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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25화 (26/137)

25화

‘이래도 되는 거야?’

정호기의 눈이 참관인을 향했지만 제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강기를 써도 제지를 하지 않는다?’

유옥접의 륜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 강기를 쓸 것이란 말이었다.

보통 무림대회와 같은 비무에서 강기를 사용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강기는 아니겠지만.’

벌써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으로 무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쾅!

진각을 힘차게 구른 유옥접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격 방법도 바꾼 모양이군.’

마치 두 사람이 겹친 것처럼 잔상을 남기며 뒤로 돈 정호기의 눈에, 기세 좋게 륜을 찌르다 당황한 표정을 짓는 유옥접의 얼굴이 보였다.

‘뒤를 노리다니.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네.’

유옥접은 외모와 마찬가지로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었고, 속도는 빨랐지만 환을 곁들이지도 않을 만큼 곧고 바른 공격을 취했었다.

어떻게든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던 어제 박살이 난 이한과는 다르게.

그런데 그것이 변한 것이다.

‘버릇을 고쳐 주지.’

피윳!

땅에서 솟구친 도가 바람을 일으키며 한 치 앞을 지나쳤지만, 유옥접은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내디디려 했다.

만일 밑에서 쏘아지는 경기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우웃!”

서둘러 뒤로 몸을 날렸지만 코끝을 스치는 짜릿한 느낌은 피하지 못했다.

사준우가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고, 비무를 구경하던 이들은 숨을 죽였다.

“이, 이봐, 뭐였지?”

“몰라.”

“분명 도가 올라갔었지?”

겨우 정신을 차린 구경꾼들이 쑥덕일 무렵, 유옥접이 손가락으로 코끝을 문지르자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더 하겠소?”

정호기의 물음에 륜을 허리춤에 갈무리한 유옥접이 비무대를 벗어났다.

“이번 비무는 열호아 정호기 소협의 승리입니다.”

“와아!”

“최고다!”

환호를 들으며 비무대를 내려오던 정호기의 시선이 사준우에게로 향했다.

***

“이무기인 줄 알았더니 벌써 창공을 노니는 용이었군.”

사비연의 말을 들으며 멀어져 가는 정호기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사준우가 물었다.

“저게 뭐지요?”

“의검(意劍)이다. 아니, 의도(意刀)라고 하는 게 맞겠지.”

“의도요?”

“넌 분명히 도가 올라가는 것을 봤지?”

“네.”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하거늘, 정호기의 도는 어떠한 잔상도 남기지 않고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다시 도가 솟구쳤었다.

“그러나 그것은 저놈의 의지와 네 눈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게 허상이었다고요?”

“그래. 너뿐만이 아니라 집중하고 있던 모든 이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봐라.”

“예?”

“저기 저 사람들 말이다.”

사비연이 가리킨 곳은 연무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그곳에 있는 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옆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저들은 거리가 멀고 집중하지 않은 탓에, 본 것이라곤 그냥 도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다가 위로 쳐올렸는데, 그런 가벼운 공격을 상대가 가까스로 피하는 모습이었을 뿐일 게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고.”

사준우는 사비연에게 설명을 들었음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분명 두 눈으로 도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가 그만큼 싸움에 집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할 수 있겠느냐?”

두려움은 싸울 의지까지 꺾어 놓기 마련이었다.

“하겠습니다.”

사준우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

“아빠는 내일이 결선인데, 이럴 때 도대체 어디 가신 거야?”

진수수의 말마따나 정호기가 순조롭게 상대를 물리치고 벌써 결선이건만, 진청운은 며칠째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장에 돌아가 있으라고 하셨잖아.”

“오빠한테도 말 안 했어?”

“응. 급한 일이라 대회를 끝까지 보지 못해 미안하시다고만 하셨는데.”

똑똑.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환한 미소를 얼굴 가득 짓고 있는 한 여인이 들어왔다.

‘이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야?’

개뼈다귀가 아닌 것도 알고 있고 심지어 이름까지도 알고 있었지만, 정호기의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백수련에게 개뼈다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뻔뻔하게 여기까지 쫓아온 것도 모자라 저녁까지 같이 먹겠다니.’

한 가지 위안이라면 그 개뼈다귀에 정호기가 침을 흘리지 않는다는 정도?

“언니, 윤회곡이 어디에 있어요?”

진수수의 말에 유옥접이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하북.”

“예? 그럼 그 멀리서 언니 혼자 왔단 말이에요?”

“응. 곡에 소속된 무인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혼자 움직이거든.”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는데요? 이번 대회 때문에 오신 것은 아닐 테고.”

“괜찮은 신랑감 하나 찾으러 나왔지.”

“풋!”

유옥접의 말에 백수련이 머금고 있던 음식을 뿜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정호기를 덮쳤다.

“먼저 일어날게.”

“미, 미안해.”

“됐어.”

언제나처럼 건성으로 말하는 정호기였지만, 받아들이는 백수련은 같은 심정이 아니었다.

정호기의 등을 바라보던 백수련이 유옥접을 한 번 째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 언니. 난 더 얘기 좀 하다 갈게.”

언제 봤다고 언니, 언니 하면서 친근하게 구는 진수수가 어이없었지만, 더 이상 말하는 것도 귀찮았기에 백수련은 자리를 떴다.

**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진수수라는 것을 알았지만 백수련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언니, 나 왔어.”

“…….”

“으이구, 아직도 꽁해 있는 거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고 했잖아. 싸우려면 그 언니에 대해서 알아야지. 싸움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라고.”

진수수가 침상에 걸터앉자 그제야 백수련이 부스스 일어났다.

“그 언니, 대차던데? 하지만 오빠하고 연결될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 같아.”

“왜?”

“윤회곡은 데릴사위제인가 봐. 혼인을 하면 신랑도 윤회곡에서 살아야 한대. 하지만 오빠가 어디 장주님 내외분을 버리고 갈 사람이야?”

절대 아니었다.

“마음 푹 놓으셔. 그리고 사실 오빠도 별로 관심 없어 보이던데 뭘.”

“그렇지?”

“응.”

“헤헤, 수고했어. 내가 내일 맛난 거 사 줄게.”

머리를 쓰다듬는 백수련의 손길을 느끼며 진수수는 유옥접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남자가 같이 가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혼례 자체를 거부하든가.]

[그때는 아이 하나 만들어 가면 돼.]

‘뭐,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

백수련이 알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기에 일단 숨기는 것으로 결정을 봤다.

* * *

와아~!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정호기와 사준우가 비무대 위에 마주 섰다.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자리임을 명심하여 주십시오.”

참관인의 말을 들으며 정호기가 사준우를 지나쳐 뒤로 시선을 옮겼다.

네 명이 남은 어제야 모습을 드러낸 사가장의 장주인 사도민과 그 옆에 앉아 있는 그의 가족들을 바라보고자 한 것이 아니라, 맨 끝에 있는 인물 때문이었다.

‘외조부님?’

양 갈래로 턱을 지나 목까지 길게 내려온 콧수염이 인상적인 천수신의였다.

‘외조부께서 어떻게?’

천수신의가 삼절을 쫓는 일행을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정호기는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혹시나 자신을 알아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머닌 아직 외조부께 밝히지 않으신 것 같았는데, 전서라도 넣으신 것일까?’

순간 천수신의와 정호기의 눈이 마주쳤다.

[무인들은 다 쓰레기야…….]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한 말이 떠오른 정호기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그때 이미 외조부께서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계셨는지도 몰라. 하지만 아버지는 무인이 아니라 상인이셨… 아, 아버지도 무인이셨구나.’

태력문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왔다고는 해도 무공은 배웠을 것이고,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안 이후로 무인 자체를 싫어했을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무인들을 싫어하신 것은 아닌가?’

하지만 그랬다면 어째서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정호기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뭐, 여쭤 보면 되겠지. 어차피 외조부님의 존재는 필요했으니까. 여기서 밝힌다면 더 효과가 있겠구나.’

***

몇 번을 들었던 주의 사항을 말한 참관인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드디어 비무가 시작된 것이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두 사람이 거리를 벌리고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하압!”

기합성을 터뜨리며 먼저 달려든 것은 사준우였다.

영롱한 빛을 뿌리며 아홉 개로 이루어진 별자리를 만들어 내며 허공에서 떨어지는 검을 바라보던 정호기가 도를 힘차게 휘둘렀다.

쨍!

첫 번째 공격이 막히자 사준우는 허공에 뜬 상태로 검을 찔렀는데, 그 속도가 가히 빛살과 같았다.

“흡!”

빠른 속도로 검을 놀리던 사준우의 안색이, 눈앞을 가득 메우며 다가오는 도의 환영을 보고 창백하게 변했다.

채채채채챙!

십여 번의 충돌음과 함께 뒤로 물러난 사준우의 의복은 여기저기 잘려 있었는데, 다행히 피는 보이지 않았다.

입술을 잘근 깨문 사준우가 힘을 주자 발이 바닥을 파고들었고, 검에 빛무리가 어리었다.

그 상태로 막 초식을 전개하려는 찰나, 불쑥 날카로운 도첨이 미간을 향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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