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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232화 (232/373)

학사재생 232화

제 232화

“빌어먹을 무호 새끼!”

황준우는 곧장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이미 사태는 제법 크게 벌어졌는지 금강각의 넓은 중앙 공간에, 백균과 그를 따르는 조장들, 그리고 무호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서 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조용하던 금강각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금의위무를 앞두고 제 방 안에서 은거를 택하였던 중립파의 두 부장까지 바깥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인상을 찌푸린 조문영이 검을 뽑아 든 백균을 향해 엄중한 목소리를 흘렸다.

“천지 분간도 못 하는 애송이는 전혀 발전이 없군.”

또 다른 부장인 적호 역시 혀를 차며 백균을 나무랐다.

최대한 조용히 금의위무가 지나가길 바라는 그들 입장에서야 작금 백균이 좋게 보일 수가 없는 탓이다.

“검은 거두지.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뛸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주변의 반응을 느긋이 기다리던 무호가 싸늘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네놈은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가 보구나. 무호.”

이를 아득 가는 백균의 눈에서 당장에라도 불이 쏟아져 나올 듯했다.

“백균!”

조문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이곳은 황궁이다.

궁내에서 하늘을 언급한다 함은 곧 천자, 황제를 뜻함이다. 작금과 같은 상황에서 쉽게 내뱉을 말은 결코 아니었다.

“대영반의 사체는 어쨌느냐?”

차가운 백균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엄중한 음성을 흘리던 조문영, 혀를 차던 적호 역시 눈을 차갑게 가라앉힌다.

“놈들이 가져갔다.”

대영반 암살 사건 당시, 누구보다 가까이에 있었던 무호의 말이다.

수상한 점이 너무나 많았지만, 의심의 목소리는 없던 일.

“개소리하지 마라. 네가 시킨 길거리 무지렁이 놈들이 주워갔겠지.”

이를 아득 간 백균의 검극이 무호를 향한 후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오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느냐. 자그마치 대영반이셨다. 그리고 무호 네놈이 함께 있었다. 그 어떤 암살자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그분을 죽일 수 있단 말이냐?”

“그건 나 역시 궁금하군.”

팔짱을 낀 채 상황을 관망하던 적호가 거들었다.

“적호 부장마저도 나를 의심하는 거요?”

무호의 예리한 시선이 곧장 그를 향했다.

“의심이 아니라 확실히 해둘 필요는 있다는 거지.”

“어이가 없군. 놈이 말하는 건 그냥 억지요. 심증만으로 나를 이렇게 몰아세울 수 있단 말이오?”

“증거가 있다면?”

백균이 되물었다.

“있다면…….”

무호가 짧게 되뇐다.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느냐. 백균.”

그 틈새, 이 층에서 상황을 관망하던 조문영이 일 층으로 뛰어내리며 물었다.

“물론이오.”

“어찌 증명할 생각이지?”

“증인이 있다. 그날 무호 저 개자식과 대영반께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시고, 골목길로 들어서는 걸 확인하였다더군. 저 씹어 죽일 놈의 검이 그분의 가슴에 꽂히는 것 또한……!”

붉은 눈으로 이를 아득 간 백균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너무나 거칠어 당장에라도 바닥에 닿을 것 같던 숨결은 곧 나긋이 가라앉는다.

“난 놈을 이 자리에서 죽일 생각이오.”

음성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겼다.

물러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 자리에 나서지도 않았을 터였다.

“증인 따위는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는 법이다.”

조문영이 혀를 차며 말했다.

자연스레 백균의 눈이 날카롭게 하늘로 솟았다.

“증인뿐이 아니더라도 심증은 충분하지 않나? 조문영 부장은 이상한 걸 조금도 느끼지 못하나 보군.”

“나는 백균의 생각에 동의한다. 확실히 이 일은 수상한 점이 많지. 증인이 있다면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적호 역시 일 층으로 뛰어내려 백균의 뒤에 서며 말한다.

눈빛에는 무호를 향한 적개심이 엇비친다.

애초부터 수상했던 일.

하나 누구도 캐묻지 않아 묻혀가고 있었을 뿐이다.

금의위무를 코앞에 둔 시점이라는 사실이 크게 주효한 덕이었으나, 이미 백균을 통해 사건은 발화되었다. 무호도 물러설 수만은 없는 위치였다.

“금의위무를 미루자는 겐가?”

조문영이 적호를 향해 물었다.

이 시점에서 증인에 대한 취조를 시작하면 자연스레 금의위무가 밀릴 수밖에 없다. 전 대영반의 죽음을 완전히 밝히지도 못한 상태로 새로운 인물을 그 자리에 앉힐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필요하다면 그래야지. 생각해보니 이상해. 언제부터 우리 금의위가 이렇게 앞뒤 없이 일을 처리했나?”

“좋소.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적호의 강경한 언사에 인상을 찌푸린 무호가 고개를 주억일 때였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한숨을 내쉰 조문영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되도록 나서지 않으려 했네만, 이리되면 어쩔 수 없지. 백균, 적호.”

차분한 조문영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한다.

“나 역시 가만히 앉아만 있던 것은 아니다. 대영반의 죽음은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고, 꼭 밝혀야 될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무호 부장. 당시 암살자들이 마기를 사용했다고 했었지?”

“그랬소.”

무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난 처음 듣는군.”

백균이 인상을 찌푸린다.

“굳이 자세한 사정을 네놈에게 모두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얼마 전 무림에 큰 사건이 있었네. 천마신교가 강호에 출두하여 다시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일이지.”

당시의 사건을 떠올린 백균과 적호, 두 사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천마신교의 출두는 강호에만 피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힘없는 양민을 비롯한, 천하 전체를 시름하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금의위 인물들 몇몇은 바깥으로 나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갑작스러운 황제의 죽음에, 황궁에 발목을 묶여야만 했다.

다행히 천마신교는 남천맹의 무신에게 패배하여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당시의 일은 결코 좋은 인상으로 남지 않았다.

“그때 침공을 감행하였던 천마신교의 마인들 중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천마 용중호가 살아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적호의 검미가 크게 꿈틀거린 순간이었다.

“푸하하!”

이 층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웃음의 주인을 향했다.

“아아, 미안. 미안. 너무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라서.”

웃음의 주인, 황준우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부장급 이하는 함부로 손가락조차 까딱하지도 못하는 서늘한 분위기에서 그의 모습은 불쾌감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적호가 당장에라도 일갈을 토할 듯 기운을 끌어 올린다.

“참게, 적호.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않나.”

하나 중심에 선 조문영이 그를 말린다.

끓어오르던 기운을 가라앉히며, 눈을 찌푸린 적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서강. 자네도 주의하게.”

“그러지.”

황준우가 손을 가볍게 들며 답했다.

덕분에 다시금 적호의 검미가 무겁게 움직였으나 더 이상 기운이 피어오르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 천마가 얼마 전 북경에 왔었다는 소식이 있네.”

“지금 조문영 부장의 말은 천마가 대영반 암살을 모의했다는 거요?”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다는 뜻이지. 지금 나는 그의 흔적을 쫓고 있네.”

백균이 크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갑자기 천마가 어찌하여 대영반을 노렸겠는가? 이유가 없지 않나. 이유가!”

“대영반께서 전대 천마에게 큰 내상을 입힌 전적이 있었지. 그 덕분에 칠야무신에게 패배했다는 말도 있는 건 다들 알 테고.”

“지금 놈이 전대의 복수를 위해 대영반을 찾아왔다는 말이요?”

“없을 일은 아니지 않나. 전대 천마는 그의 아버지이니 말일세.”

조문영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듣자 하니 확실히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하나 백균의 생각은 달랐다.

갑작스러운 천마의 등장과 연관관계, 조문영의 언사 등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혹시 조문영 부장도 저 개자식과 한패요?”

“말이 심하군. 백균.”

침착한 조문영의 목소리에도 은은한 노기가 서렸다.

“아니라면 어째서 갑자기 되도 않는 이야기를 꺼낸단 말이오?”

“네놈도 증거 하나 없이 무호를 압박하고 있지 않나.”

“증인이 있다 하지 않았소.”

“증인은 얼마든 위조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지 못하나 보군.”

“그만.”

듣고 있던 적호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개판이군. 개판이야.”

낮은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분노가 어려 있다.

“나 역시 조문영 부장의 말은 믿기 어렵다. 다만 백균. 네가 말한 증인을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결국 적호 부장도 저 빌어먹을 개자식을 감싸겠단 거구려.”

“그런 뜻이 아니다. 이 멍청한 놈.”

“비키시오.”

적호를 지나친 백균이 살기를 흘리며 앞으로 걸어나간다.

그를 확인한 조문영과 적호 두 사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백균! 무슨 짓이냐!”

적호가 소리쳤다.

“무호, 네놈이 겁쟁이가 아니라면 피하진 않겠지. 내 명예를 걸고 네놈에게 생사결을 요청한다.”

“금의위무가 코 앞이다! 그걸 못 참는 것이냐!”

적호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생사결은 서로의 목숨을 건 대결이다.

금의위무와 같은 대련과는 경우가 다르다. 금의위무에서는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을 경우 자격이 박탈되지만, 생사결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다.

강자존(强者尊).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 사이에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규칙을 위해 만들어진 승부다.

하나 명분을 아는 정파와, 금의위에서 벌어질 행위는 아니었다.

장내에 있던 모두가 침을 삼켰다.

분위기는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은 듯했다.

“금의위무고 뭐고, 당장 승부를 보자. 개자식아.”

백균이 짐승과 같은 거친 목소리를 내뱉는다.

“거절해라. 무호. 자존심을 부릴 이유가 없다.”

적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나 백균을 내려다보는 무호의 두 눈에도 이미 살기가 어린 뒤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애송이 콧대를 한 번쯤은 눌러봐 줘야겠구려. 좋다. 생사결을 받아들이지.”

“길게 끌 필요 없지. 따라 나와라.”

거칠게 말하며, 금강각 벽장에 놓인 술병 하나를 집어 든 백균이 등을 돌렸다.

이제는 막을 수 없다.

적호가 이마를 짚었다.

“곤란하군.”

조문영이 쓴 신음을 흘린다.

결국 금의위 부장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승부가 성립되어 버린 것이다.

금강각은 금의위의 처소다.

연무장은 넓고, 대련 장소로 쓰기에 충분하다.

초인에 이른 고수 둘이 생사결을 펼친다 한들 부족함이 없었다.

뛰쳐나가 그러한 연무장에 서로를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을 보며 적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말려야 하는 일이다.

하나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벌어진 상황이기도 하다.

“정말 엉망진창이로군. 빌어먹을.”

내뱉는 말에는 절로 욕이 실렸다.

그가 알던 금의위와는 너무 달라졌다.

황제와, 대영반.

너무 큰 사람 둘이 죽어버렸다.

‘조문영 부장은 어째서 혼란을 더 키운 것인가?’

머릿속 역시 복잡했다.

백균의 이야기가 다소 억지스러워 보여도 충분히 납득 가는 구석이 많았다.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되었을 일이라고 하여도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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