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다 압니다, 다 알아요. 곤륜대전에 참석하러 가시는 길이지 않습니까? 이 백 모, 스승님께서 우승을 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런 대전을 참가하기 위해 청해로 온 것이 아니오. 나는 신강으로 가고 있단 말이오.”
“시, 신강?”
신강이라는 말에 호야와 백호영준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무인이 신강으로 향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였다.
마교의 몸을 담은 무인이거나, 혹은 몸을 담을 생각으로 가는 무인이거나.
마교! 마교가 어딘가?
중원 무림의 주적이나 다름없는 곳이며, 단일 세력으로는 최강을 자랑하는 곳이다.
악독하기로 유명하며 세간 사람들에게 악귀보다 더한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신유강은 마교를 언급함으로써 백호영준과 호야를 돌려보내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반응이 그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호야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으며, 백호영준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박수를 짝짝 치면서 환호를 내질렀다.
“그렇지! 역시 그렇지! 우리 스승님은 대 마교의 사람이셨습니까?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이 백 모, 지금까지 마교를 흠모해 왔습니다!”
“우와! 우리 마교로 가는 건가요? 문주님? 그럼 그 천하제일인이라는 마존도 만날 수 있겠네요? 우와!”
“아…….”
신유강은 도무지 답이 안나오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이 자진해서 돌아간다 해도 돌아가는 길에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다시 그 마을로 돌아가기에는 상당히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짜증 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식의 일방적인 만남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데다, 이쪽은 급해 죽겠는데 시간은 점점 흐르기만 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우리 이렇게 합시다.”
“무엇입니까, 스승님?”
“말씀하세요, 사조님.”
사조라는 말에 신유강은 혀를 내둘렀다.
결국 호야 또한 신유강을 백호영준의 스승이라 판단을 한 것이고, 때문인지 거침없이 사조라는 말을 입에 담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오? 사천 성도가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것 말이오.”
“무, 물론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의 말을 이 백 모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그곳에 가서 기다리는 게 어떻습니까? 당신들을 데리고 신강까지 갔다간 일 년이 지나도 도착하지 못할 것 같소.”
“하, 하지만, 저흰 그곳에 아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거긴 내 객잔이니, 진소소라는 여인을 찾으면 될 것이오. 내 안사람이나 다름없는 여인이니, 둘을 박대는 하지 않을 것이오.”
안사람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신유강을 얼굴을 붉혔으나, 혹여 소소의 얼굴을 보고 나쁜 마음을 먹기 전에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이다.
“혼인을 하셨단 말씀이십니까?”
“뭐, 비슷한 관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그곳에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않겠소?”
“그, 그거야.”
백호영준은 무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었다.
청해성에서 사천 성도까지 상당한 거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마을 밖으로 나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나갔다 하더라도 멀리 간 적은 없으니 은근히 불안한 것이다.
“그곳에 간다면 잠자리는 물론이고, 먹을 것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이래 봬도 상당히 이름 있는 객잔이니 일이나 도와주며 기다리고 있으면 등 따뜻하고, 배도 부르고, 괜한 고생은 안 해도 될 것이오.”
“가겠습니다!”
번뜩 소리를 지른 것은 다름 아닌 호야다.
기실 호야는 무공 따위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을 거두어 준 백호영준이 무공에 미쳐 있었을 뿐이고, 그의 옆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흥미를 나타냈던 것뿐이다.
호야의 궁극적인 목표는 굶지 않고 따뜻하게 자는 것뿐이었다.
어쨌든 호야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를 치자, 망설이고 있었던 백호영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호야 혼자 보낼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 그럼 그곳에 가서 뭐라 말을 하면 됩니까?”
“신유강이 보내서 왔다고 하시오.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그냥 객잔에서 일을 시켜 준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하면, 소소의 성격상 박대하지는 않을 것이오.”
“돈도 줍니까?”
백호영준은 눈을 반짝였다. 돈을 벌 수 있다면 더러운 옷을 입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달에 열댓 냥 정도는 나올 것이오.”
사실 현재 점소이로 일하고 있는 이들이 그 정도 받으니, 초보라 할 수 있는 백호영준은 받아 봐야 대여섯 냥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점소이들 녹봉의 경우 흑영이 전부 알아서 관리를 하고 있었던 탓에 신유강이 그런 세세한 것을 알 리가 없다.
“가, 가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하지만 약조할 것이 있습니다. 어디 가서 당신이 문주라 말하지 말고, 함부로 주먹을 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곳은 당신들이 있던 마을과는 다르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 두었으면 합니다. 자칫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으니까.”
“며,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백호영준은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고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문주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호권이라고 해 봐야 시중에서 파는 구리돈 열 문만도 못한 무공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조님은 언제 돌아오시는 건가요?”
“글쎄, 빨라야 두세 달은 넘지 않을까 싶은데.”
“그, 그런가요? 사모님에게 그리 전해 드릴께요.”
당돌하기 짝이 없는 호야의 말에 신유강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을 끝으로 두 사람은 서둘러 사천 성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신유강은 드디어 홀로 신강을 향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내가 돌아가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다.”
신유강은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걸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귀(歸)의 힘을 이용해 점점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면, 채 며칠도 되지 않아 사천 성도에 도착할 것이다.
물론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거리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나온 계산이었다.
“도중에 흑영과 흑호를 구해 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산을 내려와 마을에서 이곳 청해까지 오는 도중에 신유강은 여기저기 둘러보며 마교인들처럼 보이는 이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애초에 기척을 잡아내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신유강이 잽싸게 움직이는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우연찮게 한 번이라도 걸려 준다면 흑영과 흑호를 데리고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결국 그가 신강까지 움직여야 한다는 소리다.
신유강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좋아.”
가라앉아 있던 회귀신공을 끌어 올리며 땅을 박찼다. 무인이 아닌 평범한 이들이 본다면 기겁을 할 만한 속도이긴 하지만, 일류 고수들이 본다면 콧방귀를 뀔 만큼 느린 속도였다.
그러나 신유강은 지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신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 *
한편 그 무렵, 기연객잔 안에서는 싸늘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객잔의 점소이이자 신유강의 친구 중 한 명이 음식을 나르다 실수로 진주언가 여식의 옷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짜악!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점소이의 몸이 훌쩍 날아가 벽에 쳐 박혔다. 지금까지 객잔에서 이런 소동이 없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기겁을 할 만한 사태인 것이다.
“으윽…….”
점소이는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잃고 늘어졌다. 바닥에는 그의 입안에서 터져 나온 피와 이빨이 구르고 있었고, 정신을 잃은 점소이의 입에서는 게거품이 줄줄 흘러나왔다.
내공을 이용해 후려친 것이다.
“마, 막강아!”
장삼은 돌연 들려오는 커다란 소리에 놀라 튀어나왔다. 이윽고 삼 층에서 일어난 일을 본 이들은 막강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며 당혹을 금치 못했다.
다른 점소이들이 부랴부랴 삼 층으로 올라가 정신을 잃은 막강을 부축해 내려오자,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진소소 조용히 다가왔다.
“죽을 정도는 아니니 안심해요.”
“으, 응.”
진소소가 어느 정도 의술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장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진소소의 눈빛이 삼 층에서 오연한 표정으로 밑을 내려다보는 언미연에게 향했다. 순간 객잔에서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이 눈치를 살피더니, 계산을 하며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전혀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당소혜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주언가의 여식이 좀 많이 싸가지가 없기는 하지만, 설마 무공조차 모르는 점소이에게 손을 쓸 줄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
“천하의 명문세가의 여식이라는 분께서 무공도 모르는 점소이에게 손속이 너무 과하시군요.”
“흥, 따귀 한 대로 그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예요. 그쪽이 이 객잔의 주인인가요? 이 옷의 가격이 얼마인 줄 알고나 하는 말인가요?”
진주언가(珍州彦家), 권(拳)의 언가(彦家)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권장지각술의 종주라 불리는 소림보다는 못하지만, 몇 백 년 전까지 팔대세가 제일의 주먹이라 불리는 모용세가를 찍어 눌러 버린 제일의 권가였다.
당시 언가의 주먹에 눌린 모용세가가 검으로 전향을 했던 탓에 현 팔대세가 중 권으로 언가에게 대적할 수 있는 곳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언미연의 콧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진소소는 그런 언미연을 바라보며 웃었다.
요염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흘리며 눈을 흘기는 진소소의 모습은, 가히 천하의 적수가 없는 미녀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었다.
“쿡, 고작 비단 쪼가리 따위가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다고 그러시요?”
“이익, 이래서 배우지 못한 천한 것들은……. 이 옷은 서역에서 직접 들여온 비단으로 만들어 적어도 금 한 냥은 주어야 살 수 있는 겁니다. 하긴, 어디 이런 옷을 입어 봤어야 값어치를 알겠죠. 안 그래요, 여러분? 호호호!”
언미연은 다른 팔대세가 후기지수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그러나 대답이 들려올 리가 만무했다. 점소이가 실수를 하긴 했으나, 언미연의 행동이 과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옷 자랑이라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풉!”
아니나 다를까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언미연은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는데, 그곳에는 당소혜가 입을 가린 채 조심스레 웃고 있었다.
“당 동생, 뭔가요? 할 말이 있으면 당당히 해 보세요.”
“아니, 푸풉,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당소혜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지금 한다는 소리가 고작 옷 자랑이라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다른 이들이 알 길이 없었다.
때문에 언미연은 더욱 아미를 찌푸렸다.
“도대체 뭔가요? 불쾌하기 짝이 없군요.”
“아니,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까요. 언 언니는 왜 시도 때도 없이 쿠쿡, 시비예요?”
“시, 시비라니?”
“그리고 말이죠. 우리 ㅈ…… 소소 언니가 입고 있는 옷은 금 열 냥짜리라고요.”
금 열 냥짜리라는 말에 후기지수들이 화들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