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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51화 (52/137)

51화

‘종남에 뿌리를 둔 우리가 서로 반목하다 쟁이라도 하는 날에는 세간에 웃음거리가 될 뿐이란 것을 모르나?’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가정호가 구룡장을 물려받게 된다면 우려하던 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놈의 흔적이라도 찾으셨습니까?”

정호기가 묻자 사준우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체에 남아 있는 흉터로 그놈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입니다.”

“어서 놈을 찾아야겠군요. 마침 가 소협이 그놈의 특징을 알아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예? 그 말이 사실입니까?”

이제까지 화류공자란 별호와 박구란 이름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없는 놈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특징을 알아내다니.

이건 대단한 성과였다.

-제가 알려 드릴 테니 가 소협이 알아낸 것으로 하십시오. 가 소협 덕에 관에서 상을 받게 되고, 섬서에 이름이 알려지게 된 보답입니다.

“흠흠, 사실입니다.”

가정호의 대답을 들은 사준우는 그것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도 가 소협을 따라 그놈을 잡기 위해 이렇게 같이 다니고 있는 것이랍니다. 아, 사 소협도 동참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 제가요?”

“네. 어차피 이곳은 사가장의 영역이니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면 사 소협의 도움으로 빠르게 지원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호기가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자 가정호는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박구의 특징을 안다고 말을 해 놨는데 정호기가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자신은 사준우에게 망신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사 소협을 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정호의 말에 사준우는 내심 ‘이놈이 왜 이럴까?’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아는 가정호는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가 소협을 돕겠습니다.”

“음… 사 소협도 함께한다면 벌써 인원이 여섯 명이나 되니 뭔가 그럴듯한 명칭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보건데, 가 소협과 사 소협의 기상은 능히 영웅이라 칭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으니, 영웅회로 명명하면 어떠할까요?”

“영웅회요?”

스스로 말하기에는 낯부끄러운 이름이었다.

“무릇 회라 함은 회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있어야 하니, 제 생각엔 박구를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가진 가 소협이 어울린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록 작은 회라고 해도 회주가 있으면 부회주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사 소협이 맡아 주십시오.”

가정호와 사준우가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정호기가 내놓은 것들은 모두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박구를 잡게 된다면 회의 이름도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제대로 된 조직 구조가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 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이 모임의 주체를 가정호에게 있게끔 만들고 옆에서 사준우가 그의 독선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네놈들의 이름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난 그늘 속으로 숨어들게 되겠지.’

앞으로 영웅회의 이름으로 흑룡문의 세력을 상대하려는 의도였기에 정호기는 절대 자신을 내세울 생각이 없었다.

“어떻습니까?”

“흠… 듣고 보니 정 소협의 말씀이 맞다 생각됩니다.”

“예, 그렇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오늘부터 저희 모임의 명칭은 영웅회로 하겠습니다.”

***

-잘 들으십시오. 박구의 최대 특징은 놈이 곱사등이라는 것입니다.

“예?”

-쉿! 조용히 하십시오.

-아, 죄송합니다.

-화류공자란 별호 때문에 놈이 곱사등이란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 그 별호를 만들어서 뿌린 놈이 바로 그놈 자신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놈이 화류공자라고?]

[예, 그렇습니다.]

[그래, 나를 찾아온 이유는?]

[정파, 그것도 사천당문에 제 손길을 탄 계집이 있습니다. 그 계집은 그것을 비밀로 하려 하기에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쓸모가 있다는 말이냐?]

[예.]

당시 정호기는 박구란 놈에게 여인 삼십 명을 주었었다.

그가 기관으로 뒤덮인 사천당문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조건으로.

-이것도 어렵사리 알게 된 사실인데, 솔직히 제가 알아낸 것이 아니라 외조부께서 약초를 캐러 갔다가 여인의 비명 소리에 달려가서 보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놈이 흔적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가 이번에 놈이 나타나자 제게 말씀을 해 주신 겁니다.

-어째서 정파에 그 사실을…….

전음을 하다 말고 가정호가 입을 다물었다.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부끄럽게도 외조부께서는 제가 그놈을 잡아 이름을 날리길 원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말하는 것을 망설인 것이고요. 그러니 이것은 꼭 비밀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중에 누가 묻더라도 가 소협이 알아낸 것으로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제게 이런 친절을 베푸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적들을 소탕하는 데 있어 저희도 같이 공을 받게 해 주신 가 소협의 넓은 마음씨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정호기의 말에 가정호는 자신이 마치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을 가지고 그러십니다. 우리가 함께 있었으니 공도 함께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가 소협은 대인이십니다. 제가 믿고 말씀드릴 만한 분이시고요. 거듭 부탁드립니다만, 설사 춘부장께서 여쭤 보신다고 해도 절대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이 비밀은 제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겠습니다.

비밀스러운 만남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각자 만족한 미소를 짓고 헤어졌다.

* * *

정호기가 돌아오자 유옥접이 그를 맞았는데,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정 소협이 이렇듯 마음이 넓은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군요.”

“유 소저의 이름도 영웅회의 이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그래요?”

“예. 이제 회가 더 커지더라도 여인은 받지 않을 것이니, 유일한 홍일점이 되어 영웅회라고 하면 유 소저가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누가 화가 났다던가요? 저는 다만 정 소협이 어째서 그렇듯 저자세로 나가는지 궁금해서 드리는 말씀이었을 뿐이에요.”

“처음엔 제가 주도하는 영웅회를 구상했지만, 그렇게 되었다간 성장에 제한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름값이란 것이 있고, 제 나이가 어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가 소협과 사 소협을 전면에 내세운 것입니다.”

“거침없는 분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세심하신 분이군요.”

“실망하셨습니까?”

“아니요, 알면 알수록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 저를 더욱 빠져들게 하는데요?”

“이런, 더 이상 제 매력에 빠지지 마십시오.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백 소저를 만나게 한 것을 후회하는 중이에요.”

“하하하하. 후회는 언제나 늦지요.”

몇 마디 더 말을 나누다 유옥접과 헤어진 정호기가 나상진과 영초린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떠냐?

-천장에 한 놈 있습니다.

영초린의 말을 들은 정호기는 정파나 사파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같은 정파이면서도 손님을 상대로 감시를 붙이다니.

‘인간들이기 때문이겠지.’

“대형, 대형은 그럼 영웅회에서 아무런 직위도 없는 것입니까?”

나상진이 불만스런 목소리로 말을 하자 영초린도 거들었다.

“아무리 시작을 가 소협이 했다고 해도 대형이 아무런 직위도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입니다.”

“어허, 내가 결정한 일이다. 영웅회가 만들어진 것은 가 소협이 우리를 받아 주었기 때문이 아니더냐? 더 이상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말고 어서 잠이나 자도록 해라.”

***

“그래?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예.”

수하의 보고를 들은 사비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가정호가 일을 시작했단 말인데, 결정적인 단서를 가지고도 타인을 끌어들인다? 그 명예욕이 태산보다 높고 속은 밴댕이보다 작은 녀석이? 난 정호기 그 녀석이 일을 시작한 것인 줄 알았거늘…….”

“의제라는 이들의 볼멘소리가 한동안 계속 이어진 후에, 정호기의 호통이 있고서야 잠잠해졌습니다.”

“혹시 들킨 것은 아니냐?”

“아닙니다.”

대답하는 이는 자신의 은신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단호했다.

“알았다. 물러가거라.”

“예.”

수하를 물린 사비연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놈이 그런 행동을 한 것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인데, 왜 그랬을까? 아니, 애초에 정호기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캐 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구룡장과 마찰을 빚을 수도 있었다.

‘뭘까? 박구 그놈의 특징이란 것이?’

손자가 속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이끄는 이는 가정호였다.

사가장의 영역에서 일어난 일을 그가 해결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놈보다 먼저 잡아야 해.’

이 일에 사가장의 총력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었다.

‘구룡장과는 이 관계가 좋은 것이야. 그들이 우리를 앞지르게 할 수는 없는 법이지. 구룡장은 만금장의 적수가 되지 못해.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섬서는 화산의 차지가 될 수도 있어.’

사비연은 오래 지속되어 고착된 현 상황에 어떠한 변화도 없기를 바랐다.

“게, 누구 있느냐?”

“예.”

“가서 장주를 불러오너라.”

“알겠습니다.”

* * *

“박구 그놈이 현장에 또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놈의 존재를 모른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선적으로 그 일이 일어난 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호기의 제안에 가정호는 두말 않고 따랐다.

“마차를 타고 가니 이렇게 편한 것을, 대형은 어째서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모처럼 세 사람이 한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일종의 수련이다. 걷는 것이야말로 다리를 강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예? 그렇긴 하지만 차라리 마차를 타고 가서 남는 시간에 수련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난 한 걸음을 뗄 때, 길가에 놓인 많은 돌들을 적이라 생각하며 그것들을 피하고 공격하는 마음으로 걷는다.”

정호기의 말을 들은 나상진과 영초린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게 가능하겠냐?

-모르겠는데요?

무공에 관해서 천재적 소질을 타고났고 열정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묵묵히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정호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명상을 통해 무공을 수련하는 듯 보였다.

-상진아.

-예.

-그때 대형이 우리 둘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냈었지?

-예.

-너는 할 수 있겠냐?

-조금 무리하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대형은 어떤 사람일까? 너무도 자연스럽고 무방비해 보이지만, 나로서도 섣불리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나상진은 영초린과 몇 번의 내기를 통해 그가 얼마나 은밀하고 또한 위험한 인물인지를 깨달았었다.

-정말요?

-응, 공격을 했다간 내가 오히려 당할 것 같다.

뒷간에 앉아서 볼일을 보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마주 보며 미소 짓던 영초린이었다.

물론 그의 목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닿아 있었고.

‘그런 둘째 형이 아예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시끄럽다.”

갑자기 들려온 정호기의 말에 전음을 나누던 두 사람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자리했다.

“뭘 그렇게 종알거리는 것이냐?”

“설마 전음을 들으셨습니까?”

“내가 무슨 신통력이 있다고 전음을 들었겠느냐? 다만 기를 두드리는 파공이 느껴졌을 뿐이다.”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대형, 정말 사람 맞습니까?”

“우리 부모님을 모욕하는 거냐?”

“절대 아닙니다.”

“쓸데없는 일에 힘쓰지 말고, 모처럼 편안한 여행이니 수련이나 하도록 해라.”

“예.”

세 남자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 동안 다른 마차에서는 어색한 분위기가 휘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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