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37화 (137/200)

# 137

“호호, 아는구나?”

현 중원에서 검을 차고 다니면서 백리지연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뿐이었다. 중원의 꽃이라 불리는 여인이며, 팔대세가의 한 축인 백리세가의 여식이다.

같은 팔대세가의 일원인지라 듣기 싫어도 그 이름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진소소는 단박에 그녀의 정체를 꿰뚫었다.

“그래그래, 이 언니가 중원의 꽃이라 불리는 백리지연이란다. 그럼 우리 꼬마 아가씨의 이름은 뭘까?”

“……소소”

“소소? 예쁜 이름이네.”

“고마워요.”

진소소는 뚫어지게 백리지연을 응시했다.

좀 전에 만나서 지금까지 친한 척 함부로 말을 건네 오는 것에 비해, 악의가 전혀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같은 팔대세가의 한 축이다 보니 다른 형제들의 부탁을 받고 괴롭히러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아무래도 그러한 목적은 아닌 모양이다.

진소소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여 이 저잣거리에 하북진가의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그러나 설령 누군가 있다 한들 세가 안에서도 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진소소인 데다, 꼴마저 이렇게 추레하니 그녀를 알아보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네. 호호.”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가까이서 진소소의 얼굴을 확인한 백리지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던 도중 어느새 다가온 신유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 것 같다고?”

“으음,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누구를 닮긴 한 것 같은데…….”

백리지연은 신음을 삼켰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끄집어내려 해도, 오래전 고작해야 몇 번 보았던 진소소의 어미를 기억해 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결국 포기했다는 듯 두 손을 들자, 신유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름이 소소라고?”

“그래요.”

“귀여운 이름이구나. 그런데 이런 저잣거리를 어린아이 혼자 돌아다녀도 괜찮은 거냐?”

“딱히 문제될 게 있나요?”

진소소의 목소리는 약간이지만 날이 서 있다.

백리지연과는 다르게 신유강의 눈빛은 명백히 부드럽다. 마치 진소소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하였기에, 진소소는 그것에 더욱 큰 거부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누군가 잡아가면 어쩌려고 그러지?”

“당신 같은 사람이 말인가요?”

“풉!”

진소소의 말에 백리지연이 웃음보를 터트리자, 신유강은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납치법처럼 보이나?

第五章 천검제(天劍帝) 진백(震白)

중원 무림의 칠제(七帝)라는 명성을 얻은 이들은 언제나 부와 명예가 뒤따른다. 천하제일인은 될 수 없으나, 그다음으로 강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북에는 그런 칠제 중 둘이 있다.

천검제(天劒帝) 진백과, 도제(刀帝) 팽헌이 바로 그들이다. 이 두 사람은 칠 일 밤낮을 싸워야 그 승패를 가를 정도로 대단한 인물들임이 분명하나, 사람들은 팽헌보다는 진백을 우위에 둔다.

십 년 전 싸움에서 두 사람이 부딪히지는 않았으나, 하북진가는 진명을 앞세워 압도적인 힘으로 팽가를 굴복시켰기 때문이다.

“흠…….”

진백은 조용히 감았던 눈을 떴다.

명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의 주위는 고요하기 짝이 없다. 평온한 기운이 흐르고 있는 덕분인지, 진백이 눈을 뜨기 기다리고 있던 진명의 표정은 다른 때보다 많이 부드러워 보였다.

“깨셨습니까?”

“그래, 내가 눈을 뜨기 기다리고 있었느냐?”

진백의 질문에 진명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기는 하나, 진백의 앞에서는 조금이나마 부드러운 모습이 역력하다.

아마 다른 이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새삼 달라진 진명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할 말이 있느냐?”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요 근래 아버님께서 기분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 그 연유를 묻고자 찾아왔을 뿐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다라……. 허허허. 네가 그런 것도 느낄 줄 아느냐?”

진명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아비의 등만을 보며 살아왔다. 그런 삶이 지금까지 이어진 만큼, 아비의 심정이 바뀔 때마다 누구보다 빠르게 그것을 알아차렸다.

“뭐 좋다. 그럼 묻도록 하지. 내가 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이느냐?”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라…….”

진백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하북진가는 예로부터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삶을 살아왔다. 마교와도 같은 율법 속에 자라났으니, 진명 또한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다.

먼저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첩실의 자손 따위가 감히 정실의 아이를 위협하고 몰아세우는 꼴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백은 나서지 않았다.

이미 그는 뒷방 늙은이이기 때문이며, 현 가주가 가만히 있는데 전대 가주가 손을 쓴다면 현 가주의 면복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가문 내에서 괜한 반복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뜻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들에게마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는 없었다.

“소소의 일 말이다.”

“…….”

“어디 감히 첩실 년 따위의 자식들이, 정실 태생을 위협한단 말이냐!”

진명에게는 진소소를 제외하고 세 명의 아들이 있기는 하나, 정통성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진소소 하나뿐이다.

비록 구파일방이나 명문세가의 출신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정실 부인이 살아 있었을 당시 당대의 검후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핏줄이 어디 가겠는가?

진백은 진소소의 범상치 않은 능력을 일찍이 눈치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키워 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진백의 위치가 위치이니 만큼, 그가 손을 대려 한다면 다른 곳에서 엄청난 시기(猜忌)를 할 테고, 진소소는 지금보다 더욱 심한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

혹은 죽을 수도 있다.

잔인한 말이지만, 이 하북진가에선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진백이 끼고 돈다면야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결국엔 진소소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결국 하북진가에 파벌이 생긴다는 말이다.

진백은 그러한 사태를 원치 않는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둘 뿐입니다. 소소는 재능이 뛰어나니 오히려 무공을 익혀 그 재능이 드러난다면 지금보다 더 지독할 꼴을 겪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때문에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이냐? 그 어린 것을 별채에 가둬 놓고 수수방관하며 외면하는 것이 소소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정말로 그리 생각하느냐?”

“…….”

“아니면, 내가 네놈을 그리 키웠다 하여 금쪽같은 딸자식에게 똑같이 되돌려 주고, 내 마음에 비수라도 꽂으려 하는 것이냐?”

진명은 대답이 없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러한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진백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리석은 놈 같으니라고. 그리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세가에서 쫓아내거라.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말이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쫓아내라는 말에 진명은 미미하게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수수방관하며 외면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의 거처에서 가장 가까운 별채에 방을 내주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뛰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아마도 이 하북진가 안에서 진소소에게 가장 크게 마음을 쓰고 있는 인간은, 진백이 아닌 진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쯧쯧, 우둔한지고. 꼴도 보기 싫으니 그만 나가 보거라. 네놈이 하지 않는다면 응당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내가 소소를 데리고 이곳을 나가겠다.”

“아버님!”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그 정도 인재를 고작해야 첩실의 눈치를 살펴 키우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다른 세가에서 이 일을 알게 된다면 퍽이나 좋은 소리를 듣겠구나, 놈!”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따위 소리를 듣고자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보구나. 되었으니 그만 나가 보거라. 소소의 일은 내가 맡기도록 하고.”

진백은 결코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려 버렸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한다 해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진명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는 것만큼은 참아 주십시오.”

“쯧.”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나가는 진명을 바라보며 진백은 혀를 찼다.

세간 사람들은 하북진가를 천하제일세가라 부른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비록 구파보다는 못하지만, 명문 무림세가로서는 독보적이라 할 만큼 대단한 힘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부는 썩을 대로 썩었다.

하북진가의 첩실, 그녀는 고작해야 남해검문의 소문주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구파의 말석조차 차지하지 못한 약한 곳이니, 본래라면 하북진가의 문턱을 넘을 수도 없는 여인이다.

우연찮게 혼담이 들어와 덜컥 받은 것이 실수였다.

당시 진소소의 어미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란 의원의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첩실이 필요했다.

그 점을 파고들어 혼담이 이루어졌고, 그녀는 혼인을 한 지 고작해야 두 달 만에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셋을 낳았으며 하나같이 뛰어난 인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사태는 그 후에 급변했다. 분명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몸이라는 진소소의 어미가, 아이를 가졌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고, 그녀는 힘겹게 진소소를 낳았다.

진소소가 태어난 그날부터 진백의 눈에는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태어나자마자 그 몸을 진맥하였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세상에 진정 천골(天骨)을 타고난 아이가 있다니?

하북진가를 빛내 줄 아이는 첫째도 둘째도, 그보다 더 뛰어나다는 셋째도 아닌, 오로지 진소소라고 진백은 그 순간 확신했다.

그래서 더 늦지 않게 행동에 나서려는 것이다. 가문의 안이라면 진백으로 인하여 파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진백이 진소소를 데리고 나가 버리면 그만 아니겠는가?

호쾌하기까지 한 결단을, 진백은 더 이상 미루지 않았다.

“소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보거라.”

방 안에는 분명 그 외에 아무도 없었으나 누군가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진백은 다시 한 번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약 이각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마치 나갔던 사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미풍(微風)이 불었다. 진백은 감았던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잣거리라?”

살짝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고, 그가 방을 나섰다.

* * *

진소소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친절한 말을 들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혹은 함께 거리를 걸으며 웃은 적은 몇 번이나 있었던가?

고작해야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진소소는 하북에서 꽤나 유명한 객잔에 와 있었다. 자리를 잡는 것도 여의치 않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태평객잔(太平客棧).

한때 황제의 숙수를 지낸 전적이 있다는 이가 차린 곳이니 만큼, 요리의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더욱이 값도 상당히 싼 편이었기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우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