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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133화 (133/200)

# 133

가문을 빛내 줄 재능을 지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는 건장한 성인 남자들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의 고된 수련을 겪었다.

그 과정은 신유강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되고 힘들었고,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으나 당시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백리지연은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어쨌든! 저는 아직 팔팔하니까 어서 가도록 해요.”

“그렇게 만나고 싶은 건가? 그 천검제라는 사람을.”

“천하제일세가의 전대 가주, 현 무림에서 적대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 천마존과 비견되는 분이니까요. 제 안계를 충분히 넓힐 만한 인물이라는 거죠.”

백리지연은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천검제를 만나고 싶은 것인지, 천천히 걷고 있는 신유강을 억지로 잡아끄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좀 천천히 가도록 하지. 아니, 그보다 하북진가에 간다고 해서 그들이 쉽게 들여보내 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지극히 타당한 말에 백리지연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확실히 백리세가의 이름을 거론한다 하더라도, 하북진가가 쉬이 문을 열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백리세가라는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하북진가와 깊은 친분이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때문에 설령 객으로서 받아 준다고 하더라도, 진백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채 일 할도 되지 않을 것이다.

백리지연은 끙 하며 신음을 삼켰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 천검제를 만나고 싶은 건 너이니 알아서 생각해야지.”

히죽 웃음을 짓는 신유강의 표정이 어찌나 밉살스럽던지, 백리지연은 저도 모르게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천검제에게 비무를 청한다고 하면?”

“문전박대 당할 거다.”

“그럼…… 하북진가의 가주께…….”

“죽도록 얻어터질지도 모르지. 그 사람 은근히 매섭거든.”

신유강은 지난번 싸움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진백이 보여 주었던 한 수는 대단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꺾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 혹시 하북진가와 인연이 있나요?”

“아니, 어쩌다 한 번 본 것이 다지. 먼 곳에서 말이다. 그것도 우연찮게.”

“강조하지 않아도 신 공자를 끌고 들어갈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것참 다행이로군.”

백리지연은 우뚝 걸음을 멈춘 채 신유강을 빤히 바라봤다. 밉살스런 한마디를 내뱉으면서 실실 웃음을 짓고 있으니 절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럼 그냥 정문으로 당당하게 치고 들어가죠.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다 보면 천검제가 나타날지도.”

“그 전에 네가 피투성이가 될지도.”

백리지연은 끙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렇다.

그녀가 아무리 대단한 수준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지금 가는 곳은 천하제일세가라 불리는 하북진가다. 설령 같은 팔대세가라 하더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그들이니 만큼, 정문을 부수는 순간 백리세가와 전면전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어떻게…….”

백리지연은 결국 두 손 들고 다시 한 번 신유강에게 자문을 구하려 했다.

그 순간, 꽤나 먼 곳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찾았다, 네 이놈!”

사람이 얼마만큼 빨리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돌린 신유강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무인보다 몇 배 이상 빠른 경공을 목도했다.

족히 이십 장은 되어 보일 법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신유강의 앞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저 눈 한 번 깜빡일 정도의 찰나였다.

곁에 있던 백리지연은 물론이며, 신유강마저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가 엄청난 기세를 머금고 손을 휘둘렀다.

“신 공자!”

쿠쾅!

그야말로 뇌성(雷聲)이 울렸다.

칠성의 내력이 실려 있는 그 주먹이 휘둘러지면서, 신유강이 있던 자리는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을 정도였다. 천둥이 치는 것 마냥 시끄럽기 짝이 없는 소리가 귀를 울렸으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이것이 바로 뇌성권마라는 별호가 붙은 우자혁의 힘이다.

“시, 신 공자…….”

백리지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청난 기세를 머금은 우자혁의 한 수를 얻어맞은 신유강은, 절명이라도 한 것인지 그 자리에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어떤 무인이라 하더라도 견딜 수 없는 일격이었다.

그것을 증명시켜 주듯, 신유강이 입고 있던 옷은 걸레처럼 조각조각 찢겨져 있었으며,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마치 죽은 시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백리지연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몸을 떨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에 몸이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눈앞에서 알고 있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녀석이 감히!”

생각했던 것보다 싱겁게 끝장을 보자, 우자혁은 바득 이를 갈며 숨을 몰아쉬었다. 고작 이런 녀석에게 당해 정파의 개들 앞에서 비참한 꼴을 보였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지난번 보여 주었던 한 수를 잊지 못한 탓에, 조금 과하게 손을 쓴 면도 있다. 반격을 당하는 것이 못내 두려워 처음부터 칠성의 내력을 쓴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우자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백리지연을 바라봤다.

“네년, 나를 쫓고 있던 놈들과 한패였지?”

어린 후기지수들에게 손을 쓸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작 한 수에 널브러진 신유강 때문에 우자혁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했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백리지연을 향해 슬쩍 손을 털자, 거친 소친 소리가 들리며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세가 매섭게 쏟아졌다.

그 순간, 백리지연의 검이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뽑혀 나왔다.

펑!

우자혁의 권풍과 그녀의 검기가 부딪히자, 그것들은 마치 폭풍이라도 몰아치는 듯 엄청난 기세로 주위를 휩쓸었다.

백리지연은 주르륵 다섯 보 이상 물러서며 신음을 흘렸다. 단순한 권풍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강맹한 기세를 머금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력을 회수하고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깊은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크윽…….”

“한 수에 나가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대단하군.”

우자혁은 짐짓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고작 삼성의 힘을 실었다고는 하지만, 백리지연의 나이를 생각하면 결코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자혁은 눈을 빛내며 백리지연을 바라봤다.

“정도 무림에는 뛰어난 인재 다섯과 일곱이 있다 하여 그들을 오룡칠무봉이라 하던데, 너는 그들 중 한 명인가?”

오룡칠검봉(五龍七劍鳳)

현 시점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룡과 봉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만큼 후기지수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 후기지수의 범위를 뛰어넘어 중원을 이끌어 가는 자들을 일컫는다.

무당의 운검, 소림의 무현, 화산의 우학, 하북의 진명, 곤륜의 태율. 이들을 오룡이라 칭하며, 현 무림의 정신적 지주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들이다.

또한 그 밖에 칠무봉이라 불리는 여협(女俠)들이 있기는 하나, 그녀들은 단순히 오룡을 띄워 주기 위한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든 중원 오룡에 비견되는 것이 칠무봉이라는 여인들이었는데, 우자혁은 고작 삼성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일격을 막을 수 있는 이들이라 하면 그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내공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당신…….”

백리지연은 대답을 하지 않고 기수식을 취했다. 넘실넘실 검기가 일렁이는 검을 치켜들며, 무엇이든 베어 버릴 것 같은 눈빛으로 우자혁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 맺혀 있는 것은 틀림없는 분노다.

우자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죽은 신유강 때문에 꽤나 화가 난 모양이다.

“연인이라도 되는가 보군. 이거 참 미안한 짓을 했어. 하하하!”

그러나 우자혁은 대수롭지 않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까닥였다. 언제든지 덤벼 보라는 듯 도발하고 있으나, 백리지연과 다르게 그 어떤 기수식조차 취하지 않는다.

강자의 여유라는 것이다.

백리지연은 더욱 아미를 좁히며 검을 잡았다.

“빌어먹을, 정말 더럽게 아프네.”

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백리지연은 당장에 우자혁과 거리를 좁혀 그의 목을 베려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던 신유강이 꿈틀거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를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손을 쓸 것 같았던 두 사람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특히 우자혁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틀림없이 즉사에 가까운 반응이 있었다. 그 정도 내력을 정면으로 얻어맞고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강철마저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힘이다.

더욱이 우자혁이 극성의 경공으로 다가서 펼친 일격이다. 독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경공술이었으며, 틀림없이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의 신유강을 향해 손을 쓴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

신유강이 강시처럼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코와 입에서 흘린 피를 스윽 닦아내 버린다. 이윽고 너덜너덜 하게 변해 버린 옷을 한차례 바라보곤,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는 우자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소.”

“……호신강기라도 펼쳤다는 건가? 그 짧은 시간에?”

극성의 호신강기를 펼쳤다면 응당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경험이 많은 무인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 짧은 거리에서 순간적으로 호신강기를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룡칠검봉과 같은 인재들, 그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내공이 몸에 동화되어 있으니 만큼 어떠한 기습에도 호신강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신유강은 그 정도 수준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호신강기든 뭐든, 내가 이렇게 살아 있으니 당신의 한 수가 고작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 아니겠소?”

“놈! 방자하구나! 운이 좋아 살아남은 주제에 바닥에 엎드려 빌지는 못할망정 감히 이 우자혁의 수준이 미천하다 말하는 것이냐!”

“미천하다고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당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으니 정말로 미천한 모양이구려.”

신유강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회귀신공을 익히고 있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조금 전 그 한 수로 저승에 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엄청난 힘이었다.

천무황성이라 불리는 서장의 거대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결코 허언이 아닌 듯, 마치 진명의 검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마저 느껴졌다.

찌릿찌릿, 전신의 살갗을 찢어발길 듯한 살기를 몸소 느끼며 신유강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주먹을 쥐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한 가득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얻어맞은 것에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않는다. 신유강도 우자혁의 입장이었다면 능히 같은 짓을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컥 치솟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사람을 깔보는 우자혁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 소강이라 하오.”

“우자혁이다.”

“좋소, 우 소협. 기왕 이렇게 된 거 둘 중 하나만 서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맞소?”

“누워야 하는 건 네놈이겠지!”

우자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언제고 사람들이 신유강의 귀공(歸功)을 볼 때마다 이형환위라 착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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