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50화
제 350화
“설마……?”
기대와 의혹, 그리고 불신을 가진 독고상완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새하얀 옷과, 빛에 휩싸인 여인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서고 있다.
[숙……!]
공손헌원이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어찌……?”
독고상완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음성이 잘게 떨렸다.
그런 그를 다소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 숙이 입술을 달싹였다.
[독고상완.]
“미쳤군!”
기억하고 있던, 잊히지 않는 숙의 음성에 독고상완은 단호한 음성을 내뱉었다.
[네 말대로 나는 이기적인 신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더 속죄해야 하고, 더 보은해야 하는 것이 옳아.]
숙은 사라진 우마 일족의 영토를 바라보았다.
하얀빛이 그 시선을 따라 떨어진다.
창조의 빛.
그 새하얀 기적은, 독고상완이 어찌 손을 쓸 틈새도 없이 지면으로 떨어져 세계를 회색빛으로 물들이고, 되감는다.
콰과과과-!
무너졌던 우마궁이 다시 시간을 역행하며 재조립된다.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우마 일족의 괴성이 사방을 때린다.
그리고 연기처럼 흩어졌던 우마왕이 다시 지면에 섰다.
시간역행.
창조의 신, 숙의 가장 강력한 권능이 세계의 일부를 되감아 버린 것이다.
그 놀라운 이적을 황당하고,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독고상완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어렸다.
“정말로 미쳤어! 스스로의 영혼을 깎아가며 보잘것없는 생명을 되돌리다니!”
동시에 뻗은 양팔의 멸망환이 세차게 회전하며 초염구를 하나 더 만들어낸다.
덧씌워진 것은 황톳빛 벼락이다.
[놈…… 허락 없이……!]
공손헌원의 분노 가득 찬 음성이 울려 퍼졌으나, 의미 없는 발악일 뿐이었다.
그의 영혼 한편을 이루는 힘이 불쑥 빠져나가며 단숨에 초염구를 감싸버린 것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다 생각했는지, 독고상완은 세 번째 힘을 꺼내 들었다.
여와를 상징하는 자줏빛이 번갯불을 튀기는 초염구를 휘감았다.
거대한 초염구를 순식간에 손바닥보다 작은 형태로 줄여버린다.
대지의 여신인 여와의 권능은 다소 난폭한 초염구를 더욱 다루기 쉬운 형태로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마지막으로, 푸른 빛, 복희의 힘이 움직였다.
“증폭.”
작아졌던 보랏빛 초염구가 사람 머리만 한 크기로 부풀어 오른다.
터질 듯, 날뛰는 그 힘을 양손으로 모아 쥔 독고상완이 하늘에 뜬 숙을 바라보았다.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숙은 방금 전, 강제로 유계에 간섭하고, 시간을 역행하며 큰 힘을 썼다.
그것만으로도 위험할진대, 압축과 증폭이라는 여와와 복희의 권능이 이어지며 주변의 모든 기운이 초염구 안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숙을 감싸고 있는 하얀빛조차 조금씩 그 힘을 잃어가는 게 눈에 뜨일 정도다.
“언제나처럼 이기적으로 타인을 희생시키며 숨어 있지. 왜 이곳까지 와서 스스로 명을 단축하는지 모르겠으나, 내겐 큰 기회로구나.”
[…….]
숙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런 독고상완을 내려다본다.
“무슨 말이라도 해 보아라. 이 힘을 견디지 못할 것임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니.”
[…….]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새하얀, 검은 동공조차 없는 숙의 두 눈은 그저 독고상완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훑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독고상완의 뇌리를 더욱 자극했다.
분노를, 악의를 더욱 크게 불러일으켰다.
“빌어먹을 년. 뭐를 믿고 있는 것이냐? 그만한 여유를 부리려면 이유가 있을 텐데?”
그의 손에 쥐어진 힘은 하나의 별을 통째로 부술 만한 위력을 갖추고 있다. 감히 숙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다. 삼황오제 각각의 권능 중 하나를 훔쳐와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신살기, 멸망환은 그 이름에 못지않은 위력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피할 수도 없고 막아낼 수 있을 리는 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숙의 시선은 독고상완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멍청한 놈, 제 말대로 지금이 기회이거늘.’
그 시점, 공손헌원은 독고상완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도 용서하지 않고, 그저 부숴버릴 것만 같은 악의를 내뿜던 독고상완이 망설이고 있다. 영악하고 악독한 그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물론 그런 사실을 굳이 자극하지는 않았다.
숙의 영멸보다는, 독고상완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이 우선이다.
그전까지 세계는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숙의 죽음은, 오히려 공손헌원으로서도 막고 싶은 일이었다.
“미련…….”
문득, 독고상완이 차가운 음성을 흘렸다.
“그런가. 난 당신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가.”
음성이 사납다.
눈매는 날카롭게 솟아난다.
“그것을 알고 이 몸을 이용하려 했군. 적당히 시간만 끌면 되는 줄 알고 있어.”
비웃음을 보인 독고상완의 손에서 응집되었던 기운이 삽시간에 흩어졌다.
어마어마한 힘이거늘, 그 출수도 거두는 것도 빠르다.
아직 독고상완, 멸망환에 여력이 남았다는 뜻이다.
그 순간만큼은 숙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흥분할 필요 없지. 어차피 더 이상 당신은 날 막지 못한다. 시간역행을 사용한 대가는 적지 않지.”
차가운 웃음을 보인 독고상완은 초염구를 다시 한번 만들어냈다.
방금 전 만들어냈던 별조차 파괴할 멸망구(滅亡球)에 비하자면 한없이 나약한 힘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상황을 살피고 있는, 시간을 역행하여 돌아온 우마 일족을 날려버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당신은 날 막을 수 없겠지. 그러니 그 자리에서, 무력하게, 그저 지켜만 보아라.”
독고상완이 망설임 없이 손을 휘저었다.
거대한 초염구가 또다시 우마궁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
그 상황에까지 침묵을 지키던 숙이 손을 내뻗었다.
새하얀 빛이 출렁이려는 순간, 보랏빛 기운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말했잖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는 것뿐이라고.”
차가운 웃음을 보인 독고상완의 손에는 어느덧 음양검, 간장막야가 들려 있다. 일전, 그의 죽음 이후 우마궁으로 회수되었던 음양검을 습격 전에 되찾은 것이다.
검의 끝자락에는 당장에라도 숙을 찌를 것 같은 위협이 출렁거린다.
숙은 망설임 없이 그 살기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피할 줄 알고!”
[아니.]
어깨 부위, 빛의 일부가 갈라지며 새하얀 기운이 바닥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로 인해 한 팔을 독고상완의 뒤편으로 보낸 숙이 새하얀 빛을 쏘아 보냈다.
빛에 갇힌 초염구가 폭음을 내뱉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본 독고상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하……! 고작 한 번 막아선 것을 가지고!”
멸망환이 다시금 세차게 회전한다.
또다시 그의 등 뒤로 초염구가 둘이나 생성되었다.
“어디까지 막을 수 있는지 해보시지!”
두 눈에 광기를 담은 그의 외침에 숙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상처 입은 어깨 아래로 흩어지는 기운이 너무 많다.
[힘겹네.]
솔직하게, 현재의 상황을 인정한 숙이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뭘……?”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독고상완이 어리둥절해 할 때였다.
독고상완의 고개가 크게 젖혀졌다.
자신이 맞을 것이라고는, 설마 그것도 이런 종류에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독고상완이었다.
때문에 한동안은 생각을 잇지 못했다.
이후로는 웃음을 흘렸다.
“하하…….”
뺨을 맞다니.
그것도 영체인 숙에게, 이처럼 직접적인 타격을 당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잠깐이나마 그녀가 영체를 벗어나, 실제 육체를 만들어 그를 때렸다는 것 아닌가?
실제로, 새하얗게 흐르던 기운 대신 붉은 핏물이 숙의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멈춰.”
목소리가, 정신에 울려 퍼지지 않고 귀로 와 닿는다.
흐릿한 백색이던 숙의 모습이 선명한 인간 형태의 모습으로 독고상완을 노려보고 있다.
표독한 눈매.
그리고 검은자위 하나 없는 하얀 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독고상완의 눈이 묘한 빛을 머금었다.
“여전히 아름답군.”
아주 오래전 독고상완이 매일 같이 보던 모습이다.
어머니라 부르던 여인의 얼굴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리운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애롭지 않아.”
웃음을 보인 독고상완이 휘두르지 않았던 두 번째 부부검, 막야를 숙의 반대편 어깨에 꽂아 넣으려 했다. 하나 그보다 숙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독고상완으로부터 거리를 벌리고는, 일 장을 내뻗는다.
천둥소리와 함께 거대한 기운이 독고상완의 몸을 뒤덮었다.
위이잉-!
엄청난 위력을 가진 일격이었지만, 세차게 회전하는 멸망환 앞에서 그 힘은 덧없이 흩어져버린다.
하나 애초부터 숙의 목적은 독고상완이 아니었다.
그가 멸망환의 힘을 끌어내는 사이, 이형환위로 움직이며 단숨에 두 개의 초염구를 쳐낸다.
뻗어진 장법에 초염구가 하늘에서 폭발하며 불꽃의 비가 사방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다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우마 일족의 전사들과 용사들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그를 쳐낸다.
“대체 무슨 어리석은 짓을, 나야 감사하지만…….”
그 장대한 광경 속, 혀를 차면서도 웃음을 보인 독고상완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위이잉-!
가속하는 멸망환이 그의 전신에 거대한 힘을 밀어 넣는다.
“잘됐어. 사실…… 말이지. 그러니까 나는 말이야…….”
“당신하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거든.”
다소 저열한 말과 함께, 웃음을 보인 독고상완의 신형이 사라졌다.
보랏빛 강기는 긴장하고 있는 숙의 앞섬을 단숨에 가른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하얀 옷이 나풀거리며 흐트러진다.
놀란 숙이 드러나려는 가슴을 빠르게 가렸다.
“흠, 제법 보기 좋은 풍경이 됐을 텐데 말이야.”
가볍게 입맛을 다신 독고상완이 웃음을 보이고는, 두 개의 초염구를 다시 한번 지상으로 쏘아 보냈다.
동시에 빠르게 신형을 움직여 검을 숙의 어깨 쪽 옷자락에 내다 꽂는다.
“……!!”
“둘 다 막기에는 벅차지 않아?”
눈 깜빡할 사이 수십의 검격이 오가며 숙의 상의를 조각내 버린다.
그 사이 초염구를 향해 뛰어들어 또다시 두 번의 장법을 쏘아낸 숙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신기해, 초연해야 할 신이라는 존재가, 수치라는 감정도 가지고 있지. 대체 신이란 무엇일까? 나 역시 일부 신격을 얻었지만…… 여전히 알 수가 없어.”
독고상완이 그런 숙의 앞으로 번쩍하며 나타났다.
검극은 가슴을 감싸고 있는 숙의 손목 앞에서 멈춘 채다.
“어때? 잘리기 전에 스스로 포기하는 건?”
인정하기 싫지만, 멸망환의 기운을 회전시키고 있는 독고상완은 숙보다 훨씬 빠르고, 강했다. 감히 따라잡을 수도 없는 정도다.
숙의 시선이 지상을 향했다.
얼떨떨한, 지친 모습을 한 우마왕이 그녀의 눈에 보인다.
[도망쳐.]
자신이 소멸한 줄로만 알았는데, 여전히 살아 있음에 놀라고 있던 우마왕은 그 의지의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네 일족을 지켜야지.]
숙이 그녀를 재촉한다.
“하지만……!”
곧 우마왕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내저었다.
고집부리고, 오기를 피운다고 해서 무언가 바뀔 상황이 아니다.
버티고 있으면, 기껏 해봐야 짐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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