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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262화 (262/373)

학사재생 262화

제 262화

이틀 밤낮.

사마정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향해 달렸고, 소주에 도착했다.

다른 무엇보다 경공술만큼은 자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금장은…….”

흘러나온 음성은 밤을 삼킨 붉은 하늘을 본 순간 무겁게 내리깔린다.

예상대로 진무영의 목표는 만금장이었다.

붉은 눈을 차갑게 가라앉힌 사마정의 어깨 위에서부터 적안서 한 마리가 뛰어내린다.

“아니, 직접 간다.”

적안서로 내부를 살피고 이것저것 잴 시간이 없다.

불안한 직감이 사마정의 전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사마정의 눈앞으로 수십 마리의 적안서가 더 모습을 드러내며 울음소리를 흘렸다.

짐승은 인간보다 더욱 강한 본능적 직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 역시 사마정을 말리고 싶을 만큼 큰 위기를 느끼고 있는 탓이다.

“어리석은 선택은 한 번으로 충족하지 않은가?”

질문과 함께 웃음을 남긴 사마정의 신형이 순식간에 불타오르고 있는 만금장으로 뛰어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적안서들이 등을 돌렸다.

다급한 발걸음은 누군가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는가?

독고문의 입에서 만금장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순간 곧장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한 황준우는 뇌리가 새하얗게 타들어 가는 감정이란 것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아버지, 어머니.’

누구보다 아끼는 가족들에게 위험이 찾아왔다.

이제야 진무영이 이 거대한 싸움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는 나의 나약함을 꿰뚫어 보고 있었구나.’

천하제일의 무신.

명실공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성을 쌓은 시대의 괴물.

하나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따지자면 오히려 빈틈투성이다.

거대한 힘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 결국 완벽하지는 못하다.

가진 것이 많기에 그 약점은 더욱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도 잃고 싶지 않다.

황준우는 언제나 그를 원했다.

때문에 언제나 최전선에 서 압도적인 승리의 업적을 쌓아왔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성벽으로 잃고 싶지 않은 많은 것을 가리고 있던 것이다.

하나 진무영은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봤다.

때문에 황준우란 인간이 가진 가장 나약한 면을 파고들어 계속해서 그를 자극하고 뒤흔들 수 있던 것이다.

이는 황준우 스스로가 자신의 약점을 인지하고, 인정하였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본인의 모자람을 안다면 충분히 대처할 방법을 마련해 놓기 마련인 탓이다.

적어도 진무영이 무엇을 하려는지 정도는 단숨에 꿰뚫어 봤을 터였다.

결국 이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마주하지 않은 어리석음이 가져다준 결과다.

하나 그 결과가 가져다줄 참혹함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다.

‘진무영,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강호제패의 야욕?

황준우를 쓰러트려 천하에 군림하고자 하는가?

절로 고개가 내저어졌다.

진심으로 진무영의 목적이 그것이라면 애초에 이 싸움을 벌이지 않았을 터였다.

진무영은 패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보인 바 있듯 영악하고 간사하다.

때문에 황준우의 무력과 싸우기보다 나약함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무력의 대치라면 이 시대에서만큼은 결코 황준우를 뛰어넘을 수 없다.

강호제패의 야욕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다 한들 집어넣고 때를 기다릴 인물이 진무영이었다.

그 시간이 십 년을 넘어 이십 년이 걸린다 한들, 그에게는 능히 그럴 인내심이 있었다.

‘아니, 애초에 놈에게는 그럴 욕심 자체가 없다.’

만약 진짜 진무영이 무림의 군주가 되고자 했다면 이미 아주 오래전, 황준우가 어린 시절에 그를 이루었을 터였다. 하나 그는 활협단이라는 단체를 통해 음지에서의 활동만을 이어왔었다.

오히려 다소 음흉하긴 하였지만 강호의 평화라는 이름을 제법 잘 지켜왔다고 평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진무영이 근래 들어 과격한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고 하여 그의 목표가 갑작스럽게 무림제패가 되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무슨 이유가 있다.

‘아마 목적 역시 나와 관련이 있겠지.’

이제는 황준우도 안다.

머리가 몇 번이고 새하얗게 타들어 가는 동안에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이다.

‘결코 의도 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소주까지의 거리는 결코 짧지만은 않다.

황준우의 경공이라 하여도 하루의 절반은 필요로 한다.

하나 그 시간을 압도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축지(縮地).’

지선인 신아가 사용하던 도술은 어지간한 경공의 고수조차 뛰어넘는 이동 능력을 보여 주었다.

축지법은 팔괘술법서에 있어서도 중급 이상의 도술로 취급되어 있었다.

다만 고도의 술력(術力)을 가지지 않는다면 경공보다 뛰어난 효율을 기대하기 힘들다 판단되어 사용하지 않고 있었을 뿐.

실제로 천조신공의 칠단공에 이르러 상단전의 길이 훨씬 넓어진 황준우지만 술력은 아직 고도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축지법은 작금의 황준우에게 있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다만 그 효율을 훨씬 더 끌어 올리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했다.

축지법을 경공과 결합시킨다.

무와 술의 조화.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이미 몇 번이고 시도하여 성공했던 일이다.

하나 축지와 경공을 하나로 만드는 일은 다르다.

경공은 말 그대로 빨리 달릴 수 있게끔 내력을 운용하는 무공이다.

축지는 이름처럼 땅이라는 공간을 줄이는 일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움직임에 땅을 줄여서 달린다.

엄청난 효율을 보이는 만큼,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축약된 공간을 바람보다 빠르게 뛰어간다.

문제는 실제로 경공을 펼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다.

단련된 무인의 육체는 바위와 같이 단단하다고는 하나 그 엄청난 속도의 세계에서 유형의 물질과 부딪치는 것을 견뎌낼 수는 없다.

바위나 나무가 아니라 우연치 않게 지나치던 같은 사람과 부딪치더라도 두 사람 모두 곤죽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는 황준우의 무공 경지가 아무리 높다 한들 큰 변화가 없었다.

뛰어난 무공을 가진 만큼, 더욱 빠르게 달리는 탓이다.

애초부터 허공에서 펼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기본적으로 축지란 땅과의 소통을 기본으로 한다.

발이 땅에 맞닿지 않은 상태로는 술법이 시작되지 않는다.

때문에 황준우 역시 여태껏 시도를 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나 작금의 상황은 황준우에게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때인 것이다.

곤괘(困卦)를 그리고, 느껴지는 땅의 기운을 따라 시야의 끝에 위치한 노면을 바라본다. 이후 검지와 엄지를 뭉쳐 그 끝을 집어 들 듯 일으킨다.

순간적으로 땅이 들려 올라 당겨진다.

그를 향해 달려가는 육체는 멈출 줄을 모르고 빠르게 나아간다.

수많은 위험요소가 황준우의 눈에 무섭도록 빠르게 다가왔다.

바람을 찢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에 반응할 새도 없이 눈앞으로 위험이 닥쳐온다.

조율경, 그 극한에 이른 황준우로서도 겪어본 적 없는 속도다.

마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 같다.

하나 이미 멈추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이제 와서 축지를 놓는다 한들 이미 압축된 공간은 계속해서 황준우를 밀어 넣을 테니 말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넘어선다.’

축지법이 발동되었으니 이제부터는 하늘로 뛰어올라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한다.

문제는 너무나 빠른 속도에 육체의 반응이 따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나 몇 번을 생각해도 이 위험한 도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흐름을 타야 돼.’

황준우가 이 극한의 세계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무공이었다.

‘풍신공.’

풍혁기을 통해 배운 바람을 다루는 절세의 신공을 펼친 황준우의 발아래로부터 바람의 흐름이 거칠게 튀어 오른다.

그 힘을 발판 삼아, 육체에 힘을 준 황준우의 눈이 부릅뜨였다.

눈앞에 거대한 회색빛 바위가 다가왔다고 생각한 순간, 세상이 또 한 번 변했다.

별이 수 놓인 밤하늘 위.

높이 날아오른 황준우의 입가로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됐다.’

공간이 접히고, 다시 펴지는 그 순간 황준우의 몸은 하늘에 있었다.

주변으로는 대기의 흐름을 밀어내는 바람의 막이 둘러진 상태다.

만약에라도 다가올 수 있는 조류 등의 접근을 막고 이동 경로를 바꾸기 위함이다.

다소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인 셈.

‘도약을 할 수 있는 안전거리만 확보한다면 지금에 비해 몇 배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허공에서부터, 다시 지면으로 뛰어내린 황준우의 앞으로 또 한 번 곤괘가 떠올랐다.

이로써 진무영이 이상적으로 생각했을 시간의 간격을 압도적으로 좁히게 되었다.

‘기다려라, 진무영.’

황준우의 신형이 다시 한 번 압축 된 공간 속으로 뛰어들었다.

진무영, 오칠, 담소청.

고작이라고 볼 수 있는 세 사람이었지만 전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궁왕 오칠은 실제 과거 우내십존이라 불리던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무공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의선 담소청 역시 다르지 않다.

뛰어난 의술 탓에 의선이라는 별호로 더 알려져 있지만 무공을 펼치는 그에게는 마수(魔手)라는 또 다른 별호가 있을 정도였다.

기실 이 싸움은 불 보듯 뻔하게 금방 끝날 일이었다.

오칠과 담소청은 물론, 진무영조차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단숨에 만금장을 무너트리고 황석후와 서시를 사로잡기까지 달리 계획조차 필요 없다고 여겼을 정도였다.

하나 실제 결과는 달랐다.

세 사람이 뛰어드는 순간 만금장의 대문이 기다렸다는 듯 활짝 열렸다.

뒤를 이어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그 중심에 서 팔짱을 끼고는 무서운 눈빛을 빛내고 있는 인물이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진무영은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만금장주! 제가 올 걸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의 당당한 등장에 진무영의 입가로 황당한 미소가 어렸다.

“전장에 없다 하여 적을 살피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무림맹주. 어찌하여 내 아들을 괴롭히려 하는지는 모르나, 뜻대로 되지는 않을게요.”

“하하하!”

큰 웃음을 터트린 진무영의 눈에서 감정이 흘러넘쳤다.

“이거 내가 장주를 너무 얕봤군요.”

“아들에 가려져 빛을 못 보고 있으나, 공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건 건 아니지요.”

“천하제일거부. 아니지, 천하제일 장원의 주인. 과연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잠룡이었군요. 후후.”

“잠룡이라 하기는 너무 늙었지 않겠습니까?”

침착한 대화 속에 긴장감이 흘러넘친다.

양측 모두 서로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는 탓이다.

“제법 수가 많군요. 하나 이들로 우리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제 움직임을 읽었다면 도망치시는 측이 좋았을 텐데요.”

“그 속내가 복잡하여 쉽게 읽지 못한 탓도 있고…… 내 집을 버리고 주인이 어딜 간단 말입니까?”

“오호…….”

진무영이 턱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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