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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335화 (335/373)

학사재생 335화

제 335화

스스로의 우주에 가장 큰 힘을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 보여다오. 너의 전력을, 그 절박함이 담긴 최선을…….”

웃음을 흘리는 항우의 주변으로도 검은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생각보다 굉장히 빨라서 단숨에 세계를 뒤엎어 버린다.

무거운 중압감이 황준우의 어깨를 짓눌렀다.

어두운 유계를 은은하게 비춰주던 달빛마저 종적을 감추었다.

적막한 어둠이 주변을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그 속에서 유일한 빛은 황준우가 뽐내는 찬란한 황금빛뿐이다.

빛나는 황금안은 짙은 어둠으로 자신을 휘감은 채 무시무시한 투기를 내뿜고 있는 항우를 직시한다.

“보이는가?”

항우의 목소리가 귓가로 전해졌다.

그의 주변을 아른거리던 검은 기운은 어느덧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한다.

사람의 모습이다.

비록 그 얼굴조차 없는, 기운으로 이루어진 인형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분명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떤 강대한 힘이 담겨있다.

‘영혼?’

황금안을 통해 황준우는 그 정체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검은빛 형체는 영혼이다.

하나 망령은 아니며, 어떠한 악의도 없다.

오히려 스스로 원하여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들리는가?”

입가로 미소를 지은 항우가 물었다.

그 순간, 얼굴에 아무런 모형 하나 없던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인형의 입이 열렸다.

와아아-!

거대한 함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둥, 둥-!

뿌우우-!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머리를 울릴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

하늘을 찌르다 못해 깨부술 것 같은 사기(士氣)가 황준우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이곳은 전장. 그리고 이들은 나의 용맹한 병사들.”

항우의 음성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 기세가 무신이라 불리는 황준우조차 짓누를 정도다.

대다수는 이 기세에 눌려 걸음조차 떼지 못한 채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

황준우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의식에 정신을 집중했다.

심검은 마음의 힘이다.

무거운 중압감에 짓눌려 정신이 흔들린다면 승부조차 될 수 없다.

그를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본 항우가 손을 오른쪽으로 길게 내뻗었다.

“오추마.”

이히힝-!

부름에 거대한 말이 울음소리를 흘리며 전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단숨에 그에 올라타, 대도를 높이 세운 항우는 도극(刀極)을 황준우에게 세운 채 읊조렸다.

“홀로 최강이라 불렸으나, 혼자여서 무엇도 이루지 못했다. 해서 나는 이곳에 와 나의 군세를 마음에 담아 그들과 영원을 함께하기를 선언하였으니…….”

푸르륵-!

투레질을 하며 눈을 빛내는 오추마의 뒷발이 땅을 가볍게 박차기 시작했다.

기세는 점점 더 강렬해진다.

그의 주변을 휘감고 있는 군세는 그 수가 삽시간에 늘어나 천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를 흘려내고 있다.

생전 항우의 기세는 세상을 뒤엎었다 하였다.

하나 결국 대국의 싸움에서 궁지에 몰린 그는 단 한 번의 패배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 원인이 독보(獨步)하려 한 자신의 자만이었음을 깨달은 그는 유계의 세상에 흘러와 새로운 마음속 우주, 세계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패왕세(?王勢)다.”

오추마가 지면을 박찼다.

그 수를 셀 수 없는 패왕의 군세가 그 뒤를 따라 바람처럼 내달려 항우의 주변을 휘감는다.

검은 바람의 날이 되어 거대한 대도를 휘감아 세상을 집어삼킬 듯 괴물과 같이 포효한다.

“어디 한번 받아 보아라.”

단숨에 공간을 멸(滅)하고 황준우의 눈앞까지 도달한 항우의 대도가 패왕의 군세의 힘을 담아 거칠게 휘둘러졌다.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종이 된 듯 거대한 울림을 토했다.

엄청난 힘을 담아, 벼락처럼 떨어진 대도를 홀로 막아선 수왕검이 가파른 떨림을 토한다.

검날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황준우의 눈앞, 지근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모습을 신기할 정도의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던 황준우가 입을 열었다.

“먼저 움직였으면…… 내가 무조건 졌겠네.”

항우의 기운이 범람하는 것과 함께, 그의 마음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야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심검이란 곧 하나의 세계. 오롯이 육신이 우주를 품은 생명체만이 펼칠 수 있는 창조의 힘.”

항우의 검미가 무겁게 뒤틀렸다.

“덕분에, 천조신공의 마지막에 도달했네.”

신격을 얻으며 천조신공은 구단공을 넘어섰다.

그 무한의 영역에 감히 끝이 없을 줄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평생을 다해도 십단공을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무한의 답은 세계 그 자체.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평생을 얻지 못했겠지.”

황준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이 마치 태양처럼 강렬해지기 시작한다.

실제로 그 열기가 패왕의 군세 모두가 합친 힘을 대도에 담은 채 짓누르고 있는 항우의 전신에까지 느껴졌다.

“이거…….”

항우의 입가로 웃음이 번졌다.

전신에는 죽은 뒤 처음으로 소름이라는 것이 돋아났다.

“정말로 즐겁구나.”

환한 웃음은 곧 거대한 황금빛에 뒤덮였다.

주변을 휘감던 어둠이 물러나며 황금빛은 그 끝을 모르고 덩치를 불려간다.

항우의 눈에는 그 속에서 느릿하게, 하나 세상 무엇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는 황준우가 보였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경계에 갇혀버린 듯 입조차 열지 못한 항우의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무한(無限).’

경계가 없다.

황준우가 느낀 스스로의 우주에 대한 마음이 곧 세계가 되어 펼쳐진 것이다.

‘이건…… 이길 수 없겠군.’

따르는 군세가 백만이 넘어 천만이 된다 한들, 설령 그들 하나, 하나가 일당백이 넘는 용사라 한들 무한이라는 끝없는 수치 앞에서는 모두 무의미하지 않은가?

그를 깨닫는 순간 항우의 입가로 자조적인 미소가 흘렀다.

평생토록, 죽어서까지 그는 많은 승리를 해왔다.

가히 무적의 무신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다 자부했다.

하나 이번에도, 먼 과거와 같이 단 한 번의 패배가 그를 종말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네…… 승리다. 무한의 무신이여.”

쩌저정-!

무한의 흐름이 끝나고, 입이 열린 순간에는 항우의 세계가 깨어졌다.

핏물을 토하는 그의 신형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후회는 없었다.

‘언제나 싸우며 살았고, 지는 것보다 더 많이 이겼다.’

사내로 태어나, 무인으로서, 장군으로서, 또한 왕이 되어 전장을 헤쳐 나왔다. 죽은 이후로도 끝없이 싸우고 승리하여 단 두 번 패배를 겪었을 뿐이다.

등 뒤로 맞닿는 유계의 지면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부드러운 미소를 흘린 항우의 눈앞에 온전히 무신의 이름을 거머쥔 황준우가 선다.

그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보인 항우가 물었다.

“나의 이 삶과 죽음, 충분히 훌륭했지 아니한가?”

“…….”

파스스-!

먼지처럼 흩어지고 있는 항우를 바라보며, 황준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는 모른다.

이미 항우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던 영혼 자체는 완전히 그 흔적을 감추었으니 말이다.

유계의 죽은 망령은 삶에 집착한다.

우마왕이 했던 이야기가 문득 황준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군. 당신의 삶은 이제야 끝이 난 거야.”

지상의 무신 항우는 죽었지만, 그의 삶은 바로 직전까지 끝나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의 모습은, 재생하지 못했을 황준우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았을까?

그 최후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황준우의 시선은 걱정된 감정을 담아 먼 곳을 직시한다.

“가야 하는데…….”

몸이 만신창이다.

무한의 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를 표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육신과 정신이다.

“큰일이군.”

허탈한 웃음을 지은 그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결국 제자리에 주저앉은 황준우는 정신을 집중해 회복을 시작했다.

‘조금만, 조금만 버텨줘.’

강적, 항우를 쓰러트렸다.

하지만 아직 그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주 잠깐, 세상이 어둠과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강렬한 흐름에 대규모 군세가 부딪치던 전장이 멈추었다.

전생자 역시 놀란 시선으로 몸을 크게 돌렸다.

“항우가 졌다고?”

믿기지 않는 시선으로 말하는 그의 눈에 불신이 피어올랐다.

하나 이는 분명한 현실이다.

방금 전, 유계를 통틀어 가장 강한 기운이 소멸했다.

그와 상대하고 있는 무리와, 먼 곳을 번갈아 바라보던 전생자의 눈에 핏발이 섰다.

“지금이 기회다!”

무언가를 눈치챈 그가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안 됩니다!”

다급한 백교의 음성과 함께 전생자의 몸이 굳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사태가 심각함을 느낀 일행들의 몸도 바쁘게 움직였다.

“감히 나 여동빈을 무시하고 길을 지나려 하는가!”

여동빈이 정면을 막아서며 벼락처럼 검을 휘둘렀다.

그의 주변으로 다가와 하나의 진법을 이루듯 자리를 잡은 주연하와 홍산, 경호의 합격술도 그 뒤를 따랐다.

“이…… 벌레 같은 것들이 감히!”

분노를 토한 전생자가 두 자루 검을 교차하며 거대한 열십(十)자를 만들어냈다.

그를 막아선 순간에는 한기(寒氣)와 열기(熱氣)가 사방으로 번진다.

“조심해! 놈의 검…… 보패다!”

거친 숨을 가다듬은 우마왕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패?”

백교의 눈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열기와 한기를 토하고 있는 두 자루 검을 직시한 백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간장, 막야!”

오(吳)의 왕, 합려의 청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명검.

달리 음양검(陰陽劍)이라고도 불리는 보패의 이름이 불린 순간이었다.

몰아치던 한기와 열기가 한데 뭉치는가 싶더니 곧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서로 상반되는 기운의 강렬한 충돌에 거대한 충격이 사방으로 전해지며 한 치 앞을 알아보기 힘든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풍-!”

놀란 백교가 재빠르게 술법을 외워 먼지구름의 장막을 거둘 때였다.

“그대 놈 목은 거두고 가야겠다 싶어서 말이지. 너무 귀찮은 존재는 사양인지라.”

백교의 눈앞, 두 자루 검의 보랏빛 강기가 번쩍였다.

그 순간, 부채를 펼쳐 그를 막아선 백교가 뒤로 길게 밀려났다.

“막아?”

“얕보시면…… 안 되지요. 뒤를 생각지 않고 전력을 다하고 있단 말입니다. 후후…… 쿨럭!”

입가로 핏줄기를 쏟은 백교가 휘청인다.

“뭐, 좋다. 운도 실력이지.”

다소 여유를 부린 전생자의 등 뒤로 연분홍빛 강기가 흩날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볍게 검을 휘둘러 그를 쳐낸 전생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정말…… 날벌레 같은 존재로구나.”

어느새 그의 주변으로 여동빈을 비롯한 이들이 또다시 합격진형을 펼치고 있다.

틈을 못 만들 것은 없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더 흐르고 있었다.

대다수가 일검을 버티기 힘든 존재들이다.

문제는 그런 이들이 모이고 모여 신경을 분산시키고 있단 것이었다.

언제나 정신을 차갑게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 그였으나, 그의 본성은 이런 상황을 굉장히 싫어했다.

‘인내심이 떨어져 가는데.’

까딱, 까닥.

쌍검을 쥔 손가락이 검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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