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진소소가 걱정을 하는 것은 그것이다.
회귀신공을 얻은 그의 몸은 그야말로 불사지체의 가까운 몸.
하나 신유강에겐 그것을 지킬 힘이 없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얻고 싶어 하는 절세의 비급이 대로를 걸어 다니는 것과 같았다. 사천당가에서 이를 알게 된다면 눈에 불을 켤 것이다.
그것은 진소소가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신유강을 가엽게 여기고 있었으며, 그는 할아버지가 남긴 자신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나…… 아무 말도 안 할게요. 전 오늘 아무것도 못 봤어요.”
“미안하지만, 나는 사람의 말은 잘 안 믿는답니다.”
진소소의 차가운 대응에 당소혜는 미칠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진소소가 자신의 말을 믿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저 객잔의 점소이가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신기했지만,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으며, 그것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할 생각도 없었다.
게다가 가족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분명 신유강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고 물을 텐데, 사천당문의 직계가 고작해야 객잔 점소이에게 졌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나 그렇게 이성적으로 변명을 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당소혜는 이미 진소소의 기세에 기가 죽어 있었다.
나이는 비록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으나,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이려는 냉정한 모습과 나긋나긋하게 말을 하면서 압박을 하는 모습은 천방지축 날뛰던 당소혜를 고양이 앞에 생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저, 정말이에요, 언니. 저는 어디 가서 저 점소이에 대해 한 마디도 안 할 거예요.”
“으흠…….”
신유강은 그 모습을 보고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당소혜가 천운객잔에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그녀가 신유강을 쳐다봤다는 것만으로 손약란에게 멱살을 잡힐 뻔하였다.
화가 난 당소혜가 손약란의 뺨을 치려는 것을 신유강이 대신 맞았고,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은 당소혜는 신유강을 두들겨 팼다.
그랬던 그녀가 진소소 앞에 기가 죽어 있으니 속이 다 시원할 정도였다.
“아가씨, 그러지 말고 오늘 저녁에 떠나도록 하죠. 날이 저물면 제가 객잔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돼요 ,유강.”
진소소는 신유강이 객잔으로 돌아가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미산검문의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사천을 떠야 했는데, 그간 여비가 없으니 그것을 가지러 가는 것이다. 그러나 진소소는 그런 위험한 짓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사천을 떠날 필요가 없을 거예요.”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사천을 떠나야 하지만 진소소는 그러한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엄연히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니라.
“하긴 저만 떠나면 되는 것이니, 아가씨께선 쫓길 필요가 없죠.”
“그런 말이 아니에요. 이곳이 어디인 줄 아시죠?”
진소소의 말에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로 그녀를 안내했던 그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이곳은 사천에서 가장 유명한 당가의 땅이다.
“사천당가입니다.”
“그렇죠. 이곳은 미산검문조차 찾아올 수 없어요.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이 당 동생은…… 당가의 직계죠.”
진소소는 한가득 웃음을 지었다.
* * *
“시녀와 하인?”
당소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를 책임지고 있는 당 가주 당초운이 기이하다는 표정으로 금쪽같은 딸자식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밖으로 나갔다 느닷없이 돌아 온 딸이 시녀와 하인으로 쓸 사람을 데려왔다 말을 하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운은 눈을 굴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유강과 진소소를 바라봤다.
문제가 될 것은 없으나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은 비단이었고, 결코 돈 없는 집안의 자식 같지가 않았다.
왠지 모를 기품이 넘친다고나 할까? 또 곁에 있는 소년은 어디선가 익숙한 얼굴이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천운객잔의 점소이였다.
이 점소이는 나름대로 유명했다.
그 사람 많은 천운객잔을 홀로 관리할 만큼 능력이 좋아, 이름 있는 객잔에서도 데려가려고 눈에 불을 켠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천운객잔에서 있었던 불미스런 일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때 꽤 재미있는 아이라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소혜에게 맞을 뻔한 여아를 대신하여, 꽤 심하게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은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한데 어찌 이곳에?’
“이놈은 천운객잔의 점소이가 아니더냐?”
“맞아요, 아빠.”
“그런데 왜……?”
당초운은 이 이상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똘똘해 보이는 시녀를 두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가 보기엔 어디 멸문한 명문가의 자식 같아 보였고, 그렇다면 천방지축 날뛰는 당소혜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인이라…….’
당초운이 영 머득잖은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자, 진소소는 슬쩍 당소혜를 쳐다봤다. 눈빛이 살벌하여 저도 모르게 움츠러든 당소혜는 또다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 했다.
“우, 우리가 거둬 주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미산검문의 왕윤과 싸우다가 크게 상처를 입혔대요. 그 때문에 미산검문에서 이 아이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만약 잡히면 결과는 뻔하잖아요.”
당소혜는 이미 진소소에게 들었던 말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그것은 어찌하여 미산검문이 신유강을 노리게 되었고, 기왕윤과 신유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초운은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요즘 미산검문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사천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었고, 중소문파이기는 하나 교류가 있는 곳이다.
친분이 있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잔치가 열릴 때면 한 번씩 얼굴을 들이미는 자들이었다.
당초운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꽤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보기엔 신유강은 무공을 익힌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미산검문의 소문주인 왕윤과 싸우다 상처를 입혔다고 했으니 흥미가 동한 것이다.
“무공을 익힌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어찌 이 난리가 날 정도로 상처를 입혔느냐? 그 녀석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무공을 익혔을 텐데…… 그러고 보니 저자거리에서 네가 그놈을 이겼다는 소문이 돈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군. 사실이냐?”
당초운의 물음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러나 신유강은 어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왕윤은 다른 어린 왈패들과는 달리 분명히 무공을 익혔다.
하지만 신유강이 보기에 그의 주먹은 느려도 너무 느렸으며, 날렵한 몸을 가지고 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움직임도 둔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을 해 봐야 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싸우다 보니…… 어쩌다 이겼습니다.”
“하하하!”
당초운은 크게 웃음을 지었다.
싸우다 보니 어쩌다 이겼다?
그것도 무공조차 모르는 아이가 무공을 익힌 이를 상대로?
누가 들으면 콧방귀를 뀔 만한 내용이기는 하나, 오랫동안 무림의 몸담고 있는 당초운은 안다.
태어났을 때부터 재능이 있는 이가 있으며, 재능이 없는 이가 있다.
그것을 무재천재(無才天才)라 하는데, 왕윤은 전자에 가깝고 신유강은 후자의 가까운 것이다.
“잠시 이리로 오너라.”
당초운의 부름에 신유강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자신의 앞으로 온 신유강의 손목을 부여잡은 당초운은 내기를 흘려 넣으며 그의 전신을 살피려 하였다.
한데 당초운이 흘러 넣은 내기는 신유강의 몸에 들어감과 동시에 흩어지더니 자신에게로 되돌아왔다.
흠칫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한 차례 신유강을 바라보았으나, 신유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다시 한 번 내기를 흘려보냈으나 여전히 처음과 다르지 않게 내기가 안에서 흩어져 되돌아왔다.
‘이 무슨……?’
당초운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어찌 받아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분명 무공을 익힌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신유강이 자신보다 뛰어나 들어오는 내기를 흩어 버릴 만한 고수 또한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이하게 그의 몸속으로 들어간 내기가 저절로 흩어져 다시 되돌아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이함이 들었다.
“허?”
당초운은 헛바람을 삼키며 다시금 기운을 불어넣으려 할 때였다.
어느새 앞으로 달려 온 당소혜가 큰 소리를 치며 신유강을 끌어당겼다.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아까 할아버님께서 찾으시던데 이러고 있다는 걸 아시면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오시지 않을까요?”
당초운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무릎을 쳤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전대 가주이자 그의 아버지인 독존 당무혁과 약속이 있었다.
약속이라기보다는 그간의 수련 성과를 보여 주는 것으로, 어렸을 때부터 늘 해 왔던 일이다.
자식까지 있는 나이에 아비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는 않았으나, 아비의 성격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약속한 시간에 늦어 성질이라도 건드리는 날에는 어렸을 때처럼 엉덩이에 불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당무혁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사였다.
당초운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 데리고 아이들이니 네가 관리해라. 세가에는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이 많으니 잘 알려 줘야 할 것이다. 괜히 나중에 경을 칠지도 모르니 말이다.”
“알겠으니까 어서 가요.”
“요것이? 왜 이리 아비를 못 보내서 안달이냐?”
“으이구!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 그렇죠.”
당소혜는 헤헤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어서 가라는 재촉이라는 걸 알기에, 당초운은 헛웃음을 머금다가 이내 곧장 당무혁이 있는 개인 연무장을 향해 발에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가주의 체면조차 버린 모양이다.
“후우…… 큰일 날 뻔했네요. 괜찮아요, 유강?”
“네? 무슨 소리십니까? 전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요?”
신유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손목을 잡고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으니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당소혜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아빠는 네 기맥이 얼마나 튼튼하고 잘났는지, 무공을 배운 적이 있는지 확인해 본 거야. 근골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그런 건 눈으로 볼 수 없잖아.”
“아, 그런 것이었군요.”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을 했다는 표정을 짓자, 당소혜는 더욱 기고만장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봤다.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은 많았지만, 가르침을 준 것이 처음이기에 얼굴 또한 활짝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