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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53화 (353/373)

학사재생 353화

제 353화

자신의 존재를 인간이라는 틀에 묶고자 하였기에 더욱 부정해 왔던 것들이다.

신격을 얻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하나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

그 힘을 인정하면 생기는 거대한 의문이 그를 괴롭힐 것이 분명한 탓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억지로 가라앉히고, 또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그중 하나는 수면 위로 떠올라 버렸다.

서시를 닮은 신.

세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존재이자, 석가여래이며 옥황상제이기도 한 인물.

그녀의 조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황준우의 정신 어딘가에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그 격을 뽐내고 있다.

비록 황준우가 사용하는 허무에는 못 미치지만, 세계를 오래도록 다스려온 상위 신의 격도 결코 낮지는 않다.

‘허무와 숙의 조각이라…….’

황준우가 가진 숙의 조각에 어떠한 존재가 담겨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존재는 ‘단어’로 정의된다.

마치 제강의 조각 중 하나가 허무로 불리듯 말이다.

말했듯, 황준우는 자신의 몸에 잠든 숙의 조각이 어떠한 단어를 표현할지 몰랐다.

너무 작은 조각인 탓일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점을 뽑자면 두 힘이 서로 제법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직감이 든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것인가?’

숙 역시 제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따지자면 제강은 숙과 홀의 부모다.

숙조차 제강이 품고 있는 혼돈 중 일부였다는 것이 옳을 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얻은 조각이 허무가 아닌 혼돈이었다면…….’

멸망환 같은 도구에 의존하지 않아도 모든 힘을 품을 수 있었을 터다.

숙의 조각뿐이 아니라 황준우가 가진 모든 것, 수왕검에 잠든 반고의 조각까지 모두 혼돈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허무와 숙의 조각 정도인가?’

황준우의 최선.

이 힘이라면 가속하는 멸망환을 다루는 독고상완과 대치할 수 있을까?

그는 정말로 강했다.

끔찍할 정도로 강해서 방법을 떠올린 순간까지도 승리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찌이이익-!

대기를 찢는 멸망환에 불꽃이 튀기는 것이 보인다.

더, 더 빨라지고 가속하고 있다.

이제 허무가 소멸시키는 것보다, 더 빠른 공격이 황준우의 전신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모자라도 해 봐야지.’

억지로 겹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합일(合一).

거기에 희망을 건다.

‘아니, 아니야. 잠시만…… 난 아직 무언가를 놓치고 있어.’

아주 짧게 남은 시간이지만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고민하던 황준우의 두 눈에 문득 황금안이 번쩍였다.

회색빛 허무의 기운이 물러나고, 자신의 신격을 상징하는 황금의가 떠오른다.

“허무를 포기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그 변화를 바라보던 독고상완이 광소를 터트렸다.

허무는 제일로 뽑히는 대신의 격이다.

때문에 독고상완도 이토록 무리를 하면서, 애를 먹어가면서까지 싸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황준우가 이룬 신격 역시 굉장하다.

인간의 육체로서 한계를 돌파하여 얻어낸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대신은커녕, 상위 신에도 못 미치는 격을 갖추고 있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격을 이룬 시간이 너무 짧다.

약해진 허무가 갈라지고, 황금빛이 찢긴다.

쏟아지는 공격 앞 황금빛 눈을 빛내는 황준우의 몸에서 기운이 폭주하듯 솟아난 것은 동시였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붓던 독고상완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

놀란 독고상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간적이지만 황준우의 몸에서 여섯 이상의 신격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멸망환과 같은 기보도 없이, 견뎌낼 힘이 아니다.

한데 그것을 동시에 쏟아 냈다.

일시적인 폭발이었지만, 그 위력이 독고상완조차 물러나게 했을 정도다.

자살행위다.

스스로 자폭과 다름없는 일격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황준우를 둘러싼 황금빛은 여전히 건재하다.

번쩍이며 빛나는 황금안은 독고상완이 아닌 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놈!”

노호성을 터트리는 독고상완의 눈매는 사나웠다.

음성은 굶주린 짐승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다.

하지만 한 걸음을 제대로 떼지 못한다.

지금도 황준우의 황금빛에 가린 수많은 기운이 서로 얽히고설켜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리 독고상완이라고 하여도 그런 기운의 중심으로 뛰어들 수는 없다.

‘어떻게 한 번을 견뎠는지 모르겠지만…….’

자폭공격에 어울려 줄 필요는 없다.

문득, 입을 연 황준우가 ‘단어’를 내뱉었다.

워낙 작은 소리라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간, 독고상완의 등 뒤로 소름이 돋아났다.

그 단어가 단순한 음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령이며, 또한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단어를 찾았구나.’

신의 권능을 상징하는 단어!

본래 황준우가 생각하던, 황금의가 가지고 있던 두 가지 단어는 신속과 파괴였다.

황준우가 그토록 원했던 힘에 치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깨달은 단어는 황금안을 이루고 있는 본질, 바로 ‘관조(觀照)’였다.

이 셋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한데 애초에 시작점부터가 착각이었다.

황준우는 파괴 또는 신속이라 불리는 권능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황금의는 단지 황준우가 원하는 힘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였을 뿐, 실제의 의미는 전혀 달랐다.

방금 전, 황준우는 그 답을 찾아냈다.

‘위험하다.’

독고상완의 머릿속 경종이 크게 울렸다.

이제 막 얻은 신격.

보잘것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다르다.

황준우의 황금의가 품은 단어가 무엇일지 확신할 수 없으나, 인지하고 발휘된 순간부터 많은 것이 뒤바뀔 것만 같았다.

그 전에 죽여야 한다.

품으로 파고드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은 지웠다.

그보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다.

독고상완의 신형이 공간을 가르고 다시 황준우 앞에 나타났다.

찬란한 황금빛을 가르기 위해 내지른 검이 제멋대로 튕겨 올라간다.

주변으로 폭주하는 기운의 실타래가 너무나 강력한 탓이다.

‘더, 더……!’

독고상완이 더욱 이를 악물고 멸망환의 힘을 쥐어짰다.

[곧 터져버리겠군.]

공손헌원의 다소 기쁜 목소리가 들린 듯도 했다.

하나 귀 기울이지 않았다.

육체가 터져나가도, 어차피 새로운 육신을 준비하면 될 일이다. 죽기 직전에 멸망환을 빼돌릴 준비도 완벽하게 해 놓았다.

“한 번 죽더라도……!”

어차피 그는 전생자.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황준우를 벤다.

콰가가각-!

폭발하는 회전 소리와 함께 멸망환의 빛이 시야를 멀게 할 정도로 크게 터져 나왔다.

“초월(超越).”

그 틈새를 가르고, 황준우의 작은 목소리가 독고상완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단어를 완벽히 인지했다.

그 힘은 권능으로 화하였고, 황준우의 신격에 포함된 존재가 되었다.

육체가 부서져라 쏟아 낸 힘을 담은 독고상완의 검이 그런 황준우의 목덜미에 닿았다.

“으아아아아-!”

독고상완이 기합을 내질렀다.

동시에 은빛 검광이 번쩍였다.

동시에 독고상완의 육체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음양검, 그중 간장이 유리 조각처럼 부서지며 허공으로 흩어진다.

삽시간에, 어떠한 소음도 없이 벌어진 일이다.

그 모습을 다소 느린 시야로 바라보는 황준우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벼락이 번뜩이듯 생각이 떠올랐다.

‘겹치거나 할 필요가 없지.’

굳이 상성이 잘 맞는 힘을 조화시킬 필요도 없다.

황준우가 신격을 얻은 계기는 한계를 돌파한 것이었다.

그 간단한 답을 놓고도 왜 몰랐던가?

‘황금의는 초월한다.’

그 힘의 주인이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다면, 단숨에 격을 높이는 것도 간단한 일이다.

한계 또한 정해지지 않았다.

‘이제야 진짜 답을 찾았군.’

황준우의 신격이 가진 세 가지 단어.

“관조, 초월, 무한.”

황준우가 갖춘, 다섯 신격을 계단 밟듯 뛰어오르는 초월에게 한계란 없다.

‘수왕검에 잠든 반고, 그리고 숙, 또 홀인가?’

황준우에게도 숙을 비롯한 홀의 조각이 잠들어 있었다.

두 신의 조각은 갈라져 있으면서도 하나다.

황준우는 그 둘이 합쳐져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이루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방금 전에서야 깨달은 마지막 하나의 존재, 천조칠무라는 무공 자체에 잠들어 있던 신격.

그 격이 상당히 높다.

숙과 홀에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수준.

심지어 조각 정도가 아니었다.

무공이란 모습으로 화해 있을 뿐 그 존재 자체가 온전하게, 무의식적으로 계속 흐르고 있다.

‘치우천왕.’

삼황오제,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였다는 황제와 싸워 패배하여 사라진 무신(武神).

어찌하여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심장이 그토록 박동하였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황준우라는 존재에 새겨진 무공.

그 자체가 치우천왕의 격을 담고 있던 것이다.

그것이 황준우라는, 말도 안 되는 천재를 만들어내고 있던 답이었다.

작금의 황준우는 그런 치우천왕조차 넘어서, 허무마저 발판삼아 초월했다.

의식과 무의식 양측에 존재하던 모든 힘을 뛰어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이것이 끝이 아니다.

‘무한.’

황준우의 심검이기도 한 그것은 가진 신격의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황준우는 이미 자신이 조각을 나누지 않은 숙의 격에 비등해졌거나, 더욱 뛰어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가 그것을 인지하는 찰나, 공간이 갈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온몸에 피를 칠한 독고상완이 한 자루밖에 남지 않은 음검, 막야를 휘두른다.

막으려는 순간 또 한 번 공간이 뒤틀렸다.

독고상완은 눈앞에 있었지만 막야는 사라졌다.

엄청나게 빠른 공간 움직임이다.

한데 황준우는 그를 쫓을 수 있었다. 검 대신 날아오는 주먹을 오른손으로 잡고, 느껴지는 흐름에 따라 수왕검을 뽑아 들어 허리춤을 베어오는 막야를 쳐낸다.

“……!!”

놀란 독고상완의 눈이 크게 뜨였다.

황준우의 마음 한편에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지금 내 신격은, 허무보다 높다.’

그 힘은 스스로가 전율할 정도로 엄청나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가열하게 회전하는 가운데, 세계의 일부를 찢으면서까지 기운을 더욱 부풀리는 멸망환에 놀랐다.

‘이건 정말 위험하네.’

어찌 보자면 독고상완이라는 존재보다 더 위험하다.

황준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제는 소우주라고 부를 수 없는, 높은 격을 가지게 된 마음의 한가운데에 검이 섰다.

‘무한.’

심검을 발현한다.

“감히, 어딜!”

그 짧은 순간, 독고상완의 눈에서도 이채가 반짝였다.

당연하지만 그 역시 심검을 세운 무인이다.

그리고 독고상완의 심검은 조금 아니, 제법 특별했다.

부정(否定).

이 역시 독고상완의 신격을 의미하는 단어.

또한 큰 악의를 가진 독고상완 본인이 숨겨왔던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세계가 잠시 뒤틀리는가 싶더니, 폭발하듯 솟아나던 무한의 힘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황준우가 놀란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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