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소소가 진가의 사람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 그리 모질게 대해 놓고, 지금 와서 그녀를 가지고 이득을 보려 하는 것이 장난질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호호, 신 대협.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요. 소소에게 모질게 대하다니요. 저는 그 아이를 단 한 번이라도 타인이라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파캉-!
순간 일어난 살심에 신유강이 만지고 있던 술잔이 여지없이 깨어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말을 하던 추란이 굳게 입을 다물었고, 퍼져 가는 살기에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을 삼킬 정도다.
그것은 칠제라 불리는 무현이나 청허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신유강이란 존재는, 불과 몇 달 전에 보았던 그 인간이 결코 아님을 시시각각 증명시켜 주고 있었다.
진명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무인이 성장한다는 것은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구파일방 팔대세가라 불리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중원 전체 무인 수에 비하면 새 발에 피와도 같은데, 아직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다른 이들보다 벽을 뛰어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기가 오래 걸릴 뿐이다.
반면 지금 신유강은 얼마 전 보았을 때 보다더욱 성장했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오고 있었다. 그사이 어떠한 기연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세만으로도 능히 십대고수인 그와 견줄 만하다.
‘더 숨은 것이 있겠지.’
그러나 진명은 신유강을 낮게 보지 않는다.
그것을 증명시켜 주듯, 칠제라 불리는 무현과 청허의 안색이 좋지 않다. 틀림없이 신유강의 기세에 한순간이긴 하나 겁을 집어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살기를 피운단 말이냐!”
소리를 내지른 것은 다름 아닌 무현이다.
신유강이 뿜어낸 기세에 움츠러들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함인지, 고함을 내지르며 강한 기세를 끌어 올렸다.
덕분에 주위는 그야말로 살벌하기 짝이 없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신유강의 기세와 맞부딪힌 무현의 기세 때문인지, 주변은 마치 차가운 한기라도 스며든 듯 오한이 들었다.
“그만들 하시게. 서로 오해가 조금 있는 것 같은데, 이런 곳에서 생사투라도 벌일 심산인가?”
“생사투라니? 자네는 내가 저 권룡과 같은 위치에 있다 생각하는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네만…….”
어느 누가봐도 칠제의 이름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끊임없이 주위를 압박하고 있는 신유강의 기세 또한 만만치 않다.
고작해야 기세가 이 정도인데 그 실력을 말해 무엇하랴.
어떠한 고수에게 사사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청허가 보기엔 자칫, 칠제마저 씹어 먹을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천하의 권룡이라는 분께서 아녀자의 한마디에 살기를 흘리시다니…… 아직 대협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것 같네요 호호.”
추란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진명 때문에 기가 살았으며, 무림맹주인 무현마저 도울 듯 나서니 그야말로 지금 이 판이 그녀를 위해 짜여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곁에 있는 진자명도 웃는다.
“이보시게, 진명. 확실히 말해 보시게. 소소라는 아이가 우리와 혼약을 맺었는가? 아닌가?”
팽자웅 또한 이 시기를 놓칠 생각이 없는지, 진명을 다그치며 물었다. 하북진가는 물론이며 팽가의 이익이 되는 것은, 진소소가 팽호언과 혼인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답은 전혀 뜻하지 않은 것이었다.
“……잘 모르겠네. 나는 그 아이가 원하는 길을 걸었으면 하는군.”
“자네!”
팽자웅은 물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추란의 얼굴마저 핼쑥하게 변한다.
비등한 세가의 혼인이 아닌, 어느 한쪽이 기울어져 버리는 혼인이다. 그것도 상대가 권룡이라 불릴 정도의 인물이라면, 진자명을 지지하고 있었던 이들이 등을 돌릴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다.
결국 소가주의 위치가 위태로워진다는 소리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나타난 진소소 때문에 말들이 많다. 더욱이 떠오르는 고수인 권룡과 맺어진다는 소문 때문에, 진자명과 권룡을 비교하는 이들이 많아 안팍이 시끄러울 정도다.
하북진가의 특성상, 가주의 명령이 절대적이니만큼, 진자명이 가주에 오르기만 한다면, 진가의 힘을 그녀의 손안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결코 진소소가 진자명의 위치를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추란은 앙칼지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거늘.’
추란은 지난 날을 떠올리며 깊은 후회를 했다.
어째서 그 어린아이를 그냥 보냈던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저 죽어 가는 와중에 자신의 그 처량함을 떠올리며 가라는 그녀만의 배려 아닌 배려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비수가 되어 돌아온 셈이다.
“그럼 팽가와 진가의 혼약을 없었던 일로 돌리겠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네. 나는 하북진가의 사람, 그게 무슨 말인지 아는가?”
팽자웅은 희미하게 웃는 진명을 바라보며 치를 떨었다. 말을 내뱉지는 않지만, 명백히 강자를 받겠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좋네! 그럼 어찌할 심산인가?”
“무림의 생계는 예로부터 결코 변함이 없네. 강한 자만이 모든 것을 취한다.”
진명은 주위에 있는 이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들이 강했기에 다른 무인들을 누르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호호, 재미있네요. 그럼 비무초친이라도 할 심산인가요?”
백리지연이 상당한 흥미를 발하며 진명을 바라봤다.
말인즉 강한 자가 진소소를 얻으면 된다는 뜻이었기에, 결국 팽가와 신유강을 붙이기로 마음을 먹은 듯하다.
더욱이 비무라는 말에 곳곳에서 눈을 빛내는 이들이 있다.
진가가 팽가와 붙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자들이었으며, 그들은 진명이 입을 열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빛이 역력하다.
“비무초친이라…… 재미있군. 그러고 보니 신유강 자네, 여기저기 적을 만들었다지? 이 기회에 그것을 청산할 겸 해 볼 텐가?”
의견을 구하는 듯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의견이 아닌 명령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 진명은 신유강에게 통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진소소를 얻으려 한다면 그만한 능력을 보여라.
그리고,
“저기 있는 진가의 형제 세 분이 나온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유강의 말에 진명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진가의 입장에서도 자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을 해 보고 싶으니 말일세.”
추란은 앙칼지게 입술을 깨물며 작게 이를 갈았다.
그녀의 눈빛은 생전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던 진명을 향해 가 있었고, 활활 타오르는 눈빛은 그야말로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하다.
“그거 참 재미있군요. 권룡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니요 호호.”
말은 그리하나 속은 울분이 치솟는다.
이번 일, 자칫하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더욱이 신유강이 그녀의 아들들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은, 그야말로 살벌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다.
추란은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까지 하북진가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으니만큼, 그녀의 곁을 지키는 무사 또한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권룡이 우승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럼 결정된 것 같군. 나가도록 하세.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면 충분할 것 같으니…….”
第七章 급습(急襲)
비무초친(比武招親)이라 함은 실력 있는 남자를 신랑으로 맞기 위해 빈번히 일어났던 일 중 하나다.
다만 그것은 중소문파나 세가 정도로 국한되어 있는데, 이유인즉, 팔대세가는 그러한 것을 하지 않아도 실력 있는 이를 맞이하기에 충분한 조건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 비록 비무초친이라 말을 하고 있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진명이 신유강의 실력을 조금 더 확실히 보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마저 통제시킨 이곳에는 거대한 연무장이 존재한다.
주위에는 구파일방의 실력 있는 제자들이 모여 있었으며, 다른 한편에는 팔대세가의 주축들이 연무장 정중앙에 서 있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천하백대고수라 불린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자신들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나이이니만큼, 투지를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이긴다면 하북진가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은 물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권룡을 꺾었다는 말이 돈다면 향후 무림에서 상당한 이름을 얻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비무장 위에 선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한숨을 토했다. 덥석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만약 이 상황을 진소소가 알게 된다면, 또다시 매서운 눈빛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은 하지 않는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간에 반드시 이길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준비되어 있소. 나와 마주하고 싶은 이들은 언제든지 올라오시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백리지연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여전히 예나 지금이나 그 기백만큼은 죽지 않았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하지만, 저 정도 기백을 보여 준다면, 섣불리 나설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일은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일 같으니 내가 나서는 것이 도리일 듯싶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하북팽가의 장남 팽호언이다. 애초에 이번 일은 팽호언과 진소소, 그리고 신유강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니만큼, 다른 이들이 끼어들 여지조차 만들지 않으려는 심산이다.
거대한 도를 집어 들고 신유강이 서 있는 비무장을 향해 움직였다. 무림맹 내에서는 고작해야 문서나 쳐다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 도(刀)를 들면 한 명의 무인으로 변한다.
넘실넘실 투기를 발하며 두 눈빛을 빛냈다.
나이는 서른이 넘었으나 태양혈은 뚜렷하지 못하다. 하북팽가의 장남이지만 무림맹에서 문서나 쳐다보고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팽호언은 기죽지 않는다.
상대는 자신보다 어린 자.
얕보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진다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북팽가의 도는 그만큼 무겁고 매서우며, 어째서 사람들이 천하제일도가라 칭송하는지 톡톡히 보여 줄 심산이었다.
부웅-!
짧게 도를 휘둘렀을 뿐인데 바람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주변에 있는 다른 팔대세가의 인물들이나, 혹은 구파의 후기지수들은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소름이 돋는 듯한 표정이다.
“팽 소협이 작정을 했군.”
소림의 백승은 가만히 팽호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북팽가의 일인이면서, 문서나 쳐다보고 있던 그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기세를 넘실넘실 뿜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보아도 그의 각오가 전해지는 느낌이다.
팽호언에게 있어 진소소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혼약자다. 세가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녀와의 혼인만이 세가 내에 위치를 굳건히 다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이 비무를 승리로 이끌 생각이다.
“손속에 사정은 필요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