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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264화 (264/373)

학사재생 264화

제 264화

“아직…….”

들어 올린 이기어검을 가리킨 진무영이 웃음을 보일 때였다.

슈우욱- 쾅!

공간의 개념을 무시하고 단숨에 날아든 주먹이 얼굴에 내리꽂혔고, 진무영의 신형은 허공을 한참이나 날은 후 지면으로 떨어졌다.

“아직 뭐?”

지면에 내다 박혀 꿈틀거리는 진무영을 본 황준우가 차가운 음성을 흘린다.

“……인질도 있었는데…… 쿨럭, 너무 과격하신 것 아닙니까?”

구겨진 얼굴로 핏물을 토하는 진무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충격이 컸는지 지면에 누운 몸은 자잘한 경련을 계속해서 일으키고 있었다.

“헛소리하고 있군.”

차가운 목소리를 흘린 황준우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아버지.’

창백한 안색의 황석후가 보였다.

다소 지쳐 보이지만 눈빛은 굳건하다.

다친 곳도 보이지 않았다.

‘언령을 사용하신 건가?’

걱정, 안도의 감정이 동시에 찾아왔다.

언령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나는 괜찮다.’

음성 대신, 황석후의 입술이 작게 달싹이며 말을 건네 온다. 입가로는 희미하게나마 웃음도 그려진 채다. 하나 시선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끝에 머문 이는 황준우의 바로 옆에 쓰러져 있는 사마정이다.

주변을 훑어보면서도 그를 향해 땅과 물의 기운을 동시에 흘리고 있던 황준우가 자리에 앉았다.

“사마정.”

“……맹…… 주님…….”

흐릿한 음성이 귓가에 흘러들어온다.

뒤늦게야 그의 상세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깨달은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마정?”

“…….”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가냘픈 숨결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으나 흐릿한 시선은 당장에라도 꺼질 듯 흐릿하다.

“너…… 설마…….”

황준우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다급하게 이어진 손길이 사마정의 전신을 더듬는다.

“……저는…….”

낮은 목소리와 함께 핏물이 흘러내린다.

“아무런 말 하지 마. 사마정, 입 다물라고.”

“…….”

황준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말도 안 돼.’

사마정의 전신이 활동을 멈춰 가고 있다.

지속적으로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있음에 버티고 있을 뿐,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심장이 멈췄었어.’

언제였을까?

황준우가 도착한 순간?

아니면 진무영을 날려버리는 짧은 시간 새?

아주 짧은 그때에 사마정의 숨은 이미 멎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다량으로 쏟아진 기운이 지금 그의 숨결을 억지로 붙들고 있다. 멈춘 심장에 약한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하나 그뿐이다.

땅과 물이 가진 힘은 그야말로 치유에 속한다.

재생(再生) 혹은 부활이라는 이적의 영역에 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미약하게 박동하고 있는 심장은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이 사마정에게로 찾아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사마정!”

다급한 황준우의 손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황금빛이 쏟아져 나왔다.

따뜻하고 포근한 힘이다.

그 기적과도 같은 풍경에 만금장 무인들의 입으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나 결과는 바뀔 것이 없었다.

사마정의 심장과 숨결 모두가 시간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었다.

거듭 말해, 찾아온 죽음에서 그를 구할 방법은 없다.

하나 황준우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다.

놓을 수가 없었다.

“……저는…… 괜찮…….”

“내가, 내가 안 괜찮아. 사마정.”

황준우의 입가로 핏물이 흐른다.

눈물을 참기 위해 악문 아랫입술이 터져나간 탓이다.

“사마정, 사마정, 사마정!”

“……마지막…… 술 한잔 정도는…….”

“마실 수 있다. 마실 수 있다고. 네가 살기만 하면 까짓거 술, 마셔 줄게. 약속 따위 얼마든지 깨준다고!”

“아아…….”

사마정의 입가로 짧은 탄식이 흐른다.

절규하듯 소리치는 황준우의 얼굴이 멀어진다.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대신해서 그의 흐릿한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었다고 생각했던 삶의 잔재들이다.

‘그래도…… 마지막은…….’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 남긴 가장 큰 후회를 돌릴 수 있던 시간.

기적처럼 찾아온 황준우의 재생은 사마정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삶을 살게 한 기회였다.

어둠에서 태어나, 어둠 속을 기어 살아가던 그에게 있어 가장 밝게 빛났던 시간들.

달리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행복했습니다.’

흐릿한 시야 위로 환영처럼 겹쳐진 황준우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지으려 했다.

최대한 기쁨을 남기고자 했다.

“친구…….”

처음 황준우를 만났을 때 떠올렸던 단어를 입 바깥으로 내뱉은 사마정의 세상이 암전(暗轉)되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기쁨이 있어서일까?

다행히, 죽은 뒤의 세상은 그리 어둡지만 않을 듯했다.

“으아아!”

숨이 완전히 멎은 사마정을 품에 끌어안은 황준우가 오열했다.

눈앞이 컴컴해지는 기분이었다.

터져 나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친구……!”

마지막 가는 길에 그가 남긴 말을 읊조려 본다.

눈물이 흐르는 고개를 들어, 오랜만에 본 미소 띤 친구의 얼굴을 직시한다.

“우린…… 친구였다.”

이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비뚤어진, 나약한 마음이 쉽게 잡히지 않아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이다.

하나 어느 순간부터 분명 마음속에는 담겨 있던 말이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뿐, 눈빛이, 마음이 전해줬을 것이다.

그리 편하게만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전해야만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먼 예전부터…….”

크게 엇나갔었지만, 잘못된 선택에 분노로 점철되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나눈 고우(故友)였다.

“아아……”

다시 사마정을 만난 날 분명 그리 생각했다.

언젠가 마음속에 남은 마음의 잔재가 털어지는 날 두 사람은 분명 그런 관계가 될 수 있다.

처음 만났던 먼 과거부터 이어진 오랜 인연.

황준우에게 있어 하나뿐인 오랜 친구가 방금 숨이 멎었다.

세상을 떠났다.

미소 띤 얼굴에, 흐릿하게 흩어진 눈을 천천히 감겨준 황준우가 몸을 일으켰다.

시선을 올려 바라본 밤하늘은 붉은 불이 수놓고 있음에도 별빛이 비친다.

달은 휘영청하게도 밝다.

“진무영.”

사마정을 품에 안고 오열하는 사이, 또다시 도주했다.

하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부상을 입은 그는 멀리 가지 못했으며, 명확하게 기운의 흔적을 쫓을 수가 있었다.

“집안일은 걱정 말고 다녀와라.”

자식의 고통에, 감출 수 없는 슬픈 눈을 한 황석후가 말했다.

“……네.”

짧게 답한 황준우의 신형이 마치 허상처럼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헉, 헉.”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는 진무영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코가 무너지고, 이빨이 부러졌다.

머리에서부터 흘러나온 핏물은 그의 전신을 뒤덮을 정도였다.

아찔하다 못해 끔찍하다.

한데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보는 사람이 섬뜩할 정도로 즐거워 보이는 웃음이다.

“진무영.”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답하듯, 고개를 돌린 진무영이 더욱 환한 웃음을 보였다.

동시에 진무영의 왼쪽 어깨와 팔이 사라졌다.

피를 내뿜으며 허공을 난다.

빛살이 번뜩인 순간 일어난 일이었다.

“오셨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무영의 웃음에는 조금의 일그러짐이 없다.

애초부터 도망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지금 멈춰 선 이 자리가 진무영, 그의 무덤이다.

너무나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짜릿한 살의가 진무영의 전신을 휘감는다.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동공에는 그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아아…… 드디어, 드디어…….”

그 모습을 확인한 진무영은 몸을 떨며 감탄을 토했다.

“지금 난 당장에라도 네 목을 쳐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왜 참고 있을까?”

“그야 쉽게 죽이고 싶지 않아서겠죠.”

“잘 알고 있군.”

“우후후.”

“웃음이 나오나 보네.”

“그럼요. 제가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바라왔는지 당신은 결코 모를 겁니다.”

홀로 남은 오른팔을 들어 올린 진무영이 더욱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 팔마저 진무영의 몸에서 떨어져 허공을 난다. 또 한 번 피 분수가 솟았다.

“언제까지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죽을 때까지, 죽는 순간에도, 그 이후로도 저는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눈에, 마음에, 다른 무엇도 담겨 있지 않은 지금 이 순간. 오로지 나 하나만을 바라보는 이때. 이 짧은 직시. 큰 영광을 위해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입을 가장 먼저 날려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곧장 죽겠지.”

“우후후후.”

진무영의 두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당신의 세상이 작금 나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이 진무영의 이름이 뇌리를 채우고, 눈에 가득 담겨 있지 않냐는 말입니다. 아하하!”

“미친놈!”

거친 욕설을 토한 황준우의 신형이 진무영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내뻗은 손은 머리를 부여잡는다.

손에서 흘러나온 붉은빛 기운이 진무영의 뇌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끄아악-!”

뇌리가 불타오르는, 온몸이 분열하는 충격에 진무영의 입에서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제자리에서 무너져, 경련을 일으키는 그를 내려다보는 황준우의 음성이 무섭게 흘렀다.

“고통은 이제 시작일 뿐이야.”

“우후후…… 우후후후…….”

고개를 떨어트린 상태로도 웃음을 멈추지 않은 진무영의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쓸데없는…….”

단숨에 기운을 억누르려던 황준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연지기가 아니다.

마기 또한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겁고 깊은 힘은 자그마치 황준우의 조율을 거부하고 있었다.

[도망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달기가 갑작스럽게 소리쳤다.

고오오-!

영문을 알 수 없는 힘이 파동하며 주변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그 크기는 너무나 작았다.

사람의 손톱만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균열의 힘은 어마무시했다.

나무가 부러지고, 땅이 일어난다.

아차 하는 순간 작은 균열은 손가락 마디만큼 커져 거대한 나무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흡인결(吸引結)!?’

그를 처음 본 순간 황준우가 떠올린 단어다.

허공섭물의 근원이라고도 볼 수 있는 무공의 상승 경지 중 하나.

문제는 그 힘의 위력이 과할 정도라는 것이다.

콰가가-!

검은 균열은 점점 더 크기를 불려 이제는 사람의 손바닥만 해졌다.

자연지기를 이용해 버티고 있는 황준우의 몸도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멍청아, 도망치라니까! 저기에 빨려들면 모두 끝장이야!]

달기가 다시 한 번 황준우를 재촉했다.

눈앞에,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는 진무영의 모습이 보인다.

“이 짧은 영광도 좋지만,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순 없지 않습니까. 저는 욕심쟁이라서 말이지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혹시 아십니까? 세계는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너…….”

황준우가 놀란 음성을 흘렸다.

끔찍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단어를 일전에 들은 적은 단 한 번뿐이다.

“제갈량을 만났어?”

진무영의 눈이 밝게 빛난다.

“아쉽게도 그분은 아니군요.”

콰가가-!

그사이 검은 균열은 더욱더 덩치를 불렸다.

이제는 주변의 모든 것이 빨려들어 간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구멍은 그야말로 멸망이라도 불러올 듯,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크기를 불려가며 한 번에 집어삼키는 양을 늘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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