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신유강과 당소혜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소혜는 쥐뿔도 없으면서 진소소와 함께 지내는 신유강이 못마땅하였고, 신유강은 진소소에게 달라붙으며 자신에게 이를 가는 당소혜가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런 날 정도는 위로 해 줘도 될 텐데…….’
“오늘은 좀 심했어요.”
“하하, 쟤는 기억이 나빠서 금방 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욕이나 다름없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진소소는 납득이 갔다.
사천당가, 그것도 직계라는 점에서 어디 꿀릴 것 없는 배경이기는 하나, 살짝 머리가 나쁘고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이며, 제멋대로 구는 성격을 지닌 것이 당소혜였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진소소는 새치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잘 아네요?”
“그야 예전부터 봐 왔으니까.”
수많은 회귀를 거치며 상당히 오랫동안 성질을 겪었기 때문에 아는 것이지만,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진소소로써는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물론 따지고 보자면 당소혜보다 진소소를 더 잘 알고 있는 신유강이었으나, 내색을 하지 않았으니, 진소소가 그러한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신유강은 남은 화주를 잔에 담아 마시며 힐금 진소소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이 새초롬하게 변하였고 눈빛이 날카로운 것이 아무래도 질투를 하는 모양이다.
신유강은 그 모습도 귀엽다는 생각을 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누구지?”
반 시진 후,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 남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조금 전 당소혜가 앉아 있던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앞에는 진소소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으며, 그 옆에는 신유강이 다소 퉁명스런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한동안 진소소의 외모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는데, 신유강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하하, 너무 아름다운 분이신지라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군요.”
남자의 한마디의 신유강과 진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나 속으로 혀를 찼다.
‘덜 맞았군.’
신유강은 그리 말을 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반면, 진소소는 그의 눈빛이 자못 불쾌했는지, 품속에 고이 모셔 두었던 단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아, 이런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대운상단의 육평초라 합니다. 이래 봬도 그곳의 소상단주이죠.”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처참한지 깨닫고는 있는 듯,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는데, 육평초를 호위하던 남자들이 이를 갈며 주위를 쏟아보자 곧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반면 진소소는 그가 대운상단이라는 말에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대운상단은 중원십대상단 중 하나이며 어느 정도 상권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들어 봤을 법한 곳이었다.
다만 그들이 활동하는 곳은 대체로 산서 땅이었고, 상계에서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는 곳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어째서 사천 땅에 온 것인지 진소소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희를 보자고 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처음 이들이 널브러졌을 때 신유강은 쓰레기를 치우듯 하나하나 객잔 밖으로 내다 버렸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육평초가 기연객잔의 주인인 신유강과 진소소를 만나기를 원하였다.
진소소는 이들과 엮이는 것이 영 달갑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적의 없는 이들을 내쫓을 수는 없었기에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던 것이다.
“하하,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보군요.”
진소소가 대답없이 웃음으며 차만 들이켰다.
육평초는 자신이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처음 미모에 혹해 당소혜에게 껄떡댄 것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실수라고 할 수 있으나, 이렇다 할 배경도 없는 계집이 자신을 무시하니 조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
그저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릴 뿐이다.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제가 이곳에 온 것은 객잔 주인인 신 공자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말입니까?”
신유강은 존대를 해 주었다.
꼴이 우스운 놈이기는 하나 대운상단은 그 역시 알고 있을 만큼 커다란 곳이었고, 그런 곳의 소상단주라면 나름대로 중원에서 대우 받을 위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못마땅한 것은 못마땅한 것이다.
그 때문에 대답을 하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것은 진소소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육평초는 이 두 연인이 꼭 닮았다는 것에 만금을 걸 자신이 있었다. 둘의 표정은 조금 전부터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동시에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소소가 미간을 찌푸리면 신유강 또한 미간을 찌푸렸고, 신유강이 웃으면 진소소 또한 웃었다. 천생연분(天生緣分), 천생배필(天生配匹)은 아마도 이 두 사람을 위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던 육평초는 저도 모르게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올해로 서른이 된 그는 아직까지도 배필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지만, 육평초는 그것을 몰랐다.
“약관 나이로 사천의 십대거부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능력을 지닌 분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찾아 온 겁니다.”
육평초는 싱글싱글 웃음을 지으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서로의 신분만 따지면 그가 위를 점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한껏 예를 차리며 신유강을 띄워 주는 것이 참으로 비굴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듣는 이들은 그리 나쁜 말이 아닌지라 곳곳에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객잔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신유강과 어렸을 적부터 함께해 온 이들이었고, 지금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주인이었기에, 주인의 칭찬을 듣는 것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찬이십니다. 대운상단처럼 큰 명성을 지니고 있는 곳에서 저를 높게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유강은 포권을 취하며 말을 하면서도 닭살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육평초의 말투 하나하나가 느끼하기 그지없었으며 눈빛 또한 그리 좋지 않았고, 얼굴에 새겨진 멍 자국 때문에 쳐다보는 것만으로 웃음이 터질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제발 빨리 눈앞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은 진소소 또한 같았다.
오늘은 빨리 장원으로 돌아가 신유강에서 손수 음식을 차려 줄 생각으로 온갖 재료들을 사 놓았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목을 잡히고 있으니 그녀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진소소는 한차례 신유강을 바라보다, 그의 표정 또한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짧은 한숨과 함께 육평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네요, 공자. 저희가 일이 있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되지 않습니다. 용건이 끝나셨다면 먼저 일어서도 될까요?”
옛말에 익자삼우(益者三友), 손자삼우(損者三友)라 했다.
유익한 벗에는 세 종류가 있고, 해로운 벗은 세 종류가 있다는 뜻이다.
진소소는 육평초를 후자라 여기고 있었고, 신유강과 친분을 쌓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하, 제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마저 들어 보고 가시지요.”
육평초는 겉으로 웃으면서도 속으론 쌍욕을 했다.
얼굴은 아름다운데 어찌나 도도하고 말을 섞기가 힘든지,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 곤혹스러울 지경이었다. 기왕이면 신유강과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일어서니 자연스레 신유강 또한 일어서자 어쩔 수 없이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를 보자는 이유가 인사 말고도 더 있었습니까?”
신유강은 살짝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대운상단이 활동하는 지역이 산서이니 만큼, 이리 자신을 찾아와 얼굴을 보겠다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무얼 얻기 위해 저리 열심히 아첨을 하며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인지 사뭇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유강은 다시 자리에 앉아 차를 들이켰다.
그러자 육평초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이번에 사천으로 사업을 확장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신유강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예의가 없는 짓이었으나 누구도 신경을 쓰는 자가 없었다.
“하여 사천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다 이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유강은 이놈이 왜 자꾸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인지 짜증이 치솟았다.
“사천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고, 또한 목도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여 저희 대운상단이 이 객잔을 비싼 값에 인수를 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그 말에 객잔에 있던 모든 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중원십대상단인 대운상단이 나서는 일이니, 시세보다 비싼 값에 사들일 것이 뻔했고, 도박으로 인해 돈을 탕진한 신유강에게 있어 크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강이 객잔을 넘겨 버린다면 길바닥에 나앉을 이들이 상당했다.
일례로 점소이로 일하고 있는 이들은 사색이 되었고, 숙수인 장삼 또한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신유강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에 사시렵니까?”
“삼만 냥입니다.”
만 냥이라 해도 어마어마한 거금이며,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런데 육평초는 그 세 배인 삼만 냥이란 금액을 제시하고 있었다.
모두 그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육평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객잔뿐 아니라 뒤에 있는 땅과 별채까지 합해서 오만 냥을 드리겠습니다.”
기연객잔은 그 규모도 크지만, 객잔 뒤편에는 그에 못지않은 규모로 지어진 후원이 있다. 그곳에는 점소이들의 숙소와 혹은 지체 높은 이들이 묵을 곳을 원할 때 사용되는 곳이었다.
육평초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득의양양했다.
사천의 거부라 불린다고는 하지만, 그가 보기에 둘은 아직 어렸고, 이들에게 오만 냥은 몇 년이 걸려도 못 모을지도 모르는 큰 금액이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들이 있을 리 없었다.
더욱이 대운상단에서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일이니, 후한이 두려워서라도 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거절하겠어요.”
진소소의 대답에 육평초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래도 신유강이 이곳의 주인이라고 들었기에 그의 의견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그를 바라봤으나,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육평초는 순간 얼굴을 붉혔다.
“설마 돈이 모자라서 그럽니까? 그렇다면 칠만 냥 어떻습니까?”
“이곳은 저희 둘의 추억이 서린 곳에요. 그런 곳을 고작 돈에 눈이 멀어 팔 것이라 생각을 하셨나요? 이만 돌아가 주셨으면 해요.”
“허, 고, 고작이라니. 은 칠만 냥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