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옆에 진소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밤새 신유강을 기다린 탓에 아직까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신유강에게 말을 건 것은 다름 아닌 당소혜였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차림과 함께 그 화사한 외모를 빛내며 나타난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모조리 앗아 갈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객잔에 있는 손님들 대부분이 당소혜를 바라보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사천당가의 일원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녀가 누군가에게 눈길을 받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넋을 잃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호되게 당한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 기연 객잔에 다니는 손님들은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당소혜는 슬그머니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이 층 구석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신유강이 뒤를 따라갔고, 어느새 그녀의 정면에 자리를 잡았다.
서로 마주 보고 있던 탓에 당소혜는 슬그머니 얼굴을 붉혔으나, 빛이 들어오지 않은 구석 자리라 티가 나지는 않았다.
“그, 그래서 나를 보자고 한 용건이 뭐야?”
“돈이 될 만한 것을 알고 있거든.”
“돈이 될 만한 것?”
“저번에 사천당가에서 땅을 구하고 있다고 했지? 무관인가 뭔가를 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지난번 대운상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무관을 세운다는 말을 신유강에게 했던 것을 기억해 낸 당소혜는 두 눈을 반짝 빛냈다.
“마땅한 곳이 있어?”
사천에 세워지는 무관이니, 이번 일의 총책임자는 당초운이었다.
그러나 쉬이 땅이 구해지지 않았고, 믿었던 대운상단마저 소식이 잠잠했기에 요 며칠 동안 꽤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소혜는 아버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한껏 기분이 들떴다.
“있지. 장원과 땅, 전체적으로 보자면 너희 집보다 더 넓다.”
“정말이야?”
당소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쳤다. 사천에서 발이 넓은 것은 비단 신유강뿐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 사천을 주 무대로 활동을 해 왔던 당가는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정보망보다 더욱 넓고 확실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사천에서 그러한 땅이라면 몇 군데 되지 않았는데, 그곳의 주인들은 땅을 팔 의사가 없었고, 이제 남은 곳은 신유강의 객잔과 후원, 그리고 장원이었다.
그러나 신유강이나 진소소가 이곳을 팔 리가 만무할 테니,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남은 곳은 어디인가?
바로 전 병부상서가 가지고 있는 곳이다.
몇 번이나 당초운이 마문승을 찾아가 보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무림맹 측에서도 사천이 아니라 하남에 무관을 짓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지을 곳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딘데? 어딘데? 누가 가지고 있는 땅이야?”
무관이 사천에 생긴다면 사천당가에 돌아오는 이득은 적지 않다.
수많은 무인들이 사천으로 몰릴 터이고, 온갖 상권을 가지고 있는 당가에게 팔대세가 후미(後尾)에서 단박에 날아오를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당소혜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쳤다.
어찌나 큰지 객잔에 있는 사람들에 이목이 모조리 쏠릴 정도였다.
“이거다.”
품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전 병부상서의 장원과 그 근방에 있는 땅들의 문서였다.
당소혜는 절대로 팔 것 같지 않았던 마문승의 땅문서를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위조인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살펴보았지만, 딱히 위조한 것 같지 않았다.
“이거 어떻게 손에 넣은 거야?”
“그런 건 알 필요 없고, 어때? 살 거야, 말 거야?”
“사야지!”
단호하게 대답하는 당소혜를 바라보며 신유강은 웃음을 지었다.
“좋아, 그럼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제일 먼저 이것을 내가 너에게 팔았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그건 왜?”
“내가 싫으니까.”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기에 신유강의 말을 들은 당소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문서를 내려다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다고 한들 사천당가의 힘이라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을 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무관이 생긴다면 하북진가 놈들도 이곳으로 찾아오겠지?”
“그, 그렇지.”
“미리 말을 해 두지만, 절대 그놈들이 소소와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갑자기 하북진가에 대한 말이 나오자 당소혜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이 문서를 하북진가에게 사기를 쳐서 빼앗은 건가?’
그러나 곧 진소소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눈을 끄게 뜨며 물었다.
“설마…… 어, 언니가?”
“입 다물어라.”
당소혜가 뭔가 눈치를 챈 듯 말하자 신유강이 싸늘하게 말했다.
당소혜는 오래전부터 그를 알아왔지만, 이처럼 차가운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다.
가늘게 뜬 그의 눈빛을 바라보자,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살기(殺氣)였다.
신유강이 그녀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경고한 것이다.
당소혜는 자신의 손에 흥건하게 땀이 맺힌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북진가…… 언니가 말이지?’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진소소는 아무리 봐도 명문세가의 자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강한 무공을 익히고 있으니, 지금까지 숨은 고수의 제자라든가 혹은 알려지지 않은 명문 무가의 후손이라 생각을 했는데, 하북진가라니?
“하지만 언니의 무공은…….”
하북진가의 여식이라면 하북진가의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진소소의 무공은 지금까지 당소혜가 보았던 진가의 무공과는 그 궤가 달랐다.
하여 여태껏 하북진가를 염두해 두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제대로 무공을 펼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명문가의 무공이라면 사소한 손놀림에도 그 정수가 담겨 있는 법이다.
그러나 신유강은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아무것도 묻지도 말고, 들은 척도 하지 마라.”
“으, 응.”
당소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왠지 모르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파고들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유강의 눈빛이 매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결코 말이다.
“그것만 지키면 되는 거야?”
“아, 그리고 다 합해서 금 오십만 냥이다.”
“금 오십만 냥?!”
은자도 아닌 금 오십만 냥은 결코 당소혜가 멋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천하십대상단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그 금액이라면 게거품을 물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니, 당소혜는 신유강이 부른 액수가 실감이 되지 않았다.
“대운상단이 무림맹에 이 객잔과 근처 땅을 파는 데 금 사십만 냥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그보다 입지 조건이 좋고 넓으니까, 금 오십만 냥은 줘야지. 팔대세가와 구파일방이 모두 모인 곳에서 그 정도도 못 줘?”
당소혜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그걸 나보고 너한테 주라고?”
“그럼? 땅을 팔았으니 당연히 돈을 줘야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면서…….”
애초에 돈을 주는 것은 당소혜가 아니다.
무림맹에서 나오는 것이니 만큼, 당소혜가 함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초운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지만, 그녀의 위치는 그 정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뭐야, 안 되는 거야?”
신유강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문서를 손에 넣어 쥐도 새도 모르게 당소혜에게 팔려고 한 계획이, 어이없는 곳에서 물거품이 되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이렇게 하자. 내가 이걸 아버지한테 주고 돈을 나중에 가져다줄게. 그 정도로 큰 금액을 내가 어떻게 가지고 다녀? 그리고 오십만 냥도 안 될 수 있지만…….”
무림맹에서 정한 적정 금액이 있으니 만큼, 그리 큰 금액은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대운상단에서 사십만 냥을 불렀다고 한다면, 신유강이 팔 땅도 능히 그 정도 금액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유강의 이름을 거론할 수 없으니, 전면적으로 사천당가의 이름을 걸고, 무림맹 인사들을 압박해야 하는 꼴이 되겠지만 말이다.
신유강은 그것이 영 내키지 않는 것인지 인상을 찌푸렸으나, 대운상단에 은 이십만 냥을 받고 파는 것보다 더욱 큰 이익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되도록 황룡전장의 전표로…… 무슨 말인지 알지?”
“으, 응.”
“됐어, 가 봐.”
당소혜는 볼일이 끝났으니 나가라는 듯 말을 하는 신유강 때문에 살짝 마음이 상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품속에 문서들을 갈무리했다.
어린아이가 감당이 되지 않는 큰 돈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그녀는 콩닥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발 빠르게 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객잔으로 한 거지 몰골의 남자가 들어섰다.
“이 개자식! 어디 있느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육평초였다.
얼마나 심하게 산속을 헤맸으면 몰골이 말이 아닐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는 씩씩 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히죽 웃음을 짓는 신유강과 눈을 마주하자, 득달같이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죽여 버리겠다!”
무공조차 익히지 못한 육평초의 주먹을 그냥 맞아 줄 신유강이 아니다.
그는 은근슬쩍 곁에 있는 당소혜를 끌어당겼으며, 당소혜는 돌연 신유강의 행동 때문에 자신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게 된 육평초를 향해 냅다 주먹을 뻗었다.
퍼걱!
당소혜의 주먹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순간적이라고는 하지만 미약하게 내공이 섞여 있던 탓에 내공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육평초의 얼굴이 순식간에 뭉개졌다.
“으아악!”
우당탕!
커다란 소리를 내며 넘어간 육평초는 탁자 위에 엎어졌다.
무너진 탁자 위에서 뒹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주먹을 뻗어 버린 당소혜는 당황을 금치 못하였다.
“뭐, 뭐야?”
피 묻은 주먹을 닦아 내며 당소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육평초를 바라봤다.
애초에 둘은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을 뿐인 데다, 그 당시 육평초가 당소혜에게 수작을 거는 바람에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둘렀으니 당소혜가 육평초를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오, 역시 사천당가의 아가씨는 달라. 그 짧은 순간에 주먹이 먼저 나가는군.”
만약 당소혜가 아닌 진소소였다면, 단순히 코뼈가 가라앉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한 것까지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저 사람은?”
“글쎄?”
신유강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연 덤벼들기에 당소혜를 이용한 것뿐이라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너를 아는 것 같은데?”
“내가 저 사람의 원수와 닮은 모양이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신유강 때문에 당소혜는 꽤 곤혹스러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