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26화
제 326화
“후…….”
황준우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의 한숨이 흘렀다.
그를 참으로 원망했다.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순간에도, 더 참혹하게 죽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다. 한데 이 꼴이 무엇이란 말인가? 명색이 마왕쯤 되었으면 훨씬 더 끔찍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날 줄로만 알았다.
“제길, 제기랄…….”
욕을 내뱉는 진무영은 끊임없이 눈물을 쏟고 있을 뿐이다. 그 처참함과 미약함은 황준우가 생각했던 진무영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체 무엇이 널 이렇게 망가트린 거냐.”
질문을 했지만, 답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이냐니요? 지금 당신이, 바로 방금 전 저를 이렇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원한 섞인, 그리고 괴로운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타오를 것 같은 눈동자에는 묘한 회한이 가득하다.
“난 그저 당신과 함께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곁에서, 누구보다 오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롯이 단둘이서 함께하는 미래를 그렸을 뿐이라고요!”
“그 무슨…….”
황준우의 등 뒤로 소름이 돋아났다.
타오르는 눈동자에 어린 집념이 어지간한 악령을 뛰어넘는다.
“그런데 당신이 절 버렸습니다. 저 홀로 외딴 세계에 처박아 넣으려 했죠. 그리될 순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곁에 서려면……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짓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뭐, 뭐야. 이 사람 무서워.”
황서연이 뒷걸음질 쳤다.
그녀 역시 진무영이 가진 집착과 원념을 느낀 탓이다.
“다시 기회를 잡았습니다. 언제고 당신의 옆에 선 미래를 꿈꾸며 버텨 왔습니다. 그때쯤 되면 이런 끔찍한 흉물이 아닌 아름다운 모습으로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이 미친놈.”
결국 황준우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진무영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을지 모른다.
그가 보인 황준우에 대한 집착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아, 무신이시여. 당신을 원망합니다. 또한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곁에 오롯이 나밖에 없기를 바랍니다.”
원념이, 집착이 덩치를 불려 간다.
쏟아지는 눈물은 어느덧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황서연! 뒤로 물러나!”
무언가를 느낀 황준우가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검이 단숨에 목을 자른다.
영혼을 멸하는 힘이 가득 담겨 있으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한데 떨어진 목이 표정 변화를 일으킨다.
일그러지고, 감격한 듯 눈을 빛낸다.
이윽고는 입술이 달싹이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 그래요. 저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끔찍한, 지저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듯한 목소리였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검은빛이다.
이윽고 유계의 검은 하늘 위로 희뿌연 영혼이 날아올랐다.
이를 악문 황준우의 황금안이 빛난다.
‘영멸이 아니야.’
애초에 황준우가 베었을 당시, 진무영의 혼은 이미 육체를 벗어난 상태였다.
남은 것은 그저 집념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의념.
구구구-!
검은 하늘이 떨리며 희뿌연 망령은 곧 검은 망령으로 변한다.
‘저게 진무영의 혼.’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되었지만 황금안에는 명확히 보였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 검은 연기를 뚝뚝 떨어트리는 저 악령이 바로 진무영이다. 하나 진무영이 아니기도 하다. 이미 그의 자아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지독한 집념만이 그의 영혼 전체를 휘감고 있을 뿐이다.
그 목표는 오롯이 하나.
쩌저적-!
[당신과…… 하나가…… 될 겁니다…….]
거대한 악령의 입이 벌어지고, 소름 돋는 괴성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것으로 시작이었다.
“황서연, 귀 막아!”
놀란 황준우가 외쳤다.
끄아아악-!
악령이 비명을 내질렀고, 황준우의 외침에 다급히 귀를 막았으나 황서연의 몸이 휘청였다.
‘대체 저건 뭐야!’
우마왕으로부터 유계로 도착한 영혼이 인간 혹은 악령의 형태로 변모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다만 본래 마왕이었던 이가 악령이 된 경우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마왕 때보다 무력이 더 상승한 건 아니야. 다만…… 집념이 넘치고 있어.’
황준우가 처음 유계에 들어서며 마주쳤던 망령의 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집념이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정신이 무너질지도 모를 정도의 끔찍한 광기.
황준우조차도 그 기운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단숨에 영멸시킨다.’
몸을 휘어잡는 집념을 떨치고 수왕검을 들어 올린 황준우의 몸에서 황금빛이 번쩍였다.
동시에 몇 배는 더 무거운 집념이 그를 옭아매려는 듯 손을 내뻗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황준우는 그 손길에 발목이 잡혔다.
‘무거워.’
대체 그 집착의 크기가 어떠하길래 신격을 얻은 육체마저 사로잡는단 말인가?
[아아아-!]
괴이한 울음과 함께 거대하고 검은 망령의 손이 황준우의 머리 위를 뒤덮는다.
이를 악문 황준우는 움직임을 포기하는 대신 수왕검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발목이 붙잡혔지만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은 아니다. 다가오는 손을 흩고, 단숨에 이기어검에 심상을 담아 영혼을 찢는다.
황준우의 황금안이 반짝일 때였다.
“잊지 마. 너, 나한테 두 번이나 빚진 거다.”
다소 낮은, 그러면서도 묘하게 요염한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진무영의 집착과는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아나는 음성이다.
눈앞으로는 짙은 눈웃음을 짓는 여인의 얼굴이 보인다.
이어서 보인 것은 매혹적이게 흩날리는 은백색의 아홉 꼬리다.
‘구미호?’
의문이 채 지나가기도 전, 황준우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집념의 손길이 구미호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온 백색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아홉 개의 꼬리에서 피어오른 백색 불꽃은 떨어지는 검은 악령의 손을 삽시간에 불태워 버린다.
끄아아악-!
악령이 비명을 내지른다.
백색의 불꽃은 삽시간에 그 전신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어쩐지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조금 다르지?”
놀라는 황준우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린 여인이 웃는다.
훨씬 더 성숙하고,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진 탓에 아홉 꼬리를 보고도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 상대의 정체는 명확하다.
황준우의 눈에는 그 성숙한 얼굴 아래, 귀엽던 소녀의 모습이 비쳤다.
“달기?”
“응. 나야. 오래 기다렸지? 여러 가지로 시간이 많이 걸렸거든.”
웃음을 흘린 달기가 신비로운 아홉 꼬리를 자랑한다.
[안 돼…… 이렇게…… 또다시 혼자서……]
그사이, 백화(白火)에 휩싸여 사라져가던 진무영의 악령이 다시금 신음을 흘렸다.
주변을 휘감던 집념이 더욱 강해졌다.
여유롭게 웃음을 보이던 달기의 미간이 찌푸려진 것도 동시였다.
“어디…… 마왕에서 악령으로 전락한 하찮은 존재가…….”
황준우를 보며 웃던 달기가 고개를 돌려 차갑게 시선을 굳힌다.
꼬리에서는 또다시 불꽃이 피어올랐다.
“고마워. 달기. 그런데 저놈, 나한테 맡겨주지 않겠어?”
“부탁이야.”
“뭐…… 부탁이랄 것까지…….”
황준우의 말에, 사납게 기운을 부풀리던 달기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아홉 불꽃이 종적을 감추었다.
주변을 휘감던 강력한 기운도 사라졌다.
“고마워.”
“아니, 뭐 이런 것 가지고…….”
달기가 대답을 끝내기 전, 수왕검을 든 채로 허공으로 날아오른 황준우가 거대한 악령의 텅 빈 동공 앞에 섰다. 텅 빈 동고 아래로는 여전히 검은 연기 방울이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채였다.
“진무영.”
이제야 그의 집념과, 집착, 그리고 모든 행동의 원인을 알았다.
그 감정을 단순히 모멸할 생각은 없었다.
인간인 이상 누군가를 동경하고, 그와 함께하는 나날을 꿈꿀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네 감정은 너무 지나쳤어.”
무섭다 못해 끔찍하게까지 변해버렸다.
그 욕심으로 황준우 주변의 모든 것을 해치려 했다.
“난 널 용서할 수 없어. 아니,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거야.”
[무…… 신…… 황준……우.]
목소리가 간절하게 떨린다.
하고픈 말이 많지만 모두 전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다시, 정말 영영 볼 일이 없겠지. 우린 정말, 끔찍한 악연이었다.”
황금안을 빛낸 황준우의 수왕검이 섬광처럼 뻗어져 나왔다.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악령의 전신에 균열이 일어났다.
끄아악-!
그리고 이내, 거대한 비명과 함께 흩어진다.
영원한 소멸을 따라 유계의 하늘과 대지로 녹아들어 버렸다.
그렇게 진무영의 완전한 최후를 확인한 황준우가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황준우!”
누구보다도 빠르게 황준우에게 다가온 달기가 단숨에 품에 안겨 온다.
놀란 황준우가 뒷걸음질 치려 하였지만 달기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재빨랐다.
이전에 보였던 엄청난 힘까지 생각하니 새삼스레 헛웃음마저 나왔다.
‘이게 완전한 달기.’
아홉 꼬리를 가진 구미호.
황준우가 보았던 소녀 달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완전한 상태였다면 당시의 황준우로서는 감당하지 못했을 터였다.
‘달기만 운이 좋은 줄 알았더니, 나도 마찬가지였나.’
놀라는 황준우의 가슴에 얼굴을 마구잡이로 비비는 달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잠시나마 보였던 차가운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쫑긋 솟은 귀를 몇 번이고 움직이는 모습도 귀엽기 그지없다.
요염하기까지 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지만, 또 묘하게 익숙하다.
‘소녀 같은 달기의 기억이 남아서 그런가?’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귀를 만지작거린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흐른다.
“진짜 좋아. 진짜 완전한 상태로 찾아오려고 얼마나 참았는데, 드디어 보게 되었구나. 너무 좋아. 너무 좋아, 황준우.”
자신의 감정을 막힘없이 쏟아내는 그녀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황준우의 머릿속에 앗차 하는 경각심이 떠오른 것도 순식간이었다.
‘이 녀석 설마…….’
곧 고개를 내저었다.
달기는 마왕이다.
또한 여우요괴들의 왕이기도 하다.
신격을 얻었지만, 인간인 황준우와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황준우의 입장에서도 그녀는 황서연과 같은 귀여운 여동생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한참을 그렇게나 가슴에 볼을 비비며 묘한 울음소리를 내던 달기는 제법 만족한 표정이 되어서야 고개를 들어 질문을 건넸다.
“참, 그 녀석은 뭐야? 대체 뭔데 건방지게 너한테 그렇게 집착하는 거지? 제 한을 이기지 못하고 악령이 된 마왕 주제에 집념 하나는 보통이 아니던데.”
“아, 그게…….”
“그러는 넌 뭔데!”
대답은 반대 방향에서 들려왔다.
얼굴을 붉힌 채, 다소 심통 난 표정의 황서연이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다.
그런 그녀를 본 달기가 황준우의 곁에서 살짝 떨어지며 미소를 흘렸다.
“어머, 너는 황준우의 여동생 맞지?”
“함부로 오빠 이름 부르지 마.”
“생각보다 예민하구나. 괜찮아. 난 너도 좋으니까.”
화내는 황서연에 날듯이 다가가 부드러운 웃음을 지은 달기가 그녀를 품에 안는다.
놀란 황서연은 반응할 틈새도 없이 그 품에 파묻혀 버린다.
애초부터 마왕과 요괴왕 양측의 지위를 모두 가진 데다, 상위 서열에 속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황준우조차도 놀랄 정도가 아니던가? 황서연이 피할 도리가 없는 게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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