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남해검문이 사라졌다는 말뜻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 남자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쯧쯧, 네놈이 그것을 가지고 나가지만 않았어도, 그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마중천은 히죽 웃음을 지었다.
남해검문에 천마도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이 일에 뛰어들었다. 대대로 문주가 가지고 있는 보검을 가지고 나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기이하게도 그 검이 보이지 않았다.
하여 어쩔 수 없어 자고 있는 문주를 깨웠으며, 그 과정에서 자그마한 소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남해검문이라는 곳은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활활 타올랐다. 문도 수백의 시체가 사방에 깔렸으며, 남녀노소는 물론 문을 지키는 똥개 한 마리조차 살려 두지 않았다.
“대, 대체…….”
“네놈이 안고 있는 물음에 대한 답은, 저승에서 네 동료들에게나 듣거라.”
마중천은 가차 없이 손을 움직였다.
서걱!
겁에 질려 있던 남자의 목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목을 잃은 몸뚱이가 자욱하게 피분수를 뿜어내며 무너졌다. 피바다를 이룰 기세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마중천은 일말의 흥미조차 없는 듯 손을 뻗어 바닥을 뒹굴고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상당한 보검이로군.”
척 보아도 단순한 보검이 아닌 듯 보이는 예리함, 과연 남해검문에서 대대로 내려올 만한 정도의 보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중천이 흥미를 끌 만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가 가진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
파캉!
상당한 양의 내력을 검에 주입하자, 검날이 힘없이 부러져 나갔다. 이윽고 그 안에서 한 장의 천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중천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천마도해……. 남은 것은 아미와…… 행적조차 밝혀지지 않은 한 장인가.”
천마도해의 모든 회수는 마교의 오랜 숙업(宿業)과도 같은 일이다. 마교를 세운 초대의 무공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 무공들이야말로 천마가 숨겨 놓은 절기이기 때문이다.
“부교주님, 이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천마도해를 회수한 마중천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돌렸다. 이미 죽은 이들이 하는 말을 들었기에, 어느 정도 전후사정은 파악한 뒤다.
처참하기 짝이 없는 몰골의 진소소를 흥미없다는 듯 한 무덤덤한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내버려 두어도 알아서 죽을 것 같지만……. 기왕이면 편히 보내 주거라.”
마중천의 말마따라 진소소의 모습은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척 보아도 어린아이, 그것도 여자아이임이 분명해 보이는데, 어찌 저리 매섭게 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마교에서도 배신한 이들을 처단할 때 비슷한 짓을 하긴 하지만, 나이가 어린아이들은 되도록이면 편히 보내 주려 한다.
그런데 정파라는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절로 비웃음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진소소는 부은 눈동자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을 보고 있었다. 척 보아도 범상치 않은 이들임이 확실한 자들, 그도 그럴 것이 열 명이나 되는 남해검문의 문도들을 그야말로 순식간에 도륙했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어린아이 목을 취하는 것 역시 쉬울 것이다.
숨이 거칠어진다.
딱히 삶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대로 하북진가로 돌아가 봐야, 또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누군가에게 구함을 받는다는 것 또한 기대치 않는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껏, 희망이란 것은 진소소에게 있어 가장 먼 단어였다.
힘겹게 눈을 굴려, 다가온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흑의에 복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표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눈빛이 흔들리는 것은 여실히 보였다.
진소소는 말했다.
죽여 줘.
작게 움직이는 입술의 뜻을 파악했던 것인지, 남자의 손이 한없이 떨려왔다.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이 처음은 아니나, 남자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처량한 진소소의 모습 때문이다.
남자는 더욱 검을 움켜 쥐고 결심을 굳혔다.
“내세에선 좋은 곳에서 태어나거라.”
검은 수직으로 정확히 진소소의 심장을 꿰뚫을 기세였다.
그러나 그의 검은 소소에게 닿지 못했다.
파캉-!
매서운 소리가 들리며 검날이 반쪽이 되어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검을 쥐고 있던 흑의인이 눈을 부릅뜨자,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한 소녀가 검기(劍氣)를 뿌리고 있었다.
“큭!”
흑의인이 너무 놀라 뒤로 물러서자, 검을 회수한 소녀가 진소소를 감싸듯 선 채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당신들…….”
“재미있는 계집아이로군.”
마중천은 돌연 나타난 소녀를 바라보며 드디어 흥미가 솟은 표정이었다. 조금 전 그 검술은 틀림없이 백리세가의 검, 그러나 묘하게 화산의 냄새도 났다.
나이는 어림잡아 약 십대 중후반 정도.
그런 나이의 후기지수를 떠올리자면, 한 명밖에 없다.
중원의 꽃이라 불리는 백리지연이다.
“백리세가의 검술, 화산의 냄새라. 중원의 꽃이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
“설마 이건 당신들이 벌인 건가요?”
“물론.”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든 것도 당신들인가요?”
백리지연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물었다.
처음 보았을 때 소소의 예쁘장한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 뭉텅이로 잘려 나간 머리카락, 힘겹게 눈을 굴리는 것이 전부인 듯한 모습에 눈물이 왈칵 앞을 가렸다.
“음? 그렇다면 어찌할 건가?”
마중천은 히죽 웃음을 지으며 백리지연을 도발했다.
비록 그들이 한 짓은 아니나, 누가 보더라도 이 상황은 오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백리세가의 여식이라면,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으니, 마중천이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믿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면, 네놈들은 한 놈도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때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중천이 인상을 쓰며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끼기는 하였지만, 백리지연과는 다르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일말의 기세조차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평범한 사람, 그것이 아니라면 초절정에 들어서 자신의 기세를 숨길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무인이리라.
“자네는?”
“…….”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건가? 그것이 아니면 댈 이름이 없는 건가?”
이름이 없는 사람 따위 존재하지 않으니, 마중천은 그를 비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백리지연을 마주 보며 여유를 보이고 있었을 때와는 다르게, 사뭇 진지하기 짝이 없는 자세였다.
물론 그것은 신유강 또한 마찬가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마중천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전신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때문에 마중천의 호위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강 알 것 같기도 하네. 백리세가의 여식과 함께 다니는 약관의 청년, 우자혁을 격파하고 소림의 어린 것의 콧대를 꺾었다지?”
흑의인들이 짐짓 놀란 표정을 짓는다.
마중천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틀림없이 무황이라는 별호를 얻은 이이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라 보여 반로환동의 고수라는 어이없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 무예가 출중하다 하니, 저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매섭게 눈을 빛낸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결코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교도들에게 심어 주는 곳이 바로 사상 최악 최강의 단체라 불리는 마교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묻지. 네놈들이 소소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나?”
“음? 이 아이의 이름이 소소라고 하는가 보군. 허나,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한다면 자네는 믿을 텐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판단은 내가 할 테니.”
마중천은 미간을 꿈틀거렸다.
이 청년이 무황이라는 별호를 얻은 젊은 무인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약관이 갓 넘은 나이로 믿을 수 없는 무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고수들은 그러한 이야기에 콧방귀를 뀔 것이다.
약관의 나이로 천하백대고수라? 혹은 십대고수라?
중원 무림 역사를 전부 뒤진다 하더라도, 그런 식의 성장을 보인 무인들은 존재치 않았기에, 그저 우스갯소리로 들을 것이다.
그러나 마중천은 안다.
이미 한 차례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현 마교의 절대지존, 사마강은 이미 약관의 나이로 견줄 자가 없을 정도로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 당시 칠제라 불리던 이들조차 씹어 버릴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하랴.
때문에 마중천은 이 무황이라는 남자 또한 그러한 부류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린 것이 막말을 하는구나.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러한 소리를 입에 담는 것이냐?”
“관심 없으니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네놈들이 한 짓이냐? 아니면 저기 죽어 나자빠져 있는 놈들이 한 짓이냐?”
“웃기는 놈이군.”
마중천은 피식 웃음을 짓고 손을 저었다.
그 순간 그의 손가락 끝에 모여든 매서운 강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 신유강의 전신 요혈을 노리며 쏘아졌다.
백리지연은 화들짝 놀라 신유강을 향해 다가서려 했다. 그러나 신유강에게 시선을 돌린 순간 저도 모르게 우뚝 걸음을 멈췄다.
오싹-!
전신의 소름이 돋아 올랐다.
수많은 강기가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신유강은 일말에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윽고 강기들이 신유강의 몸을 꿰뚫으려는 그 순간, 회귀신공의 힘을 끌어올리자 보이지 않는 미약한 힘이 전신을 보호한다.
쾅쾅쾅!
수많은 강기가 폭음을 내며 사방으로 떨어졌다. 누가 봐도 신유강의 몸이 갈가리 찢겨져 나갈 것임이 분명한 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 있는 신유강은 멀쩡했다.
마치 어떠한 공격조차 받지 않은 것처럼 태연했다.
오만하고 방자한 시선은, 마교의 부교주인 마중천과 그의 수하들을 바라보고 있는 서슬 퍼런 눈동자는, 이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차갑다.
“호오, 이 마중천의 강기를 받고도 멀쩡하다라……. 무황이라는 말이 괜한 소문은 아닌 듯하군. 과거의 우리 지존을 보는 기분이야.”
마중천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무림의 소문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과장이 정확할 때도 간혹 있다. 중원 무림의 기둥이라 하는 칠제가 모조리 달려든다 한들 마존을 이길 수 없다는 허황된 소문과도 같이, 눈앞에 있는 이 무황이라는 존재의 소문 또한 마찬가지다.
마중천은 검에 강기를 쏟아부으며 더욱 웃었다.
‘이래서 강호란 재미있는 곳이지.’
부하들이 나서려 했다.
“이놈!”
“나서지 마라!”
마중천은 품 안에 천마도해를 주섬주섬 집어넣으며 자세를 잡았다. 나서려는 수하들을 제지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이런 재미있는 싸움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중천은 사마강보다 재능이 부족하다.
때문에 천마존이라는 자리를 빼앗기고 부교주에 앉았다. 그러나 굳이 비교하자면 사마강보다 부족하다 할 뿐이지, 결코 재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칠제에 버금가는 고수.
능히 일이 십 년 뒤에는 천하제일의 자리에 오를 만한 실력자라는 것이다.
반면 신유강은 마중천이 품속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것을 보며 아미를 찌푸렸다. 틀림없이 그가 가지고 있었던 천마도해와 같은 천임을 그새 확인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