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재생-349화 (349/373)

학사재생 349화

제 349화

초열(焦熱), 아니 초열(超熱)이다.

우마궁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화염구는 초열지옥의 뜨거운 화염조차 우습게 만들 정도의 압도적인 열기를 품고 있었다. 우마왕이 거력대왕으로서 건재하던 시절이라 하여도, 온갖 준비를 하고 파초선을 휘두른다고 해도 막아낼 수 없다. 잠시나마 떨어지는 화염구를 주춤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선이다.

처음 화염구를 본 순간, 우마왕도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백성, 그리고 일족의 영토를 지키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왕의 덕목이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최후를 부른다고 할지라도, 혹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발악이라고 하여도 답은 달라지지 않는다.

때문에 우마왕은 바랐다.

자신의 염원이, 또 다른 초월적인 힘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실질적인 힘이 되었다.

준비도 없이, 불안정한 상태로 휘두른 파초선의 바람이 광풍이 되어 초염구(超炎球)를 밀어낸다. 날름거리는 혀처럼 꿈틀거리는 불길은 바람과 마주하고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듯하지만 그 위력은 누에 뜨이게 줄어들어 있다.

단숨에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우마 일족의 다섯 용사가 불길을 막고, 쳐낸다.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만 같았다.

‘아니, 이건 기적이야.’

영혼이, 육체가 금이 가고 붕괴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우마왕의 입가로는 쓴웃음이 번졌다.

파초선을 휘둘러, 초염구를 잠시 밀어냈다.

사방으로 떨어지는 불똥을 우마 일족의 용사들이 몸을 날려 막아선다.

전사들 역시 망설임 없이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하여 초염의 잔재를 향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기적이란 것은, 말 그대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다. 그런 일이 일생에 몇 번이나 일어날 수 있을까?

운이 좋다면 한 번?

전혀 없는 이들도 대다수다.

거친 기세로 몰아치던 광풍의 힘이 어느덧 사그라지고 있다.

오히려 뜨거운 열기를 실은 바람이 되어 역으로 우마궁을 덮쳐 내려오고 있었다.

기적은 끝났다.

다시금 강하하는 초염구는 한 번 밀려났던 것이 분한 듯 더욱더 사나운 기세를 뽐내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해내지 못했어.’

그래, 고작 한 번.

그 정도 기적으로 저 엄청난 초염구를 어찌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두 번째도 부탁하마.”

입술 아래로, 눈에서, 귀에서도 끈적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풀리는 손아귀레 힘을 쥐고, 후들거리는 팔을 다시 들어 올린다.

그 순간, 버티지 못한 무릎이 꺾이며 지면에 닿았다.

이미 그녀의 육신은 한계를 벗어났다.

한 번의 기적을 부른 대가다.

알고 있다.

기적이란 것은 마냥 상냥하기만 한 종류가 아니다.

‘하지만…… 설령 우마왕이란 이름이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진다 한들……!’

우마왕은 악다문 이빨에 힘을 주었다.

이빨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무너졌던 무릎이 떨리며 다시금 펴지기 시작한다.

굳건하다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으로 지면에 발을 디딘다.

파초선을 최대한 높게 들어 올린다.

초염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그녀의 영토를 침범해오고 있었다.

“내게 두 번째 기적을……!”

기도할 신 따위 없다.

그래도 바랐다.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다 못해 갈아서 우주의 먼지로 털어 넣어도 된다는 심정으로 파초선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남은 전력을 다 쏟았다.

다만 그 전력이 보잘것없었을 뿐이다.

눈앞을 지나가는 산들바람과 같은 전력의 흔적에, 우마왕은 깊은 탄식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아…….”

육체가 망가지고, 영혼이 부서진다.

그녀의 바람대로 모두 망가지다 못해 먼지조각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이것도 기적?’

고작 이 정도가, 두 번째 기적?

그럴 리가 없다.

말했듯 기적이란 것은 그리 흔치 않다.

단지 그뿐이다.

우마왕에게, 그녀의 일족에게 두 번이나 되는 기적이 벌어지지 않았다.

‘난 결국 내 일족조차 지키지 못했구나.’

눈가로, 피가 아닌 또 다른 액체가 흐른다.

회한의 눈물이다.

평생을, 단 한 번도 흘려본 적 없던 종류가 얼굴 전체를 넘어 지면마저 적신다.

“아아…….”

탄식 섞인 울음소리에는 짙은 고통이 배어있었다.

초염구의 열기 탓은 아니었다.

이미 붕괴하고, 소멸해가는 그녀의 육체와 영혼은 고통을 잊었다.

다만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너무나 슬프고 절망스러운 상황이 괴로울 뿐이었다.

어느덧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붉은빛으로 휩싸였다.

그리고 폭발한다.

하얗고, 붉은, 광채가 연신 사방으로 뻗어져 나간다.

종말을 알리는 그 굉음의 세계 속, 더 이상 우마왕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초염구는 우마일족의 영토를 모두 녹여버렸다.

그 폭발적이고, 난폭한 위력을 하늘 위에서 목도하고 있던 전생자, 독고상완은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푸하하하!”

절망, 공포, 좌절, 분노, 슬픔, 그를 기쁘게 하는 감정이 소멸해가는 영혼들 사이로 넘쳐흐른다.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때문에 독고상완은 배를 잡고 한참이나 바닥을 굴렀다.

[미친놈.]

그의 양팔에 채워진 흑색의 팔찌, 그중 중앙에 박힌 황톳빛 보석이 잘게 떨리며 의지를 전달했다.

하나 독고상완은 그 음성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그에 황톳빛 보석이 더욱 큰 울림을 토하며 분노를 흘려보냈다.

[독고상완……!]

이를 갈 수 있다면 이를 갈았을 터다.

힘을 쓸 수만 있다면 당장 독고상완의 목을 졸라 죽여 버렸을 터다. 하지만 그는 생각으로 그칠 뿐이다. 현재 공손헌원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최악이었다.

현재 그는 삼황오제의 힘을 담은 신살기 멸망환(滅亡環)에 갇힌 상태였다. 멸망환의 소유주인 독고상완의 허락 없이는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존재의 유지조차 어찌 될지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빌어먹을 악마 새끼!’

스스로를 제법 독하다고 생각하였던 공손헌원은 내심 독고상완을 욕하며 이를 갈았다.

전생자, 독고상완은 생각보다 악독하고 집요하며 영리한 인물이었다.

삼황오제의 힘을 담은 신살기 멸망환(滅亡環)이 완성된 당시, 제작자인 공손헌원조차 환희로 가득 차 있던 그 순간 독고상완은 단숨에 그를 주박의 술로 옭아매 멸망환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어찌 반응할 틈도 없었다.

첫째 이유는 공손헌원이 엄연히 방심한 탓.

설마하니 이렇게 빠르게 팽(烹) 당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독고상완이 생각보다 강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손헌원에게 전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끔찍한 악의와, 어떠한 분노로 가득 차 보이는 모습에 완전히 속아 그가 온연한 전력을 보여주고만 있다고 생각했었다.

독고상완의 신격에 묻은 숙과 홀의 흔적을 알았다면, 마음을 그토록 완전히 놓고 있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아아, 헌제. 그대도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

그 분노의 감정에 독고상완의 입가에 어려진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가슴 한편에는 뻐근할 정도의 뿌듯함이 차올랐다.

모두의 원망을 받는 이 기분이 굉장히 즐겁다.

[내가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네놈의 영혼을 잘게 씹어 먹어 버릴 것이다.]

“그리될 수 있다면 말이지.”

독고상완은 그 원망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웃었다.

‘세계를 통틀어 누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삼황오제의 힘.

한때 세계를 오시하였던 고대 신들ㅇ릐 힘은 독고상완의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하나, 하나는 최상위 신인 숙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지만 다 같이 모여든 힘은 숙을 한참이나 뛰어넘는다.

공손헌원의 영혼을 제하고는 고작 잔재라고 볼 수 있는 조각만으로도 약해진 숙 정도는 어려움 없이 소멸시킬 수 있다고 자신할 정도였다.

그 증거로, 고작 염제 신농의 힘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유계 최강이라 불리던 우마 일족을 전멸시켰다.

짧은 순간 잠력을 폭발시켜 소멸하기 직전까지 힘을 쏟아부은 우마왕조차도 우스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세계에서 나를 막을 자가 있을지 모르겠군.”

[개자식…….]

독고상완의 비웃음에, 공손헌원은 욕설을 내뱉고는 침묵을 지켰다.

실제 멸망환을 다루는 현재의 독고상완은 세계에서 그 적수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 사실인 탓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바란 것은 독고상완의 오만이 지속되는 것이었다.

방심은 틈을 만들고, 생각지 못한 일을 만든다.

현재 공손헌원이 그리됐듯 말이다.

또한 과거의 수많은 절대자가 자신보다 하수에게 패배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탓이었다.

공손헌원은 단순히 힘만으로는 막을 자가 없어 보이는 독고상완이라는 괴물이, 그런 방심에 의하여 무너지길 바라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독고상완도 그런 공손헌원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숙을 자극하여 신선들과 백교의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정말 만약이 될 수 있는 변수, 황준우를 노렸다.

“놈이 제강의 조각을 얻기 위해 이 안에 있었다면, 흔적도 남기지 않고 타버렸겠지.”

염제, 신농의 초염이 떨어지며 완전한 죽음의 땅이 되어 버린, 한때는 우마 일족의 영토였던 곳을 바라보는 독고상완의 눈은 혹시나 있을 만약을 대비하여 지면을 훑는다.

‘생존자가 몇 있군.’

기적이란 것은 굳이 우마왕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서, 몇몇 우마 일족이 초염의 열기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무너진 땅에 내리깔려 위기를 피했거나, 혹은 누군가가 몸을 던져 지켜주었거나, 또는 정말로 운이 아주 좋았거나, 흔하지 않은 듯, 기적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한다.

황준우도 그런 식으로 이 대지 어딘가에 아직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번의 기적은 없지.”

오른손에 차고 있는 멸망환으로부터 다시금 엄청난 기우니 흘러나왔다.

신력으로 그를 정제하고 다진 독고상완의 손바닥 위로 또 하나의 초염구가 떠올랐다.

고작 눈 몇 번 깜빡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우마왕과, 수많은 우마 일족의 용사와 전사들이 전력을 다하여 막으려 했던 초염구는 이처럼 간단하게 만들어지고, 쉽게 사용되는 것이었다.

“자, 끝을 보자꾸나.”

웃음을 흘린 독고상완이 무심히 내던진 화염구가 죽음의 땅을 향해 다시 한번 떨어진다.

이제는 막아줄 우마왕도, 용사도, 전사도 없다.

하얀 신, 숙 본인이 개입하지 않는 한 이 죽음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이 이곳에 올까?’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독고상완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이기적인 신.’

스스로의 욕심으로 제강을 죽였고, 그를 버렸고, 이제는 자신을 믿고 있던 세계의 주민들의 죽음마저 방관할 것이다.

‘위선(僞善)으로 덮인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

독고상완이 서늘한 조소를 비출 때였다.

세상이 멈추었다.

하얀빛이, 유계의 하늘에 번진다.

“설마……?”

기대와 의혹, 그리고 불신을 가진 독고상완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