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최근 들어 사천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신유강에게 제제를 가하기 위해, 의협심으로 이곳을 찾은 이들이었으나 전력 차이가 너무나도 큰 탓에 함부로 나서는 것이 꺼려질 정도다.
“권무존이란 이름 따위 필요없소! 당신은 죄 없는 낭인들을 학살하지 않았소이까! 우리는 그것 때문에 당신을 단죄하려 온 것이오!”
사천칠도 한 명이 악을 썼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지난번 객잔에서 벌어진 낭인들의 죽음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으며, 호형호제(呼兄呼弟)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울분 섞인 외침에 사람들은 시선을 돌릴 정도다.
특히 신유강을 알고 있는 이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가 머물고 있는 객잔 앞은 피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다.
죽은 그의 손에 죽은 이들만 하여도 물경 백을 헤아린다. 만약 무림맹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면, 응당 정도 공적 수준의 살인을 벌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단죄라…….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나를 이기려면 최소 칠제 일곱을 모두 데리고 와야 할 터인데, 가능할 것 같소?”
여전히 신유강의 태도는 고압적이다.
이곳에 있는 무인들의 수는 적게 잡아도 오십여 명이 넘어가고 있으나, 단체로 덤벼든다 한들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물론 그것은 결코 자신감만이 아니다.
“방자한! 그대가 지난번 천마존과의 대결로 이름을 떨쳤다고는 하나, 그래 봐야 우리와 같은 사람이오! 칼을 맞으면 죽는다는 것을 잊으셨소?”
청성의 문도 한 명이 소리를 쳤다. 기본적으로 청성과 아미에는 신유강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으나, 최근 벌어지는 일 탓에 지금은 반감을 가진 이들이 더욱 많다.
또한 나이가 비슷한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으니, 명문대파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신유강은 힐끗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명문의 자존심이 강하다고 하니 딱 그 꼴이로군. 주제 파악을 하시오. 사천에 있는 무관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해 무너트린 주제에, 지금 내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것이오?”
“그…….”
“애초에 지난번 마교인들이 쳐들어왔을 당시 내가 천마존을 막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소? 그대들이 지금 이 자리에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단순한 마교 습격이 아닌, 그 정점이라 불리는 천마존이 등장했으며, 무림맹주가 죽어 나갔다. 그곳에 있던 칠제 청허자는 물론, 백리지연까지 움직이지 못하였으나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이 사천 땅은 이미 마교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어쭙잖은 자존심을 세우기 전에 먼저 실력부터 키우고 오시오.”
“이 오만방자한 놈이!”
결국 참다못한 청성문도가 재빠르게 발검하며 신유강을 향해 다가서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 것은 그의 사형으로 보이는 자로 현 청성의 대제자, 유태산이다.
“그만두게나, 사제. 눈이 멀어 죽음을 자초할 생각인가?”
“사형!”
“신 대협 또한 이쯤하시는 것이 어떻소이까? 낭인들과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한다면, 더 이상 그 손에 피를 묻힐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내 장원과 객잔을 태워 먹은 놈들을 죽였다고 누군가에게 원망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시오? 참 우습군. 언제부터 이 무림이 우습지도 않은 정의를 내세웠소이까?”
“그들이 행한 짓은 분명 벌을 받아 마땅하오만 손속이 지나치셨소. 시체가 단 한 구도 멀쩡하지 못했으니,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유태산은 질끈 눈을 감고 염불을 외웠다.
무림에 발을 들인 지 삼십 년이 지났으나 지금껏 그리 처참한 시신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의 형태조차 찾을 수 없었으며, 그저 피와 살점들이 낭자했다.
시체를 보고 구역질이 터져 나온 것은, 첫 살인을 했을 때를 제외하곤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악인이라 하여도 인간의 도리(道理)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권무존이란 존재는, 그러한 것 따위 조금도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다.
때문에 유태산은 더욱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이 일을 무림맹에 보고할 수밖에 없소. 그대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정도 무림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보오?”
그것은 명백한 협박이다.
신유강이 계속해서 손에 피를 묻힌다면 공적으로 내몰아 그 목을 취하겠다는 말이었기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흠칫 놀라 눈을 치켜떴다.
이유인즉, 신유강은 무관에서 천마존과 대립하면서 수많은 정도인들을 구한 전적이 있고, 그의 수준이 이미 천마존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아 엄청난 피가 흐를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해서 누구도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다. 많은 낭인들과 이름 있는 고수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든 신유강은 정도 무림을 구한 영웅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조금도 신경을 쓰는 기색이 아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유태산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해 보시오.”
“자네…….”
유태산은 아미를 좁혔다.
자신의 힘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무인이나 다 그렇다. 그러나 신유강은 나이의 비해 가진 힘이 크기 때문인지 자만심 또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후회하실지도 모르오.”
“나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오. 그대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오지 않는다면 얌전히 고양이 같은 놈이니 내가 후회할 일 또한 생기지 않지 않겠소?”
신유강의 말은 지극히 타당하다.
지금까지 죽은 이들은 대부분 먼저 시비를 걸어온 이들이었으며, 받아 주지 않으려 하자 칼을 뽑고 덤벼들었다.
지난번도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가고 있는 사천칠도 또한 마찬가지다.
유태산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청성이나 아미에서 흐르는 소문의 의하면 신유강은 이 정도로 흉악한 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만 실례하도록 하겠소.”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인지, 흥미조차 없는 표정으로 등을 돌려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황룡객잔의 점주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쉬이 그에게 불만을 터트리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말싸움까지 하던 사이였지만, 요즘 보이는 신유강의 행동은 섬뜩함을 안겨 주고 있었기에 말을 꺼내는 것마저 조심스러운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장원이 다시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객방으로 올라선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옆방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또한 어떤 감정이 깃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눈빛에 잔잔한 파도가 치는 느낌이다.
애타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느낌, 그러나 곧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머금은 채, 조심스레 옆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진소소가 쥐 죽은 듯 누워 있다.
고열이라도 앓고 있는 것인지 식은땀이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지만 간병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숨이 거칠어지고,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얼굴이 파리해져 있었다. 의원을 불러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도통 관심이 없는 것인지, 진소소의 옆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손으로 뺨을 어루만졌다.
순간, 회귀신공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거칠었던 숨이 안정을 되찾았고, 치솟았던 열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진소소가 작은 신음을 내며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얼마 있지 않아서다. 장원과 객잔을 잃은 충격과 신유강의 행태 때문에 모진 고생을 하고 있는 그녀는, 마음의 병이라도 생긴 것인지 멍한 눈빛이다.
“오셨군요.”
“……고작해야 이 정도로 쓰러지다니, 너답지 않군.”
“사람들은…… 어찌 되었죠?”
“죽였다.”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설령 의원에게 데리고 간다 하더라도 그들의 숨이 끊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그만큼 심각하게 내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거죠?”
“조용히 살기 위함이지. 어영부영 이놈 저놈 살려 주다 보면 귀찮은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지. 나는 조용한 것을 원하지, 시끄러운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조용히 살기 위해 살인을 한다는 우습지도 않은 궤변을 내뱉고 있으나, 진소소는 그것을 굳이 꼬투리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건 그의 삶이지 신유강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와 다르군요.”
“그놈과 나는 같다. 다만 살아온 세월이 다를 뿐이지.”
피식 웃음을 지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순히 진소소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러 온 것뿐, 더 이상 그녀와 대화를 나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유강은……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 않아요.”
등을 돌려 방을 나서려던 도중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진소소를 돌아봤다.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은 물론, 피죽조차 먹지 못한 몰골이 역력하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똑바로 그를 응시하며, ‘너는 신유강이 아니다’ 라는 것을 단호히 말하고 있었다.
“네가 나를 부정한다는 건, 내 과거 속에 있는 네가 알고 있는 신유강 또한 부정하는 것과 같지. 그놈은 나이고, 나는 그놈이니까.”
“…….”
끼이익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나며, 마치 그녀를 압박하는 것처럼 차가운 한기를 발하는 듯했다.
진소소는 저도 모르게 한 차례 몸을 떨었으나, 이내 흐릿했던 눈에 총명함이 돌아오며 앙칼지게 입술을 깨물었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문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틀림없이 그다.
진소소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마저 파악한 듯, 경고 섞인 음성이 다분하다. 때문인지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第八章 호접지몽(胡蝶之夢)
신유강은 높은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익숙한 사천의 풍경 한쪽으로 불타 버린 장원을 새로 짓고 있는 모습이다.
먼 거리인지라 평범한 이들이라면 결코 볼 수 있을 상황이 아니지만, 지금 그에게 있어 그러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시금 시선을 돌려 객잔이 있는 곳을 향했다.
장원과 비교하여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기는 했으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무수히 많은 소문을 들었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더욱더 이가 갈렸다.
“내가 돌아온 것을 느끼고 있나?”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하며 싸늘한 한 줄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한기를 쏟아 내는 듯하였고, 그의 중심으로 거센 바람이 몰아칠 정도다.
“섬뜩한 살기다 인석아.”
그때 돌연 들려오는 소리에 신유강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한편을 바라봤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흑영과 흑호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유강은 전혀 놀라운 표정이 아니다.
이곳으로 들어서면서 이미 그들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청랑과 도우겸이 자리에 없었기에 그것에 대한 의문이 조금 들었을 뿐이다.
“도우겸과 청랑은 어찌하였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