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234화
제 234화
“으윽!”
눈을 부릅뜬 무호가 반격을 하기 위해 주먹을 내뻗는 모습이 두 눈에 크게 들어온다.
‘피할까?’
백균은 입을 크게 벌렸다.
“아악-!”
큼직한 주먹을 씹었다고 느낀 순간 무호의 신형이 들썩였다. 덕분에 백균도 내동댕이쳐지며 바닥을 굴러야 했지만 괜찮았다.
“피 맛이 아주 더러워. 배신자의 것이라 그런가. 퉤.”
입가로 흐르는 무호의 핏물을 훔친 백균은 웃음을 흘렸다. 분노한 무호가 어떻게 해서든 두 발로 다시 일어서려 하지만, 그래서는 늦는다.
“난 짐승 같은 놈이거든.”
손과 발을 이용해 지면을 박찬 백균의 신형이 허공을 날았다.
“어억-!”
비명을 내지르는 무호의 머리 위를 순식간에 덮는다.
주먹을 들어 올리고는 머리에 내다 꽂아 버린다.
주먹으로 모자라면 머리로 받았다.
그로도 부족하면 이로 물어뜯었다.
짧은 시간 이어진 공격에 비명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한 무호의 전신이 엉망진창으로 변해가고 있는 때였다.
거칠게 휘둘러지던 주먹을 누군가의 손길이 강하게 가로막았다.
차가운 백균의 시선이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본다.
“조문영 부장.”
“그만하게.”
“막지 마.”
“더 이상 나아가면 나도 봐줄 수만은 없네.”
조문영의 몸에서 기세가 흘러나왔다.
당장 검을 뽑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다.
백균의 미간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자네야말로 정말 같은 부장을 죽일 셈인가? 이 황궁에서?”
“헛소리하지 마. 이건 생사결이야.”
“난 용납할 수 없네.”
“조문영.”
백균의 양 눈에 불길이 솟았다.
거친 손길은 순식간에 조문영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든다.
하나 닿지 못한다.
가벼운 고갯짓으로 백균의 손을 피한 조문영의 발끝이 백균의 턱 끝에 닿았다.
“크악-!”
비명을 내지른 백균이 몇 바퀴를 굴러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조금 자고 있게.”
휘청거리는 신형이 채 지면을 디디기도 전에 달려든 조문영의 손날이 그런 백균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눈이 하얗게 뒤집힌 백균이 쓰러진다.
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본 조문영이 적호를 바라보았다.
“도를 넘어선 참견이오.”
적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나 정말 둘 중 하나가 죽는 꼴을 볼 수는 없지 않나.”
과연 그뿐일까.
적호의 시선이 잠시 가늘어졌다.
웃음을 보이는 조문영의 눈빛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비치지 않았다.
결국 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고맙네.”
연무장 위로 오른 적호가 의식을 잃은 백균을 어깨에 둘러멨다.
이후 날카로운 시선은 황준우를 향했다.
무엇이라도 한마디를 하여 그를 쏘아붙이기 위함이다.
하나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조문영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거운 공기가 적호의 어깨를 짓누르다 못해 혀끝을 옭아맸다.
‘백균의 치료가 우선이다.’
결국 입술 한 번을 떼지 못한 적호가 고개를 저으며 연무장을 벗어났다.
“흐음…….”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난 자리, 만신창이가 되어 고개를 내젓고 있는 무호와 황준우를 곁눈질한 조문영이 짧은 신음을 흘린 후 웃음을 지었다.
“황녀 마마가 보낸 인물에게 보이고 싶은 꼴은 아니로군.”
“신경 쓰지 마.”
“내 말은 자네가 이만 물러갔으면 한다는 뜻일세.”
“왜. 못 보일 일이라도 있나 보지?”
웃음을 짓던 조문영의 미간이 얇게 찌푸려졌다.
“자네가 이런 행동을 해서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나?”
“글쎄. 그건 대봐야 알지 않을까?”
“서강…….”
이름을 읊는 조문영이 쓴 신음을 흘렸다.
“금의위 부장의 명령일세. 하극상을 치르겠다는 건 아니겠지?”
“음, 그럴 일은 아니지. 이만 가야겠군.”
어깨를 으쓱한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이며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노려보는 조문영의 눈에 옅은 살기가 배일 때였다.
“참. 혹시 감추고 있던 실력에 대한 부분을 함구해야 되는 명령은 내리지 않아도 되나?”
황준우의 음성이 차갑게 조문영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
“금의위 제일고수 무호라, 잘 속이고 있었는데 안타깝겠어. 흐흐.”
터덜터덜 멀어지는 황준우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조문영의 손끝이 떨린다.
“서강…….”
웃음을 짓는 입술 끝 역시 묘하게 일그러진다.
“멍청한 놈이 제 몫을 다 못 하는 바람에 괜한 고생을 하게 생겼군.”
혀를 차며 분노 섞인 음성을 흘린 조문영의 시선이 조금씩 몸을 일으키고 있는 무호를 향했다.
“이 쓸모없는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입 바깥으로는 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날 생사결의 결과는 금의위 전체에 알려지고, 큰 충격을 전해주었다.
명실상부 금의위 제일고수였던 무호가 백균에게 패배했다.
죽을 뻔한 무호를 살린 것은 조문영이다.
여기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생사결은 엄연한 무인의 승부다.
아무리 금의위의 영역이 있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이 승부를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누구도 감히 간섭해서는 안 되는 영역인 것이다. 한데 조문영은 직접 연무장으로 뛰어들어 승기를 잡은 백균을 제압했다.
덕분에 무호와 달리 백균은 며칠이 지난 시점까지 침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엄연한 조문영의 잘못이다.
그런 상황 아래, 누군가가 황실의 재산과 다름없는 금의위가 서로의 목숨을 건 생사결을 펼친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조문영의 행동을 지지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사태는 조문영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가장 오래된 선임 부장이기도 하고, 평소 평판도 좋은 편이니 가벼운 사과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던 거지.”
황준우의 말에 침상에 누운 백균의 두 눈에 다시 한 번 불길이 솟았다.
“두 놈 다…… 죽여 버려야 되는데…….”
“흥분하지 마. 그런 몸 상태로는 평범한 위사 하나 상대할 수 없잖아.”
“으으…….”
이를 아득 간 백균이 신음을 흘렸다.
“그래도 잘 싸웠어. 마지막에는 제법 신났었지?”
“놈에게…… 한 방 먹여줬으니까.”
“굳이 아니더라도 말이지.”
“…….”
백균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황준우 덕분에 풍신공의 벽을 한 단계 더 허물고 무공이 성장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고마움을 표현하기에는 아직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벽이 너무 높았다.
“말했잖아. 도움이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시끄…… 러.”
“큭큭. 그래도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 다행이네. 방해꾼은 이만 가줄 테니까 두 사람, 하던 이야기 계속해.”
황준우의 말에 방 안 한편,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던 적호가 슬며시 실눈을 뜬다.
“서강.”
“네놈은 대체 뭐냐?”
“보면 몰라? 금의의 위사잖아.”
“…….”
무겁게 닫힌 적호의 입술이 씰룩인다.
“죽여 버리고 싶군.”
“할 수 있다면 해보든지.”
콧방귀를 뀐 적호가 시선을 돌린다.
그를 보며 웃음을 흘린 황준우가 손을 흔들었다.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백균한테도 말했지만, 의외로 도움되는 구석이 많은 녀석일지도 몰라. 나란 남자.”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떠나려는 황준우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이어진 적호의 목소리였다.
“언제고 네놈이 금의위무에 참가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지?”
“왜, 이제 조금 생각이 바뀌었나?”
고개를 돌린 황준우의 물음에 적호의 고개가 무겁게 주억여졌다.
“그럴 수도 있지. 단 조건이 있다.”
“말해 봐.”
“네가 나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흐음…….”
턱 끝을 쓰다듬는 황준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해했어.”
“……?”
“조문영 부장 말하는 것 아니야?”
“눈치는 빠르군.”
적호의 입가로 옅은 미소가 흘렀다.
“금방 알아보지. 냄새나는 곳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말이지.”
무엇보다 어차피 하던 일이다.
황준우는 가벼운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선 황준우의 등 뒤로 적안서와 함께 짙은 어둠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황궁에 직접 들어와 본 소감은 어때.”
“……처음은 아닌지라.”
어둠이 대답을 해온다.
“하긴, 서왕을 찾는 곳이 무림만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지.”
“…….”
“어쨌든, 이야기 들었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하루면 충분합니다.”
어둠 속 붉은 눈이 자신감으로 반짝인다.
궁내로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만, 그 속내를 파고드는 일은 간단하다.
“쥐는 천하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좋아, 좋아.”
가장 듬직한 조력자가 곁으로 돌아왔으며, 생각 외의 지원도 보장받았다.
‘일사천리로군.’
더디게 진행되던 일들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하나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 내 예상이 맞다면, 이 안에 진무영 그놈이 있는 것도 같거든.”
“……알겠습니다.”
이미 한 번 진무영에게 호된 맛을 본 사마정이 고개를 주억이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멀어지는 그림자를 뒤로한 채 콧노래를 부르는 황준우가 밖으로 나서자 밝은 빛이 내리쬈다.
유난히 밝은 햇빛에 눈이 부시다.
그런 황준우를 맞이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마필이다.
“백균 부장은 어떤가?”
“멀쩡해. 죽지는 않겠더군.”
“다행일세.”
안도의 한숨을 내쉰 마필이 황준우의 곁으로 따라붙는다.
“어쨌든 복잡하구먼. 난 조문영 부장이 그럴 줄은 몰랐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 말이지.”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무호, 백균.
금의위무를 통한 대영반의 자리에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이 쓰러졌다.
며칠 남겨두지 않은 금의위무에 나설 인물은 이제 조문영과 적호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정황상, 조문영이 분명 그 자리에 나설 터였다.
감추고 있는 꿍꿍이를 풀어내기 위해선 권력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글쎄, 어떻게든 되겠지.”
“참으로 속 편한 소리를 하는군.”
“그런가?”
“뭐, 자네 옆에 있으면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니 또 신기하기도 하지만 말일세.”
“흐흐…….”
“음흉하게 웃는군. 그러고 보니 자네 조금 변한 것 같아.”
“그래? 주의해야겠네.”
“무엇을 말인가?”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도 하지 않나?”
“실없기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은 마필이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황준우를 바라본다.
“참, 이럴 때 할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네만, 오늘 저녁 시간 어떤가?”
“자네만 괜찮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자네를 안내하고 싶네만.”
“마 조장이 가장 좋아하는 곳?”
마필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렇지.”
“흐음…… 오늘 밤이라. 적당할 것 같네. 내일부터는 꽤나 바쁠 것 같거든.”
“하하, 그러면 허락한 걸로 알겠네.”
“그런데 이상한 곳은 아니지?”
황준우가 의심스러운 시선을 흘리자 엄중한 얼굴의 마필이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절대 아니네. 애초에 난 처와 자식이 있는 몸이라 하지 않았나.”
“그렇지. 아, 설마. 좋은 곳이란 게?”
황준우의 입가로 탄성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평균적으로 보름에 한 번쯤은 금의위도 금강각이 아닌 외부에서 생활할 수 있는 날이 있다고 하였다.
아마 오늘이 바로 마필이 집에 가는 날인 듯했다.
“아주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정감이 있는 곳이지. 부담되면 지금이라도 거부해도 괜찮네.”
“아니, 난 좋아. 오히려 고마운걸?”
마필의 입가에 떠오른 따뜻한 웃음을 본 황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태어나서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크게 느꼈던 황준우가 아니던가?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 뒤를 마필의 콧노래가 따른다.
날씨가 좋은, 따뜻한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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