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57화 (57/200)

# 57

홍화는 현재 무슨 일이 있어도 신유강에게 소동의 정보를 듣고자 하였고, 신유강은 쉬이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홍화가 신유강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한다면?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의 은인인 홍화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그만큼 신유강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모른다고 하면 어쩔 것이오?”

“호호호,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끝까지 그리 말을 하신다면 본 녀 또한 어쩔 수 없지요. 말을 해 주실 때까지 놓아 드리지 않을 겁니다. 호호.”

신유강은 또다시 웃으며 차를 들이켰다.

“그거 마음에 드는군. 그래서? 놓아 주지 않고 뭘 어찌하려는 심산이지?”

계속되는 질문에 홍화는 교태 섞인 웃음과 몸동작을 보여 주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청랑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임이 분명하나 뭔가 이상했다.

청랑은 불안한 듯 눈알을 굴렸다.

“호호, 굳이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마시고 좋게 말로 할 때 알려 주신다면 서로 편할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공자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홍화는 재차 물었다.

신유강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는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자그마한 비수가 들려 있었으며, 그것은 정확히 신유강의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었다.

청랑은 안색을 굳혔으며 홍화는 웃었다.

상대는 사천성 하오문 분타를 관리하는 여인, 신유강 정도는 언제든 묻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힘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위협을 받고 있는 신유강은 너무도 태연한 모습이다.

목에 칼이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협을 받는 느낌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느긋하게 차를 홀짝이는 여유마저 보이고 있었다.

“하오문이 중원 무림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소.”

갑작스레 들려오는 폭언에 홍화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무림에 대한 상식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를 상대로 이런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이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천에서 이름 있는 미산검문의 문주조차 그녀에겐 한 수 접어줄 정도인데, 그에 비하면 무척 하찮은 신유강의 입에서 이런 폭언이 들려오니, 홍화는 아미를 찌푸리며 비수를 틀어쥐었다.

더 이상 그를 대우해 줄 마음이 사라졌다.

“흥, 죽고 싶어 안달이 났나 보구나.”

홍화는 틀어쥔 비수를 움직이며 신유강의 어깨를 찌르려 하였다.

소동의 정보를 알아내야 했기에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짝!

“아악!”

방 안 전체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참으로 경쾌하다 못해 시원스러웠다.

홍화의 낯짝이 획 하고 돌아갔고, 그녀의 몸이 크게 휘청이며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문 밖에 대기하고 있었던 홍화의 호위들이 괴성을 듣고 안으로 들어왔다. 쓰러진 홍화와 그 앞에 앉아 있는 신유강을 바라본 그들은,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며 달려들었다.

“이놈!”

“감히!”

달려든 두 호위는 홍화의 곁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는 이들이었으며, 일류에 달한 무위를 지녔다. 매섭게 검을 뽑아 휘두른 그녀들의 검은 날카롭게 뻗어져 신유강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 놓으려 했다.

퍽퍽!

“아악!”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뽑아 들었던 검은 어느새 검집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녀들의 손은 그저 맨손에 지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며 당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찰나, 어느새 휘둘러진 신유강의 주먹이 냅다 그녀들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퍽! 퍽!

골이 흔들리는 격한 통증과 함께 그녀들의 몸이 널브러졌다.

회귀신공의 힘을 담지 않았다고는 하나, 십 년이 넘게 단련된 주먹이니, 내공으로 저항도 못하는 가녀린 아녀자들이 얻어맞고 버틸 수 있는 위력이 아니다.

우당탕!

탁자와 침상이 무너지며 여인들의 몸이 널브러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곳이 루주의 거처이고, 다른 이들이 있는 곳과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홍화에게 있어서는 불행이라 할 수 있으며, 신유강에겐 귀찮음을 피하게 해 주는 고마운 일이었다.

신유강은 널브러진 두 여인을 힐끗 바라보다, 다시금 홍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 대 맞은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매만지며 멍한 눈빛으로 신유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금의신 소동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이렇게 무례한 행동은 참을 수가 없군.”

그것은 진심을 담은 한마디였다.

홍화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신유강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조금 전 널브러진 두 명에 호위는 홍화보다 수준이 높은 무인들이다.

그들조차 주먹질 한 번에 실신을 하였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이는 청랑밖에 없었다.

홍화는 다가오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청랑이 있던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청랑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제 사라졌지?’

본래 은신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 은신을 할 리가 없으니, 신유강이 무슨 짓을 한 것이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유강의 입을 열렸다.

“조금 전 그 살수를 찾는 거라면 꿈 깨라. 이곳에 없다. 그녀가 너를 구하러 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 그때까지 이야기를 좀 하지.”

처음 홍화를 향해 뺨을 친 것과 동시에, 신유강은 귀(歸)의 힘을 이용해 청랑을 기연객잔의 객실로 날려 보냈다.

지금쯤 그녀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고 있을 것이다.

하오문 패거리 따위 두려울 것 하나 없었지만, 청랑이라는 소녀가 가지고 있는 무력은 신유강에게 상당히 골칫거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언제든 제압할 자신이 있었지만, 또다시 고통을 느끼기는 싫었다.

“고작해야 하오문, 그것도 기녀 주제에 그렇게 말을 함부로하면 안 되지. 그렇게 소동에 대해 알고 싶으냐?”

홍화는 어느새 바짝 다가온 신유강의 눈을 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한데 소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번뜩 고개를 들어 신유강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어서 이야기 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직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바로 소동이다.”

퍽!

거침없이 발을 휘둘러 홍화의 복부를 후려쳤다.

“꺼억!”

기괴한 소리와 함께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홍화는, 고통 속에서도 조금 전 신유강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맹렬히 생각하고 있었다.

욕심에 눈이 먼 사람이나 할 법한 행동이었다.

“우웩!”

홍화의 입에서 거침없이 토사물이 쏟아졌다.

신유강이 한 소리를 머릿속에 정리하려 했지만, 쉬이 고통이 사라지지 않으니, 머리를 굴릴 여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보며 어이없이 웃었다.

토악질을 하고 있는 홍화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은 신유강은, 회귀신공의 힘을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잊어라, 소동에 대한 모든 것을…… 그리고 너에 대한 것도.”

홍화는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뜨며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잊으란 말인가?

소동의 존재를 결코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 신유강의 행동은 필시 그가 소동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홍화는 이 상황을 벗어나는 즉시, 하오문 고수들을 이용해 신유강의 입을 열 것이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으…… 으.”

머릿속에 괴이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과 동시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앞에 있는 신유강의 이름이 흐릿해지더니, 곧 그의 모습도 흐릿해졌다.

알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점점 기억들이 깔끔하게 잊히고 있었다.

홍화는 멍한 눈빛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누구지? 누구인데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있는 거야?’

알고 있던 글자들마저 점점 희미해지더니, 말을 하는 법조차 까먹은 듯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우.”

이윽고 홍화는 어린아이처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리고 그 머릿속마저 퇴화해 버린 것처럼 참으로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신유강은 그런 홍화의 모습을 바라보다 방긋 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두 번 다시 나를 귀찮게 하지 않을 테지.”

신유강은 아이처럼 변해 버린 홍화를 내버려 두고, 널브러져 있는 두 여인들을 향해 다가가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 * *

“에?”

청랑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홍화의 방에 있었는데, 돌연 시야가 뒤틀리며 아까 그 객잔의 천장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이내 손으로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악!”

꽤 심한 고통이 느껴지니 꿈은 아니었다.

그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머, 유강과 함께 나가지 않았던가요?”

일을 하고 있었던 진소소는 객실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화들짝 놀라 문을 열었다.

분명 아무도 없어야 할 곳이 분명한데, 조금 전 신유강과 함께 나간 청랑이 보이자 기이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제가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청랑의 질문에 진소소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청랑을 바라봤다.

“그건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네요. 조금 전에 유강과 함께 나가지 않았던가요?”

“분명 그랬는데…….”

청랑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바보 같아 보이던지 진소소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객방의 문을 닫고 나가 버렸고, 청랑은 문이 닫히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홍화가 위험하다는 경종이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봐요, 뛰지 말아요! 먼지 날리잖아요.”

들려오는 진소소의 말을 무시하며 그녀는 황급히 객잔을 빠져나갔다. 흑운무(黑雲霧)로 몸을 숨긴 그녀의 신법은 가히 절정에 오른 고수답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르다.

신유강의 기연객잔에서 기루까지 거리는 걸어서 이각이 넘게 걸린다.

그러나 그녀는 고작 일각 만에 기루에 도착했고, 다른 하오문도들의 시선에 걸리지 않게 은밀히 홍화의 방으로 들어섰다.

“아우!”

그리고 그녀가 발견한 풍경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서른이 넘은 홍화가 어린아이처럼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그녀의 호위들 또한 바닥에 주저앉아 아기처럼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우우!”

청랑은 당황을 금치 못한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서른이 넘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옹알거리고 있으니,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대, 대체 뭐야…….”

“아우!”

뿌지직!

기묘한 소리마저 들렸다.

“우욱!”

* * *

멀리서 신유강의 장원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수는 약 오십여 명 정도였는데, 하나같이 무공 수준이 뛰어난 듯, 튀어나온 태양혈이 장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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