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78화 (178/200)

# 178

청랑의 말마따마 사마강은 의외로 긍정적인 모양이다. 앞뒤가 꽉꽉 막혀 있는 이 상황에서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는 고작해야 그것뿐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이 어디기에 하남과 가깝다는 겁니까?”

그때 신유강은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물었다. 사천에서 일이 있은 후,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못해도 사나흘 정도라 생각했다.

그러나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곳은 사천이 아닌, 전혀 다른 지방인 것 같지 않은가.

“그렇군. 말하지 않았나? 이곳은 섬서라네.”

“섬, 섬서?”

“그래, 네놈은 거진 한 달 보름 가까이 누워 있었지. 그리고 우리가 있는 여기는 섬서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산이지.”

사마강은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었다.

아마도 신유강이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에 상당한 재미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설마 화산이라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그래, 이곳은 화산이네. 상당히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지.”

신유강은 어처구니없는 눈빛으로 사마강을 바라봤다. 이 오두막이 흑영이 사용하고 있던 은신처라는 사실은 이미 들었기에 어느 정도 납득하고는 있었지만 설마하니 화산, 그것도 마교에게 있어 적진이나 다름없는 곳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곳에 안가를…….”

“화산을 치기 위함이었지.”

“화산을?”

사마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안가는 흑영대가 사용하는 곳이다. 다만 어째서 화산파와 이리 가까운 곳에 만들었냐 묻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흑영대를 이용해 화산을 치기 위함이었다.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으며,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얼마든지 화산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곳이니만큼 최고의 장소라 할 수 있다.

“화산파에서 이곳을 모른다는 게 참 우습군요.”

“사람은 본디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법이지. 물론 늙은이들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다만…….”

사마강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화산의 늙은이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십 년이 넘게 방치되어 있는 이곳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흑영과 흑호에게 누군가 진법을 뚫고 들어왔었던 흔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틀림없이 조사를 나온 것일 터.

그러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데다 중요한 물건 또한 없으니, 단순히 화산에서 혹여 있을지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안가로 사용할 작정이었던 것인지 그냥 내버려 둔 모양이다.

다만 지금은 다르다.

며칠 동안 인기척이 느껴지니만큼, 화산의 늙은이들 또한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흑영.”

“부르셨습니까.”

스르륵-!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흑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정을 완벽하게 죽인 그의 모습은, 마치 과거의 그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때문에 신유강은 사뭇 놀란 모습이다.

“누군가 찾아오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손님 맞을 준비를 하거라.”

“존명!”

순식간에 흑영이 사라지자 곳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청랑마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 듯하다.

신유강은 최대한 감각을 느껴 보려 애를 썼다.

하다못해 기감이라도 되살리기 위함이다. 그러나 아무리 느끼려 해도 지금 그의 상태로는 고작해야 지근거리에 있는 자의 기척밖이 느낄 수 없다.

“……누가 왔습니까?”

“화산의 늙은이들이겠지. 쥐새끼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껄껄!”

“호랑이겠지요.”

“지금의 네놈한테는 호랑이겠다만……. 과거의 네놈한테 저 늙은이들이 호랑이라 느껴졌을 것 같으냐?”

사마강의 질문에 신유강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회귀신공과 회천공, 선선운현무를 가지고 있었을 때 신유강에게 있어 구파일방은, 설마 소림이라 하더라도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사마강의 말마따마 쥐새끼 취급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자, 그럼 상황을 지켜보다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움직여야겠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사마강은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하긴 이렇게 직접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마치 혈기왕성했을 당시가 떠오르는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 오를 정도다.

아직도 그에게 있어 무림은 가슴 벅찬 곳이다.

“어쩌시렵니까?”

“늙은이들이 낌새를 차렸다면 입을 다물게 해야지. 물론 화산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을 테지만 말이네.”

말인즉슨, 화산과 싸움이 난다면 아예 화산파라는 곳을 지워 버릴 심산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사마강에게 있어 그러한 것은 아주 당연할 터.

애초에 그를 막을 수 있는 무림인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꼭 화산을 무너트려야 하는 겁니까?”

“쯧쯧, 아직도 뭘 모르는구나 네놈은. 이곳에서 화산과 싸움이 난다면 어찌 되겠느냐?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우리를 쫓기 위해 몰려드는 자들이 생길 테지.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무림맹이 움직이게 되고, 그놈의 귀에마저 들어가겠지.”

“이곳에서 화산을 무너트려도 같은 소리가 들릴 겁니다.”

“껄껄, 그때라면 우린 이미 섬서를 벗어나 하남에 있을 테니 상관없지 않으냐. 남김없이 죽여 버리고 문을 닫아 놓으면 누가 알겠느냐? 최소 보름은 버티겠지.”

신유강은 사마강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독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第二章 재회(再會)

검을 뻗어 빠르게 움직인다.

명검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운 그 검날은, 일곱 방향으로 움직이며 번뜩이는 섬광(閃光)을 만들어 냈다.

사사사사!

우스스 쏟아지는 꽃잎들이 두 조각이 되어 흩날렸다.

마치 꽃잎을 검에 담은 듯, 뻗어지는 검날은 아름답게 곡선을 그려 내며 허공에서 춤을 춘다.

화사하기 짝이 없는 궁장을 입은 진소소의 움직임 또한 예사롭지 않다. 무언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떨쳐 내기 위함인지, 앙칼지게 입을 다문 채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은 언뜻 필사적으로 보일 정도다.

지난번 사천무관에서 일이 벌어진 후로부터 벌써 두 달.

무관은 철거되었고, 무림맹은 하남으로 철수했다.

단순히 어린 후학들과 정도 무림맹의 영향을 넓히기 위해 세워 두었던 무관이라고는 하지만, 연이어 터진 일에 마치 사천을 버린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진소소에게 있어 그러한 것은 아무래도 좋다.

애당초 그녀와 무림맹이 어떠한 접점이 있는 것이 아니였으니만큼, 그들이 철수한다 해도 하등 손해 볼 일이 없었던 탓이다.

다만 지금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신유강이다.

하루에도 수차례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표정과 목소리,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낯선 그 느낌이 거부감을 주고 있었다.

지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신유강의 눈빛에는 과거와 같은 애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인형을 바라보는 무덤덤한 눈빛에 소름마저 돋을 지경이다.

진소소는 더욱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누군가 그녀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

청랑과 흑영, 흑호, 그리고 도우겸마저 없는 이 장원은 너무나도 휑한 느낌이다.

마치 그녀의 마음 한구석과도 같다.

때문에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함인지 더욱더 빠르게, 세차게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털어 내고 있었다.

몸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입고 있는 옷마저 달라붙어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연무하고 있었는지, 그 시간의 감각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스르릉-!

“후우…….”

납검(納劍)하며 숨을 가다듬은 진소소는 연무장 한편에 주저앉아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 달 전, 신유강이 천마존과 싸운 뒤 상처 하나 없이 되돌아왔을 때부터 느끼고 있는 이 기묘한 감각.

그것을 확실시하지 않는다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무슨 수로?

사람이 달라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 신유강이 달라진 것 또한 천마존과 싸움에서 느낀 것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 낯선 감정 또한 점차 시간이 지나간다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왜 이리 마음이 불안한 것일까.

무언가를 잊은 느낌.

아주 중요한 것을 떨쳐 내어 버릴 것 같은 기묘한 감각.

때문에 진소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 없다.

“이런 곳에서 연무를 하고 있었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돌연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소소는 흠칫 어깨를 떨며 조심스레 시선을 돌려 보았다.

그곳에는 신유강이 만연하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눈빛 때문인지 진소소는 섬뜩함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함부로 말을 해선 안 된다.

왠지 모르게 그러한 느낌이 전해 들고 있다.

“네, 그래요. 요즘 도통 몸을 움직이지 못했으니까요.”

“하긴, 요즘 이 사천이 조금 따분하기는 하오.”

신유강은 자연스럽게 진소소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지라 진소소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여 거리를 벌리려 하였는데, 그때 마침 신유강의 손이 자연스레 움직이며 그녀의 허리를 잡아 끌었다.

“땀이 많이 났어요. 놓아 주세요.”

“그런 것 신경 쓰지 않으니 괜찮소.”

“내가 신경이 쓰여요.”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신유강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으나, 어느새 입가에 웃음을 되찾았다. 아마도 진소소의 이런 모습이 사뭇 귀엽게 보였던 모양이다.

“매일 그렇게 연무에만 빠져 있는 이유라도 있소?”

“아까도 말했잖아요 단순히 몸을 움직이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진소소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서며 신유강과 거리를 벌렸다.

딱히 어떠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마음속에서 그를 가까이하지 말라며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진소소는 내색하지 않지만 심란하기 짝이 없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의 신유강은, 무언가 씁쓸함을 홀로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달래 주어야 함이 마땅하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진소소는 고운 아미를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그보다 청랑이나 다른 사람들은 찾아보았나요? 벌써 두 달이나 흘렀는데…….”

“하오문을 통해 이곳저곳 알아보고는 있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들이라면 괜찮겠지.”

신유강의 눈동자는 그 어떤 움직임조차 없다. 그것은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기에, 진소소는 별다른 의심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신유강의 말을 믿는 눈치가 역력하다.

애초에 그녀가 신유강의 거짓말을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눈동자의 떨림이었기에, 그것이 움직이지 않으니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여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아, 정말 다들 어떻게 된 건지……. 요즘 들어 주위가 이상해요. 유강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그런 불안감이 들어요.”

“큰일이라니?”

“잘 모르겠어요. 단순한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진소소는 그리 말하며 슬그머니 등을 돌렸다.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딛었던 그녀는, 돌연 무언가 생각이라도 났다는 듯 시선을 돌려 신유강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 말했던 것 말이에요.”

“몇 달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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