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그러나 며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낌새를 보이고 있지 않았던 탓에 언제부터인가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돌연 사라졌다니.
“뭔 짓을 했기에?”
“으음…….”
신유강은 그저 신음만 삼켰다.
그가 하오문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도박장 일이고, 다른 한 가지는 적대웅에게 얻은 정보 때문일 것이다.
신유강이 적대웅에게 정보를 듣자마자 돌연 마문승과 그 일가가 하남으로 돌아가 버렸고, 그 땅과 장원이 무림맹 손에 넘어갔으니, 우연이라 하기에는 영 꺼림칙한 이 상황을 조사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유강은 괜스레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이러나저러나 잡아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네놈은 은근히 숨기게 많아.”
“하하,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네놈 무공도 그렇고…… 살다 살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놈들은 또 처음 봤다니까.”
흑호는 아직까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것들을 떠올리며 은근슬쩍 신유강의 얼굴을 살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살수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신유강 또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모른 채, 당장이라도 살수들을 향해 손을 쓰려 했던 흑영과 흑호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어찌 본다면 진법 같기도 했고 흔히 말하는 도술 같기도 했던 그것은, 도무지 정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괴이했다.
“하하하,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요.”
신유강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루 종일 툇마루에서 뒹굴거렸더니 몸이 다 찌뿌둥했다. 이럴 때는 소소의 얼굴이라도 볼 겸 객잔으로 가서 일을 하는 것이 제일이다.
“어디 가려고?”
“객잔에 갑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객잔으로 간다는 말에 흑호는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가 봐야 점소이들처럼 접시나 나를 것이 불 보듯 뻔했으니, 괜스레 꺼려지는 것이다.
“됐다, 이놈아.”
퉁명스레 시선을 돌리는 흑호를 바라보며 웃던 신유강은 등을 돌렸다. 장원을 벗어나 느긋하게 기지개를 펴며 객잔으로 향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은, 참으로 태평스럽기 그지없다.
살수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손을 쓰던 그 잔혹했던 신유강의 모습은 마치 꿈이라 생각이 될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소소가 나갈 때 같이 나갈 것 그랬군.”
신유강은 혼자 객잔으로 나가던 진소소의 뒷모습이 떠올리며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쓸쓸해 보이지 않았던가.
퍽!
“응?”
그때 무언가가 자신의 뒷목을 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모기에 물린 것처럼 따끔한 그 느낌에, 신유강은 뒷목을 쓰다듬으며 의아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봐도 모기에 물린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돌이라도 던졌던 것일까?
그러나 주위에는 딱히 이렇다 할 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신유강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객잔을 향해 걸었다.
퍽!
“뭐지?”
이번에는 확실히 감이 왔다.
날아온 무언가가 확실하게 그의 마혈을 후려쳤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틀림없이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신유강은 가늘게 눈을 뜨며 주위를 둘러봤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낀 것이다. 그러나 무인으로서 수준은 고작해야 일류와 이류 사이에 지나지 않은 신유강이 숨어 있는 그림자를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랑(狼)은 홍화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 중 가장 뛰어난 그림자였다. 또한 랑의 능력은 하오문에 있는 잡배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무림에 나간다면 능히 일류 고수 소리를 들을 정도의 무력이 있는 데다, 단순히 살수로서 능력을 따진다면 백대고수조차 소리 소문 없이 다가가 목을 딸 정도로 대단한 은신술을 가졌다.
하오문을 박차고 나간다 하더라도, 어디 가서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이다. 그런 그녀가 하오문에 붙어 있는 것은 오로지 홍화가 베푼 은혜 때문이었다.
부모를 잃고 떠돌다 우연찮게 홍화를 만났으며, 그녀에게 거두어졌다.
만약 홍화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아사(餓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고, 저 앞에는 목표인 신유강이 있다. 그녀에게 있어 자그마한 돌을 이용해 멀리서 마혈을 짚는 것 따위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그것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실패할 리도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분명히 돌을 던져 마혈을 짚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유강은 멀쩡하기 그지없다.
혹여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을 날렸고, 마혈에 맞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신유강은 여전히 멀쩡했다.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돌멩이를 퉁겼다.
피융!
쏜살같이 날아가는 작은 돌멩이는 또다시 정확하게 신유강의 마혈을 짚었다.
퍽!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떠한 소리보다 컸다. 상당한 공력을 실었기 때문이다.
“컥!”
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는 고통에 찬 신유강의 단말에 비명이다.
무공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 저 정도 공력이 실린 돌멩이를 맞는다면, 굳이 마혈을 짚지 않아도 고통 때문에 정신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신유강은 잠시 신음을 흘림과 동시에 멀쩡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랑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다시 한 번 돌멩이를 들었다. 이번엔 극성에 내공을 끌어올렸으니, 단순히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필시 돌멩이는 신유강의 몸을 뚫고 나갈 것이고, 설령 마혈을 짚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충격에 정신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청랑(靑狼)은 그리 생각을 하며 다시금 돌멩이를 퉁겼다.
피슝!
날아가는 파공성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기척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신유강도, 그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매서웠다.
주변을 살피며 두리번거리고 있던 신유강은 돌연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에 기겁을 하며 몸을 틀었다.
퍼걱!
딱히 마혈을 노린 것이 아닌 공격임을 확인시켜 주듯, 그것은 아슬아슬하게 신유강의 복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신유강은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만약 피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몸을 관통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관통을 한다하더라도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다친 몸이 빠르게 치유가 된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
“누구냐?”
신유강은 부랴부랴 눈을 뜨며 돌멩이가 날아온 장소를 바라봤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다 딱히 몸을 숨길 만한 장소 또한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이 맞는지, 저곳에서 돌멩이가 날아온 것인지조차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만, 신유강은 돌을 던진 이가 그곳에 숨어 있다 확신하였다.
“저게 미쳤나?”
“왜 저런데?”
사람들은 갑작스런 신유강의 행동에 의아함을 머금은 채 저마다 입을 열었다.
돌연 무언가를 피하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마치 어딘가에서 누군가 공격을 했다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다.
반면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렸다.
더 이상 돌멩이가 날아오지는 않지만, 그것을 던진 자가 아직도 자신의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기척을 느끼지는 못하나 감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조용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으며, 사람 하나 죽어 나간다 하더라도 특별히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으슥한 골목이었다.
“…….”
신유강이 조심스레 몸을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랑은 쉬이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먼 거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조리 시도해 보았음에도 신유강은 멀쩡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신유강이 자신을 유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거리낌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일류에도 들어서지 못한 신유강이 어떻게 멀쩡한지 의문도 들었지만, 그보다 더욱 그녀의 심기를 거슬리는 것은 다름 아닌, 일류에도 들지 못한 신유강에게 자신의 공격이 일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청랑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第二章. 청랑(靑狼)
암영공(暗影功).
그것은 약 삼백 년 전, 중원을 누비며 무인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살황(殺皇)의 무공이었다. 숨는 것에 있어 천하에 따를 자가 없으며, 그의 암습을 받고 죽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한다.
비록 당시 천하제일 고수라 칭송받던 석무자를 해하려다 뼈아픈 실패를 하고 무림을 등지긴 했지만, 그의 무서움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랑은 과거 기연고서점에서 암영공을 손에 넣었다.
일 층에 있는 그것을 뽑아 든 순간 느꼈던 그 희열과 환희는, 겪어 보지 못한 이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홍화를 위해 그것을 익혔으며, 지금 이렇게 그녀의 옆을 지키며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암영공을 익힌 이들은 일체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
무공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섭게 타오르는 눈으로 신유강을 쏘아보고 있는 청랑의 모습은, 들끓는 살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상한 자존심을 신유강을 죽임으로써 만회하려는 것이었다.
‘죽인다.’
청랑은 검을 고쳐 잡으며 몸을 움직였다.
“곤란하군.”
반면 신유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그 근처를 살펴보아도 숨어 있는 자의 모습을 결코 찾아낼 수 없었다. 지난 번 살각의 살수들처럼 한 번 회귀신공에 기운을 쏘아 넣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나를 죽일 생각으로 찾아왔다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살수를 향해 할 말은 아니다.
본디 살수들은 어둠 속에서 사람을 급습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니, 결정타를 날리기 직전까지 어둠에 숨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런.”
당연히 대답은ㄴ 들려오지 않고 스르륵 하며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틀림없이 몸을 숨기고 있는 이가 움직인 것이라 판단을 하며 신유강은 긴장한 눈빛으로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뭐라도 보여야 싸우지.”
신유강 또한 은신술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회귀신공이라는 것 자체가 내공과는 그 궤가 다른 만큼, 같은 은신술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효용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직 완벽하게 회귀신공을 다스리지 못하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그러했던 것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태연하게 서 있는 신유강을 바라보는 청랑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언제든지 그를 공격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머뭇거리며 쉬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칼을 고쳐 잡은 청랑은 한참 동안이나 신유강의 모습을 살폈다.
이윽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마음을 굳힌 그녀가 쏜살과도 같이 신유강의 목덜미를 향해 나아갔다.
흑색 운무를 뒤집어쓴 그녀의 모습은 정면에서 보고 있다 하여도 칼을 휘두르는 순간까지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흐릿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