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96화 (196/200)

# 196

단 한 놈도,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않으리.

이 평온을 방해하려는 놈들은 누구든 적이다.

“어디를 그렇게 가는 거지?”

“……!”

또 다른 이를 향해 맹렬한 추격을 하려는 그 순간, 돌연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자신과 같은 얼굴을 지닌 이가 서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그 순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주먹이 뻗어져 왔다.

펑!

“크악!”

그의 몸이 순식간에 날아가 벽을 부수며 날아갔다. 어찌나 강한 힘인지, 두터운 벽을 부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한참이나 더 날아간 뒤 땅을 굴렀다.

“크윽……. 빌어먹을 자식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정면을 바라보자,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는 신유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틀림없이 힘줄을 잘라 내고 얼굴마저 바꾸어 놨는데, 눈앞에 있는 이는 멀쩡하기 짝이 없다.

그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은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묘한 느낌에 기분이 이상해지는 느낌마저 들었으나, 그러한 것보단 얻어맞았다는 충격 때문인지, 강한 살기가 넘실넘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 뭐야……. 궈, 권무존이 둘?”

“어……. 어떻게 된 거지?”

주위에 몰려 있던 이들은 갑작스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신유강을 피해 달아나려 했던 그들이었으나, 돌연 벌어진 상황에 그것마저 잊은 기분이다.

본래 신유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며, 그를 죽이기 위해 찾아왔던 팔대세가의 인물들 또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놈, 어찌 멀쩡한 것이지?”

“곧 죽을 놈이 알아서 무엇하려고?”

신유강은 삐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처음 일격이 통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자신감이 붙은 것인지 표정은 한층 더 여유로워졌다.

회귀신공이 무너지는 것을 확실히 느꼈으며, 설령 몸이 빠르게 치유된다고는 하나, 결국 정신적으로 상당한 공황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혀 놀라워하는 표정이 아니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회귀신공의 힘을 끌어 올리고는 히죽 미소를 짓는다.

“역시 우리는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 것 같군. 그 사이 기연이라도 얻었나 본데……. 고작 그런 것으로 나를 이길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매섭게 눈빛을 뿌리고 있는 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소리를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은 것인지, 슬쩍 손을 움직이자 기이한 파동이 일렁이더니 삽시간에 주변을 향해 뻗어 나갔다.

촤촤좍!

“끄아악!”

“컥!”

“커커컥!”

곳곳에서 사람들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손과 발을 잃은 자도, 목이 날아간 자들도 있다. 자욱하게 피를 뿌려 대며 땅을 구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처량하기 짝이 없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보며 더욱 검미를 좁혔다.

조금 전 한 수로 다친 이들 중에는 무인이 아닌 자들 또한 섞여 있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닌 듯, 여전히 만연한 웃음을 머금으며 신유강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까보다 더 시끄러워지긴 했다만, 곧 잠잠해질 테니 괜찮겠지. 그보다 계속 해보자고.”

신유강은 싸움에 미친 것처럼 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한숨을 토했다.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너는 역시 내가 아니다.”

“웃기는 소리. 나는 너의 미래다, 신유강.”

“그리 생각을 하는 건 너밖에 없을 테지……. 소소도 그렇고, 너를 알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까지 말이다.”

그는 미간을 꿈틀거렸다.

덤덤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결코 저놈을 죽일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잘라 내고 저 세 치 혀를 뽑아낼 것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은, 그가 쏟아 낸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쩌저적!

두 사람의 기운이 충동하며 주변이 크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하였으며, 땅이 갈라지고 거센 돌풍마저 불기 시작했다.

화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그 상황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고,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들어 점점 몸이 뒤로 밀려나는 것 같다.

이것이 권무존의 힘인가?

천마존과 대등한 승부를 벌이며 무관을 구할 수 있었던 이의 힘인가?

산공독을 먹였음에도 태연하기 짝이 없는 이는 물론, 같은 얼굴을 한 채 새로이 나타난 신유강 또한 못지않은 힘을 자랑한다.

팔대세가의 인물들은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우리가 정말 저런 자를 죽이기 위해 왔다는 소리인가.

세찬 바람에 장포를 펄럭이며 웃고 있는 이는, 그야말로 천지를 뒤집어엎을 것 같은 기세를 흘리고 있었다.

새하얀 백의장삼을 입고 덤덤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는, 거센 바람을 유유히 헤치며 나아가는 한 마리의 용을 보는 듯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네가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나는 전 무림인들을 죽여 없애고 내 평온을 찾도록 하겠다.”

그의 말에 신유강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 * *

흑영과 흑호는 곳곳에서 폭음이 들려오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벌써 시작한 것인지 사천 전체가 공포에 떨고 있는 기분이다.

사람들이 놀라 소리를 치며 달아나기 일쑤였고, 사천 무림맹 지부에서 우르르 무인들이 빠져나와 현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 봐야 손조차 대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시작한 것 같지 않소?”

“그렇군…….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여 보도록 하지.”

“흐흐, 이러니까 마교에 있을 때가 생각나오, 대주.”

“하하, 하긴 지금도 재미있긴 했지만, 사실 그때가 더 재미있긴 했지. 매일같이 생사를 가르는 싸움은 물론이고, 긴장감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흑호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는 것 같은 풍경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곳곳에서 폭음이 터져 오르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가득하다.

대부분 두 사람이 벌이는 싸움에 휘말리기 싫어 도주하고 있는 것이긴 했지만, 마치 살육이라도 벌어진 기분이지 않은가.

“역시 네놈은 이쪽 체질인가 보구나.”

“푸하! 뭐 마교 놈들이란 것들이 다 그렇지 않수”

“하긴……. 이번 일이 끝나면 돌아가기로 할까?”

“진심이시오?”

“그럼, 내가 언제 네놈에게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 같더냐?”

흑호는 가만히 흑영을 바라봤다.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은 그 말투에, 저도 모르게 볼을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신유강이나 진소소 곁에 있고 싶기도 하고, 반대로 마교로 돌아가 한바탕 난리를 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쯧쯧, 어리바리한 놈 같으니.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움직이도록 하자.”

흑영은 더욱 발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머지않은 곳에 황룡객잔이 보이기 시작하자, 힐끗 주위를 살폈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는 했으나 딱히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하며 객잔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진소소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사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표정이다. 다만 한곳에서 들려오는 폭음 소리 때문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만큼은 인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흑영과 흑호는 조심스레 그녀의 앞으로 내려섰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구나.”

“아, 아저씨?”

진소소는 돌연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신유강이라는 정신적 지주를 잃어 버린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흑영과 흑호마저 사라져 보이지 않았으니 그 마음고생이 오죽하였을까.

두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것을 닦아 내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괜찮으니 울고 싶으면 울어라. 다만 우리 품이 아니라 녀석의 품에서 말이지.”

“네, 네에?”

갑작스러운 말에 진소소는 멍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그 말 뜻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 화들짝 시선을 돌려 폭음이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떨리는 눈동자로 다시금 흑영을 바라보자, 그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인가요? 유강이 살아 있단 말이에요?”

“그래, 그리고 지금 그 결판을 내기 위해 와 있지.”

“그럼 이 소리는…….”

“두 괴물이 싸우는 소리.”

쾅쾅쾅!

벽력이 내려치듯 시끄러운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기겁하며 입을 벌리는 그 순간, 우르르! 하며 몇몇 가게들이 무너져 내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깔리고 괴성이 울려 퍼졌다.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서려던 무림맹 무인들조차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 채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보시오! 전쟁이라도 난 것이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상황을 듣기 위해 여기저기 소리쳐 보지만 누구 하나 대답해 주는 이가 없다. 워낙 기이한 상황에 관군마저 나타났으나,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것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다.

“사천성도 한복판에서 어마어마한 일을 벌리는군.”

흑영은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관군마저 나섰으니 일을 쉽게 풀기는 글렀다. 아무리 무림과 관이 불가침(不可侵)한다 하지만, 이런 소동을 벌였으니 단순한 무림인들 싸움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흑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진소소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가 생각해 봐도 더 이상 사천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 오는 순간이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신유강이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당장 쫓아가 그의 얼굴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누가 되었든 간에 신유강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점점 사천 밖으로 벗어나려 하는 것 같군.”

들려오는 폭음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자 진소소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점점 인적이 없는 곳으로 신유강이 유인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둘 다 괜찮을까요?”

“둘 다? 네년이 잠시 동안 그놈 밑에 있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니냐? 한 놈을 걱정해야 할 판국에 둘 다라니!?”

흑영이 질겁한 표정으로 쏘아묻자 진소소는 어색하게 웃는다. 그녀에게 있어 신유강이라는 존재는 딱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그 또한 결국 신유강이다.

비록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힘든 삶을 겪어 온 결과이다.

물론 그 성격으로 그녀가 알고 있는 신유강의 행세를 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으며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다.

그 생각은 지금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것뿐이에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말이죠.”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

“예, 과거 자신의 삶을 대신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돌이켜 본다면, 그는 지금 이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겠죠.”

진소소는 그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회귀신공의 능력이라면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만회하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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