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흐음, 좋아요. 그런데 어디를 가는 거죠?”
“하북.”
“하북? 출신이 그쪽이신가요?”
“글쎄, 출신이라기보다는 누구를 좀 만나러 가는 거지.”
백리지연은 흐음 하며 신음을 흘렸다.
하북은 현재 진가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천하제일세가라 불리고 있는 곳이니 만큼, 그곳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신유강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저도 데려가 줄래요?”
“네가? 하북에?”
“네, 당신 굉장히 강해 보이니까, 기왕이면 수련을 시켜 주면 더 고맙겠어요.”
“뭐……? 무림맹에서는 수련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 같군.”
“그게 아니에요. 저는 우리 가문의 무공보다 현 구파의 화산의 무공이 더 나을 거라 생각해서 화산에 입문을 했어요. 하지만 막상 익혀 보니 백리세가의 무공이나 화산의 무공이나 거기서 거기에요. 딱히 더 나은 점도 없어 보이고.”
“엄청난 소리를 입에 담는군. 화산의 문도들이 듣는다면 네 목을 가져가려 할 것이야.”
“알아요. 하지만 사실인데 어떻게 해요? 어쨌든 그래서 깨달았죠. 그들의 무공이 강해서 구파의 삼좌(三座)에 오른 것이 아니란 걸 말이죠. 바로 사람이 강한 거예요.”
“사람이 강하다라…….”
“네,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저는 강한 사람을 찾기 위해 무림맹에 입맹했어요. 하지만 무현은 제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저를 단련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공자.”
참으로 당돌한 말을 하는 소녀다.
무현이라면 그녀가 쳐다보기도 힘들 위치에 있는 자다. 구파의 수좌라 할 수 있는 소림의 출신, 더욱이 계율원주였던 이였으며, 잘은 알 수 없으나 백대고수에는 들 만한 인재다.
물론 현 시점에서 말이다.
“단련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그게 나라는 소린가?”
“물론 아니죠. 호호, 농담하세요? 하북에 있는 천하제일세가, 그곳 전대 가주인 칠제의 일인 천검제(天劍帝) 진백, 그분을 뵈러 갈 생각이에요.”
“……아까 그 땡중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나돌아 다녀도 되는 건가?”
“후후, 물론 안 되죠. 하지만 무림맹은 더 이상 제 흥미를 끌 만한 사람이 없는 걸 어떻게 해요?”
“마치 절대 고수라도 되는 것 마냥 말을 하는군.”
“이래 봬도 검에는 자신 있다고 했잖아요.”
“다른 이들보다 확연히 수준이 낮아 보이는데?”
“그렇게 보이는 거죠. 실제로 검을 부딪치면, 저는 무현 대주조차 이길 자신이 있어요.”
광오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다.
방년 십육 세의 어린 소녀가, 서른이 넘은 무현을 이긴다는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거기에는 일말의 망설임은 물론이며, 거짓조차 깃들어 있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긴다는 말은 그녀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승부가 될 것은 분명하나, 정확한 승패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흐음…… 과연?”
“호호, 한번 겪어 보실래요?”
십 할 중 삼 할을 숨겨라.
강호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그 말을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라. 때문에 대부분 자신의 실력을 감추기 마련이라 하지만, 지금 백리지연의 말은 터무니없는 정도를 넘어선 말이다.
그러나 만약 백리지연이 천재 중 천재이며, 삼 할이 아닌 칠 할 이상의 힘을 숨기고 있다면? 장래 칠제 중 일인이 될 정도의 떡잎을 지금부터 가지고 있다면? 무현을 꺾는다는 말이 결코 허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신유강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단순한 허세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됐다. 괜히 어린 소녀의 꿈을 부수고 싶지는 않거든.”
“그것참 고맙고 재수 없는 소리네요.”
싱글싱글 웃음을 지으며 백리지연은 독설을 내뱉었다. 그만큼 신유강이 한 말이 그녀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 것일 터다.
신유강의 생각대로 백리지연은 천재(天才) 중의 천재(天才)다. 그러나 팔대세가 중 한 자리를 차지한 백리세가라지만, 제갈세가와 마찬가지로 말석에 위치하는 곳.
맘에 안 든다고 본 실력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는 없는 입장인 것이다. 만약 다른 세가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견제를 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하여 백리지연은 실력을 숨겼다.
팔대세가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구파일방, 그것도 화산에 속가제자로 들어간 이유 또한 구파의 검을 겪어 보라는 차원에서다.
또한 화산에 백리지연을 보내, 그녀의 능력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물론 반 이상은 도박이다.
아무리 숨긴다 한들, 화산의 전대 고수들이라면 맥을 짚는 것만으로 그녀가 천골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허나 결과는 아주 좋았다. 아무도 그녀가 천고의 기재임을 눈치채지 못했고, 백리세가의 일개 여식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화산의 검을 모조리 보았다.
현 화산의 최고 인재라 불리는 이조차 그녀와 손을 섞는다면 삼백여 초가 넘는 승부가 벌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나를 따라 하북으로 가겠다, 그건가?”
“물론이에요. 신 공자는 저한테 빚이 있잖아요? 그걸 하북까지 저를 호위하는 것으로 지불하란 소리예요.”
“네 말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네가 나를 지켜야 할 텐데?”
“호호호, 그럼 그때는 돈을 더 받기로 하죠.”
신유강은 유들유들한 그녀의 말에 결국 혀를 내둘렀다.
第三章 과거위명(過去偉名)
우자혁은 바득바득 이를 갈며 인상을 썼다.
하남 구경을 하기 위해 쥐죽은 듯 몰래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개방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던 탓인지, 정체는 순식간에 탄로가 나 버렸고, 덕분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청룡대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시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애송이들이다.
그러나 일부러 손을 쓰지 않고 쫓겨 다닌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현 무림맹의 맹주, 무당의 헌무가 움직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린놈들 족치는 것이야 언제든지 가능하나, 무림맹주와 손을 섞는다는 것은 지금의 그로서는 무리다.
때문에 도망을 쳤다.
“빌어먹을…….”
우자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숲길을 탔다.
“어디로 도망을 친 거지?”
누군가를 찾는 것인지 그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순한 산보와 같다 생각한 하남행에서, 재수 없게 이름도 모르는 무인에게 일장에 당해 나가떨어졌다. 아마 곧 있으면 그 소문이 중원 전체에 파다하게 퍼질 것이다.
우자혁은 생각하면 할수록 진저리가 쳐졌다.
도대체 그놈은 뭔가?
그 움직임은 마치 무당의 부드러움과 화산의 날카로움이 담겨 있는 듯했다. 또한 내 뻗은 손에는 소림의 강맹함까지 머금어져 있었다.
방심하지 않았다 해도 충분히 당했을 법한 한 수다.
우자혁은 또 다시 이를 갈며 아미를 찌푸렸다.
그 순간, 곳곳에서 수풀이 들썩이는 소리가 들리자 저도 모르게 나무를 타고 제일 높은 곳을 향해 올라섰다.
기척을 죽이며 몸을 숨긴다.
호흡을 가다듬고 자연과 동화된 것처럼, 자연스레 몸을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뛰어난 은신술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이 근처에 있는 이들 중 우자혁의 은신을 꿰뚫어볼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우자혁의 긴장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때 청룡대원들과 무현이 수풀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주.”
“놓친 것인가.”
무현은 염불을 외며 질끈 눈을 감았다.
우자혁을 쫓기는 했으나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경공이 어찌나 빠르던지 당최 잡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던 탓이다.
더욱이 소강이라는 녀석에게 시선을 빼앗긴 탓에 그 거리가 더욱 벌어졌으니 만큼, 지금쯤이면 하남 성도에서 상당히 멀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무현이 찾고 있는 것은 우자혁이 아니다.
바로 소강이라는 자다.
정체불명의 남자.
그 실력은 우자혁조차 한 수에 제압할 정도로 대단하다.
물론 고작해야 그러한 사실 하나로 소강을 쫓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청룡대원 중 한 명인 백리지연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먼저 도망친 우자혁의 소행이라고는 볼 수 없으니 만큼, 아마도 그 소강이라는 자가 납치라도 했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무현은 바드득 이를 갈았다.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백리지연이 그 화사한 외모 탓에 청룡대원들은 물론이며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떠받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다.
때문에 실력도 없는 주제에 백리세가의 이름과 그 얼굴 때문에 청룡대원으로 뽑혔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었다.
청룡대라는 이름을 깎아내리는 그녀의 실력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디를 가나 사고를 일으키니 정말이지 울화가 치민다.
소강이라는 자가 정말로 백리지연을 납치해 갔다면, 틀림없이 그 외모에 반한 것일 터이다. 무현은 이러한 상황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쯧 혀를 차며 인상을 썼다.
“대주, 이쪽으로 흔적이 나 있습니다.”
“어디로 향하는 방향이지?”
추격에 능한 당초운이 신유강과 백리지연의 흔적을 발견했는지, 조심스레 바닥을 살피며 무현에게 일렀다.
상당히 오래전에 지나갔는지 발자국은 희미하다.
만약 발견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흔적은 이미 사라져 찾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정도였다.
“하북 쪽입니다.”
하북이라는 말에 무현은 험악하게 표정을 구겼다.
하필이면 왜 그곳으로 간단 말인가.
하북은 무림맹의 손길이 가장 닿지 않는 곳이다.
워낙 진가의 이름이 대단한 곳인지라, 무림맹의 영향력이 미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진가를 견제하기 위해 세력을 키워 왔던 팽가마저 있으니 함부로 향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더욱이 골치 아픈 진주언가마저 그곳에 있다.
“하필이면…….”
무림맹은 기본적으로 구파와 팔대세가가 세운 곳이니 만큼, 딱히 거릴 낄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허나 무현은 진가나 팽가와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과거 진가의 현 가주, 진명에게 패배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고, 팽가는 소림 자체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진주언가는 그냥 싫다. 팔대세가라는 이름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진가와 팽가에 눌려 그 힘을 제대로 발휘조차 못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눈에 거슬린다. 어디를 가더라도 팔대세가와 무림맹 소속이라는 점을 들먹이며, 남들보다 우위를 점하려 하는 그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가지 않을 수는 없다.
대원이 납치를 당했으니 응당 되찾아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앞길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정말이지 무엇 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애당초 무림맹에 입성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인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무현은 아미를 찌푸리며 빠르게 몸을 날렸다.
“가자.”
“명!”
‘하북이라…….’
반면 나무 위에 올라 청룡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 우자혁은, 하북이라는 말이 들려오자 꺼림칙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천무황성 소속이다.
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한 단체의 소성주이며, 장차 그곳을 이끌어 갈 성주가 될 입장이다. 정파 쪽에서 본다면 틀림없는 적이니 만큼, 하남보다 위험한 하북은 그리 내키지 않은 것이다.
하남은 무림맹이 들어서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저기 빈틈이 많다. 온갖 마교의 간자들은 물론이며, 사도련, 그리고 마교와 세외 세력들이 뒤섞여 있어서, 그 하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운이 나빠 걸리기는 했지만, 조금만 조심을 했다면 지금쯤 하남 홍등가 거리를 휩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