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시간을 빠르게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바쁘게 일을 하는 것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소면으로 하지.”
일련의 무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 소면을 시켰다. 머릿수가 많고 입고 있는 옷들이 좋아 보였기에 비싼 음식을 시킬 것이라 생각했던 손금운은 아미를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찼다.
사람은 겉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더니 저들이 딱 그 짝이었다.
“예, 금방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러나 신유강은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점소이로서 그 책무를 다하려는 것인지, 그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신유강은 아들이 누구인지 잘 알았다.
사천에서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섬서칠검이라 불리는 무인들로 상당히 유명한 측에 속해 있는 자들이었다.
아직 서른조차 되지 않은 젊은 나이로 일류 고수 반열에 올라, 한 지역에서 별호를 얻고 협의를 떨치니, 무림에서 그들의 이름이 알려지는 건 당연지사다.
물론 이곳을 나간 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마교에 속한 고수에게 습격을 당하고, 그 시신은 사천 어귀에서 발견된다.
신유강은 젊은 나이로 요절하는 이 일곱 명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차곤 조심스레 소면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사천은 처음 오는데 꽤 괜찮은 곳이군.”
“하하, 그러게 내가 진작 유람을 좀 하자고 하지 않았는가.”
“이 사람아, 그럴 시간이 있어야지.”
섬서칠검이라 불리는 이들은 소면을 가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생각이 없는 듯 저들끼리 떠들기 시작하였다.
소면만 시킨 것도 짜증난데, 떠들며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자 손금운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부채를 거칠게 부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몰릴 시간에 소면 일곱 그릇을 시켜 놓고, 먹을 생각도 하지 않으니 엄연한 영업방해였다.
“유강아, 이리 와 보아라.”
신유강은 갑작스레 자신을 부르는 손금운을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이내 쪼르르 그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신유강의 표정은 살짝 삐딱하다.
한창 바쁜 시간대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는 것이 영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 태도에 손금운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지만, 그렇다고 손님이 많은 곳에서 호통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눈을 치켜떴다.
‘네놈 눈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느냐?’
“네놈 눈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느냐?”
신유강은 과거와 비교해도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손금운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인지라, 손금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당장이라도 호통을 치려는 갈등이 역력했다.
그러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 때문인지 쉽사리 언성을 높이지 못했고, 그것은 신유강의 눈에 뻔히 들어왔다.
“곧 나가겠지요.”
“에잉, 이놈아. 줄을 서던 사람들이 다 돌아가겠다. 자리가 있어야 사람이 들어오고, 그 사람이 음식을 시켜야 돈을 벌고, 네놈도 봉급을 받을 것 아니냐?”
손금운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하며, 섬서칠검을 조금이라도 빨리 내보내라는 듯한 표정으로 신유강을 바라봤다.
그러나 신유강은 내키지 않았다.
이것이 저들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것을 알기에 소면이라도 느긋하게 먹고 가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하, 그렇지. 당장 어떻게 좀 해 봐라.”
“예예.”
신유강은 이미 섬서칠검을 객잔에서 내쫓는 일에는 도가 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그들을 내쫓은 횟수만 하더라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소년답지 않은 껄렁껄렁한 모습으로 은근슬쩍 섬서칠검을 향해 다가가자, 여전히 불어터진 소면을 깨작거리며 수다를 떨기 바쁜 섬서칠검 중 한 명이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렸다.
“부르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더냐?”
“헤헤, 혹시, 섬서칠검 아니십니까?”
“오호? 사천에 우리를 아는 사람이 있다니 이거 놀랍군. 그것도 소년이 말이다. 하하하.”
“우리의 위명이 나날이 높아지니 곧 무림맹에서 우리를 초빙하러 오지 않을까 싶네.”
득의양양하게 웃는 그들을 바라보며 신유강은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애초에 그가 이들이 섬서칠검이라는 것을 안 것은 처참하게 찢어 발겨진 이들의 시신이 발견된 사실을 호사가들이 객잔에서 떠들었기 때문이다.
“천하의 다시없을 협의지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도 크면 꼭 칠검 형님들처럼 되고 싶습니다!”
마음엔 귀찮음이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섬서칠검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들은 신유강의 얼굴을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짓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어린놈이 뭘 좀 아는구나. 우리처럼 된다면 훗날 사람들이 너를 보며 손가락을 치켜들 것이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섬서칠검처럼 된다면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칼을 맞고 죽을 것이 분명했기에 신유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들처럼 되고 싶다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제가 이렇게 형님들께 말씀을 올린 이유는 조금 전 누가 형님들을 다 죽이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신유강의 말 때문인지 섬서칠검 전원이 얼굴을 붉히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천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이들이지만, 섬서에서는 가히 구파일방 제자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위명을 쌓은 그들이다.
또한 하나같이 일류 고수에 오른 이들이었으니, 웬만한 고수들도 이들을 상대하길 꺼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유강이 섬서칠검을 죽이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이가 있다고 했으니, 울화가 치미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 어느 놈이 그딴 소리를 지껄였느냐!”
섬서칠검 중 한 명이 내공을 담아 일갈을 내뱉자, 객잔 전체에 그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이 기겁을 할 정도로 대단한 공력이었고, 일 층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손금운이 화들짝 놀라 자빠졌다.
그러나 그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신유강은 태연한 표정이 역력하다.
마치 전혀 그의 공력을 받지 않은 느낌이다.
신유강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누구였더라…… 그…… 과, 광…… 광마도! 아, 그래요. 그 사람은 자기가 광마도라고 했습니다.”
“광마도?!”
“저, 정말 광마도라 했느냐?”
광마도(狂魔刀).
머리는 일반인들보다 둔했지만, 그가 도를 휘두르면 무조건 협객의 목이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마교의 고수였다.
절정에 오른 고수이며 어쩌면 초절정에 오를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인물인 만큼, 섬서칠검 따위가 떼로 덤벼든다고 해도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
“네,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어딘가 좀 멍청해 보이는 분이셨습니다.”
신유강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그가 광마도의 모습을 알 리가 없다. 다만 본래 이들을 죽인 이가 광마도였고, 그 소문을 들었으니 들은 대로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크…… 큼, 놈이 어찌 생겼더냐?”
섬서칠검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혹여 누군가 광마도를 사칭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도에…… 도갑에는 미칠 광(狂) 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섬서칠검들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광마도를 상징하는 것은 그의 우락부락한 몸만큼 거대한 도였다.
그 도갑에는 방금 신유강이 말한 대로 광 자가 새겨져 있었다.
“정말 그자가 우릴 죽인다고 했단 말이냐?”
“물론입니다. 제가 어찌 섬서칠검 형님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형님들이라면 그 사람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매일 이 시간에 객잔에 들렸는데…… 이제 올 때가 되었습니다.”
객잔을 자주 찾는 손님들이 그 말에 기이한 눈빛을 보냈다.
그들은 무공을 모르지만, 광마도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광마도라 하지만 간혹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초운이 들리는 이 객잔에 온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사람들은 고작해야 열다섯 살 소년의 말에 넘어간 섬서칠검을 향해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우, 우린 먼저 가기로 하지.”
“잘 먹었다.”
섬서칠검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객잔을 벗어나 섬서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무엇 때문에 광마도가 자신들을 노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리 위명이 쟁쟁한 그들이라 하더라도 죽는 것은 두려웠다.
게다가 신유강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섬서칠검이 탁자 위에 은자 한 냥을 올려놓고 부리나케 객잔을 빠져나가자, 손금운은 껄껄 하고 웃었다.
“으하하! 네놈이 내 밑에서 일을 하더니 이제 사람을 좀 다룰 줄 아는구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신유강은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물론 손금운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거짓말로 치부될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신유강은 문득 의아했다.
‘섬서에서 이름 높은 저들이 어째서 광마도에게 살해를 당한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졌지만, 굳이 그것을 파고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북적이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한가한 시간대가 돌아왔다.
북적거리던 손님들은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으며, 남아 있는 것은 늦은 점심을 챙기는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신유강은 열심히 객잔을 치우면서도, 어떻게 하면 기연고서점 이 층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어쩌면 고서점이 문을 닫은 직후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돌풍에 휘말려 날아간 뒤에 기연고서점 있던 곳으로 찾아가도, 고서점을 발견할 수는 없다.
마치 석무자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신유강은 끙 하며 신음을 흘렸다.
그때 손금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강아, 이리 오너라.”
은근슬쩍 시선을 돌리며 손금운을 바라보자, 그는 매번 그랬듯 탁자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동경을 바라보며 코털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야야!”
그 모습이 어찌나 역겨운지 신유강은 내심 인상을 쓰면서도 조용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내일이 네 봉급을 주는 날이던가?”
“그렇습니다, 어르신.”
“어디 보자.”
손금운은 자세를 바로잡고 장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달에 수입을 가늠해 보는 듯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 어떻게 하면 봉급을 줄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초탈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신유강은 그저 그러려니 하며 손금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은자 세 냥이었지?”
본래 네 냥을 세 냥으로 줄여 말하는 손금운은 은근슬쩍 신유강의 눈치를 살피듯 눈알을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