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재생-322화 (322/373)

학사재생 322화

제 322화

유계의 하늘은 검은색이다.

땅은 황폐하여 누런빛을 띠며, 빛이라고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닮은 무수한 점이 전부였다.

시와 때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세상.

우마왕의 궁궐 가장 높은 창밖으로는 그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황준우는 그 모습을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창문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시야를 높이는 술법을 창에 투영해 놓았네.”

실제로 우마왕의 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성벽 바깥으로는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 정도니 상식적인 기준에서만 보았을 때, 한눈에 유계의 풍경을 담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역시 누런빛의 대지다.

‘분명 저 위로 시체가 가득 있었단 말이지.’

해와 달이 뜨지 않아 유계의 시간을 명확히 판단할 수는 없었다.

다만 감각적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요괴,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한 망령들의 시신이 완전히 사라졌다.

감쪽같은 일이었다.

누런빛의 대지에서부터 처음 보는 형태의 기운이 뻗어 나와 시체를 집어삼키듯 흩어버리고 빨아들이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일이었다.

‘대체 뭘까?’

유계의 신비한 대지는 황금안을 통해서도 그 정보를 다 알 수가 없었다.

황준우가 여태껏 보아왔던 세계의 인과관계와 연관성 그 무엇과도 다르다.

‘정확하게 알아내려면 내가 직접 죽어 저 안에 녹아들어 보기라도 해야 하려나.’

물론 아무리 호기심이 강하다 해도 해선 안 될 일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헛생각을 지운 황준우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저 바깥세상에 비해서 많이 삭막하지?”

“죽은 자의 세계니까. 대충은 예상했었지. 몸은 어때?”

“제법 괜찮아졌다. 애초부터 그렇게 쓰러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문에 몸을 기댄 채 말을 건넨 우마왕이 끌리는 옷자락을 들어 올리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시간을 끌수록 좋은 일은 아니니, 곧장 본론부터 처리하자꾸나.”

“지금 당장? 방금 깨어난 것 아니야?”

“응. 따라와.”

우마왕이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방 바깥을 향했다.

잠시, 창문 밖 먼 곳에 시선을 두며 황금안을 사용하였던 황준우가 곧 고개를 돌려 우마왕을 따라나섰다.

“적 진영 측의 움직임이 변했어. 조만간 다시 공격할 것 같은데.”

“괜찮아. 아마 적이 공격을 시작하면 우타가 먼저 소식을 전할 테니까.”

“우타…….”

황준우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그를 마중 나왔던 사나운 표정의 우마 일족이 떠올랐다. 실제 무력 역시 그간 보았던 어지간한 마왕보다 한 수 위임은 분명했다.

“우타는 우마 일족 내에서도 발 빠르기로는 제일이다. 어지간한 요괴왕이나 마왕도 따를 수 없지.”

자신만만하게 말한 우마왕의 표정에 잠시 고민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자가 나선다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헛소문이겠지.”

“그자?”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우마왕의 얼굴에 잠시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황준우의 머릿속으로 언뜻 떠오른 이름은 전생자이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

만약 그랬다면 이미 황준우의 직감을 들은 우마왕이 헛소문이라는 말로 일축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 녀석이 있어. 딱히 세력은 없지만 마왕 중 단일 무력으로는 확실한 최강…….”

“최강? 너는?”

놀란 황준우의 물음에 걸음을 멈추고는 미간을 크게 찌푸린 우마왕이 높은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유계에 있다고 하여 죽은 자로 취급하는 건 아니겠지? 비록 마왕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은 요괴라 불리는 몸이다. 같은 선에 놓을 수는 없지. 반면 놈은 분명 인간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죽은 자다.”

“아…….”

짧은 감탄의 신음을 흘린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던 우마왕은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우마왕의 궁궐 정상은 굉장히 넓었다.

황준우가 쉬고 있던 방을 지나 또 다른 문을 통해 몇 개의 넓은 방을 지나치자 처음 보는 형태의 복도가 나타난 것이다.

궁 전체가 방으로만 이루어진 줄 알았던 황준우의 시선이 신기한 듯 주변을 훑었다.

‘겉에서 보는 것과 다른 구조야. 이것도 역시 술법의 힘인가.’

단순히 무력을 휘두른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무공은 술법보다 유리하다.

하나 그 외 다양한 방면에서의 활용도를 따지자면 무공은 결코 술법을 따를 수 없다.

우마왕의 신비한 궁궐을 다니며 황준우는 그런 사실을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조금 이어서.”

신기한 시선으로 길게 이어진 궁궐의 복도를 바라보며 걷던 황준우에게 다시 한번 목소리가 전해졌다.

“사실 놈하고 직접 붙어본 적은 없다만, 전생자 녀석을 제외하고는 유계 전체를 통틀어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적수다.”

“누구?”

“아까 말했던 최강이라 불리는 마왕 말이다.”

“아…….”

우마왕의 단어 선택이 바뀌었다.

요괴와 망령을 나누지 않고, 유계 전체를 통틀어 인정하는 적수.

“조금 더 솔직히 말해, 녀석이라면 너와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랑?”

황준우의 눈에 곧장 호기심이 어렸다.

신격을 얻은 이후, 신선과 망령, 요괴를 통틀어 적수를 찾아본 적이 없다.

그 대단하다는 마왕도 미약하게 느껴졌다.

우마왕에게도 미안한 말이지만, 그가 정상인 상태라고 하여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소 지칠 정도로 전력을 쏟아부어야 하겠지만 무조건 이긴다. 때문에 적수는 더욱 강해져서 나타날 전생자, 그리고 제강 정도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황준우였다.

“그래. 놈 역시, 망자로서 신격을 얻은 괴물이니 말이다.”

“신격을 얻은 망자?”

“애초에 망자로 머물 필요도 없는 놈이다. 대체 왜 떠나지 않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맛을 다신 우마왕이 말과 걸음을 동시에 멈추었다.

어느덧 두 사람의 앞으로는 화가 난 소의 얼굴이 양각된 거대한 철문이 서 있었다.

“일단 들어가자꾸나.”

그 문을 복잡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우마왕이 앞으로 나서 손을 내뻗어 화난 소머리 상에 올려놓는다.

작은 진동음과 함께, 소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쿠르르릉-!

이어서 굳건히 닫혀 있는 것만 같던 철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언뜻 보이는 틈새로 비춘 것은 어마어마한 금은보화 산이다.

그야말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보물들이 문 너머 넓은 동공에 가득 쌓여있었다.

큰 굉음과 함께 문이 완전히 활짝 열리며 내부의 모습에 훤히 드러났다.

그 순간만큼은 천하에서 돈이 제일 많은 가문에서 나고 자란 황준우도 그 광경에는 저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세상에…….”

만금장이라고 하여도 이만한 금은보화를 쌓아두고 자랑하지는 않는다.

천하에 산재하고 있는 돈을 모두 모은다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풍경을 한눈에 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 뜻이다.

한데 생각지도 못한 유계에서 그 엄청난 금은보화를 목격했다.

놀라는 황준우의 모습을 보며 흐뭇했는지, 어깨를 넓게 편 우마왕이 웃음을 보였다.

“훗, 저 정도는 고작 시작일 뿐이다.”

“대체 왜 이렇게 쌓아 둔 거야? 유계에서 이걸 쓸 데나 있기는 해? 아니, 애초에 어떻게 모았대?”

이어진 황준우의 질문에는 표정이 다시 오묘하게 일그러졌지만 말이다.

“나도 본질은 요괴다. 욕심이 있고, 모으는 걸 좋아한단 말이다. 모은 건 아주 먼 과거 내가 지상에 머물러 있을 때다. 유계로 넘어올 때 모두 싸 들고 왔지.”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에도 요괴왕이라 불리던 우마왕에게 이만한 재산이 있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의 말대로 이 많은 금은보화를 쓸 곳이 없다.

유계에는 화폐가 없다.

먹고, 마시지 않아도 죽지 않는 아니, 이미 죽을 수 없는 자들이 모인 세상이다.

때문에 유계의 질서는 모두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

영혼이 영멸되는 것 외에는 두려운 바가 없는 그들에게 있어 금은보화가 뭐가 문제던가?

결국 황준우와 같이 본래 지상의 존재가 아닌 이상 이 금은보화를 보고도 감탄해 줄 존재 자체가 없는 게 유계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거듭 말해, 이렇게나 많아도 쓸 곳도 없다.

‘지상에 있을 때는 금은보화를 풀면서 매일 연회를 벌이기도 했는데…….’

금은보화의 가치가 없는 유계에서 연회가 무슨 말인가!

처음 몇 번은 멋을 부릴 겸 해보았지만 모두가 의미를 찾지 못하는 연회에 손님은 없었다.

울적한 마음에 혼자서 모아 놓은 금은보화 산을 보며 흐뭇해하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지겨웠다.

“아, 미안. 내가 괜한 질문을 했나 보네.”

갑작스레 울적해진 우마왕의 얼굴을 본 황준우가 사과를 건넸다.

“알면 됐다.”

여전히 비통한 표정으로 그를 받아들인 우마왕이 고개를 젓고는 눈에 힘을 주었다.

“말했듯, 이 금은보화는 시작일 뿐이다. 이다음 방에서부터는 진짜 보물들이 가득하지.”

우마왕의 말대로, 거대한 동공 건너편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일전에 비하자면 작은 문.

그야말로 방으로 향할 것 같은 크기다.

다만 그 재질이 보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철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궁에는 유독 방이 많네.”

길이라고는 이 보물창고와 연결되어 있던 복도, 그리고 궁궐 꼭대기까지 오르기 위한 계단밖에는 없었다.

“내가 방을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방은 아늑하거든. 편안하고. 어쨌든 좋다. 참고로 말하자면 모든 방에는 큰 침상을 놓았다. 편한 방의 가장 중요한 품목이지.”

그 역시 자신의 보물이라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자랑한 우마왕이 마찬가지로 두터운 철문 위로 손을 얹었다.

또다시 기관이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내부는 처음 보았던 금은보화 산이 쌓여있던 동공에 비하자면 작았다.

하지만 엄청나게 작은 것이냐 묻는다면, 또 아니었다.

적어도 사람 서른이 들어가서 주변을 둘러볼 정도의 여유는 있다.

그저 금은보화가 산처럼 쌓였던 동공이 너무 컸을 뿐이었다.

내부에는 검, 창, 도 등으로 시작하는 십팔반 병기에서부터 반지, 목걸이, 심지어 구슬의 형태를 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놀라운 건 그들 하나, 하나가 최소 명력을 갖춘 보물, 또는 보패란 사실이었다.

“이건…… 유계에서도 훌륭하겠네.”

대체적으로 보패란 물건은 사용자의 능력을 한 단계 더 이끌어내 주는 위력을 갖추고 있다.

무력을 중요시하는 유계에서 더욱 탐낼 만한 진짜 보물들.

물론 그 급은 엄연히 나누어지기는 했다.

예를 들자면 황준우가 가진 늠군의 관은 보패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했다.

술법의 초심자에게 팔괘의 기운이 향하는 방향을 이끌어주고, 우주기의 증폭까지 도와준다.

물론 이런 보패가 단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늠군의 관처럼 신격을 얻은 황준우의 우주기마저 증폭시킬 정도의, 한계가 없는 보물은 정말 몇 없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