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12화
제 312화
갑작스럽게 땅이 무너지며, 거대한 동공이 생기고 상상도 못 했던 존재들이 지상으로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이건…… 현실이야.’
우걱, 우걱.
토막 난 사람의 시체, 그중에서도 머리를 파내어서 먹고 있는 짐승의 머리를 본 우장문이 흐르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입을 틀어막았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무너진 지면의 거대한 동공에서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생물이 가득 튀어나왔다.
머리는 마치 들개를 닮았으나, 몸은 사람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처럼 네 발로 뛰며 눈은 누렇고 이빨과 손톱은 뛰어난 무인의 병장기마저 한 번에 갈라버릴 정도로 예리하다.
‘요괴…….’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그러한 요괴들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상행을 급습했고, 표사는 물론 혹시 몰라 고용한 절정고수마저 순식간에 찢어 죽여 버렸다.
난장판 속, 쓰러지는 마차 밑에 깔린 우장문은 다행히 들키지 않고 목숨을 건졌으나, 그도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직 놈들이 주변에 많아.’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요괴가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주변으로 수십의 요괴가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으적, 으적.
우걱, 우걱.
‘으으…….’
입을 닫고 눈을 질끈 감은 우장문은 귀마저 막고 싶어졌다.
주변에서 끔찍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감은 눈 뒤로 생생히 그려졌다.
외면하고 싶지만 그조차 쉽지가 않았다.
‘제발…… 저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
위험하다는 천축으로 오가며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죽음 또한 초연히 받아들이리라 몇 번이고 결심했었다.
그에게는 책임질 것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 지금만큼은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적어도 저런 끔찍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던 죽음은, 비록 허망할지언정 인간다웠다.
때마침 들개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순간 심장 한편이 크게 내려앉는 듯했다.
킁, 킁, 킁.
콧김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심지어 그 숫자가 하나가 아니었다.
식사를 끝낸 놈들이 새로운 먹잇감을 찾기 위해 움직이다 우장문의 냄새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제발, 제발…….’
간절한 바람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외친 우장문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촉촉이 흘렀다.
유난히,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치 짐승이 우는 것만 같은 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들려온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뜬 실눈에 입가에 새하얀 뇌수를 묻힌 채 누런 눈을 빛내는 요괴의 모습이 보였다.
“아아…….”
아찔한 감정이 뇌리에 차올랐다.
생각이 굳었다.
어째서인지 웃는 것 같다고 생각한 괴물의 입이 크게 벌어진다.
“신이시여…….”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읊조린 순간이었다.
눈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던 요괴의 머리가 단숨에 박살 났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퍼버버벅-!
주변으로 마치 수박 터지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또다시 일어난 갑작스러운 변화에 우장문의 눈에 언뜻 희망이 깃들었다.
“설마…… 설마…… 정말 신이?”
희망은, 현실이라는 듯 그의 앞에 나타났다.
누가 보아도 확실한 사람의 발이 우장문이 끼인 마차 앞으로 다가온다.
끼기긱-!
거대한 마차가 괴음을 내며 들어 올려졌다.
우장문은 어째서인지 그 풍경이 경건하다고 생각했다.
유난히 밝은 햇살 탓일까?
아니면 다가온 죽음 끝에 외친 이름이 도와줬다고 생각한 탓일까?
그도 아니면 사내의 주변으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황금빛 탓일지도 모른다.
“신…… 입니까?”
우장문의 입에서 의문이 흘러나왔다.
“비슷할지 모르지만……”
한 손으로, 거대한 마차를 가볍게 받쳐 든 사내가 웃는 얼굴로 답한다.
“내가 그러기로 했으니까, 인간.”
“…….”
묘한 현기마저 느껴지는 음성으로 답한 사내가 들고 있던 마차를 가볍게 내던진다.
퍼버벅-!
그 마차에 부딪히자, 주변에서 기회를 보고 있던 요괴들의 몸이 푸른 핏물을 튀기며 터져나간다.
마치 쇠뭉치에 정면으로 돌격하여 부딪친 것만 같은 형태다.
“일어날 수 있겠어?”
사내의 몸에서 일어난 황금빛 기운이 우장문의 몸 주변을 감쌌다.
그러자 잊고만 있던 몸의 격통이 찾아온다.
또 한편으로는 그 격통이 쓸려나가기까지 했다.
“아…….”
그제야 마차에 깔린 탓에 자신의 몸 이곳저곳이 큰 부상을 입었단 것을 깨닫고, 또한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장문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정말 살았구나…….”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끔찍한 요괴에게만 뜯어 먹히지 않는다면 어떠한 죽음도 담담히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거짓말.’
우장문은 자신이 살았단 사실을 완전히 실감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살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아직 못다 한 삶을 충실히 살고 싶었다.
죽음 따위, 결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감격에 가득 찬 눈은 자연스럽게 그를 구원한 사내에게로 향했다.
“혹시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황준우.”
“황…… 무신!”
대수롭지 않게 뱉어진 이름이 너무나 익숙한 탓에 저도 모르게 고함을 내지른 우장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현재 천하에서 그보다 유명한 이름이 어디 있을까?
천하제일거부 소주대인, 황석후의 자식이자 천하제일의 무력 단체 남천맹의 주인.
‘정말 신을 만났구나.’
그는 자신을 인간이라 했지만, 이미 천하 전체에 있어 황준우의 이름은 하나의 전설을 넘어 신화였다.
휘리릭-!
우장문이 감격하는 사이, 허공에서부터 날아온 검이 황준우의 허리춤으로 빨려들 듯 들어간다.
그 검을 가볍게 쓰다듬은 황준우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주변의 야구자(野狗子)는 모두 제거했어. 최대한 가까운 마을로 가서 휴식을 취하고 움직이도록 해. 몸이 나았다고 무리할 생각은 말고.”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바빠서 이만.”
가볍게 손을 내저은 황준우가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 움직임이 흔적을 남기기는커녕, 조금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아 마치 유령이 지나간 듯했다.
“정녕 무신이란 말인가…….”
별칭이 아닌, 그야말로 무의 신을 떠올린 우장문이 맑게 개인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는 웃음을 흘렸다.
“천외천(天外天). 내가 신의 구원으로 귀한 목숨값을 깨닫는구나.”
이미 그의 마음속에 있어 황준우는 신이었다.
태청경의 문이 무너지며 부조화가 일어난 곳은 비단 선계뿐만이 아니었다.
‘천하의 흐름 전체가 부자연스럽게 어그러졌어.’
단순히 기운이 엮인 정도가 아니다.
세계의 모든 흐름이 뒤엉키고 제멋대로 꼬여버렸다.
멸망이 찾아오기도 전에 천하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마당이다.
덕분에 세계의 균열을 찾은 금오도의 요괴들과 유계의 마왕들이 바깥으로 나올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세계의 질서가 무너진 탓이다.
영정이 멋대로 폭주하여 일으킨 일은 그만큼이나 큰 문제였다.
‘아직은 시작일 뿐이지만…….’
멋대로 그 경계를 헤집고 나오는 존재들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위험은 더욱 커질 터였다.
금오도의 요괴나, 마왕 모두 인간에 대한 호의(好意)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만약 그들 모두가 천하에 흩뿌려진다면 일어날 일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짜 시산혈해가 펼쳐지겠지.’
지옥도를 굳이 멀리 찾아갈 필요가 없을 터였다.
지금 그들이 선 이 땅이 가장 끔찍한 지옥일 테니 말이다.
‘우선 한 곳.’
방금 만난 상인, 우장문에게 위협이 되었던 요괴 야구자들이 튀어나온 흐름의 틈을 봉(封)한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두 눈에 깃드는 황금빛은 사방을 훑는다.
“저건…….”
그중, 유독 눈에 뜨이게 벌어지고 있는 큰 균열이 있었다.
야구자 정도의 요괴가 튀어나와서는 벌어질 수 없는 규모다.
‘마왕? 혹은 요선?’
어느 쪽이든 좋지 않다.
자연스레 황준우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게 사막 한복판에 황준우가 도착한 순간.
“크아아-!”
때 마침이라는 듯 괴성을 내지르며 부리부리한 두 눈에, 머리를 쭈뼛하게 세운 거대한 원숭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특이한 점을 뽑자면 등 뒤로 솟은 깃털 없는 날개다.
한 걸음이 마치 거인의 그것처럼 무겁다.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거대한 나무망치는 그 자체로도 위협적이었으나, 주변으로 비산하며 번쩍이는 번개에 비하자면 보잘것없어 보일 정도다.
“뇌신?”
뇌신은 신이라 불리지만 신성한 존재는 아니다.
당연하지만 신이라고 불릴 만한 지경에도 미치지 못한 존재였다.
단지 강력한 요괴가 번개의 힘을 얻어 더욱 흉포하게 변한 존재.
그 힘이 요선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으뜸이라 뇌신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뿐이었다.
[인간치고 제법인 녀석이로군.]
황준우의 부름에, 입을 크게 벌리며 사나운 웃음을 보인 뇌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르릉-!
그의 주변으로는 천둥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진다.
[맞다. 내가 바로 뇌신, 요동이다. 흐흐, 이 대체 얼마 만에 맡는 인계의 공기란 말인가.]
코를 크게 벌름거리며 몇 번이나 숨을 들이켠 뇌신, 요동이 황준우를 향해 푸른 눈을 빛냈다.
단숨에 공중으로 뛰어올라, 황준우 앞에 도착한 움직임은 거대한 덩치답지 않게 날렵하다.
[기분이다. 나를 알면서도 찾아온 용기를 높게 사 내 부하로 삼아주마. 제법 강해 보이기도 하니 쓸모도 많을 것 같구나. 크흐흐.]
계속해서 요동의 말이 전해졌으나, 처음 보는 뇌신의 모습에 흥미가 동한 황준우의 귓가에는 무엇도 전해지지 않았다.
‘뇌신쯤 되면 요괴 주제에 자아를 가지고 움직인단 말이지. 역시 요선인가?’
하긴,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달기 역시 그런 존재였다.
물론 달기와 같이 이름 있는 대요괴에 비하자면, 눈앞의 요동은 보잘것없는 존재일 터지만 말이다.
[응? 네 이놈. 감히 이 요동께서 말씀하시는데 무슨 헛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그제야, 황준우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요동의 몸 주변으로 번갯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용서할 수 없다. 기회를 주려 했으나 감히 이 몸을 무시해!]
거칠게 휘둘러진 나무망치가 황준우의 머리 위를 단숨에 뒤덮는다.
파지직-!
망치의 끝자락에는 무엇이든 파괴할 것 같은 뇌전이 번쩍였다.
“시끄러워.”
황준우가 가볍게 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슈욱- 쾅-!
뛰어오른 수왕검이 번개의 힘이 깃든 나무망치를 흔적도 없이 터트려 버린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얼떨결에 벌어진 일에 입을 크게 벌린 요동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이, 인간…… 대체 네놈은……!]
“요선이라 이거지. 말도 통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요동의 목소리에는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황준우가 곧 그의 처우를 결정했다.
“조금 두들기면 말귀를 알아듣겠지. 쓸모는 있을 것 같아.”
[네, 네놈…… 이 몸을 감히 네 부하로 쓸 생각이냐!?]
요동은 그리 눈치가 느린 요괴가 아니었다.
괜히 원숭이상을 한 것이 아니라는 바를 증명하듯, 오히려 눈치가 빨랐다.
하나 황준우의 생각에 비해서는 조금 모자랐다.
“부하는 무슨, 노예지.”
결정을 내린 황준우의 손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밧줄이 단숨에 요동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괴로운 신음을 내지른 요동의 몸이 단숨에 지면으로 고꾸라졌다.
그런 요동을 묶은 밧줄을 손목에 묶은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잡았다, 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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