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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62화 (362/373)

학사재생 362화

제 362화

“오랜만이지? 보아하니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즐기지 않는다.”

장난기 섞인 황준우의 말에 요동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짓궂은 황준우의 시선은 끝을 모르고 뒤를 따라붙었다.

“그냥, 단지. 약한 녀석들이 당하는 것이 안쓰러워 돕고 있을 뿐이다.”

“오호, 그러니까 그 약한 인간들이 좋다는 뜻 아니야?”

“아니, 뭐. 싫지는 않다는 뜻이다.”

“못 본 사이 제법 귀여워졌네.”

황준우의 말에 제자리에서 펄쩍 뛴 요동의 주변으로 벼락의 기운이 번쩍였다.

하나 함부로 그 힘을 쏟아 내지는 않는다.

어째서인지 지상에 있으면서 더욱 강한 힘을 손에 넣었지만, 황준우와의 싸움에 자신감은 생기지 않는 탓이었다.

‘게다가 저 빌어먹을 놈, 대체 뭘 처먹었는지 훨씬 더 강해졌어.’

본인 스스로는 이미 요괴왕과 대등해졌다고 자신하는 요동의 눈에도 황준우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 기운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격의 차이가 벌어져 있단 말인가?

모른다면 모를까.

알고도 덤빌 생각은 없었다.

“약속은?”

대신하여 생각은 다른 곳으로 흘렀다.

황준우는 본래 요선사협이 지상의 일을 도와주는 대가로 요동이 잃어버린 뇌력의 정수를 찾아 주기로 하였다.

이곳에 그가 있다는 건 유계에서 돌아왔다는 뜻.

약속을 언급할 자격이 있었다.

“아, 그게…… 미안한데, 없더라고.”

요동의 눈매가 무겁게 치솟았다.

“세계 곳곳을 찾아봐도 네 기운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아.”

“지금 이 몸이랑 장난하자는 건가?”

요동의 몸에서 벼락이 더욱 크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싸우면 진다.

알고는 있었다.

무조건 죽거나 영멸 당할 터였다.

하지만 이런 가당치도 않은 모멸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분노를 감추지 못한 것이었다. 그 기세에 경호와 홍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늦게야 요동의 격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일대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둘이 함께 덤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끌려다니며 지쳐 가고 있던 곽영의 표정도 새하얗게 변했다.

‘저놈이 요선사협의 대형? 날 잡으러 온다고 했었다고?’

영문을 알 수 없는 황준우도 무섭지만, 그의 눈에는 요동이 훨씬 무섭게 보였다.

주변으로 폭주하는 난폭한 기운이 생물의 본능적 공포를 자극하는 탓이다.

“장난은 아니고, 진짜야. 그리고 나름대로 방법도…….”

“죽여 버리겠다!”

황준우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 눈이 돌아간 요동이 목소리를 높이며 몸을 던졌다.

죽이진 못하더라도 팔 한 짝은 베겠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혀를 찬 황준우의 육체가 사라졌다.

“……!?”

놀라는 요동의 뒤편,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황준우의 손에 회색빛 기운이 어렸다.

그 엄청난 힘이 주는 공포를 보지도 않고, 느낀 것만으로 요동의 몸이 제자리에서 무너졌다.

“거참, 끝까지 들으라니까. 누가 약속 안 지킨대? 성격 한번 더럽게 급하네.”

“으으…….”

공포와 분노, 오묘한 감정이 뒤섞인 눈을 한 요동이 황준우를 돌아본다.

그 시선에는 서러움과 억울함도 느껴졌다.

“아, 진짜 조금만 기다려보라니까.”

“믿을 수 없다! 이 잔학무도한 놈!”

“……내 참, 요괴한테 잔학무도하단 소리까지 들을 줄이야.”

어이없음에 혀를 찬 황준우의 손에서 허무의 기운이 사라졌다.

그 엄청난 압박이 거둬짐과 동시에, 육신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 요동이 하늘로 펄쩍 뛰어올랐다.

거리를 벌린 그의 눈에는 어째서인지 눈물도 살짝 맺혀 있는 듯했다.

“그래도 의(義)를 아는 존재라고 생각했거늘 이렇게 날 배신해.”

“제발 끝까지 들어라. 찾진 못했지만, 비슷한 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말도 안 된다! 네겐 뇌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요동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만든 정수는 그야말로 번개의 힘을 극한까지 모은 보물이다.

어중간한 뇌신 열의 목을 쳐도 얻기 힘든 강력한 힘.

그런 것을 아무리 무신이라고 하여도, 벼락을 다룰 수 없는 인간이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누가 못 한대?”

어이없는 듯 혀를 찬 황준우가 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팔괘중 건괘(乾卦)와 진괘(震卦)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파지직-!

황금빛 벼락이 번쩍인 것은 동시였다.

쿠르릉-!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요동의 발치 앞으로 강력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지면을 한 움큼이나 집어삼킨 벼락의 모습에 자리에 있는 모두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미친…… 저 괴물은 진짜 뭐야!’

특히 황준우를 아직 얼마 겪지 못한 곽영이 제일 미칠 것 같았다.

잔잔해 보이는 기운 속에서 난폭한 벼락이 내리쳤다.

상식적으로도, 다소의 비상식을 상식으로 돌리는 조율경 내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진 탓이었다.

요동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떻게…….”

하나 곧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벼락을 다룰 수 있단 건 놀랍다만, 그 속도와 위력으로는 내가 만들었던 뇌전의 정수를 흉내 낼 수 없다.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단 말이다!”

“거참, 녀석. 끝까지 보라니까. 나도 내가 이쪽 능력을 다루는 게 서툰 줄은 알거든. 민망할 정도니까 굳이 꼬집지 않아도 돼.”

가볍게 혀를 찬 황준우가 품에서 꺼내 든 것은 두 개의 보물이었다.

하나는 파의 일족의 왕, 늠군이 머리에 썼던 관, 그리고 두 번째는 우마왕에게 받은 복희옥이었다.

“복희는 모든 팔괘술의 시조이자, 신, 늠군의 관은 그런 팔괘술을 인간으로서 가장 완벽하게 익혔던 왕이지.”

“……?”

요동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희의 이름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삼황오제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 늠군의 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 시대를 살지도 않았으며, 들은 것도 적었다.

“그리고 난 팔괘술을 이용해서 벼락을 불러냈고 말이야.”

하지만 다음 설명에, 어떤 원리를 사용하겠다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힘을 쏟아부어 내가 만들었던 정수와 같은 걸 만들어 보겠다, 이건가?”

“해보는 거지. 하나로 안 되면 두 개, 세 개라도 만들어 줄게.”

요동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지만, 듣자 하니 마냥 나쁜 제안만은 아닌 듯했다. 무엇보다 책임감 없이 물러서려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다시 싸운다고 해서 이길 자신도 없고.’

순간이지만 잠시 느꼈던 허무의 힘이 주는 공포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맞닿는 것은커녕,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아까는 요괴의 본성과 분노를 못 이겨 덤벼들었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사태를 겪고 싶지는 않았다.

“좋다.”

결국 요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정수를 담을 그릇이 필요한데…….”

“기다려라.”

미간을 찌푸린 요동이 입을 크게 벌렸다.

“으엑-!”

다소 괴악한 소리와 함께 그 안에서부터 투명한 빛의 구슬이 떨어져 내려왔다.

놀라운 것은 제법 그 빛깔이 고와 기괴하면서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여기 있다.”

그것을 자신의 손에 쥔 후 황준우에게 내민 요동이 당당히 말했다.

말했듯 기괴하지만 곱고 예쁘다.

“아니, 됐어. 그냥 거기 내려놔.”

그렇다고 해서 요괴의 속에서 토악질처럼 올라온 무언가를 맨손으로 만지고 싶지는 않은 황준우였다. 요동 역시 그 감정을 눈치챘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본인이 생각해도 그리 깔끔한 모양새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좋아, 해볼까.”

황준우가 복희옥과 늠군의 관을 공명시켰다.

동시에 양손은 팔괘술을 그린다.

상단전이 크게 확장하며 우주가 펼쳐졌다.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황준우만의 세계다.

그중 벼락을 뽑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황준우의 신격에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잘 다루지도 않는 힘이다. 심지어 난폭하기도 하여 성질 자체가 만만하지도 않았다.

그 힘의 인도 과정을 늠군의 관이 도왔다.

팔괘술의 정점을 보인 늠군의 관은 마치 자신의 수족처럼 뇌전의 힘만을 우주에서 뽑아내었다.

그 용량이 작지는 않지만 부족하다.

예상했던 사태였기에 황준우는 당황하지 않은 채 복희옥의 잠재력을 끌어내었다.

순식간에 팔괘술의 힘이 몇 배로 증폭된다.

그 강력한 힘에 황준우마저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어, 이거…….’

자칫하면 요동이 만든 그릇 자체를 깨버릴지도 모를 수준의 힘이 단숨에 모였다. 막으려고 하였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복희옥은 멈출 줄을 몰랐다.

결국 모인 뇌전의 힘은 늠군의 관으로도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부풀어 올라 버렸다.

‘더 이상은 위험하다!’

황준우가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다들 물러나!”

갑작스러운 외침에 세 사람이 망설임 없이 사방으로 뛰어올랐다.

안 그래도 범상치 않은 기운의 흐름을 느끼고 있던 탓이다.

반면 묶여 있던 곽영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나는……?’

하나 이미 때는 뒤늦은 후다.

더 이상은 정말로 위험하다 생각한 황준우가 모인 뇌전의 힘을 내리쳤다.

하늘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마치 용을 닮은 거대한 뇌전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떨어지면 주변 전체가 모두 몰살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갖춘 뇌전이다.

황준우는 망설임 없이 그 뇌전을 향해 몸을 던졌다.

파지직-!

전신으로 뇌전이 타고 흐르며 황준우의 머리칼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피부는 새빨갛게 부어올랐으며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으으…….”

예상은 했지만, 견디기 힘든 뇌전의 힘에 이를 악문 황준우의 심장이 연신 박동하기 시작했다.

초월과 무한.

두 힘을 동시에 발동한 황준우의 눈에 황금빛이 번쩍거린 순간이었다.

그의 몸 겉면을 타고 흐르던 뇌전이 육체 내부로 스며들며 황준우가 만든 우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거대한 팽창의 우주 앞에 뇌전이 합일(合一)한다.

그 막대한 기운을 단숨에 집어삼킨 황준우의 전신으로 뇌전이 번뜩였다.

‘지금이라면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손끝에 벼락의 기운이 뭉쳤다.

목표는 지면에 놓인 정수의 그릇이다.

공간을 가르고 쏘아진 뇌전의 힘이 새하얀 투명 구슬에 맞닿는다.

직후 폭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황준우는 허공에 떠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바라보고는 미소 지었다.

“됐다.”

투명한 그릇에 황금빛 뇌전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가득 찬 힘이다.

생각지 못한 기연을 얻어 바로 활용한 힘치고는 제법 잘 조절된 셈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들은?’

황준우는 뇌전의 힘을 우주로 받아들이며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곽영과 그의 수하들은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난폭한 뇌전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 공격성을 발휘했으니 말이다.

황준우는 시선을 돌려 묶인 산적 셋을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네. 다 타버렸지만 죽진 않았잖아.”

새카맣게 변한 세 무인의 꼴이 안쓰러웠지만, 말 그대로 죽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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