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第一章 인생몰락(人生沒落)
“끄아아악!”
신유강은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몸을 지탱하려 했던 그였으나, 기이하게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넘어갔다.
풀썩!
“끄으윽…….”
신음을 흘리며 재차 침상에 몸을 눕힌 신유강은, 곳곳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꿈이 아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모든 장면이, 이 절망같은 현실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신유강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애를 썼다. 두 팔목으로 바닥을 지탱하고, 힘겹게 침상 끝에 몸을 기대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낯선 장소다.
잘 만들어 놓은 오두막이라는 느낌. 신유강 이외에도 사람이 살고는 있는 것인지, 곳곳에는 옷가지들이 널려 있다.
한 사람이 아닌 듯하다.
신유강은 힐끗 눈을 돌렸다.
그러나 주위에 보이는 이들은 없다. 기감을 넓혀 주위를 확인하려 해 보았지만, 기이하게도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 하하…….”
아니, 그게 아니다.
애초에 기척을 느낄 수가 없다.
단전을 움직여 보지만, 회귀신공의 기운이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때문에 본디 무인으로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오감이 깔끔하게 사라져 그저 평범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신유강은 마른침을 삼키며 두 손을 들었다.
힘줄이 끊어진 탓에 손은 축 늘어나 있으나, 힘겹게 그것을 들어 올리며 억지로 얼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
피부가 와 닿지 않는다.
붕대를 감아 놓은 듯한 그 감촉에 신유강은 너무 놀라 허탈한 표정마저 지었다. 누군가 붕대로 얼굴을 가려 놓은 것이 분명하였기에, 긴장하고 있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것을 풀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여 보려 하지만 그것마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탓에 붕대를 풀어 헤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신유강은 아미를 좁혔다.
“빌어먹을…….”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욕뿐이 없다.
어째서 이런 일이 되어 버렸는지, 혹은 이런 일을 겪는 것이 왜 자신이어야 하는지.
사람이 가지기에 너무나 큰 힘을 손에 넣은 벌이라는 것인가?
신유강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풀어 헤쳐지지 않는 붕대 속은 보지 않아도 안다. 아마도 얼굴의 형태조차 남지 않았을 정도로 처참하게 변해 있겠지.
다리의 힘줄마저 잘려 나간 덕분에 걷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앉아 있는 침상을 바라봤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침상, 과거 천운객잔에서 더부살이를 했을 때보다는 나은 모양새이긴 하나 그렇다고 좋은 물건은 아니다.
어쩌면 평생토록 이 침상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차라리 천마존이나 혹은 믿고 있던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한다면, 자신이 쌓은 업보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꼴을 만든 이가 본인이라면?
똑같이 생긴 얼굴, 똑같은 눈동자, 같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하며 거침없이 힘줄과 얼굴을 그어 버리는 그 모습은, 머릿속에서 쉬이 지워질 것 같지가 않다.
그때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들어온 이는 눈을 뜬 신유강이 자못 놀라웠는지 한 차례 흠칫 몸을 떨었으나 이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의외로 멀쩡하군요.”
신유강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안다.
시선을 돌릴 필요조차 없이,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에 그 역시 덤덤하게 내뱉었다.
“나를 구한 게 너였나?”
“예, 물론이에요. 제가 아니었다면 장주는 지금쯤 익사했던가, 아니면 마교인들의 손에 붙잡혔을 겁니다.”
청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무감각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가 신유강을 발견했을 당시, 상황은 말로 설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심장은 당장이라도 멈출 듯 미약하게 뛰고 있었고, 칼에 베인 상태에서 물에 빠진 탓인지 전신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소위 반시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란 소리다.
“소소 언니에게 받아 놓았던 선기단이 없었다면 아마 죽었을 겁니다.”
“……소소는 어찌 되었지?”
“잘 있습니다. 장주의 일을 알리기 위해 찾아가려 했지만 이미 그곳에는 전혀 다른 장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장원 근처에도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다른 나라…….”
“…….”
청랑은 지난번 일을 회상하며 몸을 떨었다.
피폐하게 변해 버린 신유강의 일을 진소소에게 알리기 위해 사천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진소소는 물론 당소혜조차 만나지 못했다.
객잔이나 장원, 그녀들이 있을 법한 곳에서 강한 살기가 느껴졌고,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신유강과 똑 닮아 있는 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마치 조금이라도 접근한다면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라고 경고하는 듯, 온몸이 찌릿찌릿해지는 살기를 내뿜었다.
흑영은 물론이며 흑호, 그리고 도우겸마저 사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지는 않겠습니다.”
“…….”
“지금은 이곳에서 몸을 추스르는 것만을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곧 다른 사람들이 돌아올 테니 그들과 상의를 하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만…….”
“아니, 괜찮다.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이지?”
“흑호, 흑영, 그리고 도 공자와…… 천마존…….”
천마존이라는 말에 신유강은 신음을 삼켰다.
사마강이 신유강을 찾아내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장원에서 흑영과 흑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만큼, 신유강을 추격하는 것보다 그들을 추격하는 것이 맞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흔적을 지우는 것에 있어선 최고라 할 수 있었던 흑영대이니만큼 그 꼬리를 밟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사마강은 그것을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흑영이라면 신유강은 필시 천마존, 즉, 자신의 손에서 숨기려 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곳은 장소라 할 수 있는데, 가장 안전하고 다른 이들에게 걸리지 않는 곳이라 한다면 이미 해체되어 사라진 흑영대의 안가 중 한 곳일 터.
하여 사마강은 신강에 연통을 넣어 과거 흑영대였던 이들을 잡아 족쳤고, 결국 그 안가를 샅샅이 뒤져 신유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굳이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
“두려우냐?”
사마강과 신유강, 둘뿐이 없는 오두막에 천하를 오시하는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그 어떤 동정조차 내비치지 않는 투로, 그러나 눈빛만큼은 자애롭기 짝이 없다.
“두렵다라…….”
“…….”
“아십니까?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저는 도망칠 수 없습니다.”
얼굴 전체가 붕대로 감싸져 있어 신유강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명백한 두려움과 공포가 심어져 있다는 사실을, 사마강은 느낄 수 있었다.
“하긴, 회귀신공을 이용한다면 네놈을 잡아내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지.”
신유강은 누구보다 회귀신공의 힘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신유강을 언제든지 잡아낼 수 있다는 사실마저 잘 알고 있다. 회공을 이용하여 신유강이 호야를 잡아낸 것처럼, 같은 수법을 사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귀신공이라 해도 만능은 아니다. 네놈도 잘 알고 있지 않으냐.”
“…….”
거리의 문제다.
그가 아무리 회공을 시전한다 하더라도 감각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면 잡아낼 수가 없다. 한데 그 역량마저 닿지 않는 곳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신유강은 그의 힘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안다.
눈앞에 있는 천마존과 승부하여 쉬이 그를 꺾을 정도이니, 사천을 완벽하게 벗어났다 하더라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신유강은 그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온몸이 오싹해진다.
“……어째서 그놈과 손을 잡으셨습니까?”
“단순히 회천공을 보기 위함이었지.”
“만족하셨습니까?”
말투가 곱지 않다.
애초에 사마강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를 벗어났던가 혹은, 죽을힘을 다해 그놈과 결착을 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족……. 만족이라……. 허허, 그것이 만족이라는 말로 설명이 될 것이라 생각하느냐? 자연을 느끼는 듯하더니 곧 천지가 뒤집혔다. 공(攻)은 공(攻)인데 마치 그것이 아닌 듯한 느낌……. 과거 천마의 기억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그러한 것을 보았느니라.”
사마강은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눈을 빛냈다.
천마신공보다 우위에 선 무공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믿었다.
설령 회천공이 다시금 세상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마저 꺾고 정상을 지킬 것이라 생각하며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그 망상은 너무나도 쉽게 깨어졌다.
회귀신공을 이용한 회천공.
자유자재로 시간을 되돌리고, 천지마저 뒤집어엎어 버리는 그 기세에, 사마강은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천마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회천공은 조금 더 무섭고 압도적이었으며, 마치 원한다면 천지를 뒤집어 놓고 그것을 다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회귀신공을 이용한 회천공을 완벽하게 익히고 있으며 단련한 그는 틀림없이 사마강조차 어찌할 수 없는 고수임이 분명하나, 사마강은 그에게 무인의 기백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눈앞에 있는 신유강에게 더욱 투지가 일어난다.
사천에서 벌인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승부 속에서, 그와 비무를 했을 때보다 더욱 즐겁고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때문에 사마강은 그와 신유강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래, 이제 네놈은 어찌할 생각이냐.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꼴로 말이다.”
잔인한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그러나 괜히 신유강을 위한다며 말을 돌리는 것보다, 때로는 직설적인 말이 더욱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신유강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놈을……. 죽일 것입니다.”
“그 꼴로 말이더냐?”
“움직일 수 없다면 억지로 움직일 것이고, 힘이 없다면 억지로라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본래 가지고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기 위함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지금은 이렇게 주저앉아 있지만,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신유강은 어렸을 때부터 진소소를 만나기 전까지 몇 번이나 좌절을 겪었고, 그럴 때마다 맨손으로 절벽을 기어오르듯 일어났다.
때문에 그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그리 쉽게 기가 죽지 않는 것이다.
“좋은 패기다. 그러나 실현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부정적이다, 인석아. 네놈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어. 회귀신공을 무리하게 뽑아낸 탓에 기혈이 전부 뒤틀려 있는 데다, 단전마저 부서진 탓에 일반적인 내공조차 익히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