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신 다시 살다!-0화 (1/137)

서장

“빌어먹을 것들이!”

옆방에서 제자들과 자식들이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직 죽기 전에도 저 짓거리니, 죽고 나면 어떨지 앞이 훤하구나.”

혈신(血神) 정호기.

사파 최강이라는 흑룡문의 문주이자 중원 최고수인 정호기가 병석에 누운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그런 만큼 후계 구도가 완전하지 않았기에 자식들과 제자들이 서로 주도권을 쥐고자 싸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미쳤지. 더 살아 뭐하겠다고 반로환동을 하려다 주화입마에 걸리다니…….”

한 발만 더 나아가면 고지가 보일 것 같았기에, 그 유혹을 떨쳐 버리기 힘들었었다.

“염병할 놈들이, 내가 멀쩡할 때는 찍소리도 못하던 것들이 이제는 나를 헌신짝 취급하는구나.”

정호기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온 백이십 년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단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

싸움과 휴식.

휴식은 싸우기 위한 준비였고, 싸움은 휴식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명성은 높아졌지만, 자식들과 제자들, 그리고 부인들은 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아니, 아예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그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오로지 싸울 때뿐이었으니까.

그런 그였는데, 죽음의 순간에 이르자 그간의 모든 일이 허망하게 느껴진 것이다.

“무학, 너를 죽이지 말 걸 그랬나 보다.”

무학은 정호기의 오랜 숙적이었다.

소림의 방장이자 달마의 환생이라고까지 칭해질 정도로 강했지만 그도 정호기의 적수는 되지 못했고, 정파 최고수였던 무학을 죽인 후 소림을 폐허로 만들면서 그의 오랜 싸움도 끝이 났다.

그 뒤로는 싸울 일도 없었고, 싸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놈이 마지막에 한 말이 신경 쓰여서 더욱 무공을 파고든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일지도.”

[정 시주, 그대의 운명은 비틀려져 있소. 그것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죽어도 안녕을 찾지 못할 것이오. 그것은 무공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 내 그대를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하겠소.]

말과 함께 무학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그 빛이 정호기의 몸에 흡수되었는데, 최후의 발악이라 생각하여 막으려고 했지만 끝내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라진 무학의 시신.

옷만 있을 뿐 가루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는데, 말도 신경 쓰였지만 그 빛도 께름칙했었다.

“죽으려면 곱게 죽던가, 젠장! 가증스러운 정파의 개답게 끝까지 사람을 우롱하더니 결국 그놈의 농간에 놀아나 내가 이 꼴이 된 것인가? 후… 어쨌거나 남은 것이라곤 후회뿐이군.”

인생을 즐길 여유도 없었다.

강해지는 것이 목표였고, 피로 갈증을 채웠다.

중원을 평정하느라, 정파의 씨를 말리느라 그의 손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것이다.

“제길! 좀 더 즐기면서 살 걸 그랬어.”

누가 그랬던가?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고.

뒤늦은 후회 속에 혈신 정호기는 눈을 감았다.

천천히 심장 뛰는 속도가 느려지며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숨이 조금씩 느려지더니 이내 그의 피가 차가워졌다.

‘복수로 점철된 내 삶이 후회뿐일지라도 난 만족한다.’

그의 삶의 목적은 복수였고, 복수는 그가 살아가게 도와준 힘이었다.

그렇기에 복수를 달성한 그는 최후에 만족할 수 있었다.

‘난 열심히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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