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결국 그녀의 인생은 두 가지인 것이다.
가만히 앉아 신유강을 기다리는 것, 혹은 그를 찾아나서는 것.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나는 것도 용서되지 않는 일이며, 누군가에게 몸을 맡기는 것 또한 허락되지 않는다.
그녀는 신유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 그럼 명령이다 진소소.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허튼소리를 입에 담지 마라.”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반박하려 했던 진소소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돌아가 자거라. 네 인생과 너를 그렇게 만들어 낸 기연고서점을 저주하며 말이다.”
자신의 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소소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등을 돌렸다. 눈가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소소는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기연고서점.
무언가를 대가로 비급을 사고파는 행위가 허용되는 그곳의 값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또한 누구도 강한 것이 아닌, 그녀 스스로 석무자와 기연고서점에 남기 위해 택한 길이니만큼, 누군가를 원망할 사안이 아니다.
신유강은 눈물을 흘리며 사라지는 진소소를 바라보면서도 시큰둥한 표정이다.
여전히 그녀를 꼭두각시 취급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동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다.
“너를 잃은 지 오 년, 그러나 다시 너를 보아도 내게는 너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구나.”
신유강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진소소는, 현재의 진소소가 겪은 것보다 더한 꼴을 당했다.
웃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신유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소소를 사랑했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는 그저 닮은꼴에 지나지 않은 타인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그녀 또한 마찬가지겠지.’
신유강은 실소를 머금으며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이 장원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쾅쾅!
“유강아! 유강아!”
거칠게 장원 문을 두드린다.
상당히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헐떡이는 소리가 확연하게 들려왔으며, 이대로 가만 놔둔다면 틀림없이 문을 부수고라도 들어올 기세다.
신유강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가 있던 곳에서부터 정문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신유강은 정문 앞에 도달에 있었고,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나왔던 당소혜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신 유강이 돌연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까, 깜짝이야…….”
놀라는 당소혜를 무시하며 신유강은 정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을 두드리던 장삼이 신유강의 얼굴을 보고 안심한 것인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급히 입을 열었다.
“큰일 났어! 개…… 객잔이!”
객잔이라는 말에 순간 회귀신공의 힘을 끌어 올린 신유강은, 어느새 눈앞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객잔을 볼 수 있었다.
주위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객잔 점소이들이 물을 퍼다 나르며 불을 급히 끄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타오르는 불길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서 물 더 가지고 와!”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너무 들어가지 말라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고함을 내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신유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객잔을 바라봤다. 타오르는 객잔은 마치 신유강의 인생, 그 자체를 불사르고 있는 느낌이다.
이 객잔은 신유강과 진소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때문에 왠지 모르게 속이 쓰리다.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려 회귀신공의 힘을 끌어 올리려 했던 신유강은, 순간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조심스레 손을 내렸다.
과거 이러한 적이 한 번 있다.
대운상단의 놈이 객잔에 불을 지르고 장삼을 죽였다. 지금 그에게 있어 십 년이 넘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강하게 다르다.
당시에는 누구도 그것을 본 이가 없었으며, 때문에 회귀신공의 힘을 이용해 객잔을 되살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회귀신공을 사용할 수 없으니만큼,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오르는 객잔을 보고 있는 것뿐이다.
허나, 쓰라린 속과는 달리 신유강의 입가에는 웃음이 머금어져 있다.
“이것으로 또 하나, 과거의 인연이 사라졌다.”
과거의 발자취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것은 하늘이 내려 준 새로운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때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이봐! 저기서 연기가……?”
“또 불인가?”
“저, 저건 유강이네 장원 쪽인데?”
콰지직-!
활활 타오르던 객잔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장원이 있는 방향에서도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놀라 신유강을 바라봤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 있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콜록콜록! 언니! 언니!”
당소혜는 인상을 찌푸리며 불길을 뚫고 안으로 들어섰다. 신유강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장원 한쪽에서부터 스멀스멀 연기가 올라오더니, 곧 엄청난 화마가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순식간에 주위의 전각들을 차례차례 집어삼켰다. 워낙 크고 넓은 곳인지라 불길이 번지는 것에도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지만, 바람은 시간의 편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당소혜는 천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고 진소소에게로 향했다. 불길이 치솟았기에 당연히 놀라 밖으로 튀어나왔어야 했을 진소소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윽…….”
사방 자욱하게 불길이 치솟아 마치 몸이 익어 버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벽에 손을 살짝 가져다 댔을 뿐인데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화기가 느껴지자 당소혜는 기겁하며 손을 뗏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빠르게 걸어 나간다.
진소소가 죽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쾅쾅!
“언니!”
어느새 도착한 진소소의 방.
문은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지 굳게 잠겨 있다. 때문에 당소혜는 당장이라도 그 문을 부수려 거세게 발길질을 했다.
콰당-!
내공이 실린 발길질에 허망하게 문이 부서져 나가고, 침상 위에 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진소소가 보였다.
“언니! 뭐하는 거예요! 빨리 나가야 해요!”
당소혜가 어이없는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다가갔다. 불길이 이렇게 치솟아 오르고 있는데, 잠을 자려는 그 행동이 참으로 기가 찰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소소가 원한 결과가 아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네엣?”
너무 어이없는 말에 당소혜는 진소소를 살피려 했지만 그 순간, 쾅쾅! 거리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전각의 한 축이 기울어지는 것이 보였다.
불길에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소혜는 이를 악물며 진소소를 부축했다.
“점혈이라도 된 거에요? 도대체 이 꼴이 뭐에요?”
당장 그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아니지만,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그러나 진소소는 답이 없었고, 당소혜 또한 지금 당장 그 답을 들을 생각이 없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당소혜는 어렵사리 진소소를 부축한 채, 극성의 내공을 끌어 올려 창문이 있는 곳의 벽을 강하게 쳐 냈다.
펑!
일류 고수에 버금가는 그녀의 발길질에 거친 소리가 울리며 벽면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그곳을 향해 몸을 날리자 와르르하고 건물 지붕이 무너져 내렸고, 곧 기둥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는다.
콰쾅-
거대한 전각이 무너지는 소리는 웅장하기 짝이 없다.
사방으로 불꽃이 튀어 오르며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바람까지 강한 탓에 이 불을 끄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그때 돌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나타난 것인지 신유강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타오르는 장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당소혜는 조금도 그의 생각을 읽지 못하며 그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칠 뿐이다.
“누가 장원에 불을 지르고 언니한테 점혈을 했어. 자칫했다간 죽을 뻔했다고!”
“…….”
당소혜의 목소리에 진소소는 매섭게 신유강을 바라봤다. 불길이 치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신유강이 내린 명령 때문이다.
영혼이 속박되어 있는 것처럼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만약 당소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불길에 몸이 익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일체 도망을 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대로 있었다면 그 안타까운 삶에 종지부를 찍었을 텐데……. 어찌 보면 참 안쓰러운 일이군.”
“뭐…… 뭐?!”
신유강의 말에 반응한 것은 진소소가 아닌 당소혜다. 그녀는 방금 들었던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윙윙거리는 느낌이다.
정말로 방금 그 말이 신유강의 입에서 나왔단 말인가?
당소혜는 힐끗 시선을 돌려 진소소를 바라봤다. 분명 사람인 이상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떠한 말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듯 가만히 있을 뿐이다.
더욱이 몸 또한 아직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만 움직여라. 보기 흉하다.”
마치 명령과도 같은 한 마디에 진소소의 몸이 움찔 떨었다. 이윽고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스르륵 주저앉았는데, 만약 당소혜가 힘을 주어 붙잡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바닥에 엎어졌을 것이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당소혜는 지금 이 상황을 어이없이 지켜본 후, 신유강을 매섭게 쏘아보며 물었다. 아직까지 장원이 활활 타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불길이 그들을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신유강과 진소소, 그리고 당소혜의 모습은 참으로 이질적이다.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만?”
뻔뻔하기 짝이 없는 낯짝으로 신유강은 그리 말한다. 애초에 그에게 있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진소소는 있어 봐야 짐짝이며, 죽는다 해도 하등 상관이 없는 인간인 셈이다.
여자라면 무수히 많다.
권무존이라는 별호를 얻은 그였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품지 못할 여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소혜의 입장은 다르다.
그녀는 앙칼지게 신유강을 노려본 후 매섭게 손을 휘둘렀다.
뺨을 때리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소혜의 손은 어김없이 허공을 갈랐다.
“네 수준으로 나를 때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익!”
“소혜야, 그만둬.”
다시 한 번 신유강을 향해 손을 뻗으려던 당소혜가 들려오는 진소소의 말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파리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 이런 곳에 놔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니, 일단 우리 집으로 가요.”
장원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다시 짓는다 하더라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동안 머물 곳이 없을 것은 당연하다.
콰르르-!
또다시 전각이 무너지며 시뻘건 불꽃이 튀어올랐다.
당소혜는 몸을 움찔하며 겁을 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내 입을 꾹 다물고 진소소를 부축하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그녀는 멈춰서야 했다.
“나는 되었으니 소혜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 봐.”
“언니!”
“내가 없으면 유강이 혼자 남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