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第一章. 신유강(申流强)
사천성 하오문 루주 홍화는 장부를 뒤적거리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장부는 이 사천 땅에서 나름대로 유명한 데다, 도박장을 관리하는 적대웅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신유강이 도박장에서 쓴 돈에 대한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분명 신유강이 도박장에서 상당히 많은 돈을 잃고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온 날에 꼭 돈이 비었다.
“흐음…….”
짧게 한숨을 내쉰 홍화는 장부를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돈을 가로채는 이가 신유강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연도 겹치면 필연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신유강이 들어올 때마다 돈이 빈다는 것은, 그가 무슨 짓을 했다는 것과 같다는 소리다.
‘혹 적대웅이 그가 잃은 돈을 챙겨 준 것인가?’
홍화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적대웅은 뒷골목에서 하오문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는 이였다.
더욱이 하오문주에게 대단한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그가, 고작 친분 때문에 하오문에 손해가 될 일을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
홍화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여러 장의 서찰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최근 신유강을 감시하며 얻은 정보였다.
고운 손으로 서찰을 집어 든 홍화는 하나하나 집중하여 읽어 나갔다.
육평초가 기연객잔이라는 곳을 집어삼키기 위해 사람을 보냈을 때 일어난 일들과 갑작스런 풍백의 실종, 그밖에 세세한 것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풍백이라면 낭인 중에서도 이름이 있는 자인데.”
실종된 풍백이 발견된 곳은 사천에서 꽤 먼 곳에 떨어진 작은 촌이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지 비쩍 마른 데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사람을 보기만 하면 기겁을 하고 몸을 숨겼다.
더욱이 신유강의 이름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킨다고 써 있으니, 정보원들은 풍백을 이리 만든 이가 신유강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절정에 오른 고수 풍백의 단전을 부순다는 것은, 같은 경지에 오른 고수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신유강이 절정고수일까?’
홍화는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신유강은 확실히 주먹을 좀 쓸 줄 아는 듯 보였지만, 그에게선 무공을 익힌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가 절정에 오른 고수라면, 하오문에서 보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물론 신유강 주변에는 상당히 높은 경지에 오른 이들이 있었던 탓에 완벽하게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홍화는 돌연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다른 서찰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 사천을 떠난, 전 병부상서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가 소동에게 집과 땅문서를 넘기고 아들을 고쳤다고 적혀 있었다.
시기가 굉장히 적절했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마문승 부자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던 소동이, 신유강이 적대웅에게 이야기를 들은 직후 모습을 드러내어 마문승의 아들을 고쳐 주었고, 그 땅과 문서를 받았다.
더욱이 그 땅은 현재 사천당가의 막내딸이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에게 사들여 무림맹에게 넘긴 것으로 되어 있다.
홍화는 당소혜가 신유강과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다음 날 기연객잔에서 육평초가 헛소리를 하며 소리를 질렀다고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이 소동과 신유강의 관계를 말하고 있었다.
홍화는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숨을 골랐다.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이건 특급 정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동이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절세의 비급과도 같은 존재다.
어떠한 병이든 일각도 되지 않아 고치는 의술의 신이라 불리는 이이니 만큼, 만약 신유강과 소동이 관계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하오문조차 발칵 뒤집어질 정도로 대단한 일인 것이다.
홍화는 더 이상 도박장 일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랑.”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스르륵 하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복면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굴곡진 몸매였다.
그녀는 홍화 앞에 무릎을 꿇고 명령을 기다렸다.
“이 신유강이라는 자를 데려오도록 하세요. 은밀히.”
신유강의 곁에는 상당한 경지를 지닌 고수들이 있다.
누구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마교 쪽 인물들이라는 것이 홍화의 추측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목조차 속일 수 있는 것이 바로 랑이라 불리는 이 여인이다.
어린 나이에 굶어 죽어 가는 그녀를 홍화가 거두었고, 하오문의 온갖 기술을 가르쳤다.
언제부터였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그녀는 하오문 내부에서도 상대할 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무언가 기연을 얻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정작 청랑은 그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고, 주종의 관계로 그녀를 부릴 수 있는 입장에 있는 홍화는 더 이상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괜히 캐물었다가 청랑이 떠날 것을 염려해서다.
“존명.”
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움직였다.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심지어 눈앞에 있는 홍화조차 랑이 언제 사라졌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은신술이었다.
* * *
상인은 결코 함부로 돈을 휘두르지 말아야 한다.
육평초는 어렸을 적 그의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여태 그 말이 우습지도 않은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제대로 씻지도 못하였는지 얼굴은 덕지덕지 더러운 것들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살수들을 이용해 신유강과 진소소를 죽이려 한 그였으나, 일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살수들은 연락이 없으며 선수금으로 주었던 오백 냥은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살각과 연락도 되지 않으니, 육평초는 이번 일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가 패배자의 꼴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단단하게 기반을 쌓고 있는 동생 녀석이 한껏 비웃음을 날릴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육평초는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퉤엣, 빌어먹을.”
그를 지켜 주던 호위무사들은 어느덧 그의 곁에서 떠나갔다. 함께 있어 봐야 돈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순식간에 등을 돌려 버린 것이다.
다시 한 번 인생은 돈이 전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육평초는 며칠 동냥을 한 돈으로 화주를 한 병 샀다.
자기가 대운상단의 장자인 육평초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지들이나 쓸 법한 더러운 천으로 얼굴을 가리기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상당한 동정심을 얻기도 했다.
어쨌든 그가 구입한 화주는 독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며, 평소라면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싸구려였지만, 지금은 그 어떠한 술보다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이게 다 그놈 때문이다.”
까드득!
장원이 불에 타고 풍백이 사라졌으며, 소동에게 막대한 이자를 물면서까지 돈을 빌렸는데, 일은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들이 전부 신유강 탓이라 생각했다.
“그놈이 소동에게만 데리고 가지 않았더라면…….”
신유강은 웃기지도 않은 소리라 말을 하지만, 그는 확실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소동에게 안내한 신유강의 모습을 말이다.
그곳이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찾을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사천에서 진행하던 일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빼앗겼다.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마음이 쓰렸다.
그러한 것들은 예상외의 일인지라 어쩔 수 없다 생각을 해 보겠지만, 소동에게 돈을 빌린 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실수나 다름없었다.
그 당시엔 눈에 뵈는 것이 없어 미친 짓을 한 거다.
대운상단의 장자가 돈을 빌리다니?
게다가 뒤늦게 생각해 보니, 각서에 금인지 은인지 써 놓지도 않았다.
자신은 은을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금이라 우긴다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소동…… 그놈을 찾아야 한다.”
육평초는 소동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이 이상하게 꼬였으니, 지금 그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소동의 존재뿐이었다.
그 어떤 몸도 순식간에 치료를 한다는 그 무시무시한 능력만 있다면, 금 사십만 냥 따위 별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를 찾아야 한다고 했는가?”
그때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 이들이 있었다.
흑의를 입고 있는 무리였다. 아무리 어두운 골목이라고는 하지만, 환한 대낮이기에 사람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못 알아챌 리가 없었다.
술에 취해 있는 육평초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평초는 이들이 나타나는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그 사실은 이들이 틀림없이 무공을 익힌 고수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더욱이 조금 전 스치듯 보았던 검은 기운은 틀림없이 마기(魔氣)였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이 바로 마교의 사람이라는 소리다.
육평초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한 남자가 입을 열며 손을 움직이자, 어느새 육평초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흑의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게 잡아도 오십여 명은 될 것 같았다.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기도를 지니고 있는 데다, 눈빛과 기세가 매서운 탓에 육평초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누구를 찾아야 한다고 했느냐?”
육평초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들의 기세에 정신이 억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차갑게 변해 가는 남자의 눈빛을 본 육평초는 힘겹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소, 소…… 소동이오.”
사천에서 소동을 모르는 이는 없다.
비단 사천만이 아니라 중원 전역에서 그 이름을 떨쳤다. 돈만 준다면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는 의신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남자는 재차 확인을 하려는 듯했다.
“네가 말한 소동이 금의신이 맞느냐?”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한마디에 육평초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불안하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이유는 상대가 극악무도한 마교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네놈이 소동의 위치를 아느냐?”
“모…… 모르오.”
“그렇군.”
집요하게 소동에 대한 것을 물을 것이라 생각했던 흑의인 남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육평초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들려오는 소리에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르릉!
그마큼 검이 뽑혀져 나오는 소리는 전신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금속음이 어찌나 살벌하게 느껴지는지 온몸에 소름이 다 돋아 날 지경이었다.
“이, 이보시오. 왜, 왜 이러시오.”
“묻는 말에나 대답을 해라. 다시 묻지. 네놈이 소동의 위치를 아느냐?”
“나, 나는 모르오.”
“아는 이가 있다는 소리로군.”
흑의인이 슬그머니 운을 떼자 육평초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