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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45화 (345/373)

학사재생 345화

제 345화

그 기반에는 남천맹을 찾아온 요동과 그의 요선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무력이 조화경의 고수를 압도할 정도이면서도, 같은 요괴를 철저하게 압살한다.

다소 기괴한 모습에, 인간을 움츠리게 하는 흉포함을 자랑하는 요괴들의 모습에 조금 긴장하고 있던 남천맹 무인들은 가슴 한편에 가지고 있던 두려움을 싹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요괴라고 하여도 요선을 제외한 대다수의 존재는 어지간한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상대 가능하다.

절정, 초절정이라면 압도할 수도 있다.

남천맹의 기세가 살아났다.

전왕은 무림인들과 요동을 비롯한 요선들을 천하 각지에 파견해 요괴의 침공을 막았다.

황궁조차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벌어진 일에 민심 전체가 무림인, 남천맹으로 쏠릴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인간을 돕는 요괴들이었다.

인간들은 요동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을 그야말로 요선(妖仙) 취급하며 신성시까지 했다.

나약한 인간들을 돕는다는,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위에 난감해하던 요괴들은 그런 상황에 점점 더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거대한 삼지창을 들고 설치던 돼지 요괴를 양 갈래로 찢어 놓은 새 머리 요괴, 상조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얼마나 남았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지하에서부터 튀어 오른 지네 요괴가 아가리를 크게 벌려 상조를 한입에 집어삼키려 한다.

‘요선급.’

흉흉한 두 눈과 계획된 움직임에 상조의 심장 한편이 섬뜩해질 때였다.

쿠르릉-!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쳐 지네 요괴를 단숨에 구워버린다.

“멍청한 녀석, 그렇게 방심하지 말라니까.”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상조의 얼굴에는 화색이 깃들었다.

“대형.”

뇌신, 요동이 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쥐머리 요괴 서요가 아직 땅속에 숨어 있던 요괴를 잡아내어 지상으로 올라온다.

흑사귀도 간사한 눈을 빛내며 수풀 속의 요괴를 낚아채 질식시키며 나타났다.

“오오…… 요선사협(妖仙四俠)이다.”

“요선사협이 나타났다!”

상조의 활약을 보며 양손을 모으고 있던 서민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하다.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그들 사이에 떨어진 요동이 꺼림칙한 눈빛으로 물었다.

“다친 사람 있나?”

거친 목소리.

사실 그리 유쾌하게 느껴지는 어투도 아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요선사협께서 우리를 구하셨어요.”

“모두 무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고개 숙여 감사하고, 기뻐한다.

요동을 비롯한 나머지 요선들의 심장 한편에서 어떠한 감정이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처음 느껴보는, 결코 익숙하지 않은 느낌.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감정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하단 것도 문제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심장 한편이 간질간질하고, 뭔가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고, 가슴이 뻐근하게 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럼 됐어. 우린 간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굳이 보이고 싶지 않아, 차갑게 말하며 등을 돌린 요동이 먼저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뒤를 따라 마찬가지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세 요선이 빠르게 움직인다.

눈과 기운은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 새로운 요괴의 기운을 찾았다.

하지만 한 시진을 넘게 뒤져도 딱히 네 요선의 감각에 느껴지는 적의를 가진 요괴는 없었다.

“흠…….”

하늘에서부터 지상으로 내려선 요동이 짧은 신음을 흘린다.

그를 따라 빠르게 움직이며 눈과 귀를 바삐 움직이던 세 요선도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요즘 요괴 녀석들 출몰하는 게 많이 준 것 같죠?”

서요의 말에 요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저곳에서 모습을 나타냈는데 근래 들어 너무 잠잠하다. 한 시진이 아니라 두세 시진을 뒤져도 한 무리를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서 쫓아가도 요선 사협이 도착하기도 전에 남천맹 무림인들 선에서 정리된 경우가 많았다.

“뭐, 귀찮은 일도 줄고 있으니 좋네.”

요동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맞는 말이오. 인간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우리가 뭔 고생인지 참…….”

함께 투덜거리는 음성을 내뱉은 서요가 고개를 젓는다.

특이한 것은 둘 다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꺽…… 꺽……!”

그 둘을 무심히 바라보던 상조가 배를 잡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새 대가리 자식아, 넌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어.”

“꺽꺽!”

요동이 뭐라 하여도 상조의 웃음은 그치질 않는다.

가는 눈을 한 흑사귀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거참, 난 상조 녀석이 왜 웃는지 조금은 알 것 같소.”

“왜 웃는데?”

“대형과 서요의 표정에 아쉬움이 묻어나고 있는 탓 아니오.”

“뭐? 이 새끼는 아까 닭 요괴 하나 처먹더니 머리가 이상해졌나.”

“확 배를 갈라버릴까 보다!”

요동, 서요의 폭언에 미간을 찌푸린 흑사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거 참 말 좀 곱게 하시오 대형, 서요. 우리 나이가 몇인데.”

“오백마흔세 살이다. 왜.”

“오백마흔 살이다. 왜!”

“…….”

당당하게 어깨를 편 요동과 서요를 보며, 말문을 닫고 고개를 내저은 흑사귀가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렇게 되자 안달이 난 측은 오히려 요동과 서요였다.

그 둘은 아직 흑사귀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큼, 큼. 그래서 뭐가 아쉬워 보인단 건데.”

“그래, 뭐가! 뭐가 아쉬운데!”

“됐소. 들을 준비도 안 된 양반들이랑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꺽꺽……!”

“상조 넌 그만 웃어!”

요동의 외침에도 상조는 여전히 배를 잡고 웃는다.

결국 요동과 서요 둘 모두 항복 선언을 했다.

“아, 거 참. 반론 안 하고 듣는다니까.”

“조용히 들을게.”

“…….”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짱을 낀 흑사귀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 아직 두 요선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제발, 제발 알려줘. 흑사귀.”

“나 궁금해. 궁금해 죽는다고.”

애걸복걸 매달릴 때쯤이나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눈을 뜬 흑사귀가 헛기침을 했다.

“큼, 정말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됐소?”

“젠장, 나도 지금 내 마음이 뭔지 궁금하단 말이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 건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준비가 조금은 된 것 같구려.”

뒷짐을 쥔 흑사귀의 뱀 입이 길게 미소를 그렸다.

“그러니까, 두 형님께서는 지금 인간들을 더 돕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단 말이오.”

“너…….”

욱하고 무언가를 말하려던 서요가 입을 다문다.

옆에 선 요동이 길게 늘어난 주둥이를 콱 잡은 탓이다.

“계속 이야기해봐.”

요동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 흑사귀가 혀를 낼름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면 두 형님께서, 그리고 우리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이유가 뭐냐. 고민을 해보잔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딱 한 가지밖에 이유가 없지 않소?”

“한 가지 이유?”

“예. 대형. 한 가지 이유요. 거, 인간들이 우리 보고 막 박수 치고 요선사협이니 뭐니 하면서 칭찬해주지 않소?”

“그렇지.”

요동의 입가가 씰룩, 거린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흑사귀가 가는 눈을 더욱 길게 찢으며 웃었다.

“바로 그거요. 우린 그 인간들의 칭찬, 이 말이 불편하면 그렇게 이야기합시다. 추종이 즐거운 거요.”

“추종이 즐겁다고?”

“거 인간들 말 중에는 그런 이야기도 있다고 합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고래라면 바다에 사는 그 거대한, 요괴보다 더 무지막지한 놈 말하는 거 아니야?”

“근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소?”

흑사귀의 타박에 머쓱하게 웃은 요동이 팔짱을 꼈다.

두 눈에는 고심이 깃든다.

“대형, 뭘 고민하고 있소. 우리가 인간의 추종 따위에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고민하고, 막 가슴 한편이 간질거린다는 게 말이 되오? 우리 요선이오. 요선!”

“요선이란 게 별건가. 끅.”

서요의 외침에 상조가 웃음을 잠시 멈추고는 반론한다.

“너, 이 새 대가리 자식이.”

“새 대가리나 쥐 대가리나. 요선이고 뭐고, 좋은 건 좋은 거 아니냐? 싫은 건 싫은 거고.”

서요를 향해 콧방귀를 뀌며 말한 상조가 날아오른다.

“어쨌든 난, 이번 일로 인해 인간이 제법 좋아진 것 같은데?”

상조가 조소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에 서요가 분개한 듯 발을 바닥에서 동동 굴렀다.

“저 건방진 새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여! 대형, 저놈, 저 새 새끼 좀 잡아와 봐요 좀!”

“시끄럽다.”

서요의 분개를 일갈에 다물게 만든 요동의 입가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인간이 좋아졌다라…….’

요괴인 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선천적으로 그들은, 어째서인지 인간을 증오하고 싫어하게 만들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런 감정을 떨쳐낸다고 하여도 딱히 호감이 들 일은 아니다.

무관심, 혹은 마치 벌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야만 한다.

한데 작금 그들이 인간에게 느끼는 감정은 반박할 것 없는 호감이 분명했다.

“흑사귀 말이 맞다.”

“대형?”

“솔직히 말해, 기분 좋지 않으냐?”

요동의 질문에 서요의 눈이 가늘어졌다.

얼굴에는 불쾌함이 가득 어린 채다.

“이제 대형까지 헛소리를 하는 거요?”

“잘 생각해 봐라. 서요야. 이제부터 우리가 너만 빼고 인간들을 도우러 다닐 거다. 왜냐면 넌 인간을 싫어하니까, 그렇지?”

“아니, 그건 또 아니고…….”

“뭐가 아닌데?”

“대형 하는 일에 혼자만 빠지기도 그렇고, 인간이 딱히 싫지만은…….”

조심스럽게 말을 하던 서요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야기를 할수록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지는 탓이다.

“거, 서요 형님도 이제 인정하시오. 우리가 인간을 제법 좋아하게 됐다는걸.”

“우라질.”

욕을 내뱉은 서요가 고개를 돌린다.

더 우긴다고 해도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인간을 좋아하게 된 요선이라…….”

요선사협.

인간들이 자신들을 부르는 별호를 떠올린 요동의 입가에 조금은 일그러진 미소가 떠올랐다.

“그 무신 놈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뭔지…….”

“그러고 보니 대형의 정수를 찾아온다는 놈이 왜 아직 소식이 없소?”

흑사귀의 질문에 요동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라고 알까. 놈 실력이면 금방 올 거라고 믿었는데…….”

지상의 요괴 소동이 정리될 때까지 조용하다.

“아무래도 슬슬 정리도 돼가는 듯한데, 우리도 유계로 가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흠…….”

서요의 의견에 신음을 흘린 요동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

물론 곧장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인정해 버린, 좋아진 인간들의 생사가 걱정이 되었다.

“지상의 요괴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때, 전왕인지 뭔지 하는 인간한테 말하고 우리도 유계로 돌아간다.”

“좋은 생각입니다.”

흑사귀가 동의했다.

“나도 찬성!”

하늘의 상조도 소리친다.

고개를 돌린 채 다소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던 서요에게서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넌 어떻게? 먼저 유계로 가 있을래?”

“아, 거 참. 말했지 않소. 나도 인간이 싫지만은 않다고. 내가 안 도와서 누구 한 명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영 찝찝할 것 같아서…….”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결국 돕겠다는 말.

그를 확인한 요동이 웃음 지으며 다시 날갯짓을 시작했다.

“자, 그러면 우리가…… 그 뭐냐, 좋아하는 인간들을 돕기 위해 힘내보자고.”

요선사협.

훗날 무림사가에 신수라는 이름으로 남을 요선들이 자신들이 가진 마음의 방향을 올바르게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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