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더욱이 정파의 세력을 양분하고 있으니, 서로를 견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신 대협이 안 보이네요?”
“대협은 무슨!”
주위를 둘러보며 신유강을 찾고 있던 제갈연이 몹시 아쉽다는 듯 말을 하자, 그에게 좋은 기억이 없는 진자명이 진저리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후기지수들은 일순 입을 다물었다.
제갈연은 기가 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딱히 화를 내고 싶지는 않은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천무관 개관식이 벌어지는 곳이다.
입관생들이 들어서는 길의 양옆에는 정도 무림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이들이 기립을 한 채로, 후기지수들을 반겨 주고 있었다.
그 가장 끝 상석에는, 수 명의 인물들이 오만한 시선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재 구파일방을 이끌어 가고 있는 삼파의 수장들이었다.
칠제(七帝) 중 일인이며 권제(拳帝)라 불리는 소림의 무현, 그 옆에는 또 다른 칠제 중 한 명이며, 태극검제(太極劍帝)라 불리는 무당의 청허, 그리고 그 단상에 서 있는 이들 중, 유일한 여인이며, 화산의 검을 이어 칠제에 오른 검후(劍后) 백리지연.
그들은 오백여 명의 후기지수들을 오만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도발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자신들이 서 있는 이 자리까지 올라오라는 듯 말이다.
모여 있는 수많은 후기지수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움츠렸다.
단순한 시선에 지나지 않건만, 기이하게 모골이 송연해지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굳이 중소 문파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구파일방에 인재들은 물론이며, 팔대세가의 인물들 또한 파르르 몸을 떨며 그들과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천무관 개관에 참석해 주신 무림동도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겠소이다.”
무림맹주 무현의 입이 열리자 곳곳에서 신음성이 터졌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실려 있는 내공이, 고막을 찢어 버릴 듯 강한 압박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현은 자신의 능력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이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의 무위를 보여 줌으로써, 현 무림맹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싹을 잘라 내려는 듯 말이다.
“천무관은 앞으로 정파를 이끌어 갈 인재들을 탄생시키는 곳이 될 것임을 약속하는 바이오.”
환호가 들려야 함이 마땅하나 누구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무현이 발하는 기세 때문에, 함부로 입을 여는 것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무현은 힐끗 힐끗 주위를 둘러보았다. 겁에 질린 이들의 표정이 만족스러운 듯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심신을 사로잡는 강한 기세는 없으나, 사람들의 귀를 파고드는 음성이었다.
“천무관패를 받은 이들은 앞으로 나오너라.”
천무관패라는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리저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림맹주가 하사가 입관패를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받은 이가 고작 둘뿐이 없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후기지수들은 이미 그중 한 명이 누구인지 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진자명은 구파일방 후기지수들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더니, 단상을 향해 올라갔다.
“기천검 진자명입니다, 맹주님.”
“잘 왔네. 앞으로 이 무관과 정파를 이끌어 갈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네.”
맹주인 무현이 너털웃음을 짓자, 진자명은 더욱 기가 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
천무관패는 두 개가 뿌려졌는데, 남은 하나를 가지고 있는 이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현은 인상을 쓰며 제갈백헌을 바라보았지만, 그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무관패는 확실히 전하였으니 응당 올 것이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입관패는 두 개인데 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거지?”
“안 온 건가?”
“에이, 설마 무림맹주께서 직접 하사한 것인데.”
여기저기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만큼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림맹주인 무현의 이름으로 나간 패는 무현의 뜻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받은 이는 반드시 무관에 입관을 하여 그 패를 맹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예의라고 무림맹에 속한 이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모든 이들이 당황을 금치 못했다.
무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구파일방도 아니고 팔대세가도 아닌 인재에게 천무관패를 넘긴 것은 다른 이들에게 천무관은 신분의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현재 떠오르고 있는 권룡이라면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상황이 영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풉.”
곁에 있는 화산의 백리지연이 작은 소리로 비웃음을 날렸고, 청허 또한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무현의 인상이 더욱 붉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앞으로 나섰다.
거지꼴인 초라한 몰골과 전신에서 지독하게 썩은 냄새가 나는 이였다.
척 보아도 중소 문파 측은 물론이며, 개방의 거지처럼 보이지 않는 자였다.
나이는 적게 잡아도 마흔이 넘어 보였으며, 쭈글쭈글한 인상과 허리를 굽히고 걷는 모습은,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듯,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를 보며 인상을 썼다.
진자명이 있는 곳으로 다가서고 있는 그를, 누군가 말려야 함이 옳지만,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인지라 아무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초라한 남자가 마치 전력으로 달려온 이처럼 심하게 헉헉거리며 진자명의 옆에 섰다.
“처, 천무관패…… 입관생이오.”
남자는 힘겹게 말을 하며 품에 넣어 두었던 입관패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본 순간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쩍 벌렸다.
무현은 물론이고 청허와 백리지연까지 말이다.
남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무림맹주의 직인이 찍힌 천무관패였으니, 지금 이 거지가 진자명과 같은 급이라는 뜻이었다.
문지기가 막지 않고 이 거지를 들여보낸 이유를 알 것 같다.
몰골은 이래도 천무관패를 가지고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못한 것이다.
무현은 파르르 입꼬리를 떨며 물었다.
“네놈은 그 천무관패를 어디서 손에 넣었느냐!”
“히, 히익! 사, 샀습니다.”
“샀다?”
“그, 그렇습니다. 어, 어느 분께서 싼값에 팔겠다고 하셔서…….”
거지는 기가 죽은 듯 부들부들 몸을 떨며 주저앉았다. 어찌나 살벌하고 두려운지, 하의가 축축하게 젖어 가고 있었다.
천하의 무림맹주와 위명이 자자한 무림 인사들 앞에서 거지가 오줌을 싸는 우습지도 않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현은 더욱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를 쳤다.
“그것을 샀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저, 정말입니다요. 정말로 샀습니다. 제, 제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구리 문 한 닢 없어 보이는 네놈이 천무관패를 샀다는 걸 본 맹주에게 믿으란 소리더냐!”
무관 전체를 크게 울리는 분노가 섞인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입관패 중 일부를 무림맹에서 팔긴 했지만, 천무관패는 결코 파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맹주의 직인이 찍힌 패를 팔겠는가.
그러나 거지의 입에서는 더욱 어이없는 소리가 들렸다.
“도, 돈이 아닙니다. 여, 엿이랑 바꿨습니다. 엿 말입니다.”
엿과 천무관패를 바꾸었다는 소리에 무현은 뒷목을 부여잡았다.
청허는 너무 허황된 말에 두 눈을 껌뻑였고, 백리지연은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누군가 커다란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엿이랑 바꿨대. 하하하, 기천검, 네가 가진 입관패는 시전 바닥의 엿보다 못하구나. 하하하.”
도우겸이었다.
들려오는 조롱에 진자명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눈치 없는 도우겸이 진자명을 모욕하였으나, 누구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이는 없었다.
따지고 본다면 진자명이 모욕당할 일이긴 하지만, 더 깊게 생각해 본다면 무림맹주를 아주 엿 먹인 꼴이 되기 때문이다.
第三章. 재회(再會)
사천 무림에서 권룡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를 말할 때마다 나오는 말이 그가 적호대주를 이겼다는 것이며, 어린 나이에 천하백대고수 반열에 든 어마어마한 무공 수위 또한 자연스레 입에 올랐다.
그러나 요즘 들어 다른 말이 돌고 있었다.
사람들이 권룡(拳龍)이라 쓰고 광룡(狂龍)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천하에 단 두 개밖에 없는 입관패를 고작해야 거지가 가진 엿과 바꿨으니, 응당 미칠 광자가 앞에 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일 때문에 그의 과거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으니, 사람들은 신유강을 광권룡이라 부르길 마다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권룡이 무림맹주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 추측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저 그놈이 미쳐서 그런 것이라 말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에 힘을 실었다.
천운객잔에서 일을 하고 있던 신유강은 착하기 짝이 없으나, 기연객잔을 연 뒤부터 신유강의 성격은 그야말로 미칠 광 자가 너무도 잘 어울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유강은 차를 음미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무림맹 총사 제갈백헌이 바들바들 몸을 떨면서도, 침착함을 애써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맹주를 제대로 엿 먹인 신유강의 행동이 괘씸했기 때문이다.
물론 팔대세가의 입장에선 더없이 통쾌한 일이기는 했으나, 그 덕분에 맹주에게 끌려가 온갖 잔소리를 들었으니 이 분을 어찌 식히겠는가.
쾅!
결국 너무도 태연자약한 신유강의 모습에 화를 참지 못한 제갈백헌이 거칠게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를 쳤다.
“자네, 대체 생각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거절을 할 생각이었다면 일전에 그 자리에서 할 것이지, 들어올 것 같이 이야기를 하더니, 왜 그것을 엿 바꿔 먹느냔 말인가!”
치솟는 울분을 감당하지 못하겠는지, 제갈백헌의 얼굴은 시뻘겋게 붉어져 있었다.
지난번 진소소 일 때문에 화를 내고 나갔을 때보다, 더욱 화가 난 모습이다.
그러나 신유강은 태연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을 뿐이다.
“주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 어르신. 더욱이 무림맹주께서 주신 것인데 제가 거절을 하면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습니까?”
신유강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론 정말로 통쾌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신유강은 웬만하면 무관에 입관을 하려 했다. 그러나 제갈백헌이 먼저 진소소의 일로 그의 속을 뒤집어엎어 놓았고, 결국 이러한 방법을 쓰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무림맹주를 엿 먹이려 했던 것이 아니라, 제갈백헌을 겨냥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제갈백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그때, 신유강이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먹다 남은 엿가락이었다.
“드시렵니까?”
“정녕 네놈이 미쳤구나!”
쾅!
더욱 거세게 탁자를 내려치자, 내공을 일으킨 탓에 먹다 남은 엿가락과 튼튼하기 짝이 없었던 탁자가 산산조각이 났다.
제갈백헌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잘 알려 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신유강은 아주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