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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99화 (199/373)

학사재생 199화

제 199화

화산을 목전에 둔 천마신교의 군세는 단순히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지칠 줄조차 모르는 듯했다.

지난 며칠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밀고 들어오는 천마신교의 공격은 무림맹과 군부의 연합군에 있어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고, 뜬 눈에 힘을 풀어서도 안 되었다.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적과, 혹독한 환경에서 연합군에 단 한 명의 탈영병도 나오지 않은 것은 젊은 도독첨사 초호서의 지도력은 물론, 평소 말이 많은 무림맹의 수뇌부까지 전력을 다해 전선을 사수하려 한 덕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 수준에도 한계는 있다.

인간인 이상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때가 찾아온다.

초호서는 이 전쟁이 시작되고 무엇보다 그 한계가 찾아오는 때를 가장 많이 걱정했다.

기실 무림맹 측은 상황이 조금 나았다.

그들 모두가 무공을 익힌 탓이다.

하나 초호서가 이끄는 군인들 중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도 많다.

이 차이는 제법 컸다.

내공을 이용한 체력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호군(西護軍) 역시 괜찮아.’

서호군은 본래 초호서가 이끌던, 오래도록 세외의 침공으로부터 변경을 지키던 변경부대다. 그런 만큼 거칠고 힘든 상황에도 익숙하며, 체력을 뛰어넘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되어 있다.

초호서는 그들이 어지간한 무림인들을 압도한다고 자신했다.

혹한 상황에서 단련된 무인은 상상 이상으로 강한 존재다.

그 삶은 매일이 전쟁이었다.

식량과 노예, 비옥한 땅을 원하는 사막의 도적들은 쉴 새 없이 변경을 공격했으며 변경군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제 발로 험한 사막에 뛰어들어야 했다.

거친 사막의 부족, 전사들은 그 전까지 초호서가 알고 있던 상식을 뛰어넘었다.

서호군은 그런 사막에서 싸워서, 살아남고, 승리한 이들이다.

매일을 전장에서 살아오며 패배하지 않았다.

그 강인함은 감히 과거의 초호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그러한 사막으로 향한 이유가 고작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였다니 말이다.

다행인 것은 초호서가 명예를 아는 군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힘든 상황에서도 스스로가 군인임을 잊지 않고, 자신이 지키는 국가를 위해 싸워왔다.

그 결과 어린 나이에 수많은 전공을 세우며 도독첨사라는 직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많은 군부의 무장들은 그런 초호서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주머니 바깥으로 튀어나온 송곳이라며 그를 아니꼽게 여기는 시선도 제법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초호서는 죽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가 명예로운 군인이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가 가문으로부터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정신이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죽음과, 패배는 두렵지 않다.

다만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할까 봐 두렵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이끄는 군대를 이루는 주축이라 볼 수 있는 군왕(郡王)과 현령들이 지원한 관군(官軍)들에게 곧 찾아올 한계는 초호서에게 있어 큰 걱정거리였다.

‘결국 한계가 찾아와 사기가 죽어버리면, 방진(方陣)이 무너지게 된다.’

현재 초호서가 이끄는 군대는 좌익군(左翼軍)에 속했다. 그들의 방진이 무너지면 본대가 위치한 중군(中軍)에까지 천마신교의 군세가 파고들어 와해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그가 무림맹주, 운백의 앞에서 당당히 말했던 바대로 지켜야 할 백성들을 모두 죽게 만드는 일까지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루라도 쉴 기회가 있으면 좋으련만…….”

초호서의 바람이 꽤나 깊게 하늘에 닿았을까?

지칠 줄 모르던 천마신교의 군세가 동이 틀 때까지 침묵했다.

언제 적이 올지 모른다며 방심하지 않고 있던 연합군은 의아함과 함께 안도를 느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그 어떠한 현상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불사군대와 쉴 새 없이 마주하는 것은 그만큼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하나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적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지만, 또 언제 기세가 변하여 공격해올지 모른다.

그들은 사냥꾼이었고, 연합군은 사냥감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동이 텄을 때의 공격이 조금 더 나았다.

첫째로, 적의 모습을 확실히 분간할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둘째로는 어둠 속에서 싸우는 불사자들이 전해주는 공포감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든 조금은 더 낫다.

그리고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지나갔다.

아니, 며칠이 더 흘렀다.

초호서가 원하던 휴식이 이어진다.

다만 너무 길었다.

‘이대로는 마음이 오히려 풀어진다.’

걱정은 쉽게 해결되었다.

이 침묵이, 적의 군세에 문제가 생겼음을 암시한다고 느낀 수뇌부 회의에서 선공 결정이 내려졌다. 정예병력을 일부 뽑아 야간 기습을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쓰러진 적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불사의 군대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중요한 정보를 얻은 연합군은 더 이상 움츠리지 않았다.

“모두 공격해라! 이번에야말로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군이 시작되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우스운 점은 그런 기다림이 언제나 필요한 일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작은 구멍에 숨은 겁쟁이 쥐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인내심은 필수지.”

차가운 냉소가 어린 장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합군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것은 무림맹의 절정 무인 집단이었는데, 그 수가 삼백에 가까워 보인다.

무림맹쯤 되지 않는 집단이라면 모일 수 없는 인원이었다.

심지어 그 사이, 사이에는 기세를 감춘 초인급의 무인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그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여태껏의 분풀이를 하듯, 노도와 같은 기세로 몰아치며 천마신교의 전열(前列)을 단숨에 때려 부쉈다.

폭음과 함께 비명도 없이 죽은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뒤를 따라 연합군의 군사들이 마저 몰아닥친다.

사정을 봐주지 않고 이어지는 공격을 보며 장량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문제가 생겼을 때 단숨에 중앙을 꿰뚫어 수장의 목을 취하겠다. 손무의 금적금왕이로군.”

중앙 본영.

군의 머리가 있을 것이 분명한 가장 거대한 막사를 향해 다가오는 연합군 선봉대의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듯했다. 하나 피해가 하나도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다만 지치고 어려워도, 그만큼 많은 힘을 쏟는다 한들 적의 머리를 쳐 이 전쟁을 끝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기에 젖 먹던 힘까지 짜낼 수 있는 것이다.

깊이, 더 깊이.

그렇게 들어오는 연합군의 군세를 바라보던 장량이 허공으로 떠올라 금강저를 쥐었다.

“옴 반메…….”

주문을 외기 시작하자 장포가 흩날리며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이 신호였다.

전장의 다섯 방향.

각자의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술사들이 함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일반인은 물론, 무림인의 시선에도 보이지 않는 불쾌하고 검은 아지랑이들이 선봉대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그것은 이내 검은 뱀의 형상이 되었으며 사람의 머리 안으로 파고들기까지에 이른다.

“끄아악-!”

전장을 뒤흔드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한둘이 아니었다.

선봉에 선 삼백에 가까운 무인 중, 이백이 넘는 무인이 괴로움에 신음하며 몸부림친다.

“무, 무슨 일이야!?”

“적의 사술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와중에도 마음을 다잡은 또 다른 선봉대의 무인들이 당황하며 소리치는 순간이었다.

파바밧-!

강기가 사방에서 솟구쳐 그들의 목과 머리를 꿰뚫었다.

“……!?”

“어째서……?”

방금 전까지 등을 맡기고 싸우던 동료의 검이 그들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의문을 표현했지만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었다.

“크아아-!”

“죽어-!”

괴성 혹은 분노를 가득 담은 외침을 내지르는 그들은 동료가 아닌 적이 되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광기(狂氣)는 전염되는 법이지.”

어딘지 모르게 차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전해졌을 때에는 그나마 정신을 힘겹게 부여잡고 있던 이들마저 변모했다.

동시에 그들의 머리 위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검은 폭발이 일어났다.

“우오오-!”

말없이 죽음을 맞이하던 천마신교의 군세가 고함을 내질렀다.

두 눈을 붉히며 적을 향해 검을, 손을, 이빨을 들이민다.

선봉대의 분열과, 짐승과도 같은 적들의 돌진에 기세를 타던 연합군의 흐름이 단숨에 꺾였다.

난전(亂戰)의 시작이다.

“크악!”

“내 파알-!”

“아악!”

고통에 찬 비명과 공포, 분노, 신음이 사방으로 번져나간다.

허공에 떠 그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본 장량이 어깨를 떨며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 피의 축제로구나.”

현혹에 빠진 광기의 전사들이 뛰어나가자 결국 버티지 못한 연합군이 또 한 번 군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하나 이미 너무도 깊이 파고든 상황에서 짐승과 같이 달려드는 천마신교의 군세는 그들의 꼬리를 쉽게 놓지 않았다.

끔찍한 혈전(血戰)이 이어지며, 어둠이 모여들고 있었다.

2. 북진(北進)

여상욱은 북으로부터 계속해서 전해지는 불길한 소식에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 남기연합과 정의회가 하나 되어 이룩한 남무림, 공식적으로 발호한 남천맹(南天盟)의 움직임이 상당히 빨랐다.

협상이 체결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무인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꾸려졌고, 그 선봉에 황준우와 서문지언이 섰다.

새로이 제작한 남천(南天)의 깃발을 든 그들을 보며 남무림의 무인들은 알 수 없는 설렘에 남천맹의 이름을 연호했다.

“우리는 명예를 아는 무림인이다. 무림인의 명예란, 사리욕과 약자를 향한 횡포를 뜻하지 않는다. 천마신교는 그를 잊었다. 그렇기에 훗날 우리의 전쟁은 정의(情意)와 협(俠)이라 불릴 것이다.”

대표로 나선 서문지언의 짧은 연설과 함께 출병식이 끝맺었다.

이야기 속 협객을 보며 무림인을 꿈꿔왔던 이들은 두 주먹을 움켜쥐며 그의 연설을 머릿속에 새겼다.

스스로가 협이 되고자 하였다.

말 몇 마디로 사기를 끌어 올리고, 전쟁의 의의를 완벽히 부여했다.

무엇보다 현재의 남천맹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젊은 수뇌부를 둔,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남천맹.

새로운 시대의 주역.

이런 이야기만으로, 자신이 그 미래에 함께하고자 남천맹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무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거기에 정의와 협이라는 양념까지 뿌려버렸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던가?

“화룡정점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요.”

감탄한 전왕의 말에,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기이한 쪽으로 고지식하지만, 존경할 만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야. 배워야지.”

“저는 늘 배우는 자세를 잊지 않는다는 점이 주공의 가장 훌륭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전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쑥스럽게 말하기는. 일단 먼저 저쪽이랑 함께 출발해. 나는 잠시 기다려야 할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알겠습니다.”

황준우의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를 잘 아는 전왕은 고개를 주억인 후 출병식을 끝마치고 진군하기 시작한 남천맹의 군대를 쫓았다.

괜히 함께 가려고 뒤늦게 출발했다가는 짐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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