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신유강에게 안쓰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마강은 굳이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애써 감추다 좌절을 주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터트려 놓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게끔 하는 편이 더 좋다 여겼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문제인 것은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유강의 몸은 이미 고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여길 만큼 부서지고 망가진 상태다.
물론 회귀신공이 없어지면서 내공을 되돌리는 기이한 현상이 사라졌으니만큼, 사마강의 힘이라면 환골탈태를 시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도 있을 터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전신 기맥이 걸레짝처럼 되어 버린 신유강이니만큼, 섣부르게 내공을 불어넣었다간 신체가 터져 나갈지도 모른다.
때문에 사마강은 굳이 그런 위험한 것을 시도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 정도입니까?”
“절망적인 상황이지. 네놈이 다시금 회귀신공을 익힌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과거의 힘을 되찾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기적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말 같군요.”
떨떠름한 없는 말에 사마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죽어 백골이 되어 버린 화타가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신유강의 상세를 본다면 고개를 저을 정도다.
때문에 기적조차 일어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당사자에게 있어 꽤나 독한 말임이 분명하나, 신유강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애초에 기적 따위 바라지 않는 사람처럼, 그러나 그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
사마강은 웃었다.
그렇지.
이놈은 이런 놈이다.
뒤에서 흉계 따위 꾸미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오르는 놈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알려 주십시오.”
“뭔가?”
“……소소는 어찌하고 있습니까?”
“무언가 느끼고 있는 것이 있는지, 그놈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더구나. 그러나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 애초에 그놈이 신유강, 네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스렸다.
진소소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다른 잡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모두 떨쳐 버리려는 것처럼 고개를 세차게 휘저으며 사마강을 바라봤다.
“그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강해져라. 과거 네놈보다 몇 배 이상……. 물론 그것보다 더 쉬운 방법 또한 있다.”
사마강의 말에 신유강은 시선을 떨구었다.
듣지 않아도 안다.
그저 죽이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임이 분명한데, 아직까지도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제가 죽는 것 말입니까?”
“그놈에게 있어 네놈은 과거, 그러나 과거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 너와 그놈은 분명 다르나 한 몸……. 미래의 그놈은 모르겠지만, 과거의 네놈이 죽는다면 그놈 또한 무사하지 못할 테지.”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사마강에게 신유강을 구속하라 했고, 그 야산에서도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다. 지금의 신유강이 죽는다면 그 또한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 제일 간단한 방법은 내가 죽는다는 것이로군요.”
신유강은 어이없이 웃음을 지었다.
죽는다?
누가?
세상에 단 하나뿐이 없는 진소소를 내버려두고 쉽게 목숨을 버릴 만큼 신유강은 독하지 못하다. 더욱이 그놈에게 당한 것을 갚아 주기 전까지는, 설사 죽는 상황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래, 하지만 그런 것은 재미가 없지……. 예전이라면 소동을 찾아 고쳐 달라 했을 테지만…….”
“농담하십니까?”
사마강은 답지 않게 실실 웃으며 농담을 했다. 이미 소동이 신유강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를 놀리려 한 말 같기도 하다.
때문인지 신유강은 검미를 찌푸렸으나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따로 반박하지는 않았다.
“……소동은 모르겠지만 그와 버금가는 의술을 지닌 이는 한 분 계십니다.”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청랑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리기 시작하자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한 마디다.
그러나 그 파급력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크다.
신유강은 물론이며 사마강마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청랑을 바라봤다.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좀처럼 표정이 바뀌지 않는 청랑의 얼굴에 난감함이 깃들 정도다.
“그런 자가 있다는 소리는 내 들은 적이 없는데…….네가 어찌 알고 있는 것이냐?”
“……하오문의 정보력은 마교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마존.”
“허허, 고작해야 삼류 쓰레기들이 모인 곳이 마교보다 우위라……. 조금 과장된 것은 아닌가?”
천하의 정보를 쥐락펴락하는 곳은 개방이다. 그와 비교되는 것이 하오문이기는 하나, 마교 또한 못지않은 정보량을 자랑한다.
때문에 하오문이 아는 것을 마교가 모를 리가 없으니만큼, 지금 청랑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저 하오문에서 자란 철없는 계집이 입에 담는 헛소리라 치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랑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홍 루주께서 보았던 기밀 정보를 살짝 엿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소동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할 무렵이라 생각됩니다만…….”
청랑은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하오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소동을 확보하고 싶었다. 특히 홍 루주의 입장에선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으니만큼 그것에 더욱 파고들었던 것이다.
의술에 뛰어난 가문과 사람들의 정보를 있는 대로 끄집어내었고, 그것을 추리고 추려 하나하나 확인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한 장의 문서를 청랑이 본 것이다.
“호오, 그래 누구를 말하는 거지?”
“……과거의 이름이라 아직까지 살아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거 참 대단하군.”
붕대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유강은 틀림없이 삐딱한 표정을 짓고 있을 터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뭘 하자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이백여 년 전 나타난 여인입니다. 의선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의술을 지니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름은 확실히…… 은하련이라고…….”
사마강은 물론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애초에 잠깐 드러났을 뿐인 이름이었고, 금방 세간의 이목이 다른 곳으로 쏠려 사라졌으니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알고 계십니까?”
“아니, 들어 본 적이 없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이가 있단 말인가?”
사마강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오문의 정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신유강의 상태를 고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다. 아무리 의선이라 불린 이가 있더라도 말이다.
“대대로 그 후손들이 의술을 익혔을 거라 판단됩니다……. 세간에 드러나지 않은 것은 워낙 특수한 이들이기 때문이겠지요.”
청랑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을 정리했다.
의선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의술을 지닌 가문,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란 말이냐?”
“제 생각일 뿐입니다.”
“해서,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하남…… 주가장(珠家莊)”
* * *
“최근 이곳저곳 시끄럽군.”
거대한 장원,
주위는 마치 무릉도원을 보는 것처럼 화려했으며, 옅은 안개가 끼어 있는 탓에 왠지 모를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한 남자가 그곳 전각에 누워 길게 하품을 내뱉었다.
인생이 지루한 것인지, 혹은 하릴없이 뒹굴고 있는 것이 따분한지, 참으로 태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때 그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왔다.
쇄에에엑!
바람을 가르는 소리부터가 섬뜩하기 짝이 없다.
명백한 살기(殺氣)를 머금고 있는 그것은 정확히 남자의 미간을 관통할 것만 같았다. 섬광처럼 빨라 막아 낼 수 있는 이는 없을 것 같았지만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가 가볍게 손을 휘젓는 것으로, 그 붉은빛 섬광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유선? 그런 곳에서 놀지 말고 일이라도 좀 하는 게 어때?”
그 섬광이 날아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옅게 끼인 안개 사이로 한 여인이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의 주위로는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불들이 몇 개 떠 있었고, 아홉 개나 되는 꼬리가 움직이니, 저것은 틀림없이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구미호가 분명하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일이라 해 봐야 장작이나 패는 것뿐이니, 가끔은 이렇게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은걸?”
유선이라 불린 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쾌활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은 마치 신선놀음이라도 하고 있는 이처럼 보였기에, 여인은 고운 한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심심하면 고서점이나 다시 여는 게 어때?”
“대대손손(代代孫孫) 내려온다고는 하지만, 손님도 없는 고서점 따위 있으나마나 한 것이지.”
“……죽고 싶어?”
“아니, 그렇게 살기를 뿜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잖아?”
“호호호, 주유선. 고서점은 무림이 시작될 때부터 우리가 관리해 온 곳이야. 우리는 그곳을 열어 무공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고, 그들은 우리에게 그보다 더 진보한 무공을 바쳤지. 이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여인은 주유선이 누워 있는 툇마루에 탁! 하고 거칠게 손을 올려놓았다.
거칠다고는 하지만 가녀린 여인의 손임이 분명한데, 일순 앉아 있던 그곳에서 살벌한 기파가 전해 들자, 유선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퍼퍽!
툇마루가 삽시간에 부서져 나갔다.
만약 그 자리에 계속 누워 있었다면 몸이 가루가 되었을 것이 분명한 수법.
주유선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만하지?”
“아니, 계속해야겠어! 그래, 고서점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 하지만!”
쩌저저적!
여인의 기세는 매섭기 짝이 없다.
주위를 뒤덮는 힘! 설령 사마강이라 하더라도 쉬이 막아 내지 못할 기세가 여지없이 흐르고 있었다. 때문에 주유선은 더욱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와의 거리를 벌려야 했다.
“우리 애는 어쩔 거냐고!”
펑펑펑!
* * *
“하남의 주가장?”
신유강 또한 들어 보지 못한 곳은 아니다.
어린 시절 하남에 살면서 그곳을 얼마나 우러러보았던가?
애초부터 가진 것이 많은 곳인데다 상권마저 휘어잡고 있으니,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곳이 바로 주가장이다.
더욱이 명가(名家) 중 명가(名家)
팔대세가이니 뭐니 사람들이 무가(武家)로서 그들을 칭송하지만, 모두 주가장의 권력 앞에서는 송사리나 다름이 없는 이들이다.
“명문 중 명문이라 불리는 곳이지. 내 귀에 들어올 정도로 말이다.”
사마강 또한 그곳에 대한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던 탓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정말로 그곳에 의선이라 불리는 은하련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교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은 채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더욱이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이제는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청랑 역시 확신을 가지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만큼 오래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약 그곳에 의선이 머물고 있었다면 그 기술이 대대손손 내려오는 건 당연한 이치이지 않을까.
“흐음……. 확실히 그렇군. 하남이라면 이곳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