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이미 서른이 넘어간 나이. 한때는 정파 최고의 기대주 중 한 명인 그였으나, 지금은 패천마대 소속으로 부대주의 직위를 맡고 있다.
천마존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마교에 입교한 그였다.
스승에겐 미안하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삶이다.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정파의 인물들보다는, 이곳이 조금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오 년이란 세월이 지났기 때문인지, 철이 든 도우겸은 더 이상 입이 걸쭉하지 않다. 차분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청랑을 위로하고 있는 그는, 그가 평소 꿈꿔 왔던 대협의 면모를 보여 주는 듯하다.
그러나 청랑은 힐끗 도우겸을 바라보더니 푸후! 하며 숨을 내뱉었다. 어찌 듣는다면 마치 비웃는 것 같아 보이는 순간이다.
“도 부대주께선 정말 많이 달라졌네요. 예전에는 금수만도 못한 놈이었는데.”
“…….”
“아,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이다! 라고 말하는 이상한 놈들이요. 도 대협은 딱 그런 모습이었어요.”
청랑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도우겸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 또한 따라 웃었다. 변했다고는 하지만 이곳에서 제일 많이 변한 것은 다름 아닌 청랑 그녀이기 때문이다.
“마존께서 대공녀를 잘 키우신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 보이십니다.”
“성격 말이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밖으로 내보내 주지 않겠다고 말하거든요. 사부님이…….”
“밖이라…….”
밖이라는 말에 청랑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마도 그녀를 말함일 것이다. 거대한 마교이고, 마음에 들기도 하나 기다리는 것을 만나지 못하는 마음이 오죽할까.
“잘 있을까요?”
“소식은 전혀 없습니다.”
“……진 언니는요?”
“사천에서 여전히 장원과 객잔을 관리하고는 있지만, 신 대협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 년이다.
당시 싸움이 일어나고 신유강이 사라진 이후로 약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정도 무림맹은 물론이며, 천마존까지 마교인들을 급파하여 그를 수색을 진행하였으나, 그 흔적조차 찾아낼 수가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때문에 걱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혹여 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욱더 불안하다.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검을 익히고는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신유강이 죽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말을 하고 있다.
그녀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같은 생각만 하게 됐다.
“끄으으응……. 정말이지 어서 빨리 나타나야 진 언니도 걱정을 덜 텐데 말이죠.”
“…….”
“혹시, 죽었다고 생각하나요?”
“죄송한 말이지만 그렇습니다.”
“호호,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그리 생각을 안 해요.”
청랑은 과거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홍화의 명령을 받고 처음 그를 납치하기 위해 갔던 당시의 모습. 점혈을 해도 해도 되지 않아 홧김에 단검을 휘둘렀는데, 순식간에 치유가 되는 그 모습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런 신유강이 죽었다고?
콧방귀가 나올 지경이다.
“대주도 그렇게 생각하죠?”
멀리 있는 흑호를 향해 작은 소리로 묻자, 대원들의 훈련을 시키고 있던 흑호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놈이 죽는다고? 말도 안 되지. 백 번, 천 번을 죽여도 살아 돌아올 놈이거든.”
“호호호, 대주. 말투가 그게 뭐에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또 혼이 날 거에요.”
“아앙? 쥐방울만 한 꼬맹이한테 존대를 쓰라는 거냐?”
“그렇죠.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저한테 말을 높이지 않는 사람은, 우리 사부밖에 없어요. 그 꼴사나운 소교주도 존대를 하는걸요.”
“푸하! 지랄한다.”
흑호의 말에 청랑은 아미를 좁히며 인상을 썼다.
여전히 재수 없는 아저씨다.
* * *
천마존 사마강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대실에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방 주위에는 혹여 있을지 모르는 습격에 대비하여 상당히 뛰어난 은신능력을 지닌 이들이 숨어 있었으나, 그의 생각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쥐죽은 듯 입을 열지 않는다.
“녀석…….”
오 년 전, 사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 않는다. 사라진 신유강을 찾기 위해 태상교주 직위에 올라 있는 그가 직접 명령을 내려 수많은 마인들을 사천으로 보냈다.
당시 무림맹과 치열한 교전까지 벌여 가며 수색하였으나, 그 흔적은커녕 무엇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혹여 주가장에서 그들을 데리고 간 것은 아닌가 하여 전서를 날려 보았으나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답을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인가.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주가장의 인물들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함부로 추궁하지 못한다.
아무리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곳을 상대로 힘을 쓸 만큼 어리석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해야 한다…….”
직접 하남으로 가 보아야 할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만큼 크나큰 사달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다 할 수 있다. 때문에 사마강의 근심 걱정은 나날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으며, 이제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길게 한숨을 토해 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있던 그때, 돌연 밖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급보입니다.”
상념을 방해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마강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러나 급보라는 소식에 슬쩍 문 쪽을 바라보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인데 감히 나의 상념을 방해하는 것이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덤덤하기 짝이 없다. 허튼 소리를 했다간 결코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가지 못할 것임을 말해주는 듯한 목소리다.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먼발치에서 땅에 머리를 처박고, 공손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는 한 장에 서찰이 들려 있었다.
사마강이 슬쩍 손을 뻗자, 멀찌감치 있던 서찰이 순식간에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단순한 흡공이 아니라 극상의 허공섭물이다.
그러나 사마강은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마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현 교주인 마중천이 해결하니만큼, 그가 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여 대강 서찰을 읽고 답을 내려 주려 했던 사마강은, 돌연 눈을 부릅뜨며 파르르 손을 떨었다.
“이게 사실이더냐?”
“결코 거짓이 아닌 사실입니다. 마존!”
“네놈의 목을 걸 수 있겠느냐!”
“마존께서 원하신다면 이 하찮은 목 따위 언제든지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서찰의 내용은 모두 진실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천하의 마존이 저리 떠는가?
사마강을 호위하고 있는 이들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이놈이 죽을 리가 없지 암!”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상황을 파악한다.
아마도 저 서찰에는 사마강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이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이 쓰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마강에게 있어 굉장히 기쁜 일이며, 요 근래 웃음을 잃어 버린 그를 보고 있었던, 호위들에게 또한 길보(吉報)이기도 하다.
사마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청랑을 불러오거라.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할 것이다.”
“존명!”
* * *
진명은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는 딸자식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거 죽은 아내가 떠오르는 것만 같다.
그러나 쉬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딸 때문인지 속상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삼 년 전, 무림맹주직을 청허자에게 물려주고 사천으로 내려온 그는, 이 년 동안 신유강의 장원에서 진소소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지만 진소소는 쉬이 아비에게 마음을 열어 줄 생각이 없는 것인지, 하루에 고작해야 몇 마디를 나누는 것이 전부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감지덕지(感之德之)다.
본래 말수가 없는 것도 이유이긴 했지만, 그 역시 어찌 대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식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며, 아비의 사랑을 나눠 준 적이 없다. 그것은 그의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일인지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객잔은 오늘도 여전히 사람이 많다.
유난히 젊은 남자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이기는 했지만, 누구 하나 진소소에게 수작을 걸지는 못한다. 그 권무존과 혼인을 약속한 사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진명이 남자들을 향해 부리부리하게 눈을 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기, 지…… 진 대협…….”
객잔이 다시금 처음 생겼을 때부터, 그리고 화마의 휩싸여 무너지고 다시 지어진 지금까지, 여전히 숙수의 자리를 지키며 신유강에 대한 우정을 보여 주고 있는 장삼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진명에게 다가갔다.
뭐라 불러야 할까?
맹주?
가주?
하북진가의 가주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나 맹주는 아니다. 현 무림맹주는 청허자이니만큼 전 맹주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을 테고, 가주라 부르기에도 이상할 것 같으니, 장삼은 어쩔 수 없이 대협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진명의 검미가 살짝 구겨졌으나, 이내 장삼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엇인가?”
“그…… 소, 손님들이 많이 불편해 하십니다. 괘…… 괜찮다면 저쪽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삼이 알려 준 곳은 기연객잔 안에서도 상당히 구석진 자리로, 주위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이다. 때문에 장삼은 가끔 농땡이를 피울 때 그곳에 몸을 숨기기도 한다.
“내가 이곳에 있으면 불편하다는 것인가?”
“저는 결코 아닙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다……. 다만 사람들이 대협을 어려…… 워하니…….”
“내가 어렵단 말인가?”
“아니, 누가 진 대협을 어려워합니까?”
“방금 자네가…….”
“아, 그…… 그러한 것이 아니옵고……. 그, 그렇지! 이곳에 앉아 계시면 손님들을 받지 못합니다.”
진명이 앉아 있는 곳은 주위에 탁 트였고, 주변으로 상당히 많은 탁자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그러나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이 상황에서도, 진명의 주위만큼은 휑하기 그지없다.
이유인즉, 그의 이름이 너무 높은 탓도 있었지만, 진소소에게 말을 걸거나 주문을 할 때 느껴지는 묘한 살기가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다.
상대는 전 무림맹주.
더욱이 이제는 칠제의 자리에 올라 있는 자다.
과거 신유강처럼 나이가 어려 얕볼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말을 하지 않지만 단순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가 질렸다.
“허나, 나는 이곳에서 일을 하네만……?”
“예?”
진명은 하북진가에서 전서로 보내온 이들을 늘어트렸고 이곳에서 처리한다. 그러나 누가봐도 진소소의 꼬리를 졸졸 쫓아다니는 인간으로밖이 보이지 않는다.
장삼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고, 곁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당소혜가 앙칼지게 소리를 쳤다.
“적당히 하세요 가주님! 손님들에게 폐가 되니까요. 언니도 뭐라 하지 말고 한 마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