움에서 죽을까 걱정되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영웅회인데 벌써 희생자가 나와선 곤란한 것이다.

그러니 실력이 미천한 화세걸을 지키는 것도 고심을 해야 할 문제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외진 곳인데도 사람이 무척 많은 것 같습니다.”

사준우의 말마따나 정호기의 일행인 일곱 명을 제외하고도 객점 내부엔 여섯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아이고, 많다니요. 요새는 그나마 적은 겁니다. 이곳 장막산이 비록 화산이나 종남산만은 못해도 산세가 깊고 울창해 좋은 약초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니까요. 또한 경치도 수려해 아는 사람들은 이곳만 찾고 있습죠. 그래서 이곳에 있는 전각들 중에서 반이 객점입니다.”

“그런가요? 하긴, 올라오는데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구절봉으로 오신 모양이군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구절봉은 경사가 심한 반면에 시야가 넓고, 양장봉은 완만하고 경관이 수려하지만 사방이 막혀 있으니 지레짐작을 해 본 것입니다.”

중년의 주인장 말마따나 구절양장에서 비롯되어 이름 붙여진 두 개의 산길은 각기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방은 있습니까?”

“요새는 방에 여유가 있으니 마음 놓고 쉬시다 가십시오.”

주인장이 말상대를 하는 사이 어느새 음식이 나왔고, 곧 일행은 식사를 시작했다.

“흐음… 음식도 좋고 경치도 좋으니, 이곳이 무릉도원 같습니다.”

얼마 후,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가정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곳일수록 마적의 표적이 되기 쉽겠죠.”

사준우 역시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그는 풍광을 보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길목과 나가는 길목을 두루 살피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까지 멀쩡한 걸까요?”

마적이 휩쓸고 간 촌락은 대부분이 완전히 파괴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폐촌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눈이 있고,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이 있을지 모르니 삼간 것이겠지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개방은 어째서 이곳을 구마단이 노리는 곳 중의 하나라고 꼽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정호의 질문에 사준우가 대답은 않고 주인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인어른, 이곳이 요새 왜 한산한 겁니까?”

“한중현에 있는 수미산에서 축제를 연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려고 사람들이 많이 그쪽으로 향했지요. 작년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유난히 사람이 더 없군요.”

대답을 들은 사준우가 가정호를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대답을 갈구하는 표정이었다.

‘멍청한 놈!’

아무리 멍청해도 일단 회주였으니 그의 궁금증을 풀어 줘야 했다.

-그간 사람의 눈길을 의식해 이곳에 오지 않았던 것이니, 이번 축제로 사람이 빠져나간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지 않겠습니까?

사준우의 전음을 들은 후에야 이해가 되었는지 가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그런지 피곤하군요. 주인어른, 방 세 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마침 방 세 개가 있는 별채가 비었으니 그곳에 거하도록 하십시오.”

***

가정호와 화세걸, 사준우가 짐을 푼 방에 일행이 모두 모였을 때, 사준우가 물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일반 향락객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예?”

정호기의 대답에 가정호가 멍청하게 되묻는 실수를 했다.

-우리와 같이 객잔에 있었던 이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제야 이해를 했는지 가정호의 얼굴이 벌게졌다.

“남자 셋과 둘, 그리고 여자 한 명. 각기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었습니다.”

정호기의 말에 사준우가 살을 붙였다.

“정찰을 온 것일 수도 있으니 긴장을 늦추지 마시고, 각자 조심하도록 하십시오.”

사준우의 시선이 유옥접에게로 향했는데, 그녀만이 혼자 잠을 청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염려 마세요. 제 한 몸을 지킬 능력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험할 수 있었기에 세 개의 방 중에서 가운데 있는 것을 유옥접에게 배정했다.

***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이 세상을 비추고 부엉이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일단의 무리가 산 중턱에 있는 촌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략 이십 명의 사람이었는데, 그들이 멈춘 것은 촌락에서 빠져나온 세 명의 인물과 만난 후였다.

“몇 놈이나 되더냐?”

말끔한 얼굴의 중년인이 묻자 한 청년이 대답을 했는데, 그는 정호기와 같은 객점에 있던 사람이었다.

“모두 열셋인데 그중 셋이 계집입니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은 계집을 포함한 일곱 명의 일행이 있는데, 그 녀석들이 마적이 어쩌고 하면서 마치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듯한 얘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

“예.”

“흐음…….”

청년의 얘기를 들은 중년인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촌락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얘기를 대놓고 했다는 것은 아마도 너희의 반응을 보려고 한 때문이겠구나. 설마 티를 낸 것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우리를 의심하는 것 같은 대화를 나누기는 했습니다만, 별다른 결론은 내리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른 놈들은?”

“그냥 놀러 나온 것들입니다.”

“그럼 일단 그놈들을 먼저 친다. 상득아, 네가 앞장서라.”

“예.”

모두가 복면을 뒤집어쓴 후 상득이라 불린 청년이 앞장을 서고 나머지 인물들이 그의 뒤를 따라 움직이려고 할 때, 하늘에서 커다란 재앙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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