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재생-209화 (209/373)

학사재생 209화

제 209화

불사군대가 부활했다.

한동안 편안한 안식에 빠져드는 것만 같던 망자들의 부활에 적진 깊숙이 침투해 있던 남천맹 선발대 역시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정녕 죽지도 않는 적과 싸우는 경험은 무존, 서문지언에게도 없는 일이었다.

하나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나아가 적의 중심을 꿰뚫는다.”

서문지언의 그 말은 남천맹 선발대에게 있어 목표이자, 힘이 되었다.

죽지도 않는 적을 모두 격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정중앙을 꿰뚫고 나가 적의 본영을 휘젓는 것이 목표라면, 다시 부활하는 적이라 한들 두려울 바가 없다. 머릿속의 의문을 지웠다. 공포를 잠재웠다.

“가자!”

선두에 선 서문지언의 외침에 따라 남천맹 선발대 무인들은 마치 나찰(羅刹)이 된 듯 무심하게 눈앞에 보이는 적들을 베어 나간다.

갑작스러운 거대한 기운의 반동 이후, 어둠이 감싼 전장을 둘러보며 잠시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뒤를 돌아보았던 황준우의 입가로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과연, 믿을 만한 동료가 있다는 건 이런 느낌인가.’

총 삼십의 선발대.

무림에서 내로라할 만한 실력자인 그들의 중심에 서문지언이 자리 잡았다. 그들은 바깥에서라면 모를까, 전장에서만큼은 실로 혼자서 열 손을 감당해야 할 만큼 바쁘게 뛰어다녀야만 했던 황준우에게도 마음의 여유를 줄 정도의 동료들이었다.

[적들 중에 검은 장포를 머리까지 눌러쓴 괴상한 놈들이 보일 거야. 가능하면 녀석들은 보이는 대로 처리해.]

멀리서 건넨 전음에 가장 선두에서 뛰는 서문지언은 몸을 멈추지도 않은 채 고개만을 주억였다. 이어서 뻗어 나간 주먹을 통해 노도하듯 쏘아진 기운은 적들 사이에 숨어 있던 마술사를 단숨에 격살한다.

“저 양반도 확실히 한 성격 한다니까.”

전음을 듣자마자 단숨에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황준우는 웃음을 보이며 완전히 선발대로부터 신경을 껐다.

여유를 보이고 있지만 기실 지금은 그를 신경 쓸 상황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저쯤인가…….”

적 진영의 좌측 후미, 땅 밑에서부터 꿈틀대던 거대한 기운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 음기가 어찌나 지독한지 상당히 먼 거리에서부터 온몸이 저릿할 정도였다.

‘마왕 동탁.’

다시금 제 상대를 떠올린 황준우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움직임은 허공을 답보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비행(飛行)에 가깝다. 덕분에 황준우는 아무런 방해 없이,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어서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때마침 지면을 반으로 가르고 걸어 나오고 있는 두 개의 신형이다.

그 상대를 확인한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진다.

동시에 상대, 동탁도 공중에 뜬 황준우를 바라보며 감탄을 토했다.

“오호…… 신선인가?”

가는 눈을 하며 읊조린 동탁은 곧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인간이로군. 저게 인간이야.”

이어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인간의 몸으로 본인의 양아들과 대적(對敵)할 수 있는 자가 현세에 존재할 수 있는가?”

고심하듯 어둡게 가라앉는 그의 시선 앞으로 황준우의 얼굴이 번쩍 나타났다.

“시끄러워. 이 돼지 자식아.”

빛살과도 뻗어진 검은 단숨에라도 목을 벨 듯했다.

하나 막힌다.

“…….”

짧은 침묵 속 말 없는 여포를 바라본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걸 막았다고?”

행동은 짧았지만 의미가 없는 단순한 검격이 아니었다.

상대가 마왕임을 깨닫는 순간 전력을 다해 내지른 심상지기다.

한데 막혔다.

막상 마왕으로 인식하였던 상대는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는데 바로 옆에서 기다란 극을 뻗어와 막아선 것이다.

“후후…… 내 양아들 놈이 무(武)로는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편이란 말이지.”

조금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던 동탁이 턱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흘린다.

“양아들? 설마 여포 봉선?”

“어떤가, 현재의 무신이여. 삼국의 무신을 직접 영접한 소감은?”

능글맞게 웃는 동탁과, 무표정으로 검을 막아서고 있는 여포를 번갈아 본 황준우의 표정에 잠시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이 무기, 어디서 봤나 했더니 결국 네놈들과 연관이 되어 있던 것이 맞구나.”

“대표두가 살아 있어서 다행인 줄 알아라. 빌어먹을 놈들. 그래도 크게 다치게 한 몫은 받아야 되니까 목은 내놓고.”

분노한 황준우의 손에 급작스럽게 큰 힘이 들어갔다.

무표정으로 검을 막아서고 있던 여포의 신형이 휘청인다. 하나 짧은 틈새일 뿐, 단숨에 균형을 잡은 여포의 방천화극이 황준우의 검을 크게 밀어냈다.

찌이익-!

대기를 찢어버리는 굉음 속에서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선 황준우의 머리 위로 방천화극의 예리한 날이 또 한 번 번쩍였다.

폭음이 일었다.

먼지 구름 속 공중으로 떠오른 황준우는 검병을 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힘부터 밀리는 건 또 오랜만인데.”

실상 재생한 이후로는 처음이라고 보아야 했다.

그만큼 놀랐으나, 그를 표현할 새도 없이 여포의 공격이 연속으로 이어져 왔다.

파바바밧-!

마치 빛살처럼 이어지는 눈부신 공격을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모두 피한 황준우의 입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흘렀다.

“와-! 이거 무……!”

찌이익-!

턱 끝을 스쳐 지나가는 뜨거운 감촉과 함께 핏물이 튀기는 것을 느낀 황준우의 눈에서 광망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황준우의 신형이 앞으로 빠르게 쏘아졌다.

여유를 부리는 듯했지만 여포의 공격은 그가 만났던 어떠한 상대보다 강맹하고 빨랐다. 특히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서는 더욱 불리하다.

단숨에 거리 간의 격차를 줄이고 검을 내뻗는다.

그 속도가 마치 벼락과도 같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실제로도 천둥소리가 들린 듯했다.

동시에 폭음이 일었다.

방천화극의 긴 손잡이의 틈새로 황준우의 검극을 막아선 여포의 눈에서 검은 기운이 폭발했다.

“우와아아-!”

처음으로 입을 연 이후 내지른 말은 괴성이다.

“이것까지 막았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린 빈틈마저 막히자 당황한 황준우와 그를 쫓는 여포의 격전이 연신 이어졌다. 황준우는 흐르는 식은땀과, 온몸 구석구석에 화끈거리는 상처가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삼국의 무신, 여포.

물론 역사 속에서도 최강으로 거론 될 만한 괴물이라는 사실은 안다. 하나 상대는 지금 어딜 보아도 이지가 없는 괴물이었다.

그런데 밀리고 있다.

‘이런 주제에 고금제일이라고?’

잘난 척하는 스스로를 때려주고 싶다고 느낀 황준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 여포의 공격에는 거대한 내력이 실리지 않았다.

자연지기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데도 강하다.

빠르고, 압도적이다.

순수한 무(武).

그 자체가 여포 봉선이라는 인간의 몸에서 폭발하듯 펼쳐지고 있었다.

이는 황준우가 보았던, 생각했던 어떠한 경지에서도 볼 수 없던 가장 완벽한 무도(武道)의 길에 가까웠다.

인간의 몸이 이토록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황준우는 오늘 처음으로 느꼈다. 그것도 산 자가 아닌 죽은 자에게서 얻은 깨달음이다.

‘힘들군.’

점점 더 거세지는 상대의 맹공 속에서 황준우는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무한에 가까운 자연지기를 이용해 버티고는 있지만 자잘한 상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조차 수복하기 위하여 자연지기가 움직이고 있었지만, 회복보다 부상이 더 빨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몸이 무거워지고 굼떠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밀리지 않고 좁힌 거리에서 싸우고 있기에 이 정도였다.

검이 아닌 방천화극의 거리에서 맞붙었다면 더 위험했을 터다.

달리 말해 검보다 더 가까운, 권의 거리에 들어간다면 조금은 나을지도 모른다.

하나 여포의 창술은 그 깊은 틈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작금의 황준우로서는 검의 거리에서 방천화극을 상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콰과과광-!

한 번의 격돌마다 이어지는 힘은 대지를 흔들고 대기를 폭발시켰다.

그 어떠한 술의 개입도 없었지만 주변으로는 폭풍이 몰아치듯 거센 기운이 마구잡이로 날뛰며 주변을 찢어버린다.

당연하게도 그 근처로 다가올 수 있는 무인은 누구도 없었다.

마왕 동탁조차도 기겁하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을 정도다.

그 거친 폭풍의 격전 속에서 두텁게 살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격렬하던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왼쪽 어깨, 날카로운 방천화극의 날을 박아 넣은 황준우는 인상을 가득 찌푸린 와중에도 웃음을 보였다.

“이건 진짜 너무하네. 제정신이면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니,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크아아-!”

괴성과 함께 황준우와 방천화극을 통째로 들어 올린 여포의 팔이 거칠게 지면을 때렸다.

지면의 한 폭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고, 지면에 닿기 직전 간신히 몸을 빼낸 황준우가 피를 뱉어내며 수왕검을 움켜쥐었다.

“퉤. 다시 해보자고.”

우우웅-!

수왕검이 어딘지 걱정 가득한, 한편으로는 흥분 가득한 울음을 흘린다.

“쿠아아아-!”

괴성을 흘린 여포가 다시금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며 떨어지는 것 같은 그 위용에 황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깨는 아직 회복되려면 멀었어.’

이래서야 정면으로 부딪쳐서는 승산이 없다.

또다시 땅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이어진 공격은 역시나 빠르다.

효율적이다 못해 너무나 압도적인 그 광경은 처음에는 비현실적이게까지 느껴졌지만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래, 당연한 거다.’

자연스럽게 뒷걸음질 치며 공격을 피하고, 차분한 눈으로 이어지는 공격을 미리 읽어내고 또다시 피한 황준우가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팔괘술을 쓴다면 조금 더 쉽게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삼국의 무신 여포 봉선은 무인이다.

과거, 같은 무인의 싸움에 있어서만큼은 술을 봉인하기로 결심했던 황준우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한들, 그러한 무인의 맹세를 깨버릴 수는 없다.

‘쪽팔리게 이제 와서 팔괘술을 쓰면 면이 안 서잖아. 면이. 무인이 당당하려면 일단 스스로와의 약속부터 지켜야지.’

또다시 턱 끝을 스쳐 지나가는 방천화극을 느끼는 순간 고개를 숙이고 발을 내뻗은 황준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닿았다.’

드디어 검이 아닌 권의 거리.

가장 짧은 근거리의 영역에 도달한 순간 여포의 걸음이 뒤로 물러난다.

황준우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언젠가 그의 글 스승이 알려주었던 별명처럼 한 번 물어뜯은 것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상대를 쫓는다.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여포의 움직임은 여전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하게 효율적이지만, 말했듯이 이제 그는 당연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당연하다고 느낀 순간 이미 황준우는 자신의 제공 내에서 여포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보이기 시작했다.

황준우에게 보이고, 쫓을 수 있다는 말은 따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바로 천재의 영역이다.

말도 안 되는 세계를, 말이 안 되게 쫓아간다.

그 끝, 위협을 느낀 여포가 조금 무리해서 거리를 벌린 틈새에 황준우의 검이 길게 뻗어졌다. 수왕검의 검극에 피륙의 감촉이 느껴진다.

검 아니,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그 선명한 감각에 황준우의 목 뒤로 짜릿한 전율이 올라왔다.

뜨거우면서 차가운 감촉이 어깨 전체를 감싸는 것을 느낀 여포의 몸은 분노로 떨리는 듯했다.

“크아아아-!”

괴성에는 처음으로 비명이 섞여 나왔다.

“이걸로 무승부네.”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어렸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