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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205화 (205/373)

학사재생 205화

제 205화

“하나 더, 이 지역에 넘어와 있는 해적들은 다 네 밑에 있는 녀석들이야?”

“대다수야 그렇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해적이란 것들이 워낙 중구난방이다 보니 말이오.”

“야, 해적.”

“말투 하나로 통일해. 한어도 제법 능숙하게 하는 것 같은데 왜 이랬다가 저랬다가 말이 오가.”

“……죄송합니다.”

“어쨌든 네 통제가 안 되는 녀석도 있단 거네?”

“……죄송합니다.”

대체 이게 왜 죄송해야 될지 모르면서도 고개를 조아리는 에이지였다.

“좋아, 결정했다. 일단 너 그동안 약탈했던 사람들이나 물자들 다 어쨌냐?”

“주산군도 조금 너머에 본국과 오가기 편한 본영(本營)을 따로 몰래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곳에 모두…….”

말을 하는 에이지가 조심스럽게 황준우의 눈치를 본다.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지?”

“다 되돌려 놓겠습니다.”

역시 눈치 빠른 해적다운 대답이다.

하나 황준우가 바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좋아. 그리고 두 번째로 할 일이 있다.”

“어떤 것을……?”

“해군이 공백이라며.”

“전부는 아니고 일부는 남아 있습니다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황준우의 말에, 어쩐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에이지가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말했다.

“그래도 네깟 놈들이 언제든 들어오려고 마음먹으면 올 수 있다는 것 아냐. 그러니까, 네가 대신 좀 해라.”

“해군 역할 말이야. 네 부하들 시켜서 주변에 얼쩡거리는 녀석들 좀 처리해.”

“전 해적인데요.”

“해적이나 해군이나, 한 글자밖에 더 차이 나냐?”

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말도 안 되는 강압이다.

에이지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려다 몸을 굳혔다.

“몸이…….”

온통 푸른빛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당연하게도 에이지가 잘났다거나, 엄청난 내력을 운용하는 중은 아니었다. 초인의 몸을 회복하기 위한 자연지기의 움직임이라고 보기에도 과하다. 이 기이한 의문현상에 대한 답은 자연스럽게 황준우에게로 향했다.

“이건…….”

“뭐긴 뭐야, 말을 듣게 하려면 때려야 되고, 때려서 말을 듣게 하려면 죽지 않아야 되고, 안 죽이려다 보니 그렇게 해버린 거지. 마침 바다 위라서 그런지 수(水)의 기운이 아주 창창해. 덕분에 잠깐만 쉬어도 몸이 쌩쌩하지?”

싱긋 웃는 황준우의 물음에 에이지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니야.’

에이지는 잠시 잊어버렸던 본능적인 공포를 머릿속 가득 채웠다. 심장이 어찌나 쿵쾅대는지, 이러다간 초인의 심장이라 한들 얼마 안 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해군 역할이라는 말이 내키지 않으면 여전히 해적질을 한다고 생각해. 다만 해군과는 충돌하지 않는다. 평범한 백성을 약탈하지 않고, 상선과 어선을 공격해서도 안 된다. 지금부터 네 녀석이 죽이고, 빼앗아도 되는 상대는 단 하나야. 누굴까?”

“해적…….”

“그래, 같은 해적끼리 치고받으라는 거지. 불만 있어?”

“……없습니다.”

“오래 할 필요도 없어. 딱 반년 정도만 고생한다고 생각하라고. 그 전에 도망가거나, 다른 짓 하다 걸리면…… 말 안 해도 알지?”

“…….”

온몸을 뒤덮는 날카로운 기세에 살결 전체가 에이는 고통과 공포를 느낀 에이지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따르겠습니다.”

해적 떼를 순식간에 임시 해군으로 변모시킨 황준우는 부탁을 받았던 어촌 마을로 돌아가 소식을 전했다. 그 놀라운 사실에 걱정 반, 기대 반의 감정이 엉키는 듯했지만 여전히 황준우를 믿겠다는 반응이 가장 컸다.

여선위를 찾는 것에 대한 도움을 준 보상으로는 남천맹의 이름으로 일정 기간 식품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일생의 대다수를 섬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 음식은 황금보다 가치 있는 중요한 필수품이었다.

그렇게 작은 사건 하나를 일단락한 후, 제법 후련한 표정이 된 네 사람은 육지로 돌아와 의견을 나누었다.

황준우는 불안의 이유를 찾아내고, 떨치기까지 했으니 다시 남천맹 무림맹 지원군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신아였으나, 뒤늦게라도 충분히 합류할 테니 걱정은 없었다.

그 말에 황서연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나도 따라갈래.”

“위험해. 지금 가는 곳은 진짜 전쟁터라고.”

“몰라서 하는 말 아니야. 오빠. 나도 이제 한 사람의 무인이라고.”

“…….”

황서연의 마지막 말에,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은 표정이 된 황준우의 눈에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침착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묵묵히 기다리는 황서연에게서는 무게가 느껴진다.

그러기를 한참.

제자리에서 말없이 서 있기만을 하던 두 사람 중 황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인이라……, 서연아. 넌 무공이 뭐라고 생각해?”

“무공?”

되물은 황서연의 시선이 반짝였다.

고심하는 듯, 몇 번이고 혀끝까지 모았던 말을 되삼킨 그녀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무공은…… 힘, 그리고 폭력이야.”

“그래. 그리고 이 시대에, 강호무림에 있어 힘과 폭력은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지. 서연아, 내가 네게 무공을 가르친 건…….”

“알아, 나 스스로를 지킬 정도는 되었으면 했던 거지.”

“그래. 꼭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라는 뜻은…….”

“모순적이야.”

“음…….”

“오빠 같은 사람이 자신이 한 말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황서연이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말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애초에, 무공이란 것은 폭력이라고, 죽이는 힘이라고 방금 전에 오빠도 인정했잖아?”

“도련님, 아가씨도 이제는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듣고만 있던 경호가, 조심스럽게 옆으로 끼어들었다.

황서연의 의견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젠장, 알고 있어.”

그를 조금 얄밉다는 눈으로 바라본 황준우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토했다.

“그래도 오빠로서, 내 동생이 되도록 피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잖아.”

“이미 무공을 일러준 순간 그른 것 아니야?”

“어쩌면 그럴지도…….”

조금 에둘러 동의했지만, 마음속은 말과 다르게 완전히 수긍해 버렸다.

애초에 무공을 익힌 순간 황서연은 무인이 되었다.

그녀가 무공에 흥미가 조금 덜한, 평범한 여자아이였다면 달랐을지 모른다.

하나 황서연은 여느 사내 못지않게 무공을 좋아했고, 재능도 뛰어났다.

그런 그녀가 한 사람의 무인이 되어 당당히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이 아니라고 한들, 언젠가 분명히 찾아올 일이었다.

“휴……, 좋아. 대신 내 말을 잘 들어야 돼. 무모한 짓은 하지 않고.”

“노력할게.”

“지킨다는 말은 안 하네.”

“오빠 동생이잖아. 헤헤.”

홍조를 띠며 배시시 웃는 황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은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그래. 이대로 귀엽게, 무사히만 자라다오.”

“그건 아빠가 할 말이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듯하면서도 황준우의 손에 제 스스로 머리를 슥슥 비빈 황서연이 신이 난 듯한 미소를 그린다.

어찌 됐든 방금 전 대화로 황준우에게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스스로가 무인이 되고자 함을 깨달은 순간부터 말 못 했던 고민 하나가 방금 깨어진 것이다.

“그럼 이대로 우리 네 사람 다 북쪽으로 향한다. 거리도 조금 있고 이미 뒤늦은 후니까 바쁘게 움직여야 할 거야. 이 중에 무인 아닌 사람은 없으니까, 앓는 소리 내기 없기다.”

“드디어 도련님 곁으로 복귀로군요.”

“따르겠습니다.”

세 사람이 각자의 음성으로 힘차게 답했고, 일행들은 곧 빠른 걸음으로 북쪽을 향했다.

3. 무림대전(武林大戰)

마술사들의 함정에 빠져, 주요 병력의 대다수를 일거에 잃은 무림맹, 군부 연합군은 당초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무림맹주 운백이 무엇보다 지키려 했던 화산은 불바다가 되었다. 그들이 남기고자 했던 것, 지키고자 하였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었다.

초호서가 지키려고 하였던 백성들 역시 전화(戰火)를 피해가지 못했다.

천마신교의 악마 같은 마인들은 그야말로 무서운 바가 없는 듯 거침없이 행동했다.

패전의 연속.

연합군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던 때 황궁 측으로부터 첫 답신이 돌아왔다.

마도 무림이 천하 전체를 병들게 하니 각 성의 주인들과, 군왕들은 무림맹과 힘을 합쳐 적을 몰아내라는 명령서였다.

황궁 내에서 달리 파견 나온 병력, 혹은 고수는 없었다.

자연스레 혼돈은 더욱 가중되어 갔고, 결국 군부 측에서 탈영병이 먼저 발생했다.

진영 내 흉흉한 소문 중에는 역천(逆天)의 이야기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그때쯤, 끝도 없이 물러나기만 하던 연합군은 결국 섬서와 하남의 경계로까지 밀려났다.

이제는 화산이 아닌, 무림의 태산북두 소림까지 위협을 받는 영역에 다다른 것이다.

최근 섬서로부터 전해지는 소식에 걱정이 많던, 무림의 일을 잘 모르는 하남의 백성들도 작금의 상황이 평소 무림인의 싸움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불안에 떨었다. 하나 마냥 안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안휘에서부터 출발한 연합군의 새로운 힘, 남천맹의 군세가 하남을 가로 지르는 중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수가 오만 대군에 가깝다고 하였다.

심지어 나날이 불어 나가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천마신교의 행태에 분노한, 또는 남천맹이라는 새로운 세력에 기대를 가진 은거고수들과 뜨거운 가슴을 가진 협객 혹은 낭인들이 그 행렬에 계속해서 합류 중인 탓이었다.

갑작스럽게 부대 규모가 커졌지만 물자가 부족할 일은 없었다.

남천맹의 일각에는 만금장의 이름이 있다.

천하제일 상가!

그리고 남천맹의 협행을 응원하는 오대상단이 더 합류하여 식품을 비롯한 병장기까지 모든 물자가 풍족할 정도로 지원되었다.

하남의 주민들은 그러한 남천맹의 부대가 지나갈 때에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천마신교를 꼭 막아 달라며 응원의 목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남천맹의 군세는 사기가 끝까지 오른 채로 하남의 최북단까지 막힘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운백이 말했다.

그 말은 어제의 패전에 의하여, 또다시 본영을 옮기게 되어 지친 표정으로 다음 전투를 기다리고 있던 모두의 마음속에 똑같이 맴돌던 이구동성이었다.

“어마어마하군요. 진짜 오만은 못 되어도 사만은 넘어 보입니다.”

시야로 확인할 수 있는 먼 거리에서 남천의 깃발을 세운 채 다가오는 남천맹 군세를 바라본 초호서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늦은 도착이라고 할 수 있으나, 어쨌든 아군의 원조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는 탓이다.

“그래 봐야…… 숫자가 중요하겠소? 우리도 처음에는 오만을 넘는 대군(大軍)이었소.”

누군가의 불평 섞인 읊조림도 잠시 섞여들었지만, 곧 이어진 헛기침에 금세 사라졌다. 사실이 어찌 되었든 지금과 같은 때에마저 굳이 서로의 기를 죽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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