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말은 그렇게 하나 기실 하오문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은, 진소소뿐 아니라 신유강 또한 잘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신유강과 진소소는 사천당가를 등에 업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소혜와 대단한 친분을 가지고 있다.
당가와 하오문을 어찌 비교하겠는가?
또한 굳이 사천당가가 없더라도 둘의 수준이라면, 하오문의 사천 지부 하나 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유강이 가겠다고 말하는 것은 괜히 무림인들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와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소소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등가에 신유강이 발을 들이는 것이 영 못마땅하기는 하나, 앞으로 귀찮은 것을 피하기 위함이라면 당연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좋아요.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말해 줘야 해요.”
“하하,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신유강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박장 일이 걸리기는 하지만, 만약 그것이 들통 났다면 지난 번 주위를 감시하고 있었던 이들을 이용해 무슨 짓을 벌여도 진즉에 벌였을 것이 분명하다.
홍화가 청랑을 보낸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럼 갔다 오도록 하지.”
씩 웃음을 지은 신유강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청랑 또한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한 차례 눈알을 굴려 신유강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괜스레 오한이 드는 듯 파르르 몸을 떨었다.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며 시선을 돌리자, 진소소의 매서운 눈빛이 그녀의 전신을 훑어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청랑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평범한 이들이 아니야.’
최고의 정보 단체라 불리는 하오문에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우스운 일이건만, 그녀가 보고 있는 이들은 그야말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였다.
정체를 모를 신유강이라는 남자는 물론, 장원에 있던 두 명의 남자까지, 그보다 더한 것은 저 진소소라는 여인이었다.
분명 낯익은 얼굴이기는 하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눈빛 하나만으로 심신을 사로잡는 힘은, 설령 하오문주라도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더욱이 무공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하고 있던 청랑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진소소 앞에서는 기가 죽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이 사람들?’
청랑은 작게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너무 혼란스러워 지금에서야 신유강에게 맞아 나갔던 이빨과 코뼈가 본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맞지 않았던가?’
청랑은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만졌다.
그 어떠한 고통은 물론이며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그 상황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하는 겁니까?”
“가, 가, 가요.”
태연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청랑은 화들짝 정신을 깨웠다. 지금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따가 봐요.”
팩 하고 고개를 돌린 진소소가 밖으로 나가자, 청랑은 조심스레 신유강의 뒤를 따르며 객실을 벗어났다. 방을 나섬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흥미진진한 활극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처럼,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소소와 어색한 모습으로 신유강의 뒤를 따르는 청랑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정작 본인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이상한 느낌…….’
신유강의 뒤를 따르고 있는 청랑은 주위를 둘러보다 다시 한 번 신유강의 뒷모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태연하기 그지없이 걷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청랑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시퍼런 안색으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럽니까?”
앞서 가던 신유강이 시선을 돌리며 청랑을 향해 물었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청랑은 눈을 부릅뜨며 신유강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고, 그 이유를 아는 이는 오로지 청랑뿐이다.
“아, 아닙니다.”
청랑은 흐트러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전신을 작게 떨고 있었기에, 신유강은 기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뒤를 걷고 있었던 청랑이 쪼르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것은 마치 신유강의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분명 목을 베었는데…….’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을 하고 있었다.
검을 쥐고 있었던 오른손에 타인의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멀쩡해…….’
앞서 가고 있던 청랑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신유강을 바라봤다. 태연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괴물 같았다.
第三章. 첩첩산중(疊疊山中)
사천성에 있는 모든 하오문의 분타를 관리하는 사람은 홍화였다.
그녀는 하오문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였으며, 무공은 물론 지략 또한 상당히 총명하여 차기 하오문주가 될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 느긋하게 앉아 생각에 빠져 있었다.
‘정말로 신유강이 소동에 대해 알고 있을까?’
사천에서 소동이라는 이름을 팔아먹는 사기꾼이 한둘이 아니다.
의신이라 불리는 자인 데다, 치료를 받은 이들 이외에는 얼굴을 본 자들이 없으니, 사기꾼들이 많은 것 또한 이해가 간다.
홍화는 신유강 또한 그런 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사라진 육평초의 말대로 신유강이 소동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하오문에서 그녀의 입지는 더욱 커질 것이고, 하오문의 차기 문주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인 것이다.
홍화는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하나 홍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신유강의 입을 열게 할 것이라 다짐을 하고 있었다.
“루주,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때, 방 밖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청랑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홍화의 시녀임은 틀림이 없다.
“들이게.”
침상에 앉아 있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신유강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으나, 어찌 되었든 아직까지 그가 손님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곧 방문이 열리며 신유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홍화는 살짝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앞이 아니라면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 같았던 청랑이, 신유강의 옆에 조용히 서 있었던 탓이다.
청랑은 하오문 내에서도 존재가 알려지지 않는 아이였다.
그녀의 존재는 오로지 홍화뿐이 알지 못하니 당연하다. 하오문의 고위 인사에게만 새기는 문신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청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새겨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런 권위도, 구속력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단 말인가.
-이게 무슨 짓이냐?
“…….”
홍화의 전음에 청랑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습을 감출 수가 없었다. 최대한 가까이서 신유강을 감시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싹튼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청랑의 전음에 홍화는 아미를 찌푸렸으나, 신유강의 앞인지라 차마 언성을 높일 수 없었다. 재빨리 신색을 고친 홍화는 그녀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지요, 공자.”
“고맙소.”
미리 준비를 해 두었던 자리에 앉은 신유강은, 코를 찌르는 분 냄새에 혀를 내둘렀다. 홍화는 기녀였으니 그녀가 분칠을 하는 것에 딱히 이상한 것은 없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독한 냄새였다.
진소소가 분칠을 하지 않으니, 분칠을 한 여인들의 냄새에 적응이 되지 않아 그러는 것일 수도 있으나, 신유강이 생각하기엔 그저 홍화의 분칠이 과한 것이었다.
“그래, 본 공자를 부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차 한 잔 마시지 않고 본론을 꺼내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청랑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객잔에서 이야기를 하던 신유강과 이곳에 있는 신유강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목숨을 노렸던 청랑에게는 기분 좋은 웃음과 말을 높이며 이야기를 했던 것에 반해, 사천 일대를 관리하고 있는 홍화를 상대로는 말을 낮추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한 홍화는 또다시 사람을 매혹시키는 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레 신유강의 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그녀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훅 하고 분 냄새가 퍼져 왔다.
남자라면 틀림없이 정신을 빼앗길 만큼 자극적인 냄새였으며, 매혹적인 자태였다.
그러나 신유강은 인상을 찌푸렸다.
“차는 되었고, 질문에 대답이나 하시오.”
“호호. 공자,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웃으며 말을 하기는 하나 홍화는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현재 신유강을 상대로 미혼술을 펼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 먹혀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뉜다.
눈앞에 있는 이 신유강이라는 남자가, 절정에 이른 고수이거나 혹은 고자이거나.
정보에 따르면 신유강이 무공을 익히고 있기는 하나 일류에도 들지 못한다고 했으니, 후자에 무게를 실을 수도 있었지만, 신유강은 현재 사천에서 유명한 여인과 함께 살고 있는 중이다.
둘의 사이가 부부나 다름없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절대 고자는 아닐 것이다.
홍화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도무지 밝혀 낼 수가 없으니, 괜스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홍화는 더 이상 미혼술을 발하지 않고, 화사하게 웃고 있던 표정마저 지우면서 삐딱한 모습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좋아요, 공자. 본 녀가 그대를 부른 것은 하나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금의신 소동에 대해 알고 있다지요?”
삐딱하게 변한 홍화의 표정만큼이나 신유강의 대응 또한 변했다.
우습지도 않다는 듯한 눈빛으로 홍화를 바라보던 그는 곧 시큰둥한 말투로 답했다.
“사천에서 소동을 모르는 이가 있다면 그게 더 우습지 않겠소?”
“제가 그런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저는 당신이 소동과 상당히 친밀하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신유강은 귀찮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육평초가 객잔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들었다. 당연히 정보력이 뛰어난 하오문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다.
반대로 사천 바닥에서 상당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사천당가가 조용한 것은, 우습지도 않은 농담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일 터.
“육평초, 그놈이 지껄이는 소리를 진담으로 받아들였나 보군.”
툭 하고 내뱉은 한마디에 홍화는 화사하게 웃었다.
“물론이에요. 앞뒤 정황을 따져 본다면 더욱 확실해지죠.”
그녀가 말하는 앞뒤 정황이라는 것은 신유강과 적대웅의 만남,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진 소동의 등장이었고, 그것을 이미 예측하고 있는 신유강은 굳이 묻지 않았다.
“내가 소동과 친밀하다면 어쩔 것이오?”
“소동과 연줄이 필요해요.”
“한마디로 소동을 이용해 한번 돈을 벌어 보자? 그런 말인가?”
“호호, 틀리지 않아요. 소동은 현 중원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자. 그런 자와 인연을 맺는다면 하오문 내에서 제 입지는 상당히 두터워질 테니까요.”
“하하하.”
신유강은 홍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청랑은 신유강의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