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네. 맞아요, 어르신.”
“아야야!”
길게 삐져나온 코털을 뽑는 순간 격한 통증이 뇌리에 느껴지자, 손금운이 호들갑을 치며 코를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곤 찔끔 눈물을 흘리며 신유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은자 세 냥이었지?”
“네 냥입니다.”
“저번 달에도 세 냥을 주지 않았더냐?”
“그거야 어르신이 농땡이를 폈다고 뺀 것이지요. 원래는 네 냥에 일하기로 했답니다.”
손금운은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듯 그 거대하고 육중한 고개를 갸웃했다.
고작 고개를 옆으로 흔드는 행위일 뿐이었는데, 볼살과 턱살이 마구 흔들렸다.
“지지난 달에도 세 냥을 주지 않았던가?”
“그때는 객잔의 사정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죠. 손님이 바글바글해서 하루 종일 눈코 뜰 새가 없었지만 말입니다.”
“세 달 전에도…….”
“그때는 약란이 치료비 때문이라고 했죠. 애가 얼마나 아팠는지 폴짝폴짝 객잔을 뛰어다녔죠. 아픈 약란이가.”
신유강은 계속해서 은자 세 냥의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그를 보며, 아무래도 내일 줄 봉급 또한 은자 세 냥을 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돼지 같은 놈!’
손금운도 신유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눈빛이 그리 곱지 않다는 것은 느꼈다.
손금운이 큼! 하며 헛기침을 하더니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그 육중한 몸을 출렁거리며, 잠시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곧 자그마한 목갑 하나를 들고 와 신유강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잠시 심부름이나 다녀오너라.”
“전 이것만 치우면 쉬는 시간입니다, 어르신.”
“이거 전해 주고 오면 오늘은 그만 들어가서 쉬어도 된다.”
손금운의 말에도 신유강은 의심스런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이 돼지가 사람을 부리지 않고 놀게 두는 일은 천지개벽(天地開闢)이 일어나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신유강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인가?
손금운은 얼굴을 굳혔다.
“네가 일한 지도 벌써 일곱 달이 되어 가는데, 하루도 못 쉬지 않았느냐.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고, 내일 일찍 나오도록 해라.”
“어르신이 그렇게 말씀을 하신다면야……. 정말로 들어갑니다?”
“쯧쯧, 이놈이 지금까지 속고만 살았나? 그건 장 씨네 대장간에 가져다주면 되는 거다.”
“아저씨네 대장간은 망하지 않았나요?”
신유강은 가볍기 그지없는 목갑을 들어서 한 번 흔들어 보았다.
예의 없는 행동이라 할 수 있겠으나, 손금운은 딱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신유강 또한 안에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들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빈 목갑을 주고 사람을 엿 먹이려는 것은 아닌가 잠시 의심했던 것이다.
“망하긴 했어도 사람은 살고 있으니 전해 주기만 하면 된다.”
“예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목관을 들고 신유강이 객잔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손금운은 큼! 하며 헛기침을 하더니, 슬쩍 몸을 움직여 객잔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살에 파묻힌 눈을 이리저리 굴린 그는 어린 주제에 눈치 하나는 귀신처럼 빠른 신유강이 잘 가고 있는 확인을 했다.
머지않은 곳에 대장간으로 향하고 있는 신유강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 나를 탓하지 말거라. 이게 다 네 운명이니 그러려니 해.”
손금운은 칠 개월 동안 함께했던 신유강의 등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하더니, 곧 객잔으로 들어서며 히죽히죽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저놈의 봉급이 네 냥이니. 두 냥짜리를 구하면 두 달은 공짜로 부릴 수 있겠군. 하하하!”
* * *
장 씨네 대장간은 본래 이 근방에서 상당히 유명한 곳이었다.
천운객잔이 삼 대째 내려오는 곳이라 한다면, 장 씨네 대장간은 오 대째 내려오는 정통 깊은 곳이라 할 수 있었는데, 이 근방 중소문파들의 이권 다툼으로 인한 희생양이 되어 장씨는 팔을 잃었고, 결국 더 이상 풀무질을 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여 얼마 전 대장간을 미산검문에 팔아넘기고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으니,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신유강은 썩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망할 돈돈자(豚豚者) 놈…….”
목갑을 열어 보고 싶었으나 무슨 중요한 물건이라도 들어 있는 것인지, 봉인지가 붙어 있는 탓에 함부로 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신유강은 끙 하고 신음을 삼키며 재차 목갑을 흔들어 보았다.
달그락!
“확실히 안에 뭔가 들어 있기는 한데…….”
영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장 씨네 대장간으로 향하고 있는 그의 발걸음은 당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대로 장 씨네 대장간으로 들어갔다가 어디론가 팔려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움찔 걸음을 멈췄다.
‘못돼 처먹은 돼지이긴 해도 그렇게까지 성격이 나쁘지는 않을 거야.’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신유강은 다시 한 번 신음을 삼키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 신유강의 시선에 멀리서 한 무리의 남자들과 어울려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손약란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른 또래의 여아들은 질투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손약란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약란은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남아들의 시선에 빠져 만연 헤픈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신유강을 발견한 손약란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신을 둘러쌌고 있는 남아들을 밀치고, 쪼르르 신유강을 향해 다가왔다.
“하아, 하아…… 어, 어디가?”
힘껏 달려온 탓에 손약란은 가파르게 숨을 쉬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리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보고 있는 신유강이 딱하다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는 소년답지 않게 쯧쯧 혀를 찼다.
“운동 좀 해라. 그러다 어르신처럼 뒹굴뒹굴 굴러다닌다?”
“그…… 그렇게까지 찌지 않았는데……?”
손약란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자신의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배를 바라보고는 울상을 지었다.
확실히 요즘 들어 살이 좀 찐 것 같다는 느낌이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신유강이 지적을 하니, 절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못 봐줄 정돈 아니다. 가서 놀아.”
“어, 어디 가는 건데? 심부름이면 나도 따라갈래!”
신유강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걷자, 그보다 작은 손약란이 두 걸음을 따라붙으며, 신유강의 옷깃을 꾸욱 하고 쥐었다.
그러자 곳곳에서 남아들에 시선이 매섭게 꽂혔다.
신유강은 그것을 느끼며 머리를 긁적여야 했다.
“어르신의 심부름 간다. 갔다 오면 쉴 수 있을 테니, 그때 놀아 주마.”
“저, 정말이지?!”
순간 손약란의 표정이 환해진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 어떠한 남아들에게 보여 주지 않았던 진실된 웃음을 지어 보였고, 얼마나 해맑았는지 표정 하나 없었던 신유강의 얼굴에 홍조가 드리워질 정도였다.
신유강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따가 객잔으로 갈게! 빨리 와야 해?”
“아, 응.”
힘차게 손을 흔들며 다시 남아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 손약란을 빤히 지켜보던 신유강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재차 걸음을 재촉했다.
장 씨네 대장간은 천운객잔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어른 걸음으로 족히 반 시진은 가야 할 거리였으니, 소년인 신유강이 그곳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진이 조금 더 넘어갈 정도였다.
대장간은 이 근처에서도 알아주는 유명한 곳이었고, 오 대째 내려오는 곳인 데다, 또한 밤낮없이 풀무질과 망치질을 하는 통에, 대장간 근방에는 민가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장간 근방 땅을 모조리 장 씨가 사들였다.
지금은 모두 미산검문의 것이 되었지만.
평소보다 빠른 걸음을 걸었던 탓에, 신유강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으나, 왠지 모르게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윽고 장 씨의 대장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땅을 모조리 산 탓에, 민가조차 없는 그곳은 왠지 모르게 섬뜩하며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대장간의 정문은 반쯤 부서진 채로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바람이 세게 불자 기이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고 해도, 대장간의 풍경과 들려오는 귀곡(鬼哭)에 기겁을 하며 도망을 칠 만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무감각한 신유강이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아저씨!”
귀신이 살 것 같은 폐가처럼 보인다고는 하지만, 손금운에게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신유강은 반쯤 부서진 정문 앞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자, 누군가 나오려 하는 듯 검은 그림자 몇이 정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유강이 뒤로 한 발 물러서기 무섭게 끼이익 하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어?”
“하하!”
신유강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황토색 무복을 입고 있는 그 아이는 신유강보다 두세 살 정도는 많아 보였으며, 무공을 익힌 듯 온몸이 탄탄해 보였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고, 눈에는 멍 자국이 시퍼렇게 나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이 자식! 내가 네놈보다 형이라는 걸 잊었냐?”
“얻어맞고 다니는 주제에 무슨 형?”
신유강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며 웃었다.
그는 미산검문의 후예이며 이 근방에 있는 또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주먹을 잘 쓴다는 기왕윤이다.
바로 얼마 전 손약란 때문에 신유강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몇 대 때려 보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얻어맞은 아이였다.
참으로 안쓰럽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그…… 그거야 네놈이…… 촐랑촐랑 도망치니까 쫓다가 당한 거지! 결코 내가 네놈보다 약한 게 아니다!”
왕윤의 말에 신유강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버릇처럼 나오는 그것에, 신유강은 인상을 쓰며 왕윤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비켜, 나는 아저씨한테 일이 있어서 왔다.”
“푸하하! 상황 판단 못하는 놈이로군. 네놈을 손봐 주려고 내가 그 돼지한테 은자를 열 냥이나 줬다고, 이 멍청아.”
신유강은 그제야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돼지 같은 객잔 주인께서, 어인 일로 착한 일을 하나 싶었더니, 이런 속내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