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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50화 (51/137)

50화

“무슨 말씀이신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정호기의 말에 텁석부리 장한의 얼굴에 노기가 감돌았다.

“네놈들이 마을에 들어선 후에 없어졌는데, 오해다?”

“뭐가 없어졌는지는 몰라도 괜히 우리에게 누명을 씌울 생각 마시오!”

“누명?”

“혹시 강도들이오? 우리 물건을 뺏으려는 것이오?”

“이것들이? 쳐라!”

장한의 말에 사람들이 각기 무기를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웃!”

검을 피한 정호기가 가정호에게 전음을 날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일단 이곳을 피해야겠습니다.

그러나 가정호는 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가뜩이나 정호기가 약을 바짝 올리면서 신경을 긁은 데다, 얼근하게 술기운이 돈 상태에서 다짜고짜 도둑으로 누명을 쓰고 공격을 당하니 노기가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검을 겨눴으니 그 책임도 그대들에게 있다!”

쨍!

“컥!”

한 번의 부딪침과 한 번의 비명 소리.

검신을 타고 올라간 가정호의 검이 상대의 목을 뚫어 버렸다.

“죽여!”

피가 흥분을 불러왔고, 흥분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졌다.

살기가 충천하고 검과 도는 서로의 목숨을 빼앗으려 상대의 급소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가정호의 검봉은 텁석부리 장한의 목에 겨눠져 있었는데, 장한의 가슴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이 이미 한 번 공격을 허용한 것 같았다.

“쿨럭!”

기침과 함께 피를 뿜은 텁석부리 장한이 가정호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네, 네놈들은 큰, 큰 실수를 한 거…….”

결국 말을 끝맺지 못한 장한이 고개를 숙였고, 한밤의 전투는 그렇게 끝을 고했다.

“가 소협, 일단 이곳을 피합시다.”

“가지 않겠소. 잘못한 것이 없는데 가긴 어딜 간단 말이오!”

“하지만 관에서…….”

“관에서 온다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소이다!”

“휴우…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사정이나 들어 보지요.”

정호기가 신음을 흘리고 있는 이들을 한곳으로 모으더니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뭐가 없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것과 상관없습니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시치미 떼지 마라!”

팔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청년이 고함을 질렀다.

“어차피 다 알고 왔을 테니, 죽여라!”

“우리가 뭘 알고 왔다는 말입니까?”

“그… 그건…….”

-네놈들이 마적이라는 거? 이곳이 마적의 소굴이고 여인들 대부분이 납치당한 후 몸을 버려 어쩔 수 없이 머물고 있다는 거?

“헉!”

“말을 하십시오!”

-네놈들이 애타게 찾는 것은 그동안 노략질한 물건들과 여인들이 잡혀 온 장소가 적힌 책자겠지?

정호기의 전음을 들으며 청년은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순식간에 아혈을 찍혀 그저 입을 벌린 채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휴우… 그렇게 침묵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군요.”

자리에서 일어난 정호기가 영초린을 바라보았고, 영초린이 슬쩍 눈짓으로 가정호의 행낭을 가리켰다.

[이런 놈들을 어디다 쓰게?]

[화살받이로 쓸 놈들입니다. 알아서 죽겠다고 찾아왔는데 내치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까? 이건 놈들이 충성의 증표로 준 책자입니다. 놈들이 저질러 온 악행이 고스란히 적혀 있지요.]

흑룡문의 기세는 놀라웠고, 각지의 사파들은 살고자 밑에 들어오려고 난리였다.

그중 이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정호기가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개방의 서찰이라고 믿고 있겠지만 진짜는 따로 있으니, 나중에 잘못 꺼냈다고 하면 그만이지.’

“꺽… 꺽…….”

아혈이 찍힌 놈이 뭐가 그리 억울한지 꺽꺽 소리를 내면서 발버둥을 쳤다.

“가 소협, 일단 관에 신고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정호기의 말에 가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이 사태에 대해 결말을 지어야 했으니까.

“정 소협이 수고해 주시겠습니까?”

“예. 하지만 그러기 전에 일단 우리 짐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이놈들이 몰래 우리 짐에 손을 댔을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라도 관에서 사람이 나와 물건을 조사하는 와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군요.”

정호기 등이 각자 자신들의 짐을 확인할 때, 가정호는 자신의 행낭에 못 보던 것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이건 뭐지? 설마 저놈들이 찾는 것이 이건가?’

낡은 책자 하나와 새것으로 보이는 책자 하나였는데, 호기심에 그것들을 펼쳐 보던 가정호의 눈이 커졌다.

‘이건!’

아무리 봐도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이걸 저놈들이 찾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답을 한 가정호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책자를 들고 부상당한 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것이 네놈들이 찾고 있는 것이냐?”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화등잔 만하게 커진 눈이 대답을 대신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제 행낭에 들어 있더군요. 자, 한번 읽어 보십시오.”

가정호가 넘겨준 책자를 읽던 정호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사람을 납치한 기록이 아닙니까?”

“예. 아마도 이놈들이 저지른 일 같은데…….”

“모, 모르는 일입니다! 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그러니까… 금, 금송아지였습니다. 촌장님 댁에 있던 금송아지가 사라지는 바람에…….”

“사실인지 아닌지는 관에서 조사를 하게 되면 알게 될 일이다.”

***

마적의 소굴을 소탕하고 그들을 모두 관에 넘긴 후 일행은 구룡장으로 돌아와 가분심이 마련한 음식들로 배를 채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 소협의 행낭에 들어갔을까요?”

정호기의 물음에 가정호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어떤 놈이 물건을 훔치러 왔다가 내용을 알고 제 행낭에 버린 것일 수 있습니다.”

“그냥 길에 버려도 될 것을 굳이 가 소협의 행낭에 넣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에게 원한이 있는 놈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협행을 하고자 노력한 적도 있었으니.”

“하지만…….”

“좋게 끝났으니 된 것 아니겠습니까?”

정호기가 계속 의문을 표하는 것은 가정호가 그를 의심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그것이 무색할 정도로 가정호는 들뜬 기분에 취해 아예 의심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곧 상을 내린다고 했으니, 그 자리에 여러분도 같이 참석하시겠지요?”

“물론입니다.”

같이 상을 받는다고 해도 가정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릴 것이었고, 가정호의 이름이 가장 앞에 설 것이었다.

“그나저나 그곳이 그런 소굴이었다면 겁간이 일어났다고 해도 굳이 관에 신고를 하지 않을 터인데…….”

말을 하면서 정호기가 행낭에서 전서들을 꺼내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아! 이런 실수가…….”

“왜 그러십니까?”

“제가 전서를 잘못 읽은 모양입니다. 겁간이 일어난 마을은 그곳이 아니라 여기, 바로 여기군요.”

정호기가 내민 전서를 본 가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름이 비슷해 실수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위치가 묘했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맞습니까?”

“예.”

“하지만 여긴 사가장의 영역인데…….”

“예? 그렇습니까?”

“네.”

“그럼 그곳으로 가야 하겠군요. 그런데……”

말을 끌며 정호기가 가정호를 바라보았다.

“같이 가겠습니다.”

정호기의 눈길을 받은 가정호가 바로 대답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예. 어차피 나선 걸음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이미 명예라는 것을 한 번 맛 본 가정호는 사가장의 영역이라고 해도 이 일행과 떨어지기 싫었던 것이다.

아직 박구도 잡지 못했고.

그런 가정호의 모습을 본 영초린과 정호기가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호기의 인사에 사준우가 마주 포권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동안 한 번쯤은 찾아오실 줄 알았는데, 무정하시더군요.”

“하하하하. 제가 무슨 염치로 이곳에 오겠습니까? 그래서 초대해 주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호기와 인사를 마친 사준우가 가정호에게 다가갔다.

“가 소협, 오랜만입니다.”

가정호와 사준우 모두 종남의 속가제자였지만, 사형이나 사제로 칭하지 않은 것은 속가들은 배분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삶이 걸린 사업을 하는 이들이 사형제라는 틀에 매이면 사업을 할 수 없었기에 그러한 것이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가정호가 딱딱한 말투로 인사를 받자 사준우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래, 어떤 일로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지요?”

“박구를 아십니까?”

“아, 그 일로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개방에서 연락을 주어 놈을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사준우의 말에 가정호의 볼이 씰룩했다.

‘개방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그럼 우리 장에는 하지 않고 사가장에만 연락을 했다는 말인가?’

“우리 가문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먼저 우리에게 연락을 준 모양입니다.”

가정호의 표정을 본 사준우가 부연 설명을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그렇겠지요.”

퉁명스러운 가정호의 대답에 사준우는 역시나 자신의 예상대로 가정호가 또 자격지심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만일 구룡장의 영역에서 일이 벌어졌다면, 분명 개방은 구룡장에 먼저 알린 다음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다 우리에게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한데, 그런 것도 하나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가정호가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당연한 것까지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사준우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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