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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45화 (46/137)

45화

-길이 뚫리면 곧장 악가장으로 가라. 여기는 내가 책임질 터이니.

-예.

나상진이 마부석에 앉자, 정호기가 앞을 가로막은 이들에게로 걸어갔다.

“이렇게 쉽게 내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장덕칠이 냉소와 함께 손을 움직이자 그의 부하들이 정호기를 에워쌌다.

-지옥도 장덕칠! 파천궁이 소림을 무시하는 거냐!

정호기의 전음을 들은 장덕칠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 그걸 어떻게?”

-소림은 이 사실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장덕칠은 일이 크게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일 이것이 윗선에 보고된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미 일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된 것인지도 몰랐다.

‘도대체 내가 궁 소속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이름도 밝히지 않았거늘!’

동생인 동팔은 물론 누구도 알지 못했고, 동생을 만나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곳에 비밀 지부를 세우는 것이 진정한 목표였다.

그런데 그것이 초장부터 어긋난 것이다.

사실 정호기는 장덕칠이 이미 비밀 분타를 세웠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야 터를 알아보려고 온 정도였다.

만일 장동팔을 만나지 못했다면 애초부터 그의 계획은 실현되기 어려웠다.

‘이게 상부에 보고되는 날이면 난 죽은 목숨이다.’

어떻게든 입을 막아야 했다.

“네놈은 누구냐?”

장덕칠이 질문을 던질 때, 정호기는 도를 뽑아 들었다.

휭~

“커억!”

한 번의 휘두름으로 세 명의 목이 날아가고 길이 뻥 뚫렸다.

“가!”

정호기의 신호에 나상진이 마차를 그곳으로 움직이자, 그 뒤를 정호기가 막아섰다.

“나를 죽인다고 해도 저들이 너의 간악한 속셈과 정체를 드러내 줄 것이다.”

멀어지는 마차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장덕칠이 신호를 보내고는 자신도 도를 앞세워 정호기에게 달려들었다.

쨍!

쇳소리와 함께 하나의 목이 떨어지고, 다시 한 사람의 가슴이 갈라졌으며, 또 다른 이는 배를 관통 당했다.

“헉, 헉…….”

장덕칠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과 수하들이 합세해서 싸우는데도 이렇게 참패를 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누구냐!”

“저승에서 알아봐라!”

정호기의 대도가 바람을 가르며 쏘아 오자 장덕칠이 자신의 박도를 들어 막고자 했지만, 이미 역부족이었다.

박도가 뒤로 밀리며 장덕칠의 가슴이 길게 잘렸다.

“크억!”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장덕칠을 뒤로하고 정호기가 서둘러 신형을 날려 멀어진 후,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있었다.

“놈!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장덕칠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정호기의 도가 살가죽만 베고 지나간 것이다.

“어서 부하들을 모아야 한다.”

지금 이곳에 누워 있는 것은 자신의 부하들이 아니라 동생인 동팔이의 부하들이었다.

“이놈이 죽지 않았어야 하는데…….”

품을 뒤지자 그 와중에도 얌전히 있는 전서구가 나왔고, 다행히 목숨을 잃지 않았다.

서둘러 몇 자 적은 장덕칠이 전서구를 날려 보내더니 마차가 빠져나간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정호기가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어서 불러라, 네놈의 부하들을.’

장덕칠을 지켜보는 정호기는 그가 날린 전서구에 자신들에 대해서까지 쓸 시간은 없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

정호기는 악가장으로 사라지는 마차를 확인한 장덕칠의 뒤를 미행했다.

이후 그가 객점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정호기는 영초린이 있는 곳에 잠시 들른 뒤에 악가장으로 향했다.

‘재밌겠군.’

어부지리였다.

‘싸움의 중심에 너희가 있기만 하면 그것으로 되는 거야.’

현재 파천궁은 악가장이 소림의 속가가 운영하는 정파라고 알고 있었고, 악가장은 정체를 드러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니 둘이 시비가 붙는다면 죽자고 싸울 것은 자명했기에 그것을 이용해 파천궁과 흑룡문을 이간질시키려는 속셈인 것이다.

“누구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악가장의 정문을 지키는 이가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열호아 정호기라고 합니다. 이미 일행이 안에 있을 것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일행분들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무사를 따라 들어간 곳은 작은 별채였는데, 마침 의원이 나오는 길이었다.

“소장주님, 이분은…….”

“정호기라고 합니다.”

“악조영입니다.”

악조영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는 이제 삼십 대로 보였고,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어 무척이나 선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정호기의 코까지 오는 키였지만, 호리호리한 외모로 인해 정호기와 같이 서 있으니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 일행을 받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흉수들이 쫓아오는데 달리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감사라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일행분의 상처도 깊지 않아 정양만 하면 나을 것이라 하니 심려치 마십시오. 문제는 다친 부위에 흉터가 남을 수 있는 것인데, 여인이기에 심적 고통이 있을 수 있으니 그것은 정 소협께서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정호기와 유옥접의 관계를 연인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곳 하남에서 그런 놈들이 설치다니 오히려 저희가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데,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다행히도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놈들이 아닌 것 같아 악가장에 폐가 될 수도 있으니 되도록 빨리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악가장이 겨우 그런 놈들을 두려워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마음 편히 푹 쉬십시오. 그런데 천수신의 님께선 안녕하십니까?”

솔직히 사가장의 무림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해도 천수신의의 외손자라는 것보다는 못했다.

지금도 중원을 떠도는 열호아란 별호는 천수신의의 외손자라는 사실을 먼저 떠오르게 했으니까.

“덕분에 강녕하십니다.”

“아, 이거 제가 너무 붙잡은 모양이군요. 저와 함께 저녁을 드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불러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 싸우신 곳이 어디쯤이라고 하셨죠?”

“비곡산 중턱이었습니다.”

“보풍현도 멀지 않은 곳이니 일단 사람을 보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보풍현은 나상진이 살던 곳이었고, 장동팔과 시비가 일었던 곳이었다.

“감사합니다.”

‘악가장이 소림을 등에 업은 것처럼 하고 있지만, 실상 이들이 공을 들이는 곳은 군부지.’

하남에는 소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개봉에는 개방도 있었고, 용문석굴이 있는 낙양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사람이, 그것도 지체 높은 인간들이 많이 모이면 군세도 강해지는 법.

하남이 평온한 것은 소림의 영향보다는 하남을 지키는 군사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혈신으로 불리던 시절, 소림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악가장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군부와 협상이 끝나지 않았던 이유가 더 컸었다.

마지막에 가서야 막대한 재물과 인맥으로 군부를 잠재웠고, 평민의 희생을 없게 한다는 약조까지 하고 나서야 소림을 칠 수 있었다.

악가장과 같이 각 성도에 자리한 흑룡문의 비밀 분타가 하는 일이 바로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나중에 있을 정사대전을 눈감아 주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자, 이제 영초린 그놈이 일을 잘해 주는 것만 남았나?’

***

“무슨 일입니까?”

이현의 말에 장덕칠이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내 정체가 드러난 것 같다.”

“예?”

“알아보라는 일은 어떻게 됐느냐?”

“그만한 덩치에 도를 쓰는 놈들 중에 짚이는 놈이 있습니다. 열호아 정호기라고, 천수신의의 외손자라는 놈입니다. 이제 약관도 못 된 놈인데 사가장에서 열린 무림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하더군요. 개방에 알아본 결과 그놈이 하남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정호기?”

생소한 이름이었다.

‘문제는 그놈이 동팔이를 건드린 것이 노림수가 있었느냐는 것인데, 분명 알고 그런 행동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단 말이야. 그렇다면 내 정체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순간 가슴 어림이 뜨끔했다.

‘거기다 그놈의 무공. 어린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당주급은 되어 보였어. 그런 놈이 나와 엮이고 악가장으로 도주한 것이 우연일까?’

“동팔이는?”

“아우님은 현재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

“향주님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혹시 이전에 안면이 있었다거나…….”

“아니, 처음 본 놈이다. 게다가 궁에서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나를 아는 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니었느냐? 설혹 안다고 해도 내가 궁에 소속된 것을 아는 것은 많아야 이십을 넘지 않는다.”

“천수신의는 어떻습니까?”

“만난 적 없다.”

“그럼 그놈이 피신한 악가장이 뭔가 관련이 있겠군요.”

“아니면 소림이 뒤에 있거나…….”

“아무튼 시작도 하기 전에 정체가 드러나 일이 실패한다면 향주님의 안위를 장담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일의 발단이 아우님이셨으니…….”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서효경 그놈도 있으니 좋게 끝나진 않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묻어 둔다고 해도 이미 일은 틀어진 것이겠지?”

“예.”

“좋아, 악가장을 친다!”

“예? 무리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겨우 이십여 명인데, 이런 전력으로 악가장을 치다니요?”

“그놈과 놈의 일행, 그리고 악가장의 윗대가리만 처리하면 될 일이다. 독을 준비하도록 해라.”

“하지만…….”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최소한의 발악은 하고 죽어야 하지 않겠냐? 이 근처에 살수가 있던가?”

“예, 살막이라고 한 군데 있기는 있습니다만, 악가장이 상대라면 의뢰를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악가장 놈들이 아니라 그놈과 일행을 사주하도록 해라. 우리가 기회를 제공할 테니 놈들의 목숨만 취하면 된다고. 그리하면 수락할 것이다. 그놈들 말고는 없느냐?”

“야율림이라고, 하오문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럼 그놈들에게도 의뢰를 해라. 돈은 걱정 말고.”

이현은 장덕칠이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그가 쓰고자 하는 돈이 바로 비밀 분타를 세울 자금이었으니까.

‘하긴, 진짜 죽기 아니면 살기지.’

장덕칠에 줄을 대고 있는 자신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현도 딱히 반대할 입장이 아니었다.

“죽어도 될 놈으로 의뢰를 보내고.”

일이 성공하면 시치미를 떼면 그만이었다.

의뢰를 하러 간 놈은 악가장과의 전투에서 죽지 않는다면 이현이나 장덕칠의 손에 생을 마감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시키는 장덕칠이나 대답하는 이현이나 이번 기습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만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악가장이었다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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