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그사이 어느새 고통을 가라앉힌 육평초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신유강을 쏘아봤다.
그 시선이 어찌나 매서운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듯하였다.
“네 이놈!”
“이보시오.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남의 객잔에서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는 상식도 모르시오?”
신유강은 담담하게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육평초의 심기를 긁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책임이 신유강에게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 나를 잊었다고 말하는 것이냐?”
“하아?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네놈이 나를 산속에 버리고 가지 않았더냐!”
“하 참, 대낮부터 취하셨습니까?”
산속에 버리고 갔다는 말 때문인지, 여기저기에서 피식거리는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육평초의 처참한 몰골은 산을 내려오지 못하고 헤맨 탓에 저리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내가 언제 당신과 산을 갔단 말입니까.”
“네놈이 나에게 은 이십만 냥에 객잔을 판다고 하지 않았더냐!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소동에게 이십만 냥을 빌리기 위해 함께 갔고 말이다!”
육평초는 지난 일을 모두 떠올리며 말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 그대로 말을 하였지만, 들려오는 것은 사람들에 비웃음 소리와 신유강의 어이없는 말이다.
“이제 보니 대운상단의 소상단주이신 것 같은데……. 그런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제가 객잔을 판다고 했다고요?”
“그러하지 않았느냐!”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은자 이십만 냥에 이 객잔을 당신에게 팔 것 같습니까?”
“네놈이 분명 문서를 가져와 판단하고 했지 않으냐!”
“어허, 천하십대상단 중 한 곳의 작은 주인께서 이 무슨 몰상식한 행동입니까? 도대체 내가 왜 당신에게 객잔을 팔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 이놈이!”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는 육평초는 할 말이 없었다. 당사자인 신유강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증거 없이 몰아붙여 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육평초는 격하게 머리를 헝클였다.
짜증이 치솟았다. 그것도 심각하게 말이다.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제가 정말로 당신에게 객잔을 판다고 했습니까?”
“그렇다!”
“언제 말입니까?”
신유강은 살짝 삐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사람을 위협하는 것 같은 모습이긴 했지만, 육평초는 당당했다.
자신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기억들은 결코 날조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늦은 밤에 네놈이 나를 찾아와서 그리 말하지 않았더냐.”
“좋습니다. 제가 만약 그런 짓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소동은 뭔 소리고, 이십만 냥은 또 뭔 소리입니까?”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육평초는 이제야 신유강이 진실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라 생각을 했는지 당당하게 소리를 쳤다.
“내가 지금 당장 돈이 없다 하니, 네놈이 소동에게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소동에게 돈을 빌린다는 말에 여기저기에서 또다시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눈앞에 있는 신유강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한차례 조소를 짓던 신유강이 말했다.
“고약한 꿈이라도 꾸셨나 보군요. 소동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적이 있지만, 그분이 염왕채를 놓는다는 건 처음 듣습니다. 하하하.”
“푸하하, 금의신이 염왕채라고? 지나가는 개가 다 웃겠다.”
“아니, 그것보다 말일세. 대운상단의 소상단주가 은 이십만 냥도 없다는 것이 더욱 웃긴 말이로군.”
“그러고 보니 그렇군?”
사람들이 하나둘씩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자, 정작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은 육평초였다.
시꺼멓게 변해 버린 얼굴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얼굴을 붉히고 있을 것이다.
“소동을 본 사람은 있어도 그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애초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어찌 찾아간단 말입니까?”
“네, 네놈…….”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하는 신유강의 모습에 육평초는 더 이상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당소혜 또한 비웃음을 머금었다.
신유강의 말 그대로다.
사천에서 유명한 소동이긴 하지만, 그가 어디에 사는지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사천당가의 정보력뿐만 아니라, 하오문과 개방의 정보력까지 다 동원해도 찾아낼 수 없었는데, 신유강이 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시…… 시끄럽다! 어서 객잔 문서를 가지고 오지 못할까!”
육평초는 말로 해 봤자 일이 풀리지 않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객잔에서 머물고 있었던 그의 호위들이 시끄러운 소리에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챙챙!
자신이 모시고 있는 이에게 비웃음을 머금은 사람들을 향하여 칼을 뽑아 든 그들은 진득한 살기마저 뿌리고 있었다.
당소혜가 아미를 좁히며 한 걸음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것을 막아 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신유강이었다.
“이렇게 칼로 위협을 하시니 할 말이 없군요. 좋습니다. 그 허황된 꿈 그대로 이루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십만 냥에 사신다고 하셨습니까? 돈부터 주십시오.”
“유, 유강아!”
이런 위협 속에서 객잔을 판다는 소리를 하자, 장삼이 크게 소리를 치며 다가오려 했다.
그런데 신유강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발견하고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좋다! 당장 주도록 하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긴 했지만, 육평초는 결국 이 험악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객잔을 팔겠다는 신유강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은 가진 놈이 이기기 마련이다.
“여기 이십만…….”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그는 산속을 헤매면서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전표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기에 몇 번이고 확인을 해 보았다.
객잔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전표들은 그의 품 안에 존재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뒤져 보아도 전표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조금 전 널브러지면서 떨어뜨린 건가?’
은근슬쩍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지만, 전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가 주워 간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하십니까? 이십만 냥을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혹시 돈이 없는 겁니까?”
신유강의 비릿한 조소를 바라본 육평초는 더욱 사색이 되어 품을 이리저리 뒤져 보았다.
그러나 그가 전표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천하십대상단이라는 대운상단이 돈 한 푼 없이 남의 객잔을 집어삼키려 하는군요.”
그 순간, 한 사람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있었다.
청량함을 머금은 그것은 마치 사람의 심신을 맑게 해 주는 그러한 목소리였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백의 경장을 입고, 질끈 머리를 동여맨 진소소가 가늘게 눈을 뜨며 육평초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어머.”
“히힉.”
신유강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고, 당소혜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반대로 진소소의 곁에서 그녀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던 장삼은 기겁을 하는 신음을 흘리며 후다닥 주방으로 도주를 하였다.
“뭐, 뭔가 잘못되었다. 부, 분명히 내 품속에…….”
“칼로 사람을 위협하고, 있지도 않는 돈으로 내 객잔을 집어삼키려 한 겁니까! 지금?”
내 객잔이라는 말을 꽤 강조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진소소가 단순히 얼굴만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육평초는 진소소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를 보호하고 있는 호위들이 덜덜 몸을 떨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젠장, 풍백만 있었더라면.’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갔을 것이라 생각되는 풍백만 이곳에 있었더라면, 당장에 이 연놈들을 잡아 무릎을 꿇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켜 봤자 소용이 없었다. 생전 이렇게 위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 몰골이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칼을 거두세요.”
한마디였다.
진소소가 고작 한마디 했을 뿐인데, 칼을 뽑아 들고 있었던 이들이 어느새 검을 회수하였다.
그것은 마치 왕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신하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 이놈들! 뭣 하느냐! 왜 칼을 거두는 것이야!”
“하,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누가 봐도 육평초에게 극도로 불리했다.
그들은 진소소의 말대로 칼을 뽑아 사람들을 위협하였고, 객잔을 산다고 말을 하였지만, 육평초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강탈.
그것도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더욱이 진소소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이 절로 위축되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이 어찌나 두렵고 살벌한지, 마치 절대고수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강호에 몸을 담지 않았지만 지금 이 느낌을 알고 있었다.
바로 풍백이 그들에게 뿜어대는 살기와도 같았다.
“내 참, 뭔 일인가 했더니 별 거지 같은 것들이 다 와서 설치네. 어서 안 꺼져, 이것들아?”
어느새 흑호마저 등장을 하며 소리를 쳤다.
동네 파락호들과 다를 바 없는 말투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은은하게 흘러들어오는 이 기세는 결코 삼류 무인들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느낀 것은 육평초 또한 마찬가지다.
‘대, 대체 이 객잔은 정체가 뭐냐!’
얼굴만 아름다운 여인이라 생각을 했던 이는 절정에 오른 고수 같았고, 동네 파락호처럼 보이는 자 또한 그에 못지않다.
어디 그뿐인가?
객잔 주위로 슬금슬금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험악하기 짝이 없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근방을 주름잡는 왈패들처럼 보였다.
육평초를 비롯해 그의 호위들은 할 말을 잃은 듯 멍 한 눈초리였다.
설령 풍백이 이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결코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제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합니다.”
“무, 물론이오.”
“다시 한 번 제 객잔을 노리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아, 알겠소. 내 두 번 다시 이 객잔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소.”
육평초를 비롯한 그의 호위들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꽁지 빠지게 달려 나가는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던 객잔 손님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저것 봐라. 십대상단이니 뭐니 해도, 여긴 못 건드린다니까.”
“자네, 보았나? 그놈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것을 말일세.”
“대운상단이면 악명이 높은 곳인데, 내 속이 다 후련하구먼.”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에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