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신 다시 살다!-8화 (9/137)

8화

“어떻게 아신 것이오?”

“그것이 중요하오?”

“내게는 중요하오. 어떤 목적으로 나를 감시한 것인지 모르니 말이오.”

“감시라는 말은 좀 그렇고, 추천을 받았다고 말하겠소.”

“추천?”

“진 대협을 무사부로 모신다고 서찰을 보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오. 이미 내게는 사부님이 계시기 때문이오. 사부님께서 진 대협을 내게 추천하셨소. 따님의 병세도 그분이 알려 주셨고.”

“사부님이라면 어떤 분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정체를 드러내기 싫어하시는 분이시라 아직 부모님도 그분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시오.”

중원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무인이 하나둘이던가?

“그분이 어째서 날 추천하신 것이오?”

“척혼검(刺魂劍).”

정호기의 말에 진청운이 움찔했는데, 행동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무척이나 놀란 상태였다.

“그걸 어떻게?”

“혼을 찌르는 검이라는 이름과 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빠르기로 적을 찔러 숨통을 끊는 검법. 그 잔인함에 마검으로 규정되었고, 이후로 행방을 알 수 없음.”

척혼검법에 당한 사람들은 모두 찔린 자리에서 피를 뿜어냈는데, 한 번의 찌르기로 보통 열댓 개의 상처가 생기고 그곳에서 피가 뿌려지니, 보는 이들의 눈에는 악독한 검법으로 보인 것이다.

척혼검법에 얽힌 비화였고, 마검이라 손가락질 받자 진청운의 선조가 은거에 들면서 잊힌 검법이었다.

“사부님의 말씀으로는 비무에서 진 청성의 무진자가 의도적으로 마검으로 몰았지만, 당시 척혼검을 사용한 진우현 대협은 정도를 걷던 진정한 무인이라고 하셨소.”

“할아버님이시오.”

진청운이 딸의 죽음에도 검법을 넘기지 않은 것과 부당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할아버지인 진우현의 유언과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절대 악행을 하지 마라. 척혼검이 위대한 검법이었음을 필히 세상에 알려 줘라.]

가문의 검법이 화려하게 꽃피울 순간에 단지 한 사람의 모함과 검법이 지닌 특성으로 인해 외면당한 진우현의 한은 생각보다 깊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피를 토하며 척혼검법을 변화시키려 노력했고, 그것은 세대를 이어 진청운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이런 말씀도 하셨소. 만일 진우현 대협께서 나타나신 시점에 정사대전이라도 있었다면 틀림없이 인고에 회자될 만한 분이 되셨을 것이고, 척혼검법은 만인의 뇌리에 강하고 정의로운 검으로 기억되셨을 것이라고.”

“그분은 어찌 알게 되신 것이오?”

“진우현 대협과 비무를 하신 적이 있다 하셨소.”

많은 것을 함축한 말이었다.

진우현이 나타난 시점이 벌써 칠십 년이 다 되어 가니 정호기가 사부라 부르는 사람의 나이를 짐작케 했기 때문이다.

“내게 무엇을 원하시오?”

정호기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수긍한 진청운이 물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진 대협의 무공을 원하는 것은 아니오. 다만 나를 도와주고 장을 위해 힘을 빌려 주기를 원할 뿐. 언제라도 떠나시길 원하시면 보내 드리겠소.”

너무도 좋은 조건이었다.

무공이 유출될 염려도 없고, 딸의 병세도 치료할 수 있고, 원하면 언제든 나갈 수 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어째서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인지 모르겠소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힘이 필요하오. 대응방이란 무가와 시비가 일고 있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에 사부님께 머무시길 청하였지만 너무도 급한 일이 있어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시면서 진 대협을 추천해 주신 것이오. 진우현 대협의 자손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한참을 고민하던 진청운이 손을 내밀었다.

“빚이라 생각하겠소.”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마울 뿐이지요.”

진청운의 손을 잡으며 정호기가 미소를 지었다.

‘됐다. 이놈은 고지식한 놈이라 은혜를 베풀면 알아서 길 것이니까.’

진청운을 무사부로 들이면 그의 딸인 진수수는 정운룡이 맡아서 처리할 것이었다.

그 문제로 더 이상 정호기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정호기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진청운은 자신의 손에 잡힌 작은 손을 느끼며 내심 감탄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작은 손과 몸을 지니고 있지만, 그 속내는 내가 헤아릴 수가 없구나.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천양지차가 아닌가? 어떤 이유에서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지는 몰라도 잠룡이 분명하다. 이런 사람을 제자로 둔 그분은 어떤 분일까?’

정호기에 대한 호기심도 컸지만 정호기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부’라는 인물에 대한 호승심이 더 컸다.

‘언젠가는 검을 섞을 수 있겠지.’

조부인 진우현과 비무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사부님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주위에는 무사부로 모신다 할 것이니까요. 그리고 사모님과 사매는 사람을 시켜 부르도록 하고요.”

무사부로 있으려면 장에 기거해야 했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알겠소.”

“눈이 없는 곳에서 더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제 관계이니 말씀 편히 하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알았다.”

“그리고 죄송스럽지만, 오늘 아버님께서 대응방에 가시는데 같이 동행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첫날부터 부려 먹겠다는 심보이지만, 진청운은 흔쾌히 승낙했다.

“물론이다. 나를 급히 찾은 이면에는 그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느냐?”

“감사합니다. 그럼 날이 밝는 대로 아버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이야기라도 하는 것이 어떠하냐?”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칠음절맥을 완치시키려면 상당한 의술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구절초의 뿌리가 없다면 고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하지만 구절초가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따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도 있고 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버님께 말씀드려서 구입하면 될 일입니다.”

“알았다.”

구절초는 아홉 마디의 줄기를 가진 풀로, 잎은 사람의 손과 같고 꽃잎은 보라색을 띠며 뿌리는 붉은색이었는데, 간혹 발견되기는 했지만 일반인들이 구경하기는 힘들었다. 남자의 정기를 회복시키는 것으로는 산삼보다 뛰어나다 알려져 있어, 권세가 있는 가문에 은밀히 흘러들어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 정호기가 입을 열려는 순간 복도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이내 벌컥 문이 열리며 정운룡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뒤로 백난영과 왕삼, 곽현의 얼굴이 보였다.

“아빠, 엄마.”

쪼르르 정운룡에게 달려가 안기는 정호기의 모습을 보면서 진청운의 등줄기를 차가운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갑작스레 바뀐 행동에서 전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선택을 잘한 것인가?’

진청운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정호기를 백난영에게 슬쩍 민 정운룡이 진청운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정운룡이라고 합니다.”

“진청운입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백난영은 정호기의 몸을 샅샅이 살피는 중이었다.

마치 어딘가 다친 곳이라도 없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꼼꼼하게 살폈다.

“아빠, 이분을 제 무사부님으로 모시고 싶어요.”

“응?”

정호기의 말에 모든 사람의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있었는데요. 무공을 익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삼이에게 말했더니, 예전에 마을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 이분이 구해 주셨다면서 추천해 줬어요. 그래서 모시고 오면 향이하고 혼례를 올려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랬더니 오늘 모시고 왔네요.”

빠르게 말을 했기에 다른 이들이 끼어들 새가 없었고, 그사이에 정호기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마쳤다.

“예, 맞습니다. 제가 일전에 신세를 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분의 무공을 보고 참으로 강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장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문득 떠올라 모셔 온 것입니다.”

정운룡의 눈길을 받은 왕삼이 정호기의 말을 거들었다.

“아빠, 전 이분이 좋아요. 이분에게 배울래요.”

착 달라붙어서 말하는 정호기를 보면서 정운룡은 안타까웠다.

‘무공을 배우고 싶었다면 좋은 스승을 구할 수도 있고, 구대문파에 연줄을 넣어 그곳에 보내 줄 수도 있건만 겨우 저런 인물에게 배우겠다니…….’

뛰어난 상인답게 정운룡은 사람 보는 눈이 좋긴 했지만, 편견이란 것은 존재했다.

진청운의 나이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서른이 되어 보이지 않았기에 그를 고수라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진청운의 나이에 고수가 된 이들도 존재하고 그들의 이름은 중원에 널리 알려진 상태였는데, 정운룡은 진청운이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왕삼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는데, 정운룡이 노려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재빨리 내게 고할 것이지, 어디서…….’

정운룡도 왕삼이 박향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와 혼례를 올려 주겠다는 말에 왕삼이 제 마음대로 결정을 내린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꼭두새벽에 데리고 온 것도 정운룡을 불쾌하게 만든 이유였다.

물론 그것도 박향과 혼례를 올려주겠다는 말에 눈이 뒤집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호기야, 이런 문제는 내게 먼저 상의를 했어야지.”

대놓고 면전에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고 차후에 결정을 내려도 괜찮은 것이다.

“전 꼭 이분께 배우고 싶어요.”

“크흠, 흠… 알았다. 일단 내가 이분과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은데, 그동안 네 방에서 기다리겠느냐?”

정운룡이 눈짓을 하자 백난영이 정호기의 손을 이끌고 접견실을 나서려고 했다.

“이분이 얼마나 강한데요. 총당주님도 이길 수 있는 분이에요.”

백난영의 손길을 거부한 정호기가 정운룡의 팔을 붙들며 말했는데, 그 말이 묘한 파장을 가져왔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구나.’

싸늘해지는 곽현의 얼굴과 뭔가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는 듯한 정운룡의 표정을 보면서 진청운은 앞으로의 일을 예상할 수 있었다.

* * *

정호기가 머무는 전각이 있는 별원의 작은 연무장에 진청운과 곽현이 마주 섰다.

“사정을 봐주시기 바라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하는 곽현은 적당히 할 생각이 없었다.

‘어린놈이 그런 말을 한 배경이 있겠지?’

정호기의 정체를 모르는 곽현은 정호기가 자신을 걸고넘어진 것에는 진청운이 어떤 식으로든 언질을 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정호기가 얼떨결에 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아까 느낀 모멸감과 요즘 느끼고 있던 불안감을 진청운에게 풀 작정이었다.

‘덜떨어진 놈이 주둥이를 놀린 탓이니, 원망을 하려면 그놈을 원망해라.’

하후명을 따르던 이들은 모두 정호기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런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곽현은 하후명 다음으로 그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으니, 하후명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 그는 대단히 초조하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후명의 배신이 정운룡에게 발각되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정운룡이나 다른 장의 누구에게서도 그런 낌새를 느낄 수 없었기에 요즘 들어 마음을 조금 놓은 상태이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고, 그런 차에 진청운과 비무를 하게 되었으니 그간 쌓였던 울화를 풀어 보려는 속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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