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먹는 이의 내공을 늘려 주는 것은 물론이며, 그 어떠한 병도 치료한다는 절세의 영약이니, 진소소의 말마따나, 선기단이 확실하다면 금 천 냥이 아깝지 않은 보물인 셈이다.
그러나 그림의 떡이다.
흑영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돈을 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후우…… 나를 놀리지 말게나.”
“어머, 진짜였는데 안타깝네요.”
“하하, 선기단이 그처럼 흔한 것도 아니고, 내 아무리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폐인이긴 하나, 네 말에 속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진소소는 안타깝다는 탄성을 내지르며 선기단을 품에 갈무리했다.
반면 신유강은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진짜 선기단을 눈앞에 두고 믿지 못하는 어리석은 흑영이나, 석무자의 선기단을 팔려는 진소소나 참으로 우스운 상황이 아닌가.
“그럼 저는 방으로 돌아가 볼께요. 내일 뵈요.”
의방이긴 하지만 신유강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중 의원은, 아주 약간의 금액만 받고 진소소와 신유강에게 따로 방을 내주었다.
물론 그리 좋은 곳은 아니지만, 자는 것에는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깔끔한 곳이다.
어쨌든 진소소가 밖으로 나가자 남은 세 명의 남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흑호는 영단을 먹어 보고 싶지만, 그 비싼 값에 한숨이 나온 것이고, 흑영은 자신의 몸 때문이다.
반면 신유강은 자신 때문에 이리 된 흑영에게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한때는 정말 죽이고 싶은 적이었지만, 몇 번 이야기를 해 보니, 그들 또한 그리 나쁜 사람들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아직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만큼 모질지 못했다.
광마도의 일은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것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자신 때문에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흑영에겐 좀 미안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아직 힘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만…….”
“네 탓이 아니다. 무인이란 칼끝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자. 우린 너를 죽이려 했고, 너는 자신의 몸을 지키려 한 것뿐이다. 앞뒤 따지지 않고 덤빈 우리의 잘못도 크니, 그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게다가 이렇게 돌봐주고 있으니, 내가 더 미안하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흑영은 담담하지 못하다.
십 대 중반밖에 되지 않은 소년에게 당했다는 것도 억울한데, 몸마저 성하지 못하니 참담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말을 하기도 창피하다.
원래는 다친 몸이라고는 해도 마교로 돌아가 일의 전후를 보고해야 했다.
그가 그러지 못한 것 또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수 많은 마교 수뇌부 앞에서 광마도와 흑호, 그리고 흑영대주인 자신이 소년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어찌 발설할 수 있겠는가?
흑영은 씁쓸히 웃었다.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을…….”
의미없이 흘린 그 한 마디에 신유강은 퍼뜩 흑영을 바라봤다. 되돌아간다? 그것이야말로 귀(歸)의 힘이지 않은가?
‘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신유강은 어이없어 웃었다.
다른 사람의 신체를 과거로 돌린다는 게?
아무리 신인이 만들어 낸 무공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어이없는 생각에 자신도 우스웠다.
하지만 신유강은 곧 씁쓸하기 짝이 없는 흑영의 표정을 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잠시만 제가 좀 보겠습니다.”
“응? 뭘 하려 하는 게냐?”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의미모를 신유강의 한 마디에 흑영은 고개를 갸웃하다, 진지하기 짝이 없는 눈빛 때문인지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신유강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뭐하려고?”
흑호는 긴장을 하며 그 광경을 뚫어지게 살폈다. 서로 으르렁대며 살기는 하지만 엄연히 십여 년을 함께해 온 대주다.
이런 곳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잠시 살펴보기만 할 겁니다.”
“만약 우리 대주가 잘못된다면 네놈도 각오해라.”
애초에 신유강을 이길 수 있다 생각을 하지 않으나, 흑호는 진심으로 목숨을 걸고 죽일 것이란 의지를 보여 주고 있었기에 신유강 또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강은 흑영이 덮고 있는 이불을 걷고는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마음을 다스리고 전신의 기맥을 돌고 있는 기운들을 불러 모으며 집중을 한다.
신(信).
믿는다.
귀(歸)에 공능을 끌어올려, 흑영의 몸을 과거의 온전한 상태로 돌릴 수 있을 것이란 굳건한 믿음을 머릿 속에 새겼다.
‘된다. 반드시 된다.’
신유강의 손 끝에 모인 기운들이, 서서히 흑영의 몸을 잠식해 나갔다.
“윽!”
흑영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이내 기분이 좋아졌는지 표정을 되찾았다. 자신의 몸 안에서 기이한 기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보다 청량하였으며, 내공과는 어딘가 다른 기운.
참으로 신기한 기분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신유강이 손을 떼며 숨을 골랐다.
그 순간 몸 안에서 청량한 기운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기에 흑영은 한순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손이 아무런 이상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 움직인다!”
“이게 무슨…….”
열흘 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몸이니, 뻐근함 같은 것이라도 남아 있어야 함이 분명한데, 기이하게 그러한 느낌조차 없다.
마치 평소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흑영과 흑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신유강을 바라봤다.
그러나 정작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신유강이다.
자신이 행한 일이었지만,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고칠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바뀌자, 회귀신공은 그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고, 흑영은 완벽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것도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게 말이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흑영은 껄껄 웃으며 다가와 몇 번이고 신유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영원히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너, 대체 뭘 한 거야?”
흑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신유강은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이 기이하기 짝이 없는 능력이 얼마나 위험하고 대단한지 다시 한 번 실감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진소소가 어찌 사람들에게 힘을 숨기라고 말을 한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第二章. 초전박살(初戰撲殺)
한때 사천에서 가장 유명한 객잔을 꼽으라 한다면 두 곳뿐이 없었다.
한 곳은 중원 전역에 지점이 있는 황룡객잔이고, 다른 한 곳은 삼 대에 걸친 역사가 있는 천운객잔이다.
그러나 천운객잔이 불타 없어진 뒤, 그 빈자리를 꿰찬 것은, 일반 객잔도 아닌 고작해야 저자거리에 있는 노점이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몰리는 어마어마한 인파에 자리를 잡기도 힘들었고,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그만큼 맛을 보장한다고 한다.
황룡객잔의 숙수가 그곳에서 음식을 먹고 자신의 부족한 솜씨를 탓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였으니, 가히 천상의 진미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그곳에서 일을 하는 점소이는 사천에서 제법 유명한 아이인 데다, 파락호들이 뒤를 봐준다는 소문 때문에 횡포를 부리는 인간들 또한 없다.
또한 음식을 만들고 점소이 일까지 하는 여인은 가히 선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미모로 자자했으니, 노점이 나날이 번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지금 그 노점을 멀리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여인이라 해도 좋을 만큼 성숙한 외모를 지니긴 했지만, 아직까지 앳된 티를 벗어나지 못했는지,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긴 머리를 질끈 말아 올리고, 온갖 화사한 장신구들을 주렁주렁달고 있는 그녀는 바로 사천에서 가장 유명한 세가의 막내 딸이었다.
당소혜.
그녀는 요 몇 달 동안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천제일미라는 명성으로 유명한 그녀이긴 하지만, 세가의 무사들이 노점에 다녀온 뒤부터 하나같이 그 객잔의 여인을 칭찬하기 바빳기 때문이다.
‘아, 글쎄 아가씨보다 예쁘다니까!’
우연히 세가에서 들은 무사의 한마디에, 당소혜는 이만저만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다. 기실 이 사천에서 자신과 견줄 만한 미모를 지닌 사람은 손약란이라는 계집아이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손약란도 자신보다는 못한 감이 없지 않았기에 사천제일미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런데 그 칭호를 위협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마, 말도 안 돼! 진짜로 예쁘잖아?”
여자인 자신이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다운 진소소의 모습은 지금까지 자만하고 있었던 당소혜의 자존심을 산산이 부서 버렸다.
게다가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여성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팔과 허리, 풍만한 가슴, 머릿결도 좋아보이는 데다, 눈동자 마저 아름답다.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서려 있으며, 살포시 웃음을 짓는 저 모습은 뭐랄까…….
전설적인 미녀인 초선이나 달기가 살아 돌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모습을 본 당소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 그래도 배경은 내가 더 좋고, 돈도 많고, 무공도 익히고 있으니까 괜찮아.”
왠지 처량해지는 순간이지만, 당소혜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혼자 납득을 해야 했다.
“하하, 뭐하시나 했더니 저 노점이 궁금하신 겁니까?”
그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타난 이가 있었다.
팔대세가의 주축 가문 중 한 곳인 남궁세가의 셋째 아들이었다.
이름은 남궁상으로 나이는 이제 막 열일곱이 되는 소년이었으며, 팔대세가의 중심인 남궁세가에서 어려서부터 온갖 영약을 먹안 탓에 이미 일류 고수 반열에 든 인물이었다.
사천에서 열린 후기지수들 모임에 참석하여 당가에 머물고 있었던 남궁상은 오랫동안 흠모를 해 왔던 당소혜가 밖으로 나가자 흥미가 동해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온 것이다.
“저런 볼품없는 객잔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당 소저.”
볼품없는 객잔이라는 것은 보면 알고, 딱히 신경을 쓰이는 것도 없다.
당소혜는 그저 추후 진소소가 중원제일미라 불릴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무사의 말을 확인하러 왔던 것뿐이다.
“제 일에 상관하지 마시고 그만 가시죠.”
“하하, 너무하십니다.”
당소혜는 너스레를 떨며 웃는 남궁상을 바라보며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후기지수들 모임이 사천에서 열린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기겁을 한 그녀다.
팔대세가 중 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당소혜는 무공에 대한 재능이 없는 편이라, 다른 후기지수들에 비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하여 다른 세가에서 모임이 있을 때에는 참석을 하지 않고 집안에만 박혀 있었는데, 이번엔 하필이면 사천에서 모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덕분에 보고 싶지도 않은 후기지수들에 장단을 맞춰 주느라 진땀을 뺀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